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긋기/소설/희곡

거지 소녀 | 앨리스 먼로

2020. 9. 17.
거지 소녀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저/민은영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우리 시대 최고의 단편 작가 앨리스 먼로의 1978년 작품 『거지 소녀』.

캐나다에서는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Who Do You Think You Are?’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거지 소녀』는 주인공 로즈를 중심으로 연결된 단편 열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난하고 누추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똑똑한 여성 로즈가 그 굴레를 벗어나려 애쓰는 과정, 그리고 새어머니 플로와 쌓아나간 애증의 유대관계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각 단편은 로즈의 유년기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사십 년의 세월에 걸친 생애의 어느 한 시기를 다루고, 때로는 한 단편 속에서도 수십 년을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열 편의 단편 각각이 그 자체만으로 완결성을 갖춘 “관조적이고 심미적인 완전체”([뉴 리퍼블릭])이면서 동시에 그 단편들이 모여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며 특별한 문학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작품으로 앨리스 먼로는 캐나다 최고 문학상인 총독문학상을 두번째로 수상했고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다.

 

 

 

장엄한 매질

 

장엄한 매질Royal Beating. 플로가 한 장담이었다. 장엄한 매질을 한 번 당하게 될 거다.

 

로즈의 아버지는 장엄한 매질의 왕이었다.

 

“마카로니, 페퍼로니, 보티첼리, 콩……”

저건 무슨 의미일까? 로즈는 혼자서 그 단어들을 되뇌어보곤 했다.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저런 말을 내뱉는 사람과 아버지로서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비록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을 아는 척하는 것은 천박한 행동일 것이다.

 

처음에는 플로와 로즈 사이에 긴 휴전이 있었다. 로즈의 성정은 뾰족한 껍질에 싸인 파인애플처럼 자라났으나 그 변화는 느리고 은밀했다. 단단한 자존심과 회의주의가 서로 겹쳐지면서 로즈 자신에게조차 놀라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때 플로는 분명 삼십대 초반이었다. 젊은 여자. 그런데 차림새는 오십대, 혹은 육십대, 혹은 칠십대 같았다. 무늬가 날염되고 목과 소매와 허리 부분이 헐렁한 실내복 원피스 위에 역시 날염 무늬가 있는 긴 앞치마를 입고 있다가 부엌에서 가게로 나갈 때는 앞치마를 벗었다. 그 시절, 가난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은 여자들의 일상적인 옷차림이었다. 이는 또한 어떤 면에서 경멸을 나타내는 의도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플로는 바지를 경멸했고, 유행을 따르는 옷차림을 경멸했고, 립스틱과 파마를 경멸했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꼈다면, 그리고 충분한 자원이 있었다면, 그녀는 검은 머리와 흰 피부의 대조가 뚜렷하며 섬세하고 잘 가꾼 느낌이 드는 예쁘장한 외모를 갖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로즈는 훗날 그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플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어야 했다. 자신에게나 남에게 얼굴을 찌푸리고 싶은 충동을 물리칠 방법을 배웠어야 했다.

 

플로가 귀담아듣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변호사 데이비스의 부인, 성공회 신부 헨리스미스의 부인, 수의사 매케이의 부인이었다. 플로는 집에 오면 그들의 경박한 목소리를 흉내내곤 했다. 그들이 괴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어리석음, 과시, 자화자찬의 괴물.

 

와해되는 이성. 불꽃처럼 튀는 광기.

 

플로는 경고한다. 브라이언은 경고를 새겨듣는다. 장작 헛간 문 밖으로 달려나가 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남자아이라 돕거나 돕지 않을 자유, 관여하거나 관여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집안의 갈등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두 여자도 서로를 공격하느라 이용할 때만 그애가 필요한 터라, 아이가 가는지 어쩌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실랑이를 계속한다.

 

로즈는 플로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했든, 자신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했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 그 자체이며, 그것을 멈출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절대로 멈출 수 없다.

 

딸을 한 번 쳐다본다. 처음에는 차갑고 시비를 거는 듯한 눈빛이다. 그 눈빛은 아버지의 판단을, 로즈가 얼마나 가망 없는 처지인지를 알려준다. 그러다 그 눈빛이 사라지며 다른 것이 차오른다. 옹달샘에서 낙엽을 치우면 물이 차오르듯이. 아버지의 눈에 혐오와 쾌락이 차오른다. 로즈는 그것을 보고 알아차린다. 분노가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뿐일까? 그녀는 아버지의 눈에 분노가 차오른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혐오가 맞다. 쾌락이 맞다. 아버지의 얼굴이 풀어지고 변하고 점점 젊어진다.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벨트가 풀려나온다. 느긋하게. 필요한 지점에서 손에 쥐어진다. […] 배역을 기괴하게 연기하는 형편없는 배우 같다. 마치 이 상황의 수치스럽고 끔찍한 부분만을 음미하고 부각시켜야 한다는 듯. 하지만 그가 가장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것이 연기이고 그의 진심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연기이고 그의 진심이다. 로즈는 그것을 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

 

이때 이후로 로즈는 살인과 살인자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다. 끝장을 봐야 하는 이유는 결국 부분적으로는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인 걸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고, 가장 무시무시한 허튼짓도 정당화될 수 있고 그 행위에 어울리는 감정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의 관객에게─교훈을 깨닫더라도 깨달음을 표시할 수도 없을 상대에게─증명하기 위해서일까?

 

배신은 일상성의 이면이다.

