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긋기/소설/희곡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 치누아 아체베

2020. 10. 27.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저 / 조규형

2007년 부커 상을 수상한 아프리카 작가 치누아 아체베의 대표작품. 19세기 말 아프리카 우무오피아 마을이 폭력적인 서구 세력의 유입으로 서서히 몰락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 내어 아프리카 탈식민주의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오콩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19세기 아프리카 부족 마을의 삶과 아름다운 정신세계, 아프리카의 문화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또한 영국이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선 19세기 중후반을 배경으로 하지만 ‘침입자’인 백인들에게 무작정 책임을 묻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우리의 세계는 왜 이토록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나?” 하는 질문을 그 자신과 독자들에게 던지며 깊은 사유를 꾀하게 하는 소설이다.

 

돌고 돌아 더욱 넓은 동심원을 그려 나가

매는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 중심은 힘을 잃어,

그저 혼돈만이 세상에 풀어헤쳐진다.

- W. B. 예이츠 <재림>

 

1

 

오콩코가 막 야자유 등잔을 끄고 대나무 침상에 편히 눕자마자 마을의 알림꾼이 두드리는 오게네 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을 갈랐다.

 

오콩코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궁금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만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알림꾼의 목소리에서 어떤 또렷한 비극적 울림을 직감할 수 있었는데, 소리가 차차 희미해질 때까지도 느껴졌다.

 

어둠은 사람들에게,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들에게도 막연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밤에는 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혹시 뱀이 들을 수도 있어서, 그냥 끈이라 불렀다.

 

이웃 부족과의 전쟁인가? 그럴 것 같지는 않았고, 전쟁이라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행동하는 남자였고, 전쟁하는 남자였다.

 

(오콩코)는 평생 어떤 두려움 속에 살았는데, 그것은 실패와 유약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그 두려움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 즉 그가 아버지를 닮은 것같이 보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오콩코는 아버지 우노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증오하는 감정에 지배받게 되었다. 그 하나가 친절함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게으름이었다.

 

그해를 견뎠으니, 난 무엇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야.”

[…]

낙담하지 마라. 너는 낙담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야. 네 심성은 남자답고 자존심이 강하다는 걸 안다. 그 심성 덕분에 조그만 실패로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기 때문에 잘 견뎌 낼 거야. 남자는 홀로실패할 때 더 어렵고 쓰라린 거지.”

 

왕의 입을 보면, 한때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

 

이보 속담에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의 치 또한 .”라고 말한다고 했다. 오콩코는 .” 라고 아주 강하게 말했고, 그래서 그의 치도 동의했다.

* : 개인 신

 

오콩코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법이 없었는데, 물론 분노의 감정만은 예외였다. 애정을 보인다는 것은 나약함의 징후였고, 내보일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은 힘뿐이었다.

 

날씨의 이 엄청난 힘에 대항하는 데 필요한 한 개인의 주술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넘는 것이리라.

따라서 우기가 한창인 자연은 어떤 간섭을 받지 않는다.

 

오콩코가 이케메푸나에게 달려 나가자 아빠, 사람들이 날 죽여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두려움에 휩싸인 오콩코가 자신의 도끼를 빼 소년을 내리쳤다. 그는 자신이 나약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은위예를 남자로 키우려고 내 모든 힘을 다했건만, 그 아이에겐 제 어머니 피가 너무 많네.”

할아버지 피가 너무 많은 거겠지.’ 오비에리카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똑 같은 생각이 오콩코에게도 떠올랐다.

 

여신께서 자신의 명령을 받든 나를 벌할 수는 없네. 어머니가 쥐어 준 얌은 아무리 뜨거워도 아이의 손가락을 데지 않는 법이지.”

맞는 말이네.” 오비에리카가 수긍했다. “하지만 신께서는 내 아들이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나는 그것을 거부하지도 않겠지만 그것을 몸소 실행하는 사람도 되지 않겠네.”

 

오콩코는 사색형이 아니라 행동형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이 없는 지금은 대화가 차선책이었다.

 

에퀘피는 사는 동안 참으로 많은 고생을 겪었다. 아이를 열이나 낳았지만 아홉이 대부분 세 살도 못 되어 죽었다. 아이를 하나 묻고 또 묻어 가면서 그녀의 슬픔은 절망으로 그리고 암울한 단념으로 변해 갔다. 여자로서 최대의 영광인 출산은 그녀에게 미래가 없는 육체적 고통에 지나지 않았다.

