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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45

경계 경계가 있다. 안과 밖, 여기와 저기, 여자와 남자, 아군과 적, 나와 나 이외의 것…… 그리고 …… 에 생략된 수많은 경계들. 경계의 기준점에는 내가 있다. “나”라는 존재의 물리적, 심리적 위치. 백교수의 집 문은, 특별히 손잡이의 단추를 눌러 두지 않는 한 자동으로 잠겨지게 되어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올 때마다 늘 손잡이의 단추를 누르거나 열쇠 가지고 나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초인종 소리가 났다. 그런데 아무도 온 사람이 없어서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비바람에 현관문이 닫히고 말았다. 나는 경찰관에게 길게 설명했다. 말이 짧은 사람은 설명이 긴 법이다. 경찰관은 내게 말했다. "Are you locked out, aren't you(밖으로 갇힌 거군.. 2023. 6. 13.
악은 인간적이다 스틸 라이프 / 루이즈 페니 中에서 "여기 이 시예요." 머나가 말했다. "제인은 오든이 허먼 멜빌에게 바친 시를 읽으셨죠." 악은 특별하지 않고 언제나 인간적이어서 우리와 함께 자고 우리와 함께 먹는다. 빌리 서머스 / 스티븐 킹 中에서 “뭐, 살다 보면 개떡 같은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죠. 산다는 건 파티와 같고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 파티의 운명이니까요.” 그는 살짝 놀라워하며 그녀를 곁눈질한다. “F. 스콧 피츠제럴드가 한 말이니?” “프린스요."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 피터 스완슨 中에서 그 시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빌 노트의 시인데 잊지 않도록 여기 적어두려 한다. '작별'이라는 제목이다. 만약 이 글을 읽을 때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눈을 감아요. 나는 당신의 .. 2023. 5. 2.
직조와 날조 / 빌리 서머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빌리 서머스 / 스티븐 킹 中에서 “그 남자를 왜 죽였는지 얘기해 주세요.”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잠깐 멈춘다. “네?” “잠자기 전에 들을 만한 얘기는 아닌데.” “듣고 싶어요. 이해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아저씨는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거든요.” 나도 항상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왔지. 하지만 최근 벌어진 일들로 인해 과연 그런지 빌리는 의문이 생겼다. “내가 그런 거 아니에요. 아저씨, 내가 방아쇠를 당긴 게 아니에요. 진짜예요.” 하지만 앨리스가 방아쇠를 당긴 게 맞았다. 앨리스의 안에서 낯선 누군가가 눈을 떴으니 이제 앨리스는 그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했다. 그 누군가도 앨리스였다. 다음번에 앨리스가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 누군가가 보일 것이었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 2023. 5. 2.
결국 관찰...... / 아노말리, 스틸 라이프 아노말리 / 에르베 르 텔리에 中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관찰하고, 감시하고, 숙고해야 한다, 아주 많이. 그리고 때를 보아 빈틈을 파고든다. 그렇다. 빈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우주가 쪼그라들도록, 쪼그라들다 못해 총부리나 칼끝에 응집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그게 전부다. 의문을 품지 말 것, 분노에 쓸려 가지 말 것, 매뉴얼을 선택할 것, 조직적으로 행동할 것. 블레이크는 이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워낙 오래전부터 그래 왔기 때문에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조차 모른다. 나머지는 나중에, 그냥 저절로 할 수 있게 됐다. 스틸 라이프 / 루이즈 페니 中에서 ”나는 지켜보네. 관찰해서 뭔가 알아차리는 걸 아주 잘하지. 그리고 들어. 귀담아듣는 거야. 사람들이 어떤 낱말과 어떤 목소.. 2023. 5. 2.
