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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以前)

고통

2020. 8. 17.

작성일 : 2016. 01. 03.

 

굳이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명제에 공감한다.

쇼펜하우어는 “행복도 고통이 덜한 상태일 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사회정의, 인간실존 등과 같은 거창하고 거시적인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고통 속에 신이 배려한 의미가 있다는 희망은 고통을 견디게 하고 삶을 살게 한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 고통 대부분은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이유가 대부분이다.

 

빌려 간 돈을 돌려주지 않는데 돌려달라는 말을 못할 때.

함께 하고 싶지 않은데 ‘싫어’라고 말하지 못할 때.

상대가 잘못해서 부딪쳤는데도 어느새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을 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져주며 갈등을 피할 때.

 

어떻게 해야 그가 겪는 고통의 엄청난 깊이와,

원인의 하찮음 사이에 있는 이 불균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의 사막 | 프랑수아 모리아크

 

그 하찮음 속에서 우유부단하고 비겁한 자존감 낮은 나를 마주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자신이 그렇게 그럴듯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다른 이에겐 겸손을 가장해서 말하긴 해도, 스스로는 그렇게까지 형편없진 않다고 믿는 것이 사람이다.

그 괴리감은 고통을 동반한다.

 

하찮음에서 출발한 고통을 털어놓을 때 이런 사람을 만나면 참 난감하다.

자신의 엄청난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네 고통은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하찮음으로 인해 네 고통은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

고통은 상대적이지 않다. 개인에게 고통은 절대성을 가진다.

 

엄청난 고통을 겪는 다른 이를 보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한다고도 말한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강요된 감상일지도 모른다.

일시적일 뿐, 이 엄청난 타인의 고통은 상존하는 것도 지속하는 것도 아니다.

내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삶은 내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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