 

우조울루의 몸이여, 나를 알겠느냐?”

조상님,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제가 알 수 없지요.”

나는 악령의 숲이다. 가장 행복한 날을 즐기는 사람을 죽이지.”

 

왜 아무것도 아닌 일을 에구구에게 가져왔는지 모르겠구먼.”

한 어르신이 옆 사람에게 말했다.

우조울루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가? 그 사람은 다른 어떤 결정에는 귀 기울이지 않을 사람이네.”

*에구구 : 탈을 쓰고 마을 조상신 역할을 하는 사람

 

내 딸아, 이리 오너라.” 무당이 말했다. “내가 너를 업고 가겠다. 어머니 등에 업혀 가면 모든 길이 멀지 않은 법이다.”

 

에제우두!” 그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생전에 가난했다면 다시 태어날 때 부자로 태어나라 했을 것이야. 하지만 그대는 부자였네. 그대가 겁쟁이였다면, 용기를 가지라 얘기했을 것이야. 하지만 그대는 용감한 전사였네. 그대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면, 되살아나라 했을 것이야. 하지만 그대는 오래 살았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이전에 온 길을 다시 걷도록 하겠네. 그대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면, 편안히 가게. 하지만 사람이 그대를 죽인 것이라면 그자에겐 한시의 평안도 허락하지 말게.”

그는 몇 발자국 더 춤을 춘 다음 사라졌다.

 

대지의 여신이 쌍둥이는 대지에 대한 모독이므로 없어져야 한다고 명했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들이 위대한 여신을 거역하는 것에 대해 엄정한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여신의 저주가 명을 어긴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온 땅에 퍼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손가락 하나에 기름이 묻으면 네 손가락으로 번진다고 말하곤 했다.

 

2

 

사람은 자신의 치의 숙명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사람이 .”라고 말하면 자신의 치 또한 .”라고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여기에 자신이 .”라고 해도 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콩코, 아이들의 이름을 여러 이름 가운데 왜 은네카 즉 어머니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가장 많이 짓는지 아는가?

[…]

자식이 아버지에게 속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식을 때리면, 자식은 어머니 집으로 피하지. 모든 일이 무사하고 삶이 달콤할 때 사람은 아버지의 땅에 속한다. 하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어머니의 땅에서 위안을 찾는다. 어머니는 이럴 때 너를 보호한다. 어머니가 거기에 묻히신 게지. 이것이 어머니가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난 이제 늙었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이제 그것밖에 없어.”

 

강력한 총과 독한 술로 노예를 잡아 바다 건너로 데려가는 백인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도, 어느 누구도 그 얘기를 사실이라 생각하지 않네.”

사실이 아닌 얘기란 없는 것이지.”

 

우리의 신을 버리고 당신들의 신을 따른다면, 버림 받은 우리 신과 조상님들의 화를 어떻게 면할 수 있는가요?”

그대의 신들은 살아 있지 않으며 사람을 해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나무고 돌멩이입니다.”

 

거기에는 이에 마음이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은워예로 오콩코의 장남이었다. […] 어둠과 공포 속에 앉아 있는 형제들에 대한 찬송은 이 젊은 영혼을 괴렵혀 온 막연히 계속되는 의문에 답하는 것 같았다. 숲 속에서 울고 있는 쌍둥이와 죽은 이케메푸나에 대한 문제였다.

 

백인이 종교뿐만 아니라 정부도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가 이미 퍼져 있었다. 이들이 우무오피아에 자신들의 종교를 따르는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재판소를 세웠다는 얘기가 들렸다. 심지어는 어떤 선교사를 살해한 남자 하나를 교수형에 처했다는 얘기마저 있었다.

 

우리들의 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전통은 아닙니다.”

[…]

겁쟁이처럼 굴지 맙시다.” 오콩코가 말했다. […] “이 사람들은 매일 우리에게 오물을 퍼붓는데, 오케케는 우리가 못 본 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3

 

일곱 해는 부족을 떠나 있기엔 너무 긴 세월이었다. 한 남자의 위치는 항상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떠나자마자 다른 이가 일어나 그 자리를 채웠다. 부족은 도마뱀과 같다. 꼬리를 잃으면 곧 또 다른 꼬리가 자란다.

 

백인이 땅에 대한 우리의 관습을 알기나 하는가?”

