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긋기/소설/희곡

그날의 비밀 | 에리크 뷔야르

2020. 10. 21.
그날의 비밀

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저/이재룡

공쿠르상 수상작 『그날의 비밀』은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193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그날의 비밀』은 16개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1933년 2월 20일, 독일 국회 의장 궁전에서 있었던 비밀 회동에 대한 것이다. 히틀러와 괴링을 만나는 자리인 이곳에는 크루프, 오펠, 지멘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그다음에는 히틀러를 시종장으로 착각한 핼리팩스, 히틀러와 슈슈니크의 만남, 정신 병원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 수테르, 리벤트로프를 위한 작별 오찬, 오스트리아로 행진하다 멈춰 버린 독일군 탱크, 할리우드 소품 가게에 입고된 나치스 군복,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의 한 장면, 오스트리아 병합 다음 날 실린 네 건의 부고 기사 등이 이어진다.

 

 

비밀 회동

 

태양은 차가운 별이다. 그 심장은 얼음 가시이다. 그 빛은 비정하다. 2, 나무들은 죽고 강은 메말랐으며 샘은 더 이상 물을 토하지 않고 바다도 그 물을 삼키지 않는 듯싶다. 시간도 굳어 버렸다. 아침. 어떤 소음이나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적막하다.

 

그해 2 20일은 여느 날과 달랐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은 신성하다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 오전 내내 노동에 몰두했다. 그들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에는 성실하고 말 없는 진실이 농축되었고 동시에 우리 존재의 모든 서사가 그 성실한 무언극에 녹아 있었다.

 

어느 날 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낯선 음성이 새어 들어왔다. 그는 자기 심장이 차갑게, 아주 차갑게 느껴졌다. 재봉틀을 발명한 원작자들이 그에게 로열티를 요구하는 음성도 아니고 이익의 배분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음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을 요구하는 신의 음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혼을 돌려줘야만 했다.

 

기업은 사람과 달리 죽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늙지 않는 신비한 육체이다. 오펠이란 상표는 자전거를 팔다가 이제 자동차를 팔고 있다.

 

기업은 모든 피가 머리로만 쏠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기업을 법인(法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의 수명은 우리보다 훨씬 길다.

 

가면들

 

그의 표정은 불안하고 쓸쓸해 보였다. 희망과 계산이 뒤엉킨 몽롱한 안개 같은 상황에서 그는 손가락에 낀 멋진 금반지를 무심하게 돌리고 있었다. 희망과 계산은 마치 천천히 서로 자력에 끌리듯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오로지 이 두 단어만이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국회 의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등장했다. 헤르만 괴링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는커녕 꽤나 진부한 사건, 일상적 일에 불과했다. 사업의 세계에서 정파 투쟁은 별것이 아니다. 정치인과 사업가가 서로 손을 잡는 것은 관례이다.

 

히틀러는 상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는 모습이었고 심지어 믿었던 것보다도 훨씬 상냥했다. 그렇다. 심지어 친절하기까지 했다.

 

발언 내용은 다음같이 요약되었다. 허약한 정치 체제를 끝장내야 하고 공산주의의 위협을 멀리하며 노동조합을 박멸하고 경영주 하나하나가 자기 기업의 총통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선거 유세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치당은 수중에 한 푼도 없었고 선거 유세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순간 얄마르 샤흐트가 벌떡 일어나 좌중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소리쳤다. 「자, 신사 여러분, 모금함으로!

 

분명히 조금 돌출된 행동이었지만 이 제안이 사업가들에게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뇌물과 뒷거래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부패는 대기업의 회계 장부에서 긴축 불가 항목이며 거기에는 로비, 신년 인사, 정당 후원 등 다양한 명칭이 붙는다. 그래서 초청 인사의 대다수가 곧바로 수천 마르크를 쏟아부었고 구스타프 크루프가 1백만 마르크, 게오르크 폰 슈니츨러가 4만 마르크를 헌금한 덕분에 두둑한 금액이 수금되었다.

 

이들 모두 나치 정권 이후에도 살아남았고 나중에도 정당의 능력에 비례해서 여러 정당에 돈을 대줄 것이다.