 

이미 진정된 상태로 접어들어, 무자비한 폭행도 다 끝난 일, 바꿀 수 없는 일로 느껴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건과 가능성들이 멋진 단순성을 띠게 된다. 선택은 자비로울 만큼 명백하다. 어물쩍 얼버무리는 말은 전혀, 조건을 붙이는 말은 거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결코’라는 단어가 갑작스레 확고한 권리를 얻는다. 그들과 결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증오가 담기지 않은 눈길로는 결코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벌할 것이고 끝장내버릴 것이다. 이러한 결의와 온몸의 통증에 감싸인 채로 그녀는 자기 자신도, 책임도 초월하는 묘한 편안함 속에 둥실 떠 있다.

 

삶이 다시 시작되었고, 그들은 다시 식탁에 둘러앉아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식사를 하리라는 것을 로즈는 이해할 것이다. 내일 아침, 어쩌면 심지어 오늘밤이라도. 보기에 썩 좋지 않고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난처해하겠지만 저마다 한 짓을 생각하면 더 난처해도 이상할 리 없다. 그들은 기묘한 나른함, 어쩌면 충족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회복기 환자의 나태함을 느낄 것이다.

 

어떤 놈들은 죽어서 꼬꾸라질 때까지 일하고 끌고 하는데, 어떤 놈들은 돼지기름에 빠진 좆도 못 꺼내줄걸. 헤헤.

결국 진짜 인터뷰가 틀림없었다. 아니라면 방송국에서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이 말하면 괜찮다. 향토색. 백 살이라는 나이는 무엇이든 무해하고 유쾌하게 들리게 한다.

 

이삼 년 전 로즈가 양로원에 입원시킨 이후로 플로는 말문을 닫았다. 플로는 스스로를 완전히 거두어들였고, 하루종일 교활하고 심술궂은 표정으로 칸막이를 두른 침대 한구석에 앉아서 누가 뭐라 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가끔씩 간호사를 깨물어 감정을 드러내는 때를 제외하고는.

 

특권

 

로즈는 학교의 질서는 변경 불가능한 것이고 그곳의 규칙은 플로가 이해할 수 있는 그 어떤 규칙과도 다르며 그 야만성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믿었다

 

이 근방에서 종교는 대개 싸움의 형태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가톨릭 신자 아니면 근본주의 개신교도로서, 서로를 괴롭힐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여겼다.

 

그녀는 배우고 있었다. 일 년에 두세 번씩 학교를 분열시켰던 큰 싸움을 감당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중립을 지키려는 뜻을 보였지만 그것은 심각한 실수였다. 양편 모두를 적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참하지는 않았다. 변소에 갈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아무리 겁을 내고 소심하게 굴더라도, 그 어떤 충격과 불길한 예감에 시달린다 해도, 생존법을 배우는 것은 비참하게 사는 것과는 다르다.

 

선생은 어느 모로 보나 열정적이거나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 중년이 되어 다시 교직으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아마도 구할 수 있는 직업이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버텨야 했고 그래서 버텼다.

 

시작되고, 커져가고, 흐르는 사랑. 아직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성적인 사랑. 그것은 처음부터 있었을 것이다. 곧 녹아 흐르기만을 기다리며 양동이에 하얗게 굳어 있는 꿀처럼. 격렬함이 좀 부족하고 긴박함이 없고 선택된 상대의 성별이 우연히 달랐을 뿐, 그 외에는 똑같았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로즈를 엄습한 다른 관계들과 똑같았다. 높은 파도, 잊을 수 없는 바보짓, 갑작스러운 홍수.

 

로즈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코라가 플로의 가게에 찾아와 사탕을 돌려주는 상황이었다.

[…]

“왜 그걸 그애한테 주려고 한 거냐고?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거니?”

모욕이자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로즈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로즈에게 사랑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키스와 결혼을 연상시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충격받고 까발려진 그녀의 감정은, 비록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시들면서 가장자리부터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플로는 모든 것을 말려버리는 열풍이었다.

“맞구나,” 플로가 말했다. “토할 것 같다.”

플로가 얘기한 것은 미래의 동성애가 아니었다. […] 그녀가 역겨워한 것은 사랑이었다. 예속과 자기비하와 자기기만이었다

 

“저기 네 우상 지나간다!” 그녀는 코라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가게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말했다.

[…]

“네가 저애한테 사탕을 바치려고 했잖아! 저애 때문에 사탕을 훔쳤잖아! 어찌나 웃기던지.”

모르는 척한 행동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사실은 기억했으나 감정은 기억나지 않았다.

 

자몽 반 개

 

모든 학생들에게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말하게 했다.

“감자튀김이요.”

“옥수수 시럽을 바른 빵이요.”

[…]

“자몽 반 개요!” 로즈는 대담하게 말했다.

 

“자몽 반 개요!”

로즈는 그뒤로 몇 년 동안 가끔씩 골목길이나 어둑한 창문에서 그 말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들었다는 사실을 결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내 얼굴을 만지거나 입술 위쪽의 물기를 닦아내야 했다. 아닌 것을 그런 척하는 대가로 우리는 땀을 흘린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 치욕이야말로 가장 얻기 쉬운 것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은 그 혹독하고 선명한 조명 아래에서 위태롭기 짝이 없었고, 무엇 하나 잊히는 법이 없었다.

 

날마다 로즈는 집에 오면 플로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 그녀는 자몽 반 개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로즈는 자신이 우월한 역할, 관찰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 이야기는 결코 플로에게 하지 않았다. 곤경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로즈가 그 책들을 집에 가져온 것은 당연히 아버지를 의식해서, 아버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 하지만 아버지가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조심해라. 너무 똑똑해지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아버지에게 플로는 바람직한 여자의 전형이었다. 로즈는 그것을 알았고 실제로 아버지도 자주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활달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거나 비축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빠릿빠릿해야 하고 흥정과 관리에 능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식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고 아이 같아야 하며, 지도나 긴 단어나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우습게 보고, 아기자기하면서 알쏭달쏭한 생각, 미신, 전통에 대한 믿음 등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여자의 정신은 달라.” […] “여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 그게 그들의 재능이야.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지. 여자가 남자보다 더 뛰어난 어떤 부분이 있어.”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에 대해 느끼는 다른 감정들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딸에 대해 통제하기 힘든 짜증과 우려뿐만 아니라 자부심 또한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는 딸이 다르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 본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란다는 것이 진실, 최종적인 진실이었다. 적어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랬다. 당연히 아버지는 그런 마음을 계속 부정해야 했다. 겸양 때문에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비뚤어진 겸양. 또한 그는 플로와 의견이 잘 맞는 것처럼 보여야만 했다.

