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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전망 좋은 방 | E. M. 포스터

2020. 9. 17.
전망 좋은 방

전망 좋은 방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저/고정아



『전망 좋은 방』은 E. M. 포스터의 포스터 초기 걸작 중 하나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들이 그곳에서 인습과 대치되는 정열을 느끼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젊고 매력적인 여주인공과 그녀의 완고한 사촌은 그들의 방이 예약과는 달리 전망이 좋지 않다는 사실에 낙담한다. 이때 같은 펜션에 묵고 있는 영국인 부자가 숙녀들을 위해 전망 좋은 방을 양보하겠다며 나서고 주인공은 이들의 제의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예의범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주인공과 세기말적 비관주의에 빠져 있는 펜션의 남자는 서로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는데…….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담긴 모순들, 그것들이 자아내는 웃음이 절묘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강렬한 감정을 다루면서도 작품 자체는 냉정한 어조를 유지하는 것, 그러면서도 그 감정들이 공허하지 않고 진실하게 울리는 것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하겠다. 이 작품이 출간된 지 50년 후에 작가가 후일담격으로 덧붙인 '방이 없는 전망'도 수록되어 있어 주인공들의 뒷이야기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1부

 

제1장

펜션 베르톨리니

 

「내 방은 전망이 좋아요. 아주 좋아요.」

샬럿은 깜짝 놀랐다. 펜션 같은 데서는 대개 하루 이틀이 지나야 말을 거는 법이고, 그럴 만한 이유를 찾기도 전에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샬럿은 그가 교양 없는 부류라는 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프라토! 프라토를 가봐야 해요. 거긴 말할 수 없이 누추하게 아름다운 곳이에요. 내가 거길 좋아하는 건 체면이라는 속박을 벗어던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제안을 받아들여도 에머슨 씨가 그걸 빌미로 두 분에게 뭘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감사 인사조차 기대하지 않을 거예요. 그분의 장점은, 그게 장점이라면,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말한다는 겁니다. 자기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방이지만, 두 분한테는 특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분은 예의 같은 데 구애받지 않는 만큼 누구한테 은혜를 베푼다는 생각도 안 할 겁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적어도 저한테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혹시 사회주의자인가요?」

 

「아버지 에머슨 씨는 나도 잘 몰라. 별로 요령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세상에는 품위는 없어도 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아름답다고요?」 샬럿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름다움과 품위는 같은 게 아닌가요?」

 

세면대 위에 종이 한 장이 핀으로 꽂혀 있는 걸 보았다. 종이에는 커다란 물음표 하나만 달랑 그려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샬럿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촛불 아래 그 물음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지만, 가만 들여다보니 점점 음험하고 불온하고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제2장

산타크로체 교회에서 베데커 여행 안내서도 없이

 

이처럼 사소한 일들에 정신을 쏟다 보면 소중한 시간들이 뭉텅뭉텅 낭비되고, 여행객들은 조토 작품의 뛰어난 질감이나 교황 제도의 타락상을 알아보려고 이탈리아를 찾았다가 그저 푸른 하늘과 그 아래 사는 남녀들만을 기억한 채 돌아가기도 한다.

 

「이런, 루시 양! 베데커 여행 안내서에서 빨리 벗어나요. 그 책은 수박 겉핥기라고요. 그 책의 저자는 진정한 이탈리아에 대해 꿈꾼 적도 없을 거예요. 진정한 이탈리아는 끈기 있는 관찰을 통해서만 발견된답니다.」

 

「이 냄새! 진정한 피렌체의 냄새! 도시들에는 다 고유한 냄새가 있답니다!」

「이게 좋은 냄새인가요?」 어머니에게서 결벽증을 물려받은 루시가 물었다.

「깔끔함을 찾아 이탈리아에 오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들은 삶을 찾으러 여기에 오지요.」

 

그러는 동안 차츰 이탈리아의 심술궂은 아름다움이 루시에게 다가와서, 그녀는 어느새 무얼 알아내려고 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냥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 루시는 이제 에머슨 부자를 경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녀는 품위 있기보다는 아름답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샬럿의 은근한 무례를 지우기 위해 방을 양보해 준 것에 감사의 말을 하고 싶었다.

 

「베데커 여행 안내서가 없다면 저희와 동행하시지요.」

[…]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그런 일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두 분과 동행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

「아가씨, 왜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요? 겉으로는 까다로운 척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 다 알아요. 그러니까 괜히 피곤하게 굴지 말고 교회 어디를 보고 싶은지 말해 봐요. 내 기쁜 마음으로 아가씨를 안내하리다.」

 

때로는 화를 내는 일이 화를 참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때가 있다

 

「저 푸르딩딩하고 뚱뚱한 남자를 봐라. 몸무게가 나만큼이나 나갈 텐데 풍선처럼 하늘을 날다니.」

그가 말하는 벽화는 〈성 요한의 승천〉이었다.

 

「만약 이게 정말이라면 이런 식으로 일어났겠죠. 하지만 저 같으면 케루빔 천사들의 손으로 던져지는 것보다는 제가 직접 하늘로 날아 올라가겠어요.」

 

「그 어떤 성인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해도 텅 빈 무덤밖에 못 보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에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비극이 일어났다고 여기는 듯한 그 아들.

 

「아버지 나름대로는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시는 거예요.」

「우리 모두 그러려고 노력하지 않나요?

「우리가 그러는 건 대개 자신의 인격을 높이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친절을 베푸는 건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기이하고 불쾌하게 여기거나 겁을 먹어요.」

 

젊은이치고는 거칠었고, 어딘지 억세 보이기도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늘 속에 들어가면 얼굴에 부드러움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그 얼굴을 로마에서 한 번 더 보았는데, 바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속에서 도토리 짐을 들고 가는 모습이었다. 건강하고 단단한 몸이었지만, 어떤 잿빛 같은 느낌, 오직 밤에만 해결책이 보이는 비극 같은 느낌이 풍겼다.

 

산타크로체 교회는 창고 같았지만, 그런 대로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수확해 둔 창고였다. 물론 거지들도 있었고, 기둥 뒤로 피해야 할 관광 안내인들도 있었고, 개를 데리고 나온 노부인도 있었고, 관광객의 물결을 뚫고 조용히 미사를 집전하러 가는 사제도 있었다.

 

「저렇게 팔팔하게 살아 있는 녀석이 어떻게 우울할 수 있는 거요? 도대체 내가 뭘 더 해줘야 하는 거요? 녀석이 받은 교육을 생각해 보라고요. 인간이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미신과 무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랐어요. 그런 교육을 받으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이런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아가씨한테 아들 녀석을 사랑해 달라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녀석을 좀 이해하려고 해주면 고맙겠어요.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잖아요. 아가씨가 마음을 연다면 분명히 지혜를 얻을 거라고 믿어요. […] 하지만 먼저 마음을 열어야 돼요. 어젯밤 일을 돌이켜보면 아가씨도 혼란에 말려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요. 마음을 열어요. 저 깊은 곳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 감추어져 있는지 이해는 안 돼도 한번 꺼내서 밝은 빛 아래 펼쳐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봐요. 조지를 이해하는 건 아가씨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지 몰라요. 그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

 

「나는 그저 녀석한테 뭐가 문제인지만 알아요. 하지만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게 뭔데요?」 루시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물었다.