 

1933 2 20일 그날 오후, 국회 의장 궁전에 있었던 그들은 더 이상 오펠, 구스타프 크루프, 아우구스트 폰 핑크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고대의 신이 여러 형상을 취하고 때에 따라 다른 신들로 변신하는 것처럼 법인은 그들의 분신을 갖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은 바스프, 바이엘, 아그파, 오펠, IG 파르벤, 지멘스, 알리안츠, 텔레풍켄이다. 우리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을 알고 있다. 심지어 매우 잘 알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 사이에, 우리 속에 그렇게 존재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자동차, 세탁기, 세제, 라디오 시계, 화재 보험, 그리고 건전지의 이름이다. 그들은 사물의 형태로 도처에 존재한다. 우리의 일상이 그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그들은 우리를 치료하고, 옷을 입혀 주고, 빛을 밝히고, 세계 도처로 우리를 수송하고, 우리를 위로한다.

 

그들은 지옥문에 달려 있는 스물네 개의 계산기처럼 거기에 비정하게 버티고 있다.

 

친선 방문

 

훈장으로 도배한 악명 높은 반() 유대주의자, 서정적 반골주의자였던 괴링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핼리팩스는 속셈을 숨기는 사람이 구워삶을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우정과 호감을 과시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던 괴링, 배우가 되고 싶어 했을 텐데 이제 나름대로 배우가 되어 버린 괴링.

 

귀머거리 벽창호에다가 멍청한 당나귀, 앞뒤가 꽉 막힌 고집불통, 조상의 음덕을 자랑스럽게 등에 업고 사는 영국 귀족이자 외교관인 핼리팩스, 그런 점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위협

 

오스트리아의 작은 독재자 슈슈니크는 바이에른으로 호출되었다. 은밀한 압박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삶은 하나같이 가련하고 고독하다. 모든 길은 쓸쓸하다. 국경에 다가가자 슈슈니크는 돌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는 진실의 가장자리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폰 파펜은 독일 장군 셋이 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통고했다. 「불편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러길 바랍니다.」 심드렁한 말투였다. 협박이 거칠었다. 아주 거친 행동들은 우리의 할 말을 없게 만든다. 감히 입 밖에 말을 내지 못한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너무 예의 바르고 수줍은 어떤 존재가 우리를 대신하여 대답한다. 그런 존재는 꼭 해야만 하는 말과 정반대되는 말을 한다.

 

베르크호프에서의 면담

 

이제 히틀러는 그를 〈씨〉라고 불렀고 슈슈니크는 흔들리지 않고 상대방을 총통이라 불렀다.

 

한심한 슈슈니크. 광기에 대항해서 그가 찾아낸 것이 한 음악가였다. 군사적 위협에 맞서 그는 9번 교향곡을 찾아냈고 오스트리아가 역사에서 한몫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열정〉 소나타의 몇 마디를 찾아낸 것이다.

「베토벤은 오스트리아인이 아니오. 그는 독일인이란 말이오.」 히틀러는 예기치 못한 반박을 했다.

 

트리밍이 된 사진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일종의 정중하고 공식적인 의미를 지닌다. 오스트리아 총리가 원본보다 더 진중하고 덜 겁에 질린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사소한 몇 밀리미터, 진실의 작은 조각을 제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야를 조금 좁히고, 몇몇 무질서한 요소를 지우면서 인물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것만으로 슈슈니크에게 조금 더 밀도를 부여할 수 있다. 사소한 것마저도 의미심장한 것, 이것이 서사의 기법이다.

 

오로지 하나의 설득 방법만이 유효하다. 즉 공포만이 유효하다. 그렇다. 여기에는 오로지 공포만이 군림한다. 암시적 예의, 절제된 권위의 형식, 체면은 물 건너갔다. 여기에는 작은 귀족이 몸을 떨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 슈슈니크 총리는 치욕과 명예를 선택하는 갈림길에 섰다. 이 저열한 계략에 무릎을 꿇고 최후통첩을 받아들여야 할까? 육체는 쾌락의 도구이다. 히틀러의 육체가 격렬하게 흔들거렸다. 그는 자동인형처럼 뻣뻣하고 가래침처럼 신랄했다. 히틀러의 육체는 몽상과 의식을 넘나드는 것 같았다. 그는 침대 밑을 기어다니고, 시간의 그늘 속에, 감옥의 담장 위에, 사람들이 그림자를 각인한 모든 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슈슈니크는 신비주의적 설명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의 나약함을 정당화한 것이다. 제국의 총통은 초자연적 존재였으며 괴벨스의 선전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히틀러의 모습도 신비롭고 무섭고 영감을 지닌 존재였다.