 

때로 로즈는 아버지의 속옷이 얼룩진 것을 보기도 했다. 로즈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플로는 그것을 로즈의 코밑 가까이 들이대고 흔들어대며 외쳤다. “이것 좀 보소, 또!” 그러면서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찼는데 그 소리가 익살극 배우 같았다.

그럴 때 로즈는 플로가 싫었고 자기 아버지도 싫었다. 그의 병이, 빨래를 세탁소에 맡기는 건 상상조차 못하는 가난이나 절약이, 삶에서 그 무엇도 피해갈 수 없는 신세가 싫었다. 피해갈 수 없도록 거기에 플로가 있었다.

 

로즈는 계산대 위에 교과서를 올려놓고 집안의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어책에 있는 단편소설을 읽고 있었다. 캐서린 맨스필드가 쓴 「가든파티」라는 작품이었다. 소설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은 정원 가장자리에 있는 오솔길 가에 살았다. 소설은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그렸다. 그럴듯했다. 하지만 로즈는 그 소설이 결코 불러일으킬 의도가 없었을 울화를 느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캐서린 맨스필드는 얼룩진 속옷을 봐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면서 생긴 감정이었다. […] 맨스필드가 느끼는 연민은 행운의 구름 위에 떠 있는 사람의 감정이며, 그녀는 아마도 그 행운을 개탄했겠으나 로즈는 그것을 경멸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비롯해 여러 시들을 학교에서 시키는 것 이상으로 많이 외웠다. 그 구절들을 암송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무대 위에서 맥베스 부인을 연기하는 배우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자기가 바로 그 여자라고, 맥베스 부인이라고 상상했다.

 

“너희 식구한텐 참 슬픈 날이겠다.” 빌리 포프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로즈는 고개를 들어 싸늘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입원하니까 슬프겠다 그 말이지. 그래도 다 고쳐줄 거다. 거기엔 장비들도 다 있어. 좋은 의사도 있고.”

“글쎄요.” 로즈가 말했다. 그녀는 그것도 싫었다. 사람들이 뭔가를 암시했다가 바로 철회하는 짓. 그 음흉함. 사람들은 주로 죽음과 섹스에 대해 그런 짓을 했다.

 

“가족친지들과 소통하고 싶어하진 않았대?” […] “그런 사람이면 죽은 이들과도 이어줄 수 있었을 텐데.”

“음,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친지들을 살아 있을 때 본 것만으로 만족해요.”

 

야생 백조

 

그들은 샌드위치를 싸서 가져갔고 객실 판매원에게서 우유를 샀다. 시큼했다. 시큼한 초콜릿 우유. 로즈는 그토록 원했던 것이 이렇게 실망스럽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계속 조금씩 홀짝홀짝 마셨다.

 

로즈는 야생 백조 이야기를 감탄하며 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대화를 백조에서 자연 전체로, 그러다가 결국은 신에 대한 얘기로 끌고 갈까봐 겁났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백조 얘기에서 멈췄다.

 

목사의 손은 전혀, 혹은 아직은, 달갑지 않았다.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고 약간은 역겨웠으며 함정에 빠진 듯했고 경계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손을 맘대로 할 수가,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녀가 그 손이 거기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정말로 하지 마세요, 하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 무시할 거라고, 마치 그녀가 어리석거나 예의 없는 짓을 했지만 눈감아주는 것처럼 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 말을 하자마자 그가 듣지 못했기를 바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호기심. 그 어떤 욕망보다 더 줄기차고 긴급한 것. 그 자체로 욕망인 것.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뒤로 물러나 지나치게 오래 기다리면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게 이끄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다리를 계속 꼰 채로 있는 동안은 결백을 주장할 수 있다. 그 무엇도 시인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이걸 멈출 수 있다고 계속 믿을 수 있다. 아무 일도, 더이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리는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벌어지고 말았다.

 

이는 수치였다. 비루함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순간에 자문한다. 해될 게 뭔가, 우리가 탐욕이 일으킨, 탐욕스러운 승인이 일으킨 차가운 파도를 타고 있는 동안에,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그것이 뭐가 되었든, 해될 게 뭐란 말인가.

 

그녀는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피해자이자 공모자로서.

그런 교활한 희롱, 그런 통속적인 환영幻影이라니.

 

기차역 안의 어둠 속에서 상쾌한 얼굴로 눈을 뜬 연합교회 목사는 신문을 모아 정리한 뒤 그녀에게 코트 입는 걸 도와줄까 물었다. 그의 정중함에서 자기만족과 멸시가 느껴졌다.

 

그는 정말 목사였을까, 아니면 말로만 그런 것일까? 플로는 목사가 아니면서 목사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말했었다.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닌 것처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혹은 더욱 이상하긴 하지만, 목사가 아닌데 목사인 척하면서 목사가 아닌 것처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거지 소녀

 

로즈는 헨쇼 박사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싫었다. 패트릭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도 싫었다. 패트릭이 그런 식으로 계단에 앉아 있는 것도 싫었다. 그는 웃음거리가 될 빌미를 주고 있었다. 그는 로즈가 그때까지 본 중에 가장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었는데, 스스로 그런 상태를 초래했고 자신을 보호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가혹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 자만심으로 가득한 사람이기도 했다.