「옛날부터 그랬지. 세상이 녀석에게 맞지를 않아요.」

「세상이라고요?」

「그래요,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녀석에게 들어맞지 않아요.」

 

「조지도 나도 이 사실을 잘 알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왜 괴로워해야 하는 거요? 우리가 바람에서 왔고, 그래서 바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잘 알아요. 인생이란 영원한 평탄 속에 불거진 매듭, 얽힘, 흠집이라는 것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게 왜 불행의 이유가 되야 하는 거요? 그저 서로 사랑하고 일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소? 나는 이런 세상 한탄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 아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 줘요. 그 끝없는 의문 옆에는 긍정이 있다는 걸 일깨워 줘요. 순간에 지나지 않은 긍정일지라도 긍정은 긍정이니까.」

 

제3장

음악, 제비꽃, S로 시작하는 말

 

그녀는 눈부신 exécutante(연주자)는 아니었다. […] 물론 열정은 있었지만, 그건 쉽게 이름 붙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과 미움과 질투, 또 그 밖의 온갖 선명한 기본 감정 사이를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비극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위대성의 차원에서만 그러했다. 그녀는 〈승리〉의 편에서 연주하길 좋아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무엇에 대해 거두는 승리인지는 일상의 언어가 말해 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하지만 베토벤의 일부 소나타가 비극적이라는 데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음악들은 연주자의 결정에 따라 승리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루시는 이미 승리의 연주를 하기로 결심했다.

 

진정한 연주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녀는 음정이 전해 주는 느낌에 깊이 빠졌다. 음정은 손가락이 되어서 그녀의 손가락을 어루만졌다. 이러한 촉감도 소리와 더불어 그녀의 욕망을 만족시켰다.

 

「음악 자체를 싫어하시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람이 무언가에 열중하는 걸 싫어하시죠. 그래서 저를 어리석다고 생각하세요.」

 

펜션 베르톨리니는 사람들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있었다. 래비시 양은 독창적이다. 비브 목사는 의심이 많지만, 그건 성직자의 좁은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엿보지 않는 곳이 없고, 모르는 게 없고, 우리가 원하는 것도 우리보다 먼저 알지요. 우리는 이 사람들 손아귀에 있어요. 우리 머릿속 생각, 마음속 욕심을 척척 읽는다니까요.」

 

「사람한테는 누구나 다 칭찬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아무리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말이야.」

 

제4장

제4장

 

그녀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원했다. 바람 부는 전차 난간에 서 있으면 그걸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그녀가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숙녀답지 못하니까. 도대체 왜? 왜 이 세상의 대단한 일들은 대부분 숙녀답지 못한 걸까?

 

여자들의 임무는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도와주는 것이다. 여자는 재치 있는 언행과 깨끗한 이름으로 간접적으로나마 큰 성취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직접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덤비다가는 처음에는 비난을, 다음에는 경멸을, 마지막으로는 무시를 당하게 된다.

 

남자들은 그녀(빅토리아 여왕) 덕분에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고 당당히 밝히면서 그 표면 위를 유쾌하게 움직인다. 그러면서 가장 즐거운 모임은 남자들과 가진다. 하지만 그들이 즐거운 건 남자라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법석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영원한 여인〉이라는 장엄한 호칭을 떼버리고, 그냥 한 시절을 살다 가는 존재가 되고 싶다.

 

거기서 그녀는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을 찍은 사진을 샀다. 이 그림은 유감스럽게도 비너스가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망쳐 놓고 있었기 때문에, 샬럿은 루시에게 그것을 사지 말라고 했다(예술에서 유감이란 물론 누드를 의미했다).

 

그녀는 마음속에 흐르는 불만을 의식했다. 이런 것이 의식되기는 처음이었다.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해. 문제는 내가 그런 것에 다가갈 수 없다는 거지〉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비현실적인 시간, 말하자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현실이 되는 시간이었다.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저는 혼란을 물리치고 정직하게 이 일을 바라보아야 해요. 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루시가 경계심을 느끼고 멈춰 섰다.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게 무언지 알아내야겠습니다.」

 

한 사람이 죽은 것만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그들은 이제 인격이 입을 여는 상황, 유년이 문을 닫고 젊음의 갈림길이 열리는 순간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더욱 수수께끼 같았다. 「저는 아마도 살고 싶을 겁니다.」

「네, 에머슨 씨?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저는 살고 싶을 거라고요.」

 

제5장

유쾌한 소풍의 가능성

 

그녀는 생소한 고독에 휩싸였다. 그녀는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찬성이든 반대든 그들의 견해를 듣는 데 익숙했다. 자기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는 상태는 너무도 두려웠다.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잔인한 방식으로 피를 즐긴다.

 

익숙한 세계는 무너졌고 그 자리에 피렌체가 들어섰다. 이 마법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더없이 기이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살해당하는 사람, 살인을 저질렀다고 비난받는 사람, 이 남자에게 안겼다가 저 남자에게 무례를 범하는 여자…. 이런 일들이 피렌체의 거리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인가? 이 거리의 가식 없는 아름다움 속에는 보기 좋은 것 이상의 어떤 것, 그러니까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 그것을 지체 없이 충족시키는 힘 같은 게 있는 걸까?

 

시뇨리아 광장은 석조로 이루어져서 반짝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기이한 우연에 따라 ─ 우리가 장소를 지키는 수호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 이런 석조의 팍팍함을 완화시켜 주는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유년의 순수함이나 청춘의 찬란한 방황이 아니라 성숙한 인간의 의식적인 성취를 보여 준다. 페르세우스와 유디트, 헤라클레스와 투스넬다, 이들은 모두 많은 일을 겪은 자들이다. 불멸의 존재들이기는 하지만, 그 불멸성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경험을 얻은 뒤에 찾아왔다. 영웅이 여신을 만나고, 여걸이 남신을 만나는 건 고요한 자연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 이 광장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제6장

아서 비브 목사, 커스버트 이거 목사, 에머슨씨, 조지 에머슨 씨, 엘리너 래비시 양, 샬럿 바틀릿 양, 루시 허니처치 양이 마차를 타고 전망을 보러 소풍을 가다, 이탈리아 인들이 말을 몰다

 

그동안 그는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는 것 같았고, 그것이 그녀를 두렵게 했다.