우리말조차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도 백인은 우리 관습이 나쁘다고 말하네. 게다가 백인의 종교를 받아들인 우리 형제들마저 우리의 관습이 나쁘다고 말한다네. 우리 형제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는데 어떻게 우리가 싸울 수 있겠는가? 백인은 대단히 영리하네. 종교를 가지고 아마 말 없이 조용히 들어왔네. 우리는 그의 바보짓을 즐기면서 여기에 머물도록 했네. 이제 그가 우리 형제들을 손에 넣었고, 우리 부족은 더 이상 하나로 뭉쳐 행동하지 않네. 그가 우리를 함께 묶어 두었던 것들에  칼을 꽂으니 우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어떤 위대한 신이 계신다는 말이군요.” 아쿤나가 언젠가 브라운 씨의 방문을 받고 말했다. “우리 역시 그분을 믿고 그분을 추쿠라 부릅니다. 그분이 모든 세상과 다른 신들을 만드셨지요.”

다른 신들은 없습니다.” 브라운 씨가 말했다.

 

그분을 사람이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브라운 씨가 말했다. “그분을 사람으로 생각하시니까 그분을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해로운 것은 당신께서는 스스로 만드신 거짓된 신들에게 모든 경의를 다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소이다. 우린 작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지만, 이분들로 안 되고 도움을 구할 다른 아무도 없을 때는 추쿠에게 갑니다. 옳은 일이지요. […] 우리가 작은 신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단지 작은 신들의 주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추쿠를 두려워하시는군요. 제 종교에서 추쿠는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뜻을 행하지 않을 때엔 그분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의지를 누가 전하는지 아시오? 그것은 그냥 알 수 없을 정도로 크지요.”

 

오콩코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슬픔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부서지고 산산이 조각나는 부족의 처지를 한탄했고, 우무오피아의 도전적인 남자들이 여자처럼 그렇게 영문을 알 수 없이 유약해져 버린 것을 애도했다.

 

(제인스 스미스 신부)는 사물을 흑과 백으로 보았다. 그리고 흑은 악이었다.

 

그를 봐서 그의 형제를 해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지은 이 신전은 부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를 우리 가운데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미움을 낳았고, 우리가 이것을 끝장내고 말겠다.”

 

우리가 이 일을 그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의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그가 우리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관습을 모르니 그를 바보라 부르는 게고, 아마도 우리 역시 그의 관습을 모르니 그도 우리를 바보라 부르겠지. 그에게 사라지라고 해라.”

 

부족 사람들이 자신들이 취할 행동에 대해 결정하기 위해 장터에 모였을 때 오콩코는 이들에게 강하게 발언했다. 그리고 이들은 존경심 속에 그를 경청했다. 전사가 전사였던 그 좋은 옛날이 다시 온 듯했다.

 

훌륭한 남자는 다 가고 없다.’

그때는 남자가 남자인 시절이었지.’

 

우무오피아의 가장 큰 장애물은 겁쟁이 에공완네다.’ 아주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자의 달콤한 혀는 불을 식은 재로 만들 수 있다. 그자의 말은 남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오 년 전에 그자의 여자 같은 지혜를 무시했다면, 지금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일순간 오콩코가 도끼를 꺼냈다.

[…]

오콩코는 죽은 남자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그는 우무오피아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군중이 다른 전령들을 도망가도록 놔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군중은 행동하는 대신 혼란에 빠졌다. 그는 이런 혼란에 내재한 두려움을 감지했다. 그에게 이렇게 묻는 목소리도 들렸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그는 도끼를 모래에 닦고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오콩코의 시신이 매달린 나무에 도착했고, 모두는 죽은 듯 멈춰 섰다.

아마도 당신 부하들이 그를 끌어내려 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오비에리카가 말했다.

[…]

치안판사는 곧바로 사람이 바꾸었다. 단호한 행정가에서 원시 관습을 연구하는 학자가 된 것이었다.

왜 당신들이 직접 그를 끌어내리지 못한단 말입니까?”

우리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한 남자가 말했다.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대지의 여신의 여신을 거역하는 것으로, 이를 저지른 남자는 동족이 묻어 줄 수 없습니다.”

 

저 남자는 우무오피아의 가장 훌륭한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너희들의 그를 죽음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이젠 개처럼 땅에 묻을 것이야……”

 

치안판사는 군인 서넛을 데리고 사라졌다.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 문명을 전파하고자 여러 해 동안 노력한 끝에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 자신이 집필하고자 하는 책 속에서 그는 이 점을 강조할 것이다. […] 매일이 그에겐 새로운 자료였다. 전령을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읽을거리일 것이다. […] 이미 책의 제목을 정해 놓았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