 

로즈가 볼 때 헨쇼 박사의 집과 플로의 집은 서로의 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깎아내렸다. 헨쇼 박사의 매력적인 방들은 항상 집이라는 개념에 대한 미가공의 삼키기 힘든 덩어리 같은 지식을 전달하는 듯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면 다른 곳에서 느꼈던 질서와 조절의 감각이 되살아나, 결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난처하고 서글픈 빈곤을 보았다. 헨쇼 박사는 가난을 그저 불우함이나 결핍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지만 가난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흉한 막대기 모양 전등을 사용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때로 헨쇼 박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음, 넌 학구파니까 저런 데는 관심 없겠지.” 대개 대학에서 열리는 행사들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궐기대회라든가, 미식축구 경기, 댄스파티 등등. 그리고 대개는 그 말이 맞았다. 로즈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순순히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그런 정의를 원하지도 즐기지도 않았다.

 

그녀는 유명하고 선망받는 사람, 날씬하고 총명한 사람이고 싶었다. 헨쇼 박사에게 남자로 태어났다면 해외 특파원이 되고 싶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럼 특파원이 되어야지.” 헨쇼 박사가 겁먹게 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미래는 활짝 열려 있어, 여자들에게도. 외국어 공부에 집중해야 돼. 정치학 강의도 듣고. 경제학도. 여름에 신문사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 내 친구들이 있거든.”

로즈는 신문사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경제학 개론 수업도 싫어서 수강을 취소할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헨쇼 박사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건 위험했다.

 

로즈가 보기에 강의실 안에는 제 옆에 있는 사람과 똑같이 구부정하고 아줌마 같은 여학생 네댓 명과 눈이 초롱하고 자기만족적이고 아이 같은 남학생 여럿이 모인 것 같았다. 장학생들을 보면 여학생들은 대략 마흔 살처럼, 남학생들은 대략 열두 살처럼 보이는 것이 상례인 듯했다

 

그들의 머리 위에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은 오해가 아니었다. 간절함과 고분고분함이라는 끔찍한 휘장이 정말로 거기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리 많은 정답을 맞히고 듣기 좋은 대답을 하고 두각을 나타내어 이곳까지 왔을 것인가?

 

여학생들에게 가난은 상냥하고 헤픈 태도나 멍청함과 결합되지 않는 한 매력이 없다. 좋은 머리는 우아함의 징후, 즉 품격과 결합되지 않는 한 매력이 없다. 정말로 그랬을까? 그리고 그녀는 그런 걸 신경쓸 만큼 어리석었을까? 정말로 그랬다. 그리고, 어리석었다.

 

기사와 숙녀가 살고 만행과 헌신이 있는 세상에서 활약하고 싶은 그의 소망이 역력히 드러났다.

 

“내가 별로 남자다워 보이지 않나보구나.”

그녀는 그런 속마음 노출이 놀랍고도 거슬렸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다니,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단 말인가?

[…]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정말로 남성적이라고 느꼈다. 그런 위험을 무릅썼다는 이유로. 그렇게 경솔하고 요구가 많아도 되는 것은 오직 남자들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가난해. 자기는 내가 살던 곳을 보면 돼지우리 같다고 생각할 거야.”

상대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는 척하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이제 그녀였다.

[…]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누구?”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알잖아. 그림 말이야. 그 그림 몰라?”

패트릭은 술수를 부릴 때가 있었다─아니, 그건 술수가 아니었다, 패트릭은 술수를 부릴 줄 몰랐다. 패트릭은 자기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때 그 나름의 방식으로 놀라움을, 조롱 섞인 놀라움을 표현하곤 했다. 또한 자기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굳이 알고 있을 때에도 비슷한 조롱과 비슷한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의 오만과 겸손은 양쪽 다 기묘하게 과장되어 있었다. 오만은, 로즈가 시간이 흘러 판단한 대로, 부유함에서 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비록 패트릭은 자신이 부유하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거만하게 군 적이 결코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만에 관한 한 빌리 포프 역시 심하지 않나? 플로 역시 심하지 않나? 아마도. 하지만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빌리 포프와 플로는 보호받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 그들은 타인의 뜻에 따르고 자신을 갈고 닦으며 세상의 호의를 얻어야 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었다. 부유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로즈는 그 그림을 보았다. […] 그녀는 유순하고 육감적인 거지 소녀와 그 소녀의 수줍은 흰 발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녀의 소심한 굴복, 그 무력함과 황송함. 패트릭은 로즈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걸까?

 

그녀는 패트릭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진 돈의 양이 아니라 그가 주는 사랑의 양이었다.

 

로즈는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완전히,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질 거라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고,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원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무엇이 있어서인데, 자기 안에 그것이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것인가?

 

“내가 별로 남자다워 보이지 않나보구나.” 다른 말도 떠올랐다. “날 사랑하니? 정말로 나를 사랑해?” 그는 두려움과 위협이 담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곤 했다.

 

키스할 때 패트릭의 입술은 부드럽고 혀는 수줍었고, 그는 그녀를 안았다기보다는 그녀에게로 무너지는 듯했다. 그에게서 아무런 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를 제지하기 위해, 조용히 시키기 위해, 그는 몸싸움을 해야 했다. […] 그가 싸우기 시작하자 그녀는 즉시 안도감을 느꼈다─바로 그것을, 그가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취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더욱 강하다는 것을 정말로 증명할 때까지 그녀는 계속 저항해야 했다. 그가 증명하지 못할까봐 그녀는 두려웠다.