진짜 사건 ─ 그게 정확히 무엇이건 ─ 이 일어난 곳은 로지아가 아니라 강둑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 앞에서 경황없이 행동하는 거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걸 두고 대화를 나눈 것, 대화를 지나 침묵하고, 침묵을 지나 공감에 이른 것은 잘못이었다. 놀란 감정 하나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마음 전체가 함께 저지른 잘못이었다.

 

관광객 […] 관심사란 오직 〈구경했다〉와 〈가봤다〉, 그리고 다른 데로 이동하는 것밖에 없지요.

 

이런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마부석의 두 사람은 정숙하지 못한 행동을 계속했다. 루시는 질투가 솟았다. 예절 따위를 벗어던지기로 마음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아마도 이 소풍 길에서 즐거운 사람은 그 둘뿐인 것 같았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목사에 대한 경외감이라고는 없는 에머슨 씨가 이거 목사에게 부탁했다. 「우리 인생에서 행복한 장면을 얼마나 본다고 마부석에 찾아온 행복을 쫓아냅니까? 연인들이 모는 마차라… 왕이라도 우리를 부러워할 겁니다. 두 사람을 떼어 놓는 건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신성 모독이에요.」

 

「내가 말하는 건 시인 로렌초예요. 어제 들었는데, 그 사람이 〈봄하고는 싸우지 마라〉라든가 하는 시를 썼답디다.」

이거 목사는 자신의 박식을 드러낼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Non fate guerra al maggio. 정확한 뜻은 〈5월과 전쟁하지 마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5월에 전쟁을 걸었어요. 저길 봐요.」

그는 새순이 움트는 나무들 사이로 내다보이는 아르노 계곡을 가리켰다.

「사방 50마일에 봄이에요. 우리는 그걸 즐기러 온 겁니다. 자연의 봄과 사람의 봄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그런데 우리는 한쪽은 추켜세우면서 다른 한쪽은 도덕이 어쩌고 하며 깎아내립니다. 두 가지 모두 똑같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걸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일행은 풀밭 이곳저곳으로 튀어 나갔고, 흩어지면 안 된다는 걱정만큼이나 컸던 것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선천적으로 길을 안다. […] 장소를 찾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느님이 내리는 선물이다.

 

이탈리아인의 무지는 때로 그들의 지식보다 훌륭하다.

 

제7장

다들 돌아오다

 

루시는 모포 아래서 사촌 언니의 손이 자신을 다정하게 누르는 것을 느꼈다. 때로 우리는 공감의 손길이 너무도 간절한 나머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중에 그로 인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샬럿은 이 시기적절한 근육 운동으로 수 시간의 설교나 대질 심문으로도 얻지 못했을 많은 것을 얻었다.

 

「진실을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완전한 진실이란 건 너무 어렵네요.」 루시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루시가 방에 들어오다가 그 소리를 듣고 까닭을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였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인간적인 사랑을 좀 주고받을 수 있다면, 촛불도 더 잘 타고, 짐싸기도 더 쉬워지고, 세상도 더 행복해질 것 같다고 느꼈을 뿐이다.

 

루시는 이 세계에서 가장 서글픈 악행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그녀의 진실, 공감을 갈망하고 사랑을 구하는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당한 것이다. 그런 악행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두 번 다시는 그렇게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반대자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악행은 영혼에도 참담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제2부

 

제8장

중세 사람

 

세실은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 방식대로 말하게 하지 않고, 그의 방식에 따라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그건 피곤한 일이었다.

 

세실은 중세 사람이었다. 고딕 조각 같았다. 키도 크고 세련되고 어깨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 주듯 딱 벌어졌으며, 머리는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살짝 기울어져 있어서, 프랑스 성당의 정문을 지키는 엄격한 성인들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많은 재능을 타고났으며, 육체적으로도 모자람이 없었지만, 그는 현대 세계가 〈자의식〉이라고 부르는 악마에게 붙들려 있었다. 하지만 눈이 흐렸던 중세는 그것을 〈금욕주의〉라 부르며 찬양했다. 고딕 조각은 금욕을 상징한다. 그것은 그리스 조각이 풍요를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탈리아가 그녀에게 마법을 베풀었다. 그녀에게 빛이 더해졌고, 또 그가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림자까지 더해졌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간직한 내밀함의 미덕을 감지했다.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의 여인 같았다. 우리가 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녀 자신보다 오히려 그녀가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는 것들 때문이다. 그녀가 말해 주지 않는 그것들은 분명히 이 세상의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어떤 여인에게도 〈사연〉 같은 통속적인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여인으로 성숙해 갔다.

 

「저는 직업이 없습니다. 제 데카당스한 면을 보여 주는 또 한 가지 사례죠. 사람들이 썩 호응해 주지는 않겠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물론 저도 남들에게서 돈을 우려내야 한다거나 털끝만큼도 관심 없는 일에 스스로를 바쳐야 한다는 걸 압니다만, 아직까지는 시작을 못하고 있습니다.」 세실이 대답했다.

「바이스 씨는 행운아이십니다. 여유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요.」 비브 목사가 말했다.

 

「허니처치 양의 나쁜 버릇은 뭐가 있을까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은 아닐 텐데요.」

「없습니다.」 세실이 잘라 말했다.

「동감입니다. 지금은 없지요.」

「지금은이라고요?」

「냉소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허니처치 양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갖고 있는 견해가 있거든요. 허니처치 양이 그렇게 훌륭한 연주를 하면서 그렇게 조용하게 사는 게 합당한 걸까 하는 거죠. 언젠가는 양쪽 모두 훌륭하게 해낼 겁니다. 자기 안에 있는 단단한 벽이 무너져서 음악과 인생이 뒤섞이겠죠. 그러면 우리는 허니처치 양이 가진 영웅적인 훌륭함이나 영웅적인 미흡함을 보게 될 겁니다…. 어쩌면 너무나 영웅적이라서 좋은지 나쁜지 하는 구별이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르죠.」

 

「저는 허니처치 양이 다음에 무슨 곡을 연주할지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날개를 찾은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걸 사용하겠다는 뜻이 분명해 보였죠. 제가 이탈리아 여행 일기에 그려 놓은 멋진 그림을 보여 드리고 싶군요. 허니처치 양이 연(鳶)이고, 바틀릿 양이 줄을 잡고 있는 그림이에요. 두 번째 그림에서는 줄이 끊어집니다.」

 

당연히 사과보다는 축하를 더 선호하는 세실은 입꼬리가 뒤틀렸다. 자신의 행동이 세상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물론 그는 전체로서의 세상을 경멸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세련의 징표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닥치는 경멸의 편린들에는 몹시 예민했다.

 

제9장

예술작품 루시

 

그 능글맞은 노파들이 개별적으로 얼마나 잘못했건 간에 인류 전체로서는 옳았다. 노파들이 세실과 루시의 약혼을 기뻐할 때, 그들 저편에서 미소 지은 것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정신이었다. 약혼이란 지상에 생명이 계속 이어질 것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세실과 루시가 생각하는 약혼이란 개인적 사랑이었다. 그래서 세실은 화가 났고 루시는 세실의 분노를 이해했다.