 

「정부 일원을 임명하는 것은 국가의 최고 권력, 다시 말해 공화국 대통령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면도 그의 고유 권한입니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 뒤에 몸을 숨겨야만 했다. 명색이 귀족이었던 그는 자신의 권력이 훼손되는 순간, 돌연 그 권력을 남과 나누는 것을 받아들였다.

 

히틀러는 마치 커다란 특권이라도 부여하는 듯 내뱉었다. 그 순간 아마도 히틀러는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깡패나 미치광이가 웃으면 거기에 저항하기가 힘들게 마련이다.

 

결정을 내리지 않는 방법

 

절망적 시도

 

서류상으로 오스트리아는 죽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신탁 통치 아래로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다시피 거기에는 농밀한 악몽도 장엄한 공포도 없었다. 그저 술책과 사기의 지저분한 측면만 있을 뿐이다. 고도의 폭력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 언어도 없었고 단지 거친 협박, 반복적이고 천박한 선동뿐이었다.

 

모든 판에는 결정적 순간이 존재하며 그것을 넘어서면 돌이키기 어렵다.

 

그는 아무 직책도 없고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니고 그 무엇의 희망도 아니었다.

 

그는 제3제국 치하에서 7년 형을 살아야 할 터였고 그 7년 동안 과연 가톨릭 유사 군사 조직을 설립한 것이 잘한 짓인지 아닌지 자문하고 무엇이 진정 가톨릭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 보며 무엇이 빛이고 무엇이 잿더미인지 구분하는 7년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었다.

 

마치 우리 누구라도 두 번의 삶이 가능하고 죽음과의 유희가 우리의 꿈을 파괴할 수 있으며 7년간의 어둠 속에서 그가 신에게 던진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네가 아닌 다른 누구〉라는 신의 답변을 들었다는 듯 전직 총리는 미국에 정착해서 모범적 미국인, 모범적 가톨릭 신자,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모범적 교수로 살 것이다.

 

전화에 매달려 보낸 하루

 

괴물은 예상보다 훨씬 식욕이 왕성했다. […] 「악몽이야, 도무지 그칠 줄 모르네! […] 〈적과 토론할 때 적의 몸 안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라.> […] 슈슈니크는 누구의 몸 안으로도 들어간 적이 없고 몇 년 동안 돌푸스에게 아첨한 후 그의 옷을 대신 입었을 뿐이다. 남의 입장이 되어 본다고? 그는 그런 일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 한다! 그는 폭행당한 노동자, 체포된 노동조합원, 고문당한 민주 인사, 그 누구의 입장에도 서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인제 와서 괴물의 입장이 되는 일이 가당키나 할 것인가!

 

힘과 종교, 질서와 권위의 인간이었던 그는 이제 무엇이든 요구하면 허락하고 있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변명거리를 찾아낸다.

 

골수 독재자들일수록, 모든 관례는 노골적으로 짓밟으면서 마치 적법 절차만은 위반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려는 듯 악착같이 형식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묘한 노릇이었다. 권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신들이 짓밟는 중인 적들의 의례적 절차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최종적으로 적들이 준수하게 강요하는 데에서 또 다른 쾌락을 덤으로 느끼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노동조합 운동원 세 명, 언론사 사장 두 명, 정중한 사회 민주당 의원 무리에게 〈아니요〉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히틀러에게 〈아니요〉라고 한 것이다. 미클라스, 그는 이상한 작자이다. 그토록 미미하고 단순한 단역이자 5년 전부터 죽은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그가 반발한 것이다.

 

인간이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어떤 멍청한 놈이 갑자기 자아의 심오한 구석을 천착하고 거기에서 뒤퉁스러운 저항 의식, 작은 못, 작은 가시 하나를 찾아낸다. , 그렇게 해서 겉보기에는 지조도 없는 작자, 자존심도 없는 바보가 불쑥 머리를 치켜들고 저항한다. , 물론 오래가지 않지만 어쨌든 자기 고집을 내세운 것이다. 그날 하루가 미클라스에게는 아주 길었을 것이다.