 

“그 친구를 사랑하니, 로즈?” 헨쇼 박사가 물었다. “아니, 생각해봐. 사랑해?” 회의와 진지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로즈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고요한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 대답했다. “네, 그래요.”

“그럼 됐다.”

한밤중에 로즈는 잠에서 깨어 초콜릿 바를 먹었다. 그녀는 단것을 갈망했다. […] 패트릭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하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정말로 무엇인지 판단하려 하면 으레 그런 갈망이 끼어들었다.

 

그들은 재빨리 옷을 벗고 패트릭의 침대로 들어갔다. 절호의 기회였다. […] 그녀는 둘이 잘해내지 못할까봐, 엄청난 굴욕의 순간이 닥쳐올까봐, 자신들의 형편없는 기만과 술수가 드러날까봐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기만과 술수를 부린 것은 그녀뿐이었다. 패트릭은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그는 어마어마한 곤혹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서투름을 사과했고, 놀란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고 버둥거리다가 마침내 평정을 찾았다. 로즈도 서투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솔직하게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몸을 꼬고 뒤채며 열띤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어설프게 열정을 가장했다. 잘 끝나고 나자 기뻤다. 그 기쁨은 가장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연인들이 하는 것을 그들도 해낸 것이다.

 

여태 고마움을 가장하고 그를 무시하고 회의를 품었던 자신을 용서받고 싶었다.

왜 그토록 회의를 품어야만 할까,

 

진짜 문제는 그녀가 아닐까? 누구든 자신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은 무언가 가망 없이 부족할 테고 결국 바보로 판명될 거라는 그녀의 확고한 믿음이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패트릭의 어리석은 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영웅은 아니지만 바보도 아닌 사람. 어쩌면 그들은 평범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패트릭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 (그는 그녀가 숫처녀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그녀는 그가 무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 그는 그녀를 뚫고 지나가 다른 곳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아무리 주의를 돌리려 해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녀 자신도 보지 못하는 순종적인 이미지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희망은 원대했다. 그녀의 사투리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못난 친구들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저속한 습성을 억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진심어린 악의가 한 장소에 그토록 강렬하게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빌리 포프는 편견과 불평이 심한 사람이고 플로는 변덕스럽고 불공정하고 뒷말을 즐기는 사람이며 아버지는 생전에 냉혹한 판단과 가차없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지만, 패트릭의 가족에 비하면 로즈의 가족은 하나같이 유쾌하고 매사에 만족하는 사람들 같았다.

 

“우리 가족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서 널 싫어하는 거야.” 패트릭이 속시원한 듯 대답했다.

 

플로는 패트릭의 과민한 태도를 간과할 리 없으며, 그의 목소리나 케첩병을 엎은 파닥이는 손짓을 그대로 흉내낼 게 뻔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은 둘 다 빛을 잃고 처량한 모습으로 식탁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 로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측면에서 수치심을 느꼈다. 음식과 백조와 비닐 식탁보가 수치스러웠고, 플로가 이쑤시개통을 전달하자 깜짝 놀라며 얼굴을 찡그리는 패트릭의 암울한 속물근성이 수치스러웠고, 플로의 소심함과 위선과 가식이 수치스러웠으나, 그 무엇보다도 수치스러운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네 말이 맞았어.” 버스를 타고 핸래티를 떠나는 길에 패트릭이 말했다. “돼지우리 맞아. 그런 데를 떠나왔으니 정말 다행이겠다.”

그 말을 듣자마자 로즈는 그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다고 느꼈다.

“물론 네 진짜 엄마는 아니지만,” 패트릭이 말했다. “네 진짜 부모는 저랬을 리가 없지.” 그 말도 싫었다. 비록 그녀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로즈는 그가 자신에게 좀더 고상한 배경을 덧씌우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고단한 삶을 긍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유식한 사람들. 어쩌면 저렇게 비겁할까, 그녀는 화가 나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기 역시 비겁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의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그곳을 확실히 벗어났다고 생각하자 한 겹의 의리와 방어 의식이 생겨나 지난날의 모든 기억을, 상점과 타운, 밋밋하고 볼품없고 특별할 것 없는 시골 풍경 주위를 단단하게 감쌌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 패트릭이 산과 바다, 돌과 목재로 된 그의 대저택에 대해 갖는 생각과 대조시키곤 했다. 고향에 대한 그녀의 충성심은 그의 경우보다 훨씬 자존심 강하고 고집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그 무엇도 저버릴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이 무척 행복하겠다고 말할 때는 정말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처럼 단순했다. 그녀는 보조개 팬 얼굴로 빛나게 웃으며 아무 고민 없는 약혼녀로 탈바꿈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그녀는 말했다.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아.” 그녀는 침대 위에 쓰러져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정말 미안해. 너무 미안해. 어쩔 수가 없어.”

잠시 후 패트릭이 말했다. “좋아.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날 사랑하라고 강요하진 않아.” 이성적인 말의 내용에 견주어 그의 목소리는 긴장감과 앙심을 풍겼다. “단지 궁금한 것은,” 그가 말했다.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네가 알고 있는가 하는 거야. 난 아니라고 봐. 난 네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생각해. 그냥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 거지.”

“뭘 원하는지 알아야 뭘 원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로즈는 돌아누우며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당신을 사랑한 적 없어.”

 

이제는 패트릭이 거슬리지 않았고, 그가 무섭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유였다.

 

소용없고, 사실 그건 허영이었다고, 그를 되살리고 그에게 행복을 되돌려준 것은 다름 아닌 허영 때문이었다고.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 권력을 시험해볼 그런 기회를 거부할 수가 없어서.