 

여자의 힘과 매력은 신비로움에 있지, 맹렬한 성토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성토는 생기의 징표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어그러뜨렸지만, 그녀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세실이 해리 오트웨이 경이나 비브 목사 같은 사람을 싫어한다면, 그녀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 그 혐오의 그물을 벗어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을까?

 

「내 생각인데요….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나하고 방에 함께 있는 걸 더 편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

「네, 아니면 정원이라든가 큰길이라든가 하는 곳 말이에요. 지금 이곳 같은 진짜 시골 말고요. 」

「세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당신은 내가 무슨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네요.」

「시인이 아닐 것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보면 어떤 전망이 떠올라요. 특정한 종류의 전망이 말이에요. 당신이 나를 보고 방을 떠올린다고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요.」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정말 그래요. 아무래도 제가 시인인가 보네요. 당신을 생각하면 배경은 언제나 방 안이에요. 재미있는 일이네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응접실입니까? 바깥 전망이 보이지 않는?」

「네, 전망이 없는 방이에요. 그게 뭐 문제인가요?」

「나는 당신이 나를 생각할 때 이런 넓은 야외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에게 키스하지 못했습니다.」

[…]

「그래서 부탁해요…. 해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세실. 진작 했어도 좋았을 거예요. 내가 먼저 나설 수는 없잖아요.」

이 지고의 순간에 그가 느낀 것은 어색함뿐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부적절했다. 그녀는 몹시 의무적인 태도로 베일을 들어올렸다. 그녀에게 다가갈 때 그에게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포옹은 그렇게 끝났다. 그는 실패한 포옹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열정이란 저항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예의범절이라든가 심사숙고라든가 그 밖에 교양이라는 이름의 각종 족쇄를 잊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통행권이 있는 곳에서 허락을 구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이 한 번의 포옹 이후 그들은 침묵 속에 물가를 떠났다. 그는 그녀가 마음속의 가장 내밀한 생각을 전해 주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무거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진짜 이름은 에머슨이에요. 해리스가 아니라.」

「무슨 이름 말입니까?」

「그 노신사 말이에요.」

「어떤 노신사요?」

「아까 말씀드린 노신사요. 이거 목사가 못되게 굴었다는.」

이것이 그들이 나눈 대화 가운데 가장 내밀한 대화였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제10장

유머가 가득한 세실

 

그녀는 그들이 지닌 가치관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들의 너그러운 풍요로움, 폭발성 없는 종교, 종이 가방과 오렌지 껍질과 깨진 병에 대한 혐오 같은 것들을. […] 사람은 그 테두리 안에서 결혼하고 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평등이란 것은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햇빛 같은 것이었고,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인생에 대한 기존의 관점은 사라졌다. 그녀의 인식은 확장되었다. 그녀는 절대로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란 없다는 것과 사회적 장벽이란 없앨 수는 없지만 그 높이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다는 걸 느꼈다.

 

세실도 달라져서 돌아왔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에게 관대함 대신 초조함을 키워 주었다. […] 그녀는 반항적이었지만, 그것은 그가 이해하는 종류의 반항은 아니었다. 그녀의 반항은 더 넓은 삶의 공간을 원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와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반항이었다. 이탈리아는 그녀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재산을 안겨 주었고, 그것은 바로 그녀의 영혼이었다.

 

「에머슨은 흔한 성이에요.」 루시가 말했다.

그녀는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산등성이에 앉은 그녀의 눈에는 소나무로 덮인 주변의 산등성이들이 겹겹이 포개져 윌드 숲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정원 아래쪽으로 갈수록 이런 전망은 더욱더 멋지게 펼쳐졌다.

 

「에머슨 씨네는 거기서 제비꽃을 꺾어다가 앨런 자매의 방에 있는 꽃병들을 가득 채웠어요. […] 〈테리사는 꽃을 좋아해요.〉 이야기는 늘 그렇게 시작했죠. 방 안에 있는 꽃병이란 꽃병, 물병이란 물병마다 파란색 제비꽃이 가득했고, 이야기는 언제나 〈신사답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에요. 모든 게 참 어렵네요〉로 끝났어요.」

 

무의미한 거짓말이었지만 그녀는 몹시 불안해졌고, 세실의 친구라는 에머슨 씨네가 자꾸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두 여행객처럼 생각되었다. 지금까지 진실은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더욱 철저하게 진실해질 것인가? 물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희극이 존재하는 이유는 진실이 존재하는 이유하고 똑같다.

 

「세실! 안 돼요. 그 사람들은 제가 전에 만났던 사람들 같아요.」

그는 루시의 말에 반대했다.

[…]

「아니에요. 당신은 그 말뜻을 몰라요.」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레오나르도의 길에서 벗어났다. 「당신은 몰라요!」 그녀의 얼굴은 예술적이지 못했다. 까탈 떠는 계집의 얼굴일 뿐이었다.

「안 돼요, 세실. 당신 잘못이에요. 그것도 큰 잘못이에요.

 

희극과 진실의 여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그는 그들을 윈디 코너에 데리고 올 것이다.

 

제11장

바이스 부인의 최신식 아파트

 

두 사촌 자매는 그동안 냉담한 사이가 되어서, 8월에 헤어진 이후 편지 한 통 주고 받지 않았다. […] 중세 세계에서는 기질의 차이만을 느끼던 동행도 고대 세계로 가면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비밀이 가진 단점 하나는 비례 감각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비밀이 중대한 것인지 사소한 것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루시와 샬럿의 비밀은 만약 세실에게 들켰을 경우 그의 인생을 뒤집어 놓을 만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웃어넘기고 말 일이었을까?

 

지나치게 거대한 인생의 궤도가 그녀(바이스 부인)를 압박했다. 그녀는 자기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계절과 너무 많은 도시, 너무 많은 남자를 보았기 때문에, 세실을 대할 때도 자못 무덤덤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세실이 한 명의 아들이 아니라 〈아들 집단〉이라도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제12장

제12장

 

새로운 옷이 필요한 일은 신뢰하지 말라.

 

「남녀는 평등해질 겁니다.」 에머슨 씨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비브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남녀는 앞으로 동료가 될 겁니다. 조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러면 여자들을 우리하고 같은 수준으로 올려야겠군요?」 목사가 물었다.

「사람들은 에덴동산을 예전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경멸하지 않게 될 때 거기 들어가게 될 겁니다.」 에머슨 씨가 계속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한때 나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하고 함께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지금 나는 자연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극복하고 나서 우리는 단순함을 얻게 될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비브 목사는 침묵을 지킬 수는 있어도 침묵을 참지는 못하는 성미였다.