 

정확히 8 45, 견디다 못한 그(히틀러)는 마침내 오스트리아 침공 명령을 내렸다. 자이스잉크바르트의 초대장은 아쉽게도 물 건너갔다. 하지만 그것 없이도 할 수 있다! , 아쉽지만 할 수 없고, 헌장, 헌법, 조약, 법률, 모두 물 건너갔다. 이런 것은 모두 규범적이고 추상적이며 일반적이고 비인격적인 작은 해충들, 이것은 함무라비의 애첩들, 듣자 하니 한결같이 창녀들이었다고! 기정사실이 모든 법 중에서 가장 견고한 것이 아닐까?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오스트리아를 침공할 것이고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받았으면 좋았을 내용의 전보문을 작성했다. 자기가 꿈꾸었던 연애편지를 애인에게 받아쓰게 하는 것으로 흡족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랑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3분 후 자이스잉크바르트는 자기가 히틀러에게 보내야만 하는 전문을 받았다. 그렇게 교묘한 소급 효과를 통해 침공은 초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빈 도심에서는 […] 광기 어린 장면이 이어졌던 반면,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양 영국은 드러누워 평화롭게 코를 골고 프랑스는 단꿈에 빠져서 세상 모두가 나 몰라라 하는 그 순간, […] 종종 커다란 재앙은 살금살금 다가온다.

 

다우닝가에서의 작별 오찬

 

완벽한 비굴함이 바닥에 깔려 있는 그의 오만한 태도.

 

두뇌는 꽉 막혀 있는 장기이다. 우리의 눈은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미세한 몸짓은 상대방에게 독해될 수 없다. 간절히 속내를 전하고 싶은 우리의 몸은 타인이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는 시()라고도 할 수 있다.

 

전격전

 

3 12일 오전 동안 오스트리아인들은 꼴사납게 들떠서 나치스가 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독일군이라고? 기적이다! 그들은 도시 전체의 귀빈이었다. 그날 밤 빈 시민만큼 그들을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 사람들은 그들에게 모든 초콜릿, 모든 크리스마스트리의 나뭇가지, 다뉴브강의 모든 물, 카르파티아산맥의 모든 바람, 중심부의 링슈트라세, 쇤브룬 궁전, 그곳의 중국풍 살롱, 나폴레옹의 방, 로마 왕의 시신, 피라미드 전투의 검! 모든 것! 모든 것을 주려고 했지만 그들은 주둔지를 관리하기 위한 임무를 띤 병졸 셋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도 침략당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그들을 개선장군처럼 떠받들며 시내를 돌아다녔다.

 

시작은 아주 좋았다! 오전 9시에 국경 검문소의 차단기가 올라갔고 독일군은 성큼 오스트리아에 들어왔다! 어떤 폭력도 필요 없었고 천둥소리도 없었으니 지금 여기에서 모두 사랑에 빠졌고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정복이 이뤄졌다. 탱크, 트럭, 중화기, 모든 것이 결혼 행진을 위해 천천히 콧노래를 부르며 빈으로 전진했다. 신부가 동의했으니 남들이 주장하듯 강간이 아니라 결혼이다.

 

탱크의 병목 현상

 

모든 재앙의 중심에는 인간적 영혼이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는 선한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도 있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안락함을 누렸기에 특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베르사유 조약에 따르면 독일은 탱크 생산이 금지된 터라 독일 기업은 위장 회사를 매개로 삼아 외국에서 탱크를 생산했다. 예나 지금이나 회계 기술이 가장 악독한 사업에 쓰인다.

 

독일의 훌륭한 전쟁 기계에 미세한 모래 한 알이 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래서 탱크 부대 한 줄 전체가 길가에 서 있었다. […] 히틀러가 격분했다. 영광의 날, 활기차고 환상적인 진군이어야 할 것이 교통 체증으로 변하다니. 속도 대신에 혼잡, 활기 대신에 질식, 약동 대신에 병목 현상이라니.