 

낭비, 기만이었다, 그런 노력들은 결국. […] 그들은 엄청난 손상, 거의 치명적인 손상이 생겨 두 사람을 갈라놓고 나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행복에 대한 환상 같은 것. […] 그녀는 정당화를 할 수가 없다. […] 때로는 이유도 조짐도 없이 행복이, 행복의 가능성이 나타나 그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는 의미다.

 

장난질

 

로즈가 좋아하는 사람들보다는 패트릭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편이 그들에게는 더 쉬웠다. 로즈는 적응을 아주 잘했고, 사실은 눈속임을 잘했고, 패트릭은 적응을 전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일종의 가식적인 상냥함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부류의 인간이야.

 

결혼 전에도 그는 로즈가 간단한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내면 그에 대해 꾸짖듯이 설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시절에 그녀는 패트릭이 탁월한 지식을 과시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그를 우러러볼 수 있도록 질문을 할 때가 있었는데, 대개는 질문한 것을 후회했다. 그가 나무라는 어조로 너무 길게 답을 하는데다 지식 또한 그다지 탁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녀는 정말로 패트릭을 존중했지만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중하지 않았고, 정말로 그를 사랑했지만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저 사람이 시인이에요?” 로즈가 물었다.

영문학 강사가 말했다. “내게는 자기 시를 모두 불태웠다고 말하더군요.”

“활활 타오르네요, 허세가.”

 

“다른 데로 보내야 해요.” 패트릭이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부모에게서 분리시켜 문명화된 환경에 데려다놓고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이내 백인과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커갈 거예요.” 보나마나 그는 자신이 진보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그녀는 치욕을 느꼈고 패트릭이 창피했다. […] 패트릭은 좋은 사람이었다. 좋지 않은 것은 그의 견해일 뿐, 사람 자체는 좋았다. 패트릭의 본질은 단순하고 순수하고 신뢰할 만하다, 로즈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 본질에 어떻게 도달할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보여주기는 고사하고 그녀 자신이라도 확신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로즈는 조슬린과의 의리 때문에 가책을 느끼지는 않았다. 클리퍼드를 나누어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슬린이 아는 클리퍼드, 그녀가 항상 로즈에게 이야기하던 클리퍼드가 있는 한편, 이제는 로즈가 아는 클리퍼드도 있었다.

 

이때부터 로즈는 클리퍼드와 자신을 같은 부류의 인간으로 보았고, 조슬린과 패트릭을, 비록 그들은 너무 다르고 서로를 너무 싫어하지만, 또 한 부류의 인간으로 보았다. 그들은 온전했고 예측 가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전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들과 비교할 때 클리퍼드와 로즈는 둘 다 의뭉한 물건들이었다.

 

패트릭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선함과 순박함을 알아보는 일이라면, 클리퍼드를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로즈는 클리퍼드가 선한 사람이라고 믿을 필요가 없었고, 그가 순박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 그렇다면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속임수를, 반짝거리는 비밀을, 소중히 기념하는 정염을, 활활 타오르는 불륜을 원했다. 그저 빗속에서 오 분을 함께했을 뿐인데. 

 

그녀가 우러러보는 사람들은 그녀보다 가난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난이 결코 자랑일 리 없는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녀가 이제는 반대의 상황에 대해 미안해하고 창피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고약한 농담 같았다─예컨대 조슬린처럼 중산층의 풍요를 그토록 악의적이고 경멸조로 언급하는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당신이 한 번만이라고 했잖아요. 꿈 대신에 기억이 생길 거라고 했잖아요.”

“세상에. 구역질나는 말들을 많이도 했군.”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글린카

현을 위한 세레나데. 차이콥스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1악장

몰다우강. 스메타나

빌헬름 텔 서곡. 로시니  

 

오랫동안 그녀는 이 곡들을 들을 때마다 엄습하는 수치심을 느꼈다. 매번 비슷하게, 머리 위로 벽 전체가 무너져내리고 부서진 잔해가 목구멍을 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슬린이 집에 오면 로즈는 함부로 청소한 것을 사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이웃 여자들은 그녀가 살림에 신경을 덜 쓴다고 좋지 않게 보는데, 조슬린은 삶의 자연스러운 혼란과 쓰레기에 관용이 부족하다고 그녀를 타박하는 것이다.

 

“거대하고 빛나는 진실. 완전한 이해.”

[…]

“그런데 내가 당신을 위해 그 진실을 무너뜨려줄게.” 클리퍼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는 맥주를 병째로 마시고 있었다. 그는 진보다는 맥주가 자신에게 더 이롭다고 생각했다. “내가 들어온 순간부터 줄곧 나가기를 원했다는 건 절대적인 사실이야. 그런데 안에 있기를, 안에 남아 있기를 원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 난 당신과 부부로 지내기를 원했고 지금도 원해. 당신과 부부로 지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지금도 참을 수 없어. 그건 정태적인 모순이야.”

 

자신들은 온통 클리퍼드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다. 클리퍼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클리퍼드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에게 스튜디오가 필요한가, 휴가가 필요한가, 혼자 유럽에 다녀올 필요가 있는가? 로즈는 물었다, 도대체 왜 그는 조슬린이 자신의 안위를 끊임없이 신경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슬린은 그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리고 그건 네 잘못이야.” 그녀는 조슬린에게 말했다. “클리퍼드에게 행동을 하든가 닥치든가 하라고 말하지 않은 건. 네 남편이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는 상관없어. 나가, 아니면 닥쳐. 네가 해야 할 말은 그것뿐이야. 닥쳐요, 아니면 나가요.”

[…]

조슬린이 시험삼아 말했다. “닥쳐, 아니면 나가.”

 

“하지만 로즈는 다 당신 잘못이라잖아.” 클리퍼드가 말했다. “어머니이고 싶은 건 당신이야. 어른이고 싶은 건 당신이고. 오래 고통받는 사람이고 싶은 것도 당신이야.”