 

「게다가 두 사람이 바이스 씨까지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어디에 있을까? 여기 와서 베르톨리니 펜션 사람들을 모두 만날 줄 알았나?」

[…]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말이야, 우연이란 건 생각만큼 흔한 게 아냐. 예를 들어서 조지가 여기 온 게 완전히 우연인지 생각해 보라고.」

「우연이에요. 저도 생각해 봤어요. 〈운명〉이라고 해야겠죠. 모든 게 운명이에요. 우리는 운명에 의해 만나고 운명에 의해 헤어지는 거예요…. 만나고 헤어지고. 열두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요….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해요….」

[…]

「아무것도 운명으로 돌리지 말라는 거야. 〈나는 이런 일을 안 했어〉라고 말하지 말게. 왜냐면 십중팔구 그건 자네가 한 일이니까.」

 

조그만 연못이었지만, 크기는 인간의 몸을 담기에 충분했고 맑기는 하늘을 담기에 충분했다.

 

있는 것은 물, 하늘, 상록수, 바람뿐…. 이것들은 계절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들, 인간의 침략도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날 저녁, 그리고 밤이 지나가는 동안 물은 계속 흘러나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연못은 본래의 크기로 돌아갔고 전날의 눈부심도 모두 잃었다. 그날의 연못은 식은 피와 느슨해진 의지를 일깨운 외침이 되었다. 그것은 기도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진 축복이었고, 성스러움, 마법, 그리고 젊음을 위한 찰나의 성배(聖杯)였다.

 

제13장

샬럿 바틀릿의 보일러가 속을 썩이다

 

마침내 실내로 들어간 루시는 버터워스 노부인과 차를 마시면서 미래를 대강이라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과 인생은 연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기치 못한 배경의 실수 하나, 객석의 얼굴 하나, 관객의 반응 하나에 공들여 준비한 동작은 갑자기 아무 의미 없어지거나 아니면 너무 많은 의미를 담게 된다.

 

「헛소리 그만둬라! 젊은 사람이 이상이 높다고 무례해도 된다면, 그런 이상 같은 건 일찌감치 치워 버리라고 그래.」

 

세실은 오만하고자 했고, 원하던 걸 이루었다.

 

제14장

루시가 외부 상황에 용감하게 맞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루시가 조지 에머슨을 사랑한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의 입장에 선다면 그게 그렇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정리하기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살기는 혼돈스러우며, 우리는 언제나 〈신경〉이라든가 다른 피상적인 말들로 내면의 욕망을 가려 덮으려고 한다. 그녀는 세실을 사랑했다. 조지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누가 그녀에게 두 문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 줄 것인가?

 

세상의 악당은 두 종류가 있대요. 자기가 하는 일을 아는 악당과 모르는 악당.

 

제15장

내면의 참상

 

산등성이의 검은 소나무 부대는 자신들은 변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모든 변화를 지켜보았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녀는 프란체스코 프란치아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혼동했다. 그러자 세실은 〈설마 벌써 이탈리아를 잊어버린 건 아니죠?〉 하고 말했다. 그녀가 정겨운 전망과 그 앞의 정겨운 정원과 그 위에 떠오른 다른 어느 곳보다 정겨운 태양 앞으로 나갔을 때 그 눈길에 불안이 떠오른 데는 그의 말도 한몫했다.

 

그 말투에 담긴 빈정거림에 루시는 입술을 깨물었다. 〈교회와 관련된 제문제〉에 이르면 둘의 대화는 언제나 불만스럽게 끝났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면을 깊이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세실은 진실한 정통 신앙은 존중했다. 하지만 그는 진실이란 영적 위기를 겪은 후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진실이 인간의 타고난 권리라는 것, 꽃이 피어나듯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두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가 온몸으로 관용을 내뿜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다. 하지만 에머슨 부자는 그와 달랐다.

 

「인정이 가득할 수 없는 건 세상에 빛이 가득할 수 없는 거랑 비슷해요.」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람이 서 있으면 그림자가 지죠. 햇빛을 가리지 않겠다고 이리저리 옮겨 봐야 소용없어요. 그림자도 계속 따라오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서 있어도 피해가 가지 않는 곳을 선택해야 해요…. 맞아요, 되도록 피해가 적은 곳을 선택해야 해요. 그리고 거기서 태양을 향해 혼신을 다해 서 있어야지요.」

 

「프레디는 그걸(재치)로 인생을 시작했고, 저는 물음표로 시작했지만요.」

 

남자도 신이 아니었다. 그들도 여자처럼 인간이고 또 서툴렀다. 남자들도 정체 모를 욕망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그녀가 받은 교육과 그녀가 걸어가는 인생행로는 남자도 약하다는 진실을 일러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피렌체에서 조지가 사진을 아르노 강에 던져 넣을 때 이미 그것을 짐작했다.

 

세실이 생각하는 인간관계는 보호자와 피보호자로 이루어지는 봉건적 관계가 전부였다. 그녀의 영혼이 갈망하는 동료애 같은 것은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매번 그렇듯이 세실은 루시의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의 무기는 매력이지 논리가 아니었다.

 

조지가 서브를 했고, 그녀는 이기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 놀랐다. 그가 산타크로체 교회의 무덤들 틈에서 이 세상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한숨짓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이탈리아 남자가 죽은 뒤 아르노 강둑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이고 〈저는 아마도 살고 싶을 겁니다〉라고 말했던 것도 생각났다. 그는 지금 살고 싶어 했고, 테니스 경기를 이기고 싶어 했고, 태양을 향해 혼신을 다해 서 있고 싶어 했다……. 천천히 저물어 가는 태양은 그녀의 눈 속에서 빛을 뿜었고, 그는 이겼다.

 

「전망들은 다 비슷하니까요. 중요한 건 확 트인 시야와 대기뿐이니까요.」

[…]

「완전한 전망은 하나뿐이래요. 우리 머리 위로 올려다보이는 하늘의 전망 말이에요. 땅 위에서 보는 전망들은 다 그걸 어설프게 흉내 낸 거래요.」

[…]

「전망은 군중이다. 나무와 집들과 언덕의 군중이다. 이것들은 사람의 군중이 그렇듯이 서로를 닮게 된다. 그리고 바로 똑같은 연유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한다고요.」

루시의 입술이 벌어졌다.

「군중은 언제나 그 속의 사람들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존재가 되죠. 거기 무언가가 더해져요 ─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그건 저 언덕들에 무언가가 더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도 하셨죠. 전망을 잊어버리는 사람들과 작은 방에 있을 때도 그걸 기억하는 사람들로요.」

 

제16장

조지에게 거짓말을 하다

 

사랑이 돌아왔다. 우리의 육체가 요구하고 우리의 마음이 찬양해 온 사랑,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것인 사랑이 지금 세상의 적이 되어 돌아왔다. 그것을 틀어막아야 했다.

