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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전쟁과 평화 1, 2 | 톨스토이

2020. 10. 29.
전쟁과 평화 세트 한정판

전쟁과 평화 세트 한정판

톨스토이 저/박형규

삶의 의미와 인간의 도덕적 완성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인류에 커다란 지혜를 상속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1805년부터 1820년까지 15년에 걸친 러시아 역사의 결정적 시기를 재현한 소설로, 나폴레옹 침공과 조국전쟁 등의 굵직한 사건과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수많은 개별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과 죽음, 새로운 삶의 발견을 그린 일대 서사시적 장편소설이다. 악을 상징하는 나폴레옹에서 선을 상징하는 농민 병사 카라타예프까지 총 559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톨스토이의 사상과 철학이 남김없이 녹아 있는 방대하고 복합적인 이 작품은 『일리아드』에 비견되는 최고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고, 투르게네프와 로맹 롤랑, 버지니아 울프, 헤밍웨이, 토마스 만 등 세계적 작가의 극찬 속에 러시아 유산을 넘어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1

 

1

 

그는 우리 조상들이 말할 때뿐만 아니라 생각할 때도 썼다는 세련된 프랑스어로,

 

정열가라는 것이 그녀의 사회적 위치처럼 되어버렸고, 그래서 그녀는 이따금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자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정열가가 되었다.

 

인생의 행복은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것 같다.

 

“제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아비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아실 거고, 그런데도 둘 다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폴리트는 얌전한 바보입니다만, 아나톨이란 놈은 막돼먹은 바보입니다. 차이란 게 고작 이겁니다.”

 

사회에서의 영향력이란 일종의 자본으로 잃지 않도록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바실리 공작은 이것을 알고 있었고, 만약 간청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일일이 황제에게 탄원하다가는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탄원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고 나서부터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었다.

 

“사회계약론이군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작이 말했다.

저는 지금 시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강탈, 살인, 시역의 사상이지.” 또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가로막았다.

 

국가적인 인물의 행위인 경우, 그것이 개인으로서의 행위인지, 사령관으로서의 행위인지, 혹은 황제로서의 행위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신념에 따라서만 전쟁을 하고자 한다면, 전쟁은 없어질 걸세.”

[…]

“그럼, 당신은 뭐 때문에 전쟁에 나가시는 겁니까?” 피예르는 물었다.

“뭐 때문이냐고? 나도 모르겠어. 그래야 하는 거니까. 또한 내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그는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야!”

 

“이해가 안 돼요, 어째서 남자들은 전쟁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걸까요? 왜 우리 여자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을까요?”

 

“절대, 절대 결혼 같은 건 하지 말게. […] 결혼은 늙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이가 됐을 때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자네에게 있는 훌륭하고 숭고한 것들을 망쳐버리게 되고, 모두 보잘것없는 일에 소모되고 말 거야.”

 

“자네는 보나파르트 이야기를 하지만, 보나파르트도 일을 하고 한 걸음씩 자기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는 자유로웠어,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리고 그는 그 목적을 달성했어. 그런데 여자와 관계를 맺게 되면 마치 차꼬를 찬 죄수처럼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지. 그러면 자기 내부에 있던 희망이자 힘이었던 모든 것이 그저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후회 때문에 자책하게 되는 거야. 객실, 가십, 무도회, 허영, 보잘것없는 일이런 것들이 바로 내가 빠져나올 수 없는 마의 굴레야.”

 

“그러니까 안나 파블로브나의 집에서는 모두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거야. 바보 같은 사회지만, 내 아내나 그 여자들은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단 말이야…… […] 이기심, 허영, 우둔, 매사 무능. 그게 바로 정체를 드러낼 때의 여자라는 거야.”