 

그 괴로움. 그건 무엇이었을까? 모두 낭비였을 뿐,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너무도 불미스러운 슬픔. 짓밟힌 자존심과 웃음거리가 된 환상. 마치 망치를 들고 의도적으로 제 엄지발가락을 박살낸 것과 같았다. 그것이 때로 그녀가 하는 생각이다. 다른 때 드는 생각은, 그것은 꼭 필요한 사건이었다는 것, 파괴와 변화의 시작이었으며, 패트릭의 집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있는 곳에 오게 한 과정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으레 그러하듯, 인생은 작은 효과를 위해 엄청난 소동을 피우는 법이다.

 

“거액을 쓰고 있어. 예전의 나라면 거액이라고 생각했을 돈을. […] 우리가 서로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우리는 소비자다! 그래도 된다!

그림이나 레코드나 책 같은 것만 사는 게 아니야. 그런 것들이 괜찮다는 건 항상 알고 있었어. 컬러텔레비전! 헤어드라이어! 와플팬!”

 

그녀는 탐색적인 굶주림을 느끼며 남자들을 쳐다보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한동안 자신을 놓아주었던 그 차갑고 아픈 욕구. 그녀는 치미는 분노를 느꼈다. 클리퍼드와 조슬린에게 화가 났다. 그들이 그녀를 놀리고 속였다고, 그 일이 없었다면 의식하지 못했을 확연한 결핍을 보게 했다고 느꼈다.

 

섭리

 

언젠가 그녀는 식사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앨범의 스냅사진에 스카치테이프를 새로 붙이고 있는 그를 보았다. […] 그녀는 공원에서 그네를 탄 애나를 밀어주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았다. 비키니를 입고 히죽거리는 모습도 있었다.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닌 모습들.

 

“안 그래도 되잖아,” 아이가 말했다. “요즘은 싸우지도 않잖아.”

[…]

부모가 실수와 부조화로 자아낸 이 피투성이의 직물, 누가 봐도 찢어서 버려야 마땅할 이 직물이 애나에게는 아직도 삶이 있는, 아빠와 엄마가 있는, 시작과 안식처가 있는 진정한 안전망이었다. 이 무슨 사기란 말인가, 로즈는 생각했다. 모두에게 이 무슨 사기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결합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엄만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 애나가 말했다. “난 다 알아.”

“음, 엄마는 아빠를 좋아해.” 로즈가 말했다. “그냥 우린 함께 살 수가 없는 거야, 그뿐이야.”

바른 대화법이라고 권장되는 말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말도 거짓되게 들렸다.

 

내가 바람을 피웠거든. 신문사에서 일하는 남자였어. 기자. 음, 그 사람이 영국으로 가버렸는데, 그 기자 말이야, 날 정말로,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대서양 건너에서 편지를 써 보낸 거야. 그 편지를 쓴 건 자기는 대서양 너머에 있고 나는 여기 있어서 그런 건데, 난 눈치가 없어서 그걸 몰랐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남편을 떠났어

 

자식을 위해 소리지르고 욕하고 분탕질을 하는 빈민가의 맹렬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빈민가의 엄마들은 너무 피곤하고 얼이 빠져서 좀처럼 맹렬하게 굴지 않는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힘을 내고 고자세로 압박할 수 있게 한 것, 집주인을 두렵게 한 것은 그녀의 중산층다운 확신, 정의에 대한 기대였다.

 

아이들은 가난하고 다채롭고 떠돌이 같은 유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나중에는 별 이유를 대가며 소중하게 여긴다고 주장하겠지만.

 

사이먼의 행운

 

시기나 하는 빌어먹을 기득권층.

 

기득권층. 그것이 로즈였다. 그런가? 로즈가 기득권층인가? 배우 일로는 먹고살 수 없어 교직을 택했고, 무대와 텔레비전에서의 경력 덕분에 교직을 구할 수 있었으나 학위가 부족해 급여를 깎인 로즈가? 그녀는 그들에게 다가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싶었다. 일을 해온 오랜 세월, 피로, 출장, 고등학교 강당들, 긴장, 지루함, 다음 급여는 어디에서 받게 될지 모르는 형편. 로즈는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같은 편으로 받아달라고 그들에게 간청하고 싶었다. 자신의 주장을 지지한 거실의 무리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편에 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원칙이 아니라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두려웠다. 그들의 박절한 도덕관념과 냉정하고 경멸이 서린 얼굴, 그들의 비밀과 웃음, 음담이 두려웠다.

 

그러다 기다림의 시간이 더 이어지면서, 주말의 기다림은 가벼운 연습, 심각하고 진부하고 비참한 의식으로 가는 우발적인 도입부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무심을 가장한다.

 

지금껏 어떤 남자 때문에 떠나야 해서 혹은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얼마나 많은 황당한 편지를 썼는지, 얼마나 많은 부풀린 핑계들을 찾았는지 생각했다. 그녀의 어리석음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행이 문을 열자 멈춰서 계좌 이체를 처리했다. 그녀는 능숙했고 쾌활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잊지 않았다. 어떤 치욕이, 치욕의 기억이, 앞날에 대한 예측이 그녀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지 그 누가 짐작하겠는가? 그중에서도 가장 치욕스러운 것은 희망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기만적으로 파고들어 교활하게 위장하고 있다가 이내 모습을 드러낸 희망.

 

어느 아침엔가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옆에 누운 그의 숨소리를 듣고, 그가 깨어 있으면서도 그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 그녀가 그를 만져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자가 그렇게 만지는 것은 요구이며(바로 그것을 그녀는 그에게서 처음으로 혹은 다시 배웠을 것이다) 여자의 다정함은 탐욕이고 여자의 관능은 거짓이다.