그녀는 샬럿을 불렀다.

지금 닥친 문제는 사랑과 의무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런 싸움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 가식의 싸움이었고, 루시의 첫 번째 목표는 자신을 무찌르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구름이 끼고, 전망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며, 책에 적힌 글들이 사그라지자, 그녀는 다시 모든 것을 신경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신경에 닥친 위기를 극복했다〉. 진실을 뒤틀면서 그녀는 진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사람들은 왜 비밀을 지키지 못할까? 그것은 영원한 수수께끼다.

 

「그 사람은 사물, 그러니까 책이라든가 그림 같은 것들하고는 별문제 없지만, 사람하고는 결코 잘 지낼 수 없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혼란을 뚫고 당신에게 기어이 이 말을 하는 겁니다. 당신을 잃는다면 어떤 식이든 내게 슬픔이 되겠지만, 남자는 슬픔도 견딜 줄 알아야 하니까 세실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물러났을 겁니다. […] 그 사람은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아요. 유럽을 천년 동안 붙잡아 매둘 부류의 사람입니다. […] 남자가 생각한 여자다움을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 같은 여자들은 자기 목소리 대신 그의 목소리만 듣겠죠. […] 그건 책 때문이었죠. 좀 더 자제력을 발휘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사과하지도 않을 거고요. 어쨌거나 당신은 그 일에 놀랐고, 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 그렇다면 나한테 얼른 이곳을 나가라고 하면서 이 중요한 일을 이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래서 나는 그와 싸우기로 작정했습니다.」

 

「맞아요…. 제 방식이 더 낫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 품에 안겨서도 당신 자신의 생각을 하기를 원합니다.」

[…]

「살고 싶어서, 내 인생에 기쁨을 줄 기회를 잡고 싶어서.」

 

「우리는 젊고요.」 그가 나직이 말하며, 식당에서 나가려고 바닥에서 라켓을 주워 들었다. 「루시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명백해요. 지성의 관점에서 중요한 건 사랑과 젊음입니다.」

 

하지만 바깥의 대기 속으로 나가니 이런 생각은 멈추었다. 연민인지 두려움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강렬한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았고, 그녀에게 갑자기 가을이 느껴졌다. 여름은 끝나 가고, 저녁이 실어 나르는 부패의 냄새는 봄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까닭에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다.

 

제17장

세실에게 거짓말을 하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오늘은 당신답지 않군요. 피곤한가요, 루시?」

「피곤하냐고요?」 루시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당신은 늘 그런 식이에요. 여자들이 하는 말은 진심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그녀를 잃을 처지에 놓이자 세실은 그녀가 매 순간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그녀 자신을. 그것은 약혼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떠나서 살아 있는 여자가 되었다. 자신만의 신비와 힘을 지니고 예술조차 담지 못할 온갖 속성을 지닌 여자가.

 

그가 이렇게 위엄 있는 행동을 보이자 그녀는 더 조바심이 났다. 그녀는 그가 옹졸하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랬다면 사태를 헤쳐 가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잔인한 아이러니였지만, 그녀는 관계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에게서 최상의 것들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당신은 자꾸만 나를 보호하려고 들었어요.」 루시의 목소리가 솟구쳤다. 「나는 보호받기 싫어요. 어떤 게 여자다운 건지 옳은 게 뭔지 나 자신이 판단하고 싶어요. 보호받는다는 건 나한테 모욕이에요. 내가 왜 진실과 바로 만나지 못하고 당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해야 하죠? 그게 여자의 자리라고요?」

 

「인습에 얽매인 건 세실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아름다운 것들을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그걸 사용할 줄은 모르니까요. […] 나는 음악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런 것에 숨 막혀 죽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사람이 그보다 훨씬 아름다우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나와 사람들 사이에 장벽을 세웠어요. 그래서 내가 약혼을 깨는 거예요.」

[…]

「대강은 맞을 거예요.」 첨언하면서 그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혔다.

 

「〈누구하고도 친밀해질 수 없는 부류의 사람.〉 맞습니다. […] 원망스러운 게 있다면 좀 더 일찍 경고해 주지 않았다는 점, 이런 결심에 이르기 전에 내게 미리 일러 줘서 교정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점뿐입니다. […] 하지만 오늘 저녁 당신은 전혀 다른 사람 같군요. 다른 생각들, 그리고 심지어 다른 목소리도….」

「다른 목소리라니, 무슨 뜻이죠?」 그녀는 솟구치는 분노에 사로잡혀서 물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자 그녀는 평정을 잃고 소리쳤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엄청난 착각이에요.」

[…]

「여자가 자유를 위해서 약혼을 깨는 일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녀는 그가 조용히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계단 난간 그림자들이 그의 얼굴에서 날개처럼 파닥였다. 계단 꼭대기에 잠시 멈춰 선 그는 체념한 자의 굳센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고, 그 모습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폭넓은 교양을 쌓았지만 세실은 근본적으로 금욕주의자였고, 사랑을 떠나는 순간만큼 그에게 어울리는 사랑의 순간은 없었다. 이제 그녀는 결혼할 수 없으리라. 격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사실 하나가 분명하게 도드라졌다. 세실은 그녀를 믿었다. 그녀도 언젠가 자신을 믿어야 했다. 그녀 입으로 그렇게 칭송한 여자들처럼 남자가 아니라 자유를 사랑하는 여자가 되어야 했다. 조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어야 했다. 조지의 생각이 그녀를 움직여서 이렇듯 복된 해방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도 잊어야 했다. 그리고 조지가 다시… 어둠이라고 했던가? 그곳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잊어야 했다.

 

열정을 거스르고 진실을 거스른 죄의 대가로 그들이 추구하는 미덕은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비난받는다. 유쾌함과 경건함에 금이 간다. 재치는 냉소가 되고 이타심은 위선이 된다. 가는 곳마다 스스로도 불편해지고 남들도 불편하게 한다.

[…]

루시는 조지에게 자신의 사랑을 감추고, 세실에게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듯 거짓을 말하면서 그 군대에 합류했다. 밤이 그녀를 받아들였다. 30년 전에 샬럿을 받아들였듯이.

 

제18장

비브목사, 허니처치 부인, 프레디, 하인들에게 거짓말을 하다

 

윈디 코너는 […] 나름대로 제 역할을 했다. 왜냐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주변 환경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마을의 다른 집들은 유명 건축가들이 지었을 뿐 아니라, 주인들도 집을 가꾸느라 쉴 새 없이 부지런을 떨었지만, 모두 우연하고 덧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윈디 코너는 자연이 만들어 낸 추한 피조물처럼 필연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 집을 보고 웃을 수는 있지만, 혐오감에 진저리를 칠 수는 없었다.

