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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빵 한조각 | 툴루즈 로트렉(Taulouse Lautec, 1864-1901)

2012. 10. 10.

 

 

 

 

마지막 빵 한조각, Last Crumbs(En et cafe la Mie)


 

툴루즈 로트렉

Taulouse Lautrec, 1864-1901 

 

  

 

 

관련 링크

네이버 캐스트    http://bit.ly/ReAEYP

Works of Art       http://bit.ly/ReAYH6

Wikipedia           http://bit.ly/ReADnT

 

 

"다 먹은 거야?"
"좀 기다려요. 아직 남았잖아요."
그는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문이 열릴 때마다 입구를 돌아보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알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내 모습은 더 초라하다.
열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지만, 어느 순간 상대방의 맘을 속속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때가 있다. 그리고는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른다고 되뇐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길 바라면서.
"조금 남았네."
"바쁘면 먼저 가요!"
그는 냉정한 사람이다. 끝이라고 말하고는 끝이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타협의 여지가 없다. 끝이라고 말했는데 또 다른 이유가 뭐 필요하냐는 거다. 마치 그가 끝이라고 하면 세상 모든 것이 끝이어야 한다는 듯이 말했었다. 그게 이유이긴 하다. 그의 끝은 정말 나의 끝이다. 그래서 난 아직 끝낼 수가 없다. 그가 유일한 희망이다.
그는 이미 내가 어떻게 할지 알고 있다. 그러니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난 매달리며 애원할 것이다. 제발 끝이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그는 애원을 싫어한다. 나도 싫다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이 싫다. 그는 매달림의 절박함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깔끔하지 못한 구차함 속에 자신을 두려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 속에 있고 싶지 않다. 더구나 매달리는 편으로는. 그는 그 상황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빨리 먹어."
"가만히 좀 있어요. 먹고 싶을 때 먹을 테니까! 성가셔 죽겠네."
모든 상황은 예고가 있다. 그가 요즘 인상을 쓰고 다닐 때부터 우린 알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슬슬 피했었다. 여자도 생긴 것 같다. 그의 차림새는 예전의 모습과 달리 부쩍 멋을 부렸다.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상대가 생긴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는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그 여자 앞에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웃겠지. 우리의 불행은 그의 안중에 없다.
"내가 먹을까?"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이 한심한 인간아. 이 상황에 그게 그렇게 먹고 싶어? 지금 집을 비워주면 우린 어쩔 거야.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하면서. 그 돈으로 어디에 집을 얻을 건데? 집주인한테 애원해서라도 그냥 있게 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지금 그게 그렇게 먹고 싶니? 그 여자 모양새도 못 봤어? 그 여자 취향을 다 맞춰주려면 집주인도 돈이 필요할 것 같긴 해. 그렇다고 우릴 몰아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 무섭다니까. 게다가 여기 나타나지도 않잖아. 얼굴을 봐야지 매달리든지 뭐든지 하지. 도대체 어떻게 할 거야? 이 작자야."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하는 내 옆의 남자는 어기적어기적 마지막 빵 한 조각을 베어 물고 있다.
어이구,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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