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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

들킨다는 것의 부끄러움

2023. 2. 13.

 

들킨다는 것의 부끄러움

 

무지일 수도 있고, 속물성일 수도 있고, 비밀일 수도 있고.

들켰을 때, 모멸감과 분노와 허탈함이 뒤따른다.

 

 

에이미와 이저벨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엄마, 예이츠예요. 이이츠가 아니라.”

이저벨이 돌아보았다. “?” 당혹감이 벌써 목으로, 가슴으로 퍼지고 있었다. 

 

<예이츠 시 선집>

그들은 이저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그들이 그 혐오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자기에 대해 이따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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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집 앞 진입로로 들어서면서 느낀 것은 깊은 분노와 고통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도 생명을 지탱할 수 있으리라고 절대 믿을 수 없었던, 그런 분노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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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저벨은 낯선 존재, 딸 에이미와 함께 살고 있다.

에이미는 학교 교사와 부적절한 만남을 이저벨에게 들킨다.

하지만, 들킨다는 것의 부끄러움은 이저벨의 몫이다.

이저벨의 무지. 교사의 집에 있는 <예이츠 시 선집>을 보고서 그들이 어머니인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그리고 에이미의 예이츠정정은  그 결과라는 것.

결국 분노와 고통은 이저벨의 몫이다.

 

 

슬픈 짐승 / 모니카 마론

 

당신이 이 뼈대를 아름다운 동물이라고 말했던 사람이지요. 그녀가 말했다. 내 남편은 그 말에 아주 감동해서 바로 그날 저녁 내게 그것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놀라워요. 보세요. 그것이 우리가 당신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소박함이에요.

 

프란츠의 아내는 남편과 함께 바로 지난 주말에 박물관과 브라키오사우루스를 구경했다고, 그 거대한 동물이 텐다구루에 살아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자 자신도 남편도 경건한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

프란츠가 작은 금발의 아내와 함께 나의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어떤 장소들이 프란츠와 그의 아내의 것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 블리커 스트리트, 그리고 피렌체 전체가 그들의 것이었겠지만, 그러나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작은 머리 아래의 그 1제곱미터는 내 것,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프란츠의 아내는 도발적으로 세심하게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식탁보 위의 주름 하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는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되자 무릎 위에 두 손을 엇갈리게 놓았다. 그녀가 미소지었다.

 

나는 그녀를 때리고 싶다는 제어하기 힘든 욕구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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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박물관에서 일한다.

아침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작은 머리 아래에서 사랑과 경의를 표한다.

어느 날 그 곁에서 그 의식에 공감한 프란츠와 사랑에 빠진다.

프란츠는 유부남이다. 프란츠가 아내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그녀와의 시간을 희생하자, 극심한 질투에 사로잡혀 프란츠의 집에서 아내를 대면한다.

아내는 이미 알고 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작은 머리 아래의 그 1제곱미터.

아내는 프란츠와 자신만의 공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제어할 수 없는 분노 또한 그녀의 몫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사랑하는 남자와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마음과 같지 않다.

사랑이 보답받지 못하면 우리는 분노한다.

누구에게 향한 분노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사랑하는 딸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남자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있는. 어쩌면......

 

 

 

에이미와 이저벨 - YES24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강렬한 데뷔작!“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어려움에 관해 빛나는 고결함과 유머로 써

www.yes24.com

 

 

슬픈 짐승 - YES24

현대 독일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모니카 마론이 그려내는 절박한 사랑의 언어클라이스트상, 횔덜린상 수상 작가 모니카 마론의 대표작으로, 구동독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던 이전 작품들

www.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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