 

그(비브 목사)는 음악하는 사람들은 극도로 복잡한 존재이며, 모든 예술가들 가운데 자신의 소망과 정체성에 대해 가장 무지한 사람들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음악가들은 주변 사람만 헷갈리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늘 헤맨다. 이들의 심리는 현대 사회의 산물이라서 아직까지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낭만이란 참 제멋대로 아닙니까? 젊은이들한테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가 없어요. 젊은 사람들은 잔디 위에서 테니스나 치면서 낭만이 죽었다고 투덜대지요. 그런데 이 앨런 할머니들은 온갖 무기를 챙겨들고서 고난에 맞서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 편안한 펜션〉이라고! 예의상 이렇게 말하지만, 이분들이 바라는 건 마법의 창문이 난 펜션이에요. 잊힌 요정 나라의 사나운 바다, 그 바다에서 튀어 오르는 물거품을 향해 열린 창문 말이에요! 두 분은 평범한 전망으로는 만족 못할 겁니다.」

 

「이탈리아가 영웅의 땅이라면, 그리스는 신의 땅이거나 아니면 악마의 땅이에요.」

 

「그(세실)는 나의 개선 불가능한 점들을 개선하려고 했을 거예요.」

 

「저는 가야 해요. 멀리 멀리 가야 해요. 나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아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서머 스트리트 사람들이 이 일로 수군거리지 않는 거예요. 지금 상태에서 바이스 씨가 떠났다는 소문이 돈다면 그건 파멸이에요.」

비브 목사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파멸은 강한 말이다. 너무 강한 말이다. 물론 비극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교구 목사는 사소한 비밀과 고백과 경고의 거미줄 속에 살게 되고, 현명한 목사일수록 그런 데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다.

 

비브 목사는 이런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천박한 사람들처럼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루시가 피해 달아나고자 하는 어떤 모호한 힘을 샬럿이 알고 있다는 정도만을 느꼈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형체를 띠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모호함이 그의 기사도 정신을 부추겼다. 인내와 교양 아래 말없이 감추어져 있던 그의 금욕주의가 표면으로 솟아올라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났다. 〈결혼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자제하는 건 더 좋은 일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그는 사람들의 파혼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은근한 기쁨을 느꼈다.

 

비브 목사도 응접실로 갔다. 루시는 아직도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손을 얹고 있었다. 기쁜 표정이었지만, 목사가 기대했던 만큼 큰 기쁨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몸을 굽혔다. 루시의 노래를 듣고 있던 프레디는 바닥에 앉아서 머리를 루시에게 기댄 채 불 없는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고미술을 사랑하는 비브 목사는 좋아하는 회화 주제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산타 콘베르사치오네〉, 즉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귀한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관능적이지도 않고 선정적이지도 않은 탓에 오늘날의 미술계에서는 무시당하는 주제였다. 이렇게 친구처럼 다정한 가족이 집에 있는데 루시는 왜 결혼이나 여행을 원하는 걸까?

 

제19장

에머슨 씨에게 거짓말을 하다

 

〈조지 에머슨이 저를 괴롭혔어요. 제가 세실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이 다시 저를 괴롭힐지 몰라요〉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그건 진실이라는 부수적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비밀을 털어놓는 게 싫었다. 그랬다가 자칫하면 자기 인식에 이를지도 몰랐고, 〈빛〉이라는 공포의 대왕을 만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마지막 밤 이후 그녀는 진실한 마음을 보여 주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윈디 코너가 지겨워진 거야.」

그 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세실에게서 도망쳤을 때 루시는 윈디 코너로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그녀의 집은 이미 세상에 없었다. 프레디에게는 집이 있었다. 그의 삶과 생각은 여전히 반듯했으니까. 하지만 일부러 정신을 비틀어 버린 사람에게는 집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이 비틀렸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걸 인식하는 데는 바로 정신이 필요하니까.

 

「저한테는 좀 더 독립된 생활이 필요해요.」 루시가 어설프게 말했다. 그녀에게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럴 때 독립이란 말은 아주 유용한 구호가 된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라도 스스로에게 독립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네 아버지가 지은 집, 아버지가 가꾼 정원, 우리 집의 아름다운 전망 같은 걸 모두 경멸하렴.」

 

「세상에! 너 어쩌면 그렇게 샬럿 바틀릿이랑 비슷해졌니?」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샬럿이라고요?」 이번에는 루시가 놀랐다

 

에머슨 부자가 떠났다. 그렇다면 그리스를 둘러싼 이 법석도 전혀 필요 없었던 셈이다. 그건 그냥 헛수고였다! 헛되다는 말이 그녀의 인생을 요약해 주는 것 같았다. 헛된 계획, 헛되이 쓴 돈, 헛된 사랑, 게다가 어머니의 가슴에도 상처를 입혔다. 이 모든 것이 헛된 낭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이어 나갔다. 「나는 녀석에게 항시 사랑을 믿으라고 가르쳤어요. 〈네가 사랑을 느끼면 그건 진실이란다〉라고 말요. 〈열정은 장님이 아냐. 열정이야말로 눈이 밝지. 네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여자는 네가 진실로 이해하게 될 유일한 사람이란다〉라고도 말했어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건 진실이에요, 영원한 진실. 비록 내 시절은 끝났고, 결국 이런 결과에 이르렀지만. 불쌍한 녀석! 어찌나 괴로워하는지! 사촌 언니가 곁에 있는 바람에 정신이 더 헷갈렸다고 합디다. 아가씨가 속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고도요. 하지만 어쨌건….」 그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더니 확인하고 싶다는 듯 물었다. 「허니처치 양, 이탈리아를 기억합니까?」

[…]

「내가 들은 이야기는 녀석이 지난 일요일에 아가씨를 사랑했다는 것뿐이에요.」

 

「내가 조지를 세례받지 않도록 했을 때.」

[…]

「집사람도 나하고 똑같이 세례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녀석이 열두 살 때 열병에 걸리니까 생각이 달라진 거야. 그게 바로 하늘의 심판이라고 생각한 거지.」

[…]

「하늘의 심판이라니! 우리 아이가 장티푸스에 걸린 게 교회에서 목사가 떨구는 물 몇 방울을 안 받았기 때문이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허니처치 양? 우리가 다시 암흑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거요?」

 

「녀석은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언제나 그런 식으로 고비를 넘었어요. 녀석은 살아갈 겁니다. 하지만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런 그를 바라보니 그녀의 내면에서 진정한 기사도 정신 ─ 남녀 사이에 오가는 낡은 기사도 정신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발휘하는 진정한 기사도 정신 ─ 이 깨어나서,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세실은 그리스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가씨가 걱정되는군요. 내가 볼 때는….」 그녀는 꿈결에 휩싸인 듯 놀라지도 않았다. 「아가씨는 혼란에 빠진 것 같아요.」