 

도청

 

괴링은 자신의 중요한 대화를 기록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었다. 훗날 역사가 이 대화를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쩌면 노후에 자신만의 『갈리아 전기』를 쓸 수도 있었다. 누가 알랴? 그는 자신의 이력에서 중요한 순간을 포착한 기록물에 기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몰랐던 점은, 이 기록물이 그가 은퇴할 나이에 그의 책상 위에 머물지 않고 여기 뉘른베르크에서 검사의 손에 들어갈 것이란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괴링이 구사한 표현, 〈오스트리아를 덮칠 것〉이라는 협박이다. […] 이 순간에는 〈전격전〉이 허탕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작전은 판처 탱크의 병목 현상에 불과했다. […] 이 전쟁에서 놀라운 점은 세계가 〈허풍〉에 굴복했다는 사실, 우리가 기억해야만 할 미증유의 뻔뻔스러움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소품 가게

 

진실은 온갖 종류의 먼지 속에 흩어져 있다.

 

할리우드 커스텀 팰리스는 의상을 대여하는 가게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클레오파트라나 당통의 의상, 중세 광대나 칼레 시민들의 의상을 영화사에 대여했다. 인류가 남긴 거적때기, 숭고한 허무, 선반 위에 흩어져 있는 영광의 부스러기들, 추억의 유사품, 이 모든 것을 할리우드 커스텀 팰리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시대가 켜켜이 쌓여 있는 건물은 층마다 부조리, 혹은 광기의 느낌을 자아낸다. 위대한 것의 한가운데에 있다 해도 그 위대함은 협소하고 위축되었다. 먼지는 분가루, 낡음은 환상, 더러움은 분장이고, 겉모습은 만사의 진리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류가 남긴 모든 것, 그것은 결국 잉여물이다. 할리우드 팰리스는 너무 많은 누더기를 쌓았고 너무 많은 유사품을 모았으며 너무 많은 시대를 축적했다.

 

귄터 슈테른은 그의 일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 모든 의상이 여기에 있다. 아담의 아랫도리를 가렸던 잎사귀부터 나치스 친위대의 군화도 있다.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점은, 지상의 모든 의상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진즉부터 거기에 나치스의 군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귄터 슈테른이 지적했듯 이 사업의 아이러니는 그들의 군화를 닦는 사람이 바로 유대인이란 것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벌어지기도 훨씬 전부터, 바르바로사 작전이 윤곽도 생기기 전부터, 그것이 고안되고 결정되기 전부터, 프랑스 공방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독일인들이 전쟁을 시도하리란 생각을 털끝만치도 품기 전부터, 전쟁은 이미 무대 소품 준비를 위한 선반 위에 있었다.

 

총통이 프랑스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그의 보좌관들이 슐리펜의 낡은 전략을 재탕하고 정비병들이 여전히 판처 탱크를 수리하는 동안, 할리우드는 이미 과거의 선반 위에 그들의 의상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행복의 멜로디

 

역사에서 남루한 누더기를 벗겨 내면 우리는 평등 대신에 위계를, 자유 대신에 질서를 보게 된다.

 

독일 제국은 이 비극의 다른 주역들보다 많은 숫자의 영화감독, 편집인, 촬영 기사, 음향 기사, 기술자를 고용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미국이 참전하기 전까지 우리가 전쟁에 대해 볼 수 있는 영상은 영원히 요제프 괴벨스에 의해 연출된 것이다. 역사는 요제프 괴벨스의 영상으로 우리 눈앞에서 전개된다. 그것은 기상천외한 일이다. 독일 뉴스는 픽션의 모범이 되었다.

 

가끔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몇 달 지난 신문에 난 기사처럼 보일 때가 있다. , 우리가 이미 꾸었던 악몽인 것이다.

 

사람들은 역사를 무겁게 짓눌러서 우리 고통의 책임을 역사의 주역들에게 지우려고 한다. 우리는 결코 옷 주름에 낀 때, 누렇게 바랜 식탁보, 수표책에 붙은 쪽지, 커피가 남긴 얼룩을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사건의 그럴듯한 측면만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이다.

 

그는 유럽의 평화를 살렸다고 확신한다며, 그렇게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며 환영하는 군중 앞에서 〈아! 멍청한 놈들, 이들이 알기나 할까!〉라고 혼자 중얼거렸을 것이다. 이미 최악의 사건이 준비되고 있는 이 참담하고 거대한 혼돈 속에서는 거짓말에 대한 신비로운 존중이 군림한다. 조작이 사실을 압도한다. 그리고 우리 국가 지도자들의 선언은 봄 태풍에 양철 지붕이 날아가듯 머지않아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죽은 사람들

 

오스트리아 국민 중 99.75퍼센트가 독일-오스트리아 병합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병합 직전 단 일주일 동안 17백 건이 넘는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곧바로 신문에 자살을 보도하는 것이 저항 행위가 될 것이었다.

