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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 - 제임스 앙소르 (James Ensor, 1860-1949)

2012. 9. 6.

 


     
 

음모 The Intrigue                        


제임스 앙소르

James Ensor, 1860-1949

 

 

 

 

 

 

관련링크

네이지식백과 http://bit.ly/Rcuexd
MoMA       http://bit.ly/UtXMVR

wikipedia   http://bit.ly/Rctxnw

 

 

음모를 꾸미려면 가면을 써야 하고, 가면 뒤에 숨겨진 다른 이들의 얼굴을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음모를 꾸민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 결과가 자신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면 힘겹게 음모를 꾸밀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난 다르다. 음모, 그 자체를 즐긴다. 볼품 없는 늙은 노파의 일상에 주어지는 작은 즐거움이다. 노인은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서 세상을 뒤엎을만한 거대한 음모를 꾸밀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속은 뒤집을 수 있다. 그렇다고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행복해하는 괴팍한 노인네는 아니다.
내게도 원칙은 있다.
부유한 사람이 거만한 것만큼 꼴 보기 싫은 것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동전푼을 던져주면서 대단한 선심인 양 우쭐대면, 가난한 이들은 동전 몇 닢도 아쉬워서 앞에서는 굽실거리지만 뒤돌아서 침을 뱉는다. 침을 뱉는 건 대세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은 치기 어린 행동일 뿐이다. 당사자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마을 외곽의 거대한 저택에 사는 부부가 마을에 들어섰다. 그들 부부가 늘그막에 아이를 얻어 자랑스레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곤 했다. 그들이 조용히만 지나갔어도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걸음걸음을 뗄 때마다 마을의 지저분함과 천박함 그리고 가난함에 치를 떨었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불쾌한 표정을 지음으로써 아내의 수다에 말없이 동조했다. 그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이들이 없는 이 마을에 불만이 많았다.
나는 평소 그들이 못마땅했고 어느 정도는 벼르고 있었다. 그들이 내 집 앞을 지나갈 때 나는 반갑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구, 어르신, 아기가 정말 천사 같군요. 저희 마을에 많이 베푸셔서 아기가 축복을 많이 받았나 봅니다."
그들은 내심 지저분한 늙은 노파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으나, 아이에 대한 칭찬에 혹하여 약간의 여지를 준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난 그 틈을 타 냅다 아이를 뺏어 안았고 얼굴을 이모저모 뜯어보며 한마디 했다.
"마님을 많이 닮았군요.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한 것이 ……."
여자가 약간 과장되게 웃었다.
"귀도 참 잘 생겼네요. 이런 귀는 흔하지 않지요. 우리 마을에는 대장장이 귀가 이렇게 생겼지요. 대장장이는 솜씨가 대단해서 이웃마을에서도 일감을 가지고 온답니다."
순간 여자가 웃음을 거두며 아이를 뺏듯이 품에 안았고, 남자는 못내 못마땅한 듯이 걸음을 옮겼다. 덕담 끝에 대장장이와 닮았다는 말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한 건 그게 다다. 물론 그 옆에 마을에서 수다쟁이로 유명한 여편네가 있음을 알고 내뱉은 말이었다. 그 순간이 어떻게 각색되어 마을을 돌게 될지는 불 보듯이 뻔하다. 대장장이는 여자의 정부가 될 테고, 아이는 대장장이의 아이가 될 테고, 남자는 천하의 멍청이가 될 터이다. 소문은 돌고 돌아 남자에게 들어갈 터이고, 그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 집안은 그리 평탄치 못하겠지. 내가 원한 것도 그게 다다.
그런데 이야기의 결말이 예상을 빗나갔다.
소문이 남자에게까지 들어가자 여자를 볶아댄 것까진 적중했는데, 정말로 여자와 대장장이가 아이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남자는 체면 때문에 뒤이어 마을을 서둘러 떠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이 내가 꾸민 음모의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그 노인네 속여먹는 돼먹지 못한 대장장이의 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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