「이 늙은이 말을 들어요. 이 세상에 혼란보다 나쁜 건 없어요. 죽음이라든가 운명이라든가, 무시무시해 보이는 그런 것에 맞서기는 오히려 쉬워요. 지난날을 돌아볼 때 두려운 건 내가 만났던… 어쩌면 잘 피했는지도 모르는 혼란들이에요.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한계가 있어요. 나는 한때 젊은이들한테 인생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버렸습니다. 조지에게 가르친 모든 게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으니까. 혼란을 떨쳐야 해요.」

 

「인생은 눈부시지만 또 힘든 거요.」

 

「〈인생은 바이올린 연주회와 같다. 그런데 그 연주법은 연주를 해나가는 무대에서 익혀야 한다〉고 말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살아가는 현장에서 살아가는 능력을 익혀야 해요…. 무엇보다 사랑하는 능력을.」

 

「아가씨는 녀석을 사랑하고 있어. 온몸과 마음으로 꾸밈없이 순수하게, 바로 녀석이 아가씨를 사랑하는 것처럼.」

[…]

「충격받았구려. 하지만 충격을 주려고 한 말이에요. 때로는 충격밖에 희망이 없으니까. 다른 방식으로는 아가씨한테 접근할 수가 없으니까. 아가씨는 결혼해야 해요. 안 그러면 인생을 허송하는 거야. 이제 아가씨는 물러나기에는 너무 멀리 갔어요. 나한테는 이제 시간이 없어. 그래서 사랑이나 우정, 시(詩)같이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 아가씨가 결혼을 통해 얻는 것들을 누릴 수가 없어요. 분명한 건 조지하고 함께라면 아가씨가 그런 것들을 찾으리라는 것, 그리고 아가씨가 녀석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들놈하고 결혼해요. 벌써 아가씨 마음속 한 자리를 녀석이 차지하고 있지 않소? 아가씨가 그리스로 달아나도, 다시는 녀석을 안 봐도, 그 이름조차 잊어도 조지는 죽을 때까지 아가씨 마음속에 있을 거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헤어질 수 없어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요. 사랑을 비틀고 무시하고 혼탁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걸 떨쳐 버릴 수는 없어요. 경험을 통해서 나는 시인들의 말이 옳다는 걸 알아요. 사랑은 영원합니다.」

 

루시의 눈에 분노의 눈물이 솟구쳤다. 분노는 곧 사라졌지만 눈물은 남았다.

「다만 시인들이 이걸 좀 말해 줬으면 좋겠어. 사랑은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말이야. 몸 자체는 아니지만,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아! 우리가 그걸 인정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고통이 줄어들까! 그런 작은 솔직함이 우리 영혼을 해방시킬 텐데!」

 

「안 돼요…. 사람들이 현관 앞에 있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에머슨 씨…. 사람들은 저를 믿고 있어요….」

「그게 무슨 소용인가요? 아가씨가 모두를 속였는데.」

 

「이제 어두워졌군요. 아름다움이나 열정 같은 게 전혀 없었던 세상 같지 않소? 하지만 분명해요. 피렌체 주변의 산들과 전망을 생각해 봐요. 아, 내가 조지였다면 키스로 아가씨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련만. 열기가 필요한 전투에 나설 때는 냉정해져야 해요. 자신이 만든 혼란 속에 몸을 던져야 해요. 어머니나 친구들은 아가씨를 경멸할 겁니다. 모두 그게 옳다고 생각하겠지요. 경멸하는 게 어떻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조지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싸우며 괴로워하고 있어요. 말 한마디 없어요. 내가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오?」 그의 눈에도 눈물이 떠올랐다. 「우리가 싸우는 건 사랑이나 쾌락만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진실이 있어요. 중요한 건 진실이에요. 진실이야말로 중요해요.」

「제게 키스해 주세요.」 루시가 말했다. 「키스해 주세요. 제가 노력해 볼게요.」

 

진창을 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 그녀는 딱 한 번 입을 열었다 ─ 그의 키스는 그녀에게 남아 있었다. 그는 육체에서 더러움을 빼냈고, 세상의 조롱에서 고통을 빼냈다. 그는 솔직한 욕망의 성스러움을 보여 주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말했듯이 그녀는 〈그가 어떻게 자신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마치 그가 세상의 전부를 한꺼번에 다 보여 준 것 같았다.〉

 

제20장

중세의 종말

 

어쩌면 그는 12개월 전에 이 행복의 씨앗을 뿌린 파에톤인지도 몰랐다. 남편이 된 조지는 열렬한 고마움에 휩싸여서 ─ 이 남쪽 나라에서는 모든 감정이 열렬해진다 ─ 어리석은 젊은이를 위해 그토록 수고한 모든 사람과 사물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물론 그 자신도 애를 쓰긴 했지만, 그 방법은 얼마나 서툴렀던가! 중요한 전투는 모두 남들이 치렀다. 이탈리아가, 아버지가, 그리고 그의 아내가.

 

「우리가 진실에 따라 행동하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거예요.」

 

그는 그녀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함께 전망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서 서로의 이름을 속삭였다. 아!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은 그들이 기대했던 커다란 기쁨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생각도 못한 수많은 작은 기쁨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당신의 사촌 언니는 처음부터 그걸 바라고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그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이렇게 되기를 바랐어요…. 물론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였지만요. 겉에서는 우리와 싸웠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바랐어요. 다른 방식으로는 그분 행동이 설명되지 않아요. […] 하지만 마음속 아주 깊은 곳, 너무 깊어서 어떤 말이나 행동도 이르지 못하는 그곳에서 그분은 만족하고 있을 거예요.」

 

부록

방이 없는 전망

 

『전망 좋은 방』은 1908년에 출간되었다. 지금은 1958년이고 그 사이에 우리 주인공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또 자신의 아이들과 손주들을 사랑하는 금슬 좋은 부부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에서 살까? 이것은 조금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내가 이 글의 제목을 〈방이 없는 전망〉이라고 붙인 것이다. 나는 조지와 루시가 어디서 사는지 떠올릴 수가 없다.

 

사랑과 진실은 이들의 가족도 돌보았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지금껏 어떤 정부도 사랑과 진실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지만, 이들 누추한 가족만은 그들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하이게이트에서 카셜턴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2차 대전 ─ 그 종료와 함께 지속적 평화를 안겨다 줄 ─ 이 일어났다. 조지는 곧 입대했다. 현명하고 열정적이었던 그는 영국보다 그리 나쁠 것 없는 독일과 악마가 된 독일을 구별할 줄 알았다.

* 조지는 1차 대전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한 것으로 나온다.

 

조지는 ─ 나 자신 또한 몇 해 뒤에 그랬듯이 ─ 펜션 베르톨리니 건물을 찾아보았다.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지만 모든 게 변해 있었다. […] 그래서 조지는 전망이 그대로니 방도 그대로일 테지만 찾을 수는 없더라는 편지를 보내야 했다. 전망을 계속 지닌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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