본문 바로가기
사각풍경

그림 속의 그녀

2020. 9. 18.

 

E. M.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1909,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 1978년 출간되었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누구?”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알잖아. 그림 말이야. 그 그림 몰라?”

거지 소녀 | 앨리스 먼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간직한 내밀함의 미덕을 감지했다.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의 여인 같았다. 우리가 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녀 자신보다 오히려 그녀가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는 것들 때문이다. 그녀가 말해 주지 않는 그것들은 분명히 이 세상의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어떤 여인에게도 〈사연〉 같은 통속적인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여인으로 성숙해 갔다.
전망 좋은 방 | E. M. 포스터

 

로즈의 약혼자 패트릭은 부유한 집안의 도련님이다. 패트릭은 거지 소녀 로즈를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은 코페투아왕이 되었다.

루시의 약혼자 세실은 중세 사람이었다. 세실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루시를 사랑했다.

두 약혼자 모두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여성이 아니라, 그림 속의 이미지를 사랑했다.

 

* [그림] 번 존스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

 


「아니에요. 당신은 그 말뜻을 몰라요.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레오나르도의 길에서 벗어났다. 「당신은 몰라요!」 그녀의 얼굴은 예술적이지 못했다. 까탈 떠는 계집의 얼굴일 뿐이었다.

전망 좋은 방 | E. M. 포스터


로즈는 그 그림을 보았다. [] 그녀는 유순하고 육감적인 거지 소녀와 그 소녀의 수줍은 흰 발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녀의 소심한 굴복, 그 무력함과 황송함. 패트릭은 로즈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걸까?
거지 소녀 | 앨리스 먼로

 

세실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표명하는 루시에게서 까탈 떠는 계집의 얼굴을 본다. 그녀는 낯설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패트릭은 그림에서 코페투아왕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지만, 로즈는 소녀의 소심한 굴복, 그 무력함과 황송함을 본다. 페트릭은 소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거지 소녀를 사랑하는 왕인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 것이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그녀 자신을. 그것은 약혼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떠나서 살아 있는 여자가 되었다. 자신만의 신비와 힘을 지니고 예술조차 담지 못할 온갖 속성을 지닌 여자가.
전망 좋은 방 | E. M. 포스터


루시는 파혼을 결정한다. 세실은 그녀가 떠나려고 하는 순간, 그녀의 진면목을 본다.

세실은 중세의 인간이지만, 소설에서는 그 순간 위엄있게 행동한다.

그는 미리 일러 줘서 교정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 한다.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떠난다.

 

패트릭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 그녀 자신도 보지 못하는 순종적인 이미지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희망은 원대했다. 그녀의 사투리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못난 친구들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저속한 습성을 억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거지 소녀 | 앨리스 먼로


로즈와 패트릭은 결혼한다. 패트릭은 로즈를 교정하려고 한다.

 

그가 말했다. “스스로가 원하는지 네가 알고 있는가 하는 거야. 아니라고 . 네가 자신이 원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생각해. 그냥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 거지.”

원하는지 알아야 원하지 않는지 있는 아니야!” 로즈는 돌아누우며 말했다. 말을 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당신을 사랑한 없어.”

거지 소녀 | 앨리스 먼로

 

패트릭은 로즈가 원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로즈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지 안다고 한다.

간극은 둘의 이혼으로 끝난다.

 

<전망 좋은 > <거지 소녀> 70년의 시간차가 있다.

여성은 끊임없이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홀로서기를 추구한다. 과정에서 절망하기도 하고 성취하기도 하면서 오늘이 이른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전망 좋은 > 루시는 인습과 관습을 뚫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조지는 당신이 품에 안겨서도 당신 자신의 생각을 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거지 소녀> 로즈는 이혼 후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결핍을 느낀다. 결말까지도 그녀가 답을 찾지 못한다.

왜일까?

루시는 부유함에서 중산층으로 떨어졌을 뿐이고, 로즈는 거지에서 부유층에 편입할 기회를 가졌지만 튕겨나와 겨우 중산층에 진입한 경우여서 그럴까?

아니면, 루시의 결말이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동화의 결말처럼 미완의 결말이기 때문일까?

50년 후 작가가 덧붙인 에필로그 "방이 없는 전망"에서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방은 사라졌지만 전망은 남았다고 하니, 미완의 결말은 아닌가?

 

하여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거지 소녀가 전망 좋은 방에서 사랑하는 이와 전망을유할 있기를……

 

 

'사각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이란 무엇인가?  (0) 2021.01.10
선입견  (0) 2020.12.28
아주 가끔, 아주 잠깐  (0) 2020.11.19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0) 2020.11.05
눈먼 암살자  (0) 2020.10.04
거울  (0) 2020.08.24
타인의 해석  (0) 2020.08.14
걸어가다  (0) 2020.07.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