 

사랑은 세상을 지워버린다고, 사랑이 잘되어갈 때만이 아니라 망가지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놀라울 것도 없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아이스크림 접시처럼 두껍고 평범하게 제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녀가 달아나며 벗어나려 하는 것은 실망, 상실, 파경만이 아니며 그와 정반대되는 것, 즉 사랑의 축복과 충격, 그 눈부신 변화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이 안전하다 해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둘 중 어떤 경우라도 결국엔 뭔가를, 자신만의 균형추이건 진실성의 작고 메마른 알맹이이건, 빼앗기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생각했다.

 

젊은 여자는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언제나 일어날 듯 말 듯 하다가, 매력 없고 지엽적인 인물들에게만 가끔 일어나고 끝났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재앙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줄거리에 의심의 여지를 남기는 초점의 이동으로부터, 새로운 판단과 해법을 요구하면서 온당치 않고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창문을 열어젖히는 어긋남으로부터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스펠링

 

플로를 보니 로즈는 진통을 느끼기 시작한 산모가 생각났다. 그녀의 집중, 결연함, 급박함이 그러했다. 죽음이 자기 안에서 아기처럼 움직이다 곧 몸을 찢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음을 느끼는 거라고 로즈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언쟁을 포기했고, 옷을 입고 서둘러 짐을 싼 뒤 플로를 차에 태워 양로원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죽음이 곧이라도 찢고 나와 플로를 해방시킬 거라는 로즈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그러고 있는 로즈에게 미스 해티는 왜 시를 베껴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로즈는 시를 다 외우고 있다고, 자신도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

“음, 시를 외우기는 했구나.” 미스 해티가 말했다. “하지만 시킨 걸 하지 않았다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자리에 앉아 책에 베껴 써라. 모든 행을 세 번씩 적도록 해. 다 끝내지 못하면 네시 넘도록 남아 있어도 좋아.”

[…]

베껴 쓴 시를 책상으로 가져가자 미스 해티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시를 잘 외울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선 안 돼.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그제야 미스 해티가 가학적인 선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미스 해티는 여기에서 가르치고자 한 교훈을 그 어떤 시보다도 중시했고 로즈가 그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미스 해티 외에도 꽤 많은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이 뭔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어.” 플로가 말했다. 언제나처럼, 그녀가 고소해하며 구경하는 패배가 특히 어떤 것인지는─종교의 패배, 아니면 허세의 패배?─확실히 알기 힘들었다.

 

랠프가 해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이가 차서 입대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 그녀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을.

 

난 랠프에게 악의가 없는데, 회관에는 그런 사람이 좀 있지.”

“악의가 있는?”

“연금 때문이잖아.” 플로가 말했다. […] “사람들은 생각하지, 아, 저놈은 팔자가 폈구나. 난 랠프가 그에 마땅한 고생을 했다고 봐. 그 친구가 너무 많이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맞아. 그 사람들이 그게 밀턴 호머 흉내라는 걸 어떻게 알 것이며, 또 밀턴 호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알겠니? 그 사람들은 모르지. 랠프는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몰라. 너무 밀턴 호머처럼 돼버려서 일자리도 얻지 못한 거야.”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 봤어요.” 여자가 말했다. 로즈는 누가 그렇게 말하면 항상 뭔가 조금 미안한 사람처럼 굴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스스로 터무니없는 사과 충동이라고 인정한 제 마음속 어떤 성향을 통제해야 했다.

 

그는 작은 칼라와 장식용 단추 세 개가 달린 짧은 소매 스웨터를 입었는데 연한 파란색 바탕에 베이지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있었다. 그 스웨터는 로즈에게 노화하는 발랄함, 일종의 석화된 사춘기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재향군인회관에서 대화는 복권으로, 빙고 게임으로, 상금 액수로 흘러갔다. 카드를 치던 남자들─플로의 이웃도 그중 하나였다─의 입에 오른 한 남자는 복권으로 만 달러를 땄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몇 년 전에 파산을 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다.

남자들 중 하나가, 파산을 선고했다면 빚은 없었던 게 되는 거라고 말했다.

“그때는 빚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다른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빚진 게 맞아. 이유는, 지금은 돈이 있기 때문이야.”

 

그녀 역시 그 시대가 낳은 자식이었으므로 랠프에 대한 느낌이 단순한 성적 호기심이나 정감이 아닌지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번역을 통해야만 말해질 수 있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감정들은 번역을 통해야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번역은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험하기도 하고.

 

전역 해군 사망

전역한 해군 하사관 랠프 길레스피 씨가 지난 토요일 밤에 재향군인회관에서 치명적인 두부 손상을 당했다.

 

로즈는 이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고이 간직하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어서 기뻤다. 물론 이야기 소재가 부족하다는 점이 고결한 억제만큼이나 큰 침묵의 요인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랠프 길레스피와 자신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의 삶을 가까이에서, 여태 사랑했던 남자들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느꼈다는 것, 자신의 자리 바로 옆 칸에 존재한다고 느꼈다는 것 말고는.

 

해설 - 삶을 직시하는 냉정한 시선

 

체념적 동화를 강제하는 시골의 폐쇄적 공동체와 거기에서 벗어나려 안간힘 쓰는 여성 인물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먼로는 삶의 초라한 속내를 들춰내면서도 움찔하거나 변명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저 그런 게 사람이고 인생이라는 듯, 다들 알지 않느냐는 듯, 초연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냉정한 시선이 가 닿는 곳은 인간의 허위, 되도록 감추고 싶은 본능, 규범에 얽매이면서도 벗어나려고 안달하는 사람들─대개는 여자들─이다.

 

상대가 아닌 자기 감정을 사랑한 남자와 사랑보다는 다른 고려가 더 많은 여자의 결합.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