 

<그들 행위의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평범한 기사는 수치스러운 진실로 채워져 있다. 왜냐하면, 3 13, 모두가 자살 동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할 수 없지만 유일하고 동일한 원인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느꼈던 것, 그 거대한 불행, 흉측한 현실, 파괴적 노골성을 띠고 그녀 눈앞에서 전개되는 이 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범죄는 벌써부터 그 변태적 봄날의 작은 깃발과 젊은 여자들의 미소 속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웃음과 고삐 풀린 열광 속에서 헬레네 쿠너는 증오와 희열을 감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태초 이래 진정한 생각은 항상 비밀이다. 우리는 뒤끝을 흐리거나 말을 멈추면서 생각한다. 삶은 그 아래에서 느리게 지하 수액처럼 흘러간다.

 

사람들은 망설이게 마련이다. 그 의미가 창백한 하늘 아래 나뭇가지 사이에서 부유하다가 불현듯 허공 한가운데에 작은 의미의 웅덩이를 형성하며 그 뜻이 환히 밝혀지면 그것은 온 시대를 거쳐 가장 슬프고 광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오스트리아 가스 회사가 이제 유대인에게 가스 공급을 거부한 이유는 그들이 선호하는 자살 방식이 가스였고, 죽은 후에 가스 요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신랄한 농담이었건 사실이었건 간에 중요하지 않다. 유머가 그토록 어둠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그것은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알마 비로는 자살하지 않았다. 카를 슐레징거는 자살하지 않았다. 레오폴트 빈은 자살하지 않았다. 그리고 헬레네 쿠너도. 그들 누구도. 그들의 죽음은 그들이 겪은 불행에 대한 신비스러운 이야기와 동일시될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이 존엄하게 죽기를 택했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아니다. 그들은 사적인 절망에 파괴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은 집단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살은 타살이다.

 

그런데 저들은 누구인가?

 

(구스타프 크루프)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공포에 질려 냅킨을 끌어안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아들 너머로 방 한구석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들은 누구인가? […] 그를 공포로 얼어붙게 만든 것은 휘겔 별장의 유령, 혹은 여귀나 악령들이 아니었다. 그를 노려보는 진짜 얼굴을 지닌 진짜 인간들이었다. 그는 수많은 눈을 보았고 얼굴들은 어둠 속에서 솟아 나왔다. 모르는 사람들. 그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느꼈다. […] 그는 진정으로 보는 것 같다는 느낌, 그 순간만큼 또렷하게 본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본 것, 어둠 속에서 서서히 솟아난 것, 그것은 수만 수천 구의 시체들, 강제 노동자들, 나치스 친위대가 그의 공장을 위해 제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허로부터 솟아 나왔다.

 

범죄적 열정과 정치적 가식 뒤편에서 그들은 잇속을 챙겼다. 전쟁은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휘겔 별장에서의 마지막 식사 중 공포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후, 구스타프가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자 〈얼굴들은 어둠 속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1958년 브루클린에서 다시 나타났다. 브루클린의 유대인들이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구스타프는 1933 2 20일의 모임에서 나치에게 눈 한번 찡끗하지 않고 천문학적 금액을 제공했지만 이제 그의 아들 알프레트는 그렇게 헤프지 않았다.

 

〈유대인은 비용이 너무 든다〉라고 했다.

 

우리는 결코 같은 심연에 두 번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공포와 우스꽝스러움이 혼재된 상태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너무나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나머지 절벽에 매달려 비명을 지른다. 그들의 구두 굽이 우리의 손가락을 짓밟고 그들의 부리가 우리의 이를 쪼아 깨고 눈을 후빈다. 심연의 주변에는 고대광실이 즐비하다. 이성적인 여신, 굳어 버린 역사의 동상은 축제의 광장 한가운데, 바로 거기에 있다. 1년에 한 번씩 말라 버린 작약 꽃다발이 거기에 헌화되고 덤으로 매일 새들에게 빵 조각이 던져진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