 

아무리 훌륭하고 친하고 흉허물 없는 관계라 해도 아첨과 찬사라는 것은 바퀴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기름처럼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젊은 사람의 비밀이란 흰 실로 꿰어놓은 것처럼 눈에 잘 드러나는 법이죠!”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나가는 니콜라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사촌간은 위험한 이웃이에요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의 말은 애교가 있고, 솔직하고, 어린아이 같은 이기적인 천진함이 너무나 뚜렷해서 듣는 사람들을 무장해제시켰다.

 

피예르는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이것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설령 오늘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혼자서 아예 단정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악덕에는 나태와 미신이라는 두 가지 근원이 있으며, 또한 미덕에도 활동과 지성이라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크고, 깊고, 반짝이는 공작영애의 눈은(따뜻한 빛이 다발을 지어 퍼지는 것처럼) 참으로 아름답고, 얼굴은 아름답지 않지만 눈만은 아름다움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것이었으므로 공작영애는 아직 한 번도 자기 눈에 스민 아름다운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그녀도 거울을 들여다볼 때는 부자연스럽고 흉한 표정을 지었다.

 

만일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가장 가난한 거지보다 더 가난해지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 설령 이런 것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안의 신비적인 면에는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인간과 영원한 것 사이에 꿰뚫을 수 없는 장막을 드리우고 있는 육체라는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이상, 우리 같은 불쌍한 죄인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두렵고도 신성한 비밀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구세주가 이 지상에 우리의 길잡이로서 남겨주신 위대한 계율을 공부하는 것이 한결 낫습니다.

 

이곳에서 소집되어 군대에 보내지는 신병들이었습니다 …… 나는 출발하는 사람들의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 비탄에 잠긴 모습을 보았고,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오열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인류는 우리에게 사랑과 모욕에 대한 용서를 가르쳐주신 구세주의 율법을 잊고 서로를 죽이는 기술 속에 자기들의 주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형제여, 건강하지 않은 건 바보나 난봉꾼뿐이다. 너는 나를 잘 알겠지만,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고, 절제를 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건강해.”

하느님께 영광을.” 아들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느님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출발을 앞두고 생활에 변화가 일어날 때 자기 몸가짐을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은 흔히 진지한 사색에 젖어드는 법이다. 이런 때는 대체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

 

“사소한 결점은 너그럽게 봐주어야 해요.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앙드레! 언니가 상류사회에서 자라고 길들었다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지금 언니의 상황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에요. 어떤 경우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줘야 하는 거예요.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법이니까요.”

[…]

“너도 시골에서 살고 있지만 이 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잖니.” 그는 말했다.

나는 별문제예요. 나에 관해서는 얘기할 것도 없어요! 나는 다른 생활은 바라지도 않고 또 바랄 수도 없어요. 나는 다른 생활은 전혀 모르니까요. 하지만 앙드레, 생각해봐요, 상류사회에서 자란 젊은 여자가 꽃다운 나이에 시골에 혼자 떨어져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아버지는 언제나 완고하셨지만 요즘은 더 그러신 것 같아서 말이야.” 안드레이 공작은 일부러 이처럼 가볍게 아버지를 비평함으로써 누이동생을 얼떨떨하게 하거나 시험하려는 것 같았다.

앙드레, 오빠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생각에 오만한 데가 있어요.” 공작영애는 대화의 진행보다 자기 생각의 흐름을 더듬는 것처럼 말했다. “그건 크나큰 부덕이에요. 그렇게 아버지를 비평할 수 있는 일일까요?”

 

2

 

그는 러시아군 전체의 용기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는 보나파르트 그 한 사람의 천재성이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이 영웅 때문에 굴욕을 참을 수는 없었다.

 

“사랑을 하지 않는 동안은 자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우리는 먼지의 자식이야…… 그러나 사랑을 하면 하느님이 되지. 창조의 첫날처럼 깨끗해져……”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것 같은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있을까? 이 들과 나무와 태양에 빛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선을 넘어 거기에, 이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결국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고개를 돌려 뭔가를 찾는 것처럼 먼 경치며 도나