링컨 하이웨이 / 에이모 토울스 에밋 & 빌리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는 빌리가 옳았다. 그들은 이미 모건을 떠났다는 점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짐을 싸서 왔으니, 그들은 삶의 그 부분을 뒤로하고 떠나온 것이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걸 아는 것은 그들 둘 모두에게 위안이 될 터였다. “언젠가는 샌타페이에 가보고 싶어요.” 에밋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뉴욕에 가야 해요.” 걸인은 웃음을 멈추고 좀 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음, 한마디로 그게 인생이지. 안 그래? 가보고 싶은 곳은 이곳인데, 가야만 하는 곳은 저곳인 상황 말이야.” 책의 끝이 가까워졌을 때 에밋은 백지상태인 두 페이지를 보고 동작을 멈추었다. […] “이 여백은 애버네이스 교수님이 당신 자신의 모험담을 적어보라고 독.. 2023. 3. 31.
링컨 하이웨이 / 에이모 토울스 이야기 둘, 나 자신의 라이오넬 식당을 열고 싶어 더치스 ‘악행의 사슬’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고, 다른 사람은 여러분에게 나쁜 짓을 할 거예요. 그리고 서로에게 하는 이 나쁜 짓은 여러분의 사슬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한 나쁜 짓은 죄의 형태로 여러분을 얽어매고,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한 나쁜 짓은 분노의 형태로 여러분을 얽어맬 거예요. 우리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 두 가지 얽매임으로부터 여러분을 해방하기 위해 있는 겁니다. - 세인트니컬러스 소년원, 아그네스 수녀 내 마음속에는 분노와 죄책감, 그 두 가지가 자리 잡게 되었다. 두 개의 상반된 힘이 너무 당혹스러워서 나는 다시는 푹 잠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 2023. 3. 31.
링컨 하이웨이 / 에이모 토울스 이야기 하나,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 에밋 “나도 내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모른다면 좋겠어.” 울리가 말했다. “왜요, 울리 형?” “그러면 너처럼 어머니를 찾아 떠날 수 있을 테니까.” “이거 알아차린 적 있어? 아주 많은 질문들이 W로 시작한다는 거?” 울리는 손가락을 꼽으며 세었다. “누구Who. 무엇What. 왜Why. 언제When. 어디서Where. 어떤Which.” “재미있지 않아?” 울리가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오래전 단어들이 처음 만들어질 때, 무엇이 그 단어들을 만든 사람들로 하여금 W를 모든 질문에 사용하게 했을까? 이를테면 왜 T나 P가 아니고? 그걸 보면 W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안 그래? 그러니까 내 말은, W가 무척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는 거야. 특.. 2023. 3. 31.
감정 없는 훈계, 조언, 충고 말하기 좋은 조언이라는 것이 있다. 말하기 좋지만, 행하기는 힘든. 너무 당연한 말이라 상대가 행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그 당연함을 행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는 순간까지는. 친구들은 처벌이자 결론으로서의 고통을 말했고, 엘리후는 전언이자 과정으로서의 고통을 말했다. - 인생의 역사 / 신형철 친구들은 말한다. 신이 죄 없는 자를 벌하진 않을 거다. 죄의 결과로서의 고통이라고. 엘리후는 말한다. 고통의 과정 자체가 신의 전언으로 결과적으로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친구들의 감정 없는 훈계는 욥의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에밋, 이 두 가지 다 썩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거야. 이들은 전쟁을 계속할 순 없지만 남성스러움도 내려놓지 못하는 거야. 물론 너.. 2023. 3. 17.
유토피아 Utopia 유토피아 Utopia 모든 것이 명백하게 설명되어 있는 섬. 이곳에서는 탄탄한 증거의 토대를 딛고 서 있을 수 있다. 모든 길은 목적지를 향해 뻗어 있다. 덤불은 정답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곳에는 엉키지 않고 곧게 나뭇가지를 뻗은 '논리적인 가설의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우물가에는 눈부시게 곧은 '이해의 나무'가 "옳아! 이제 알겠어!"를 연방 외치는 중. 숲속으로 멀리 들어갈수록 '명백한 타당성의 계곡이 더욱 넓게 펼쳐져 있다. 일말의 의구심이라도 싹트기 시작하면 바람이 불어와 사방으로 흩어놓는다. 메아리는 부르는 사람 없어도 저절로 응답하면서 세상의 비밀에 대해 기꺼이 속삭인다. 오른쪽에는 '의미'가 보관된 동굴. 왼쪽에는 '깊은 신념'의 호수. 바닥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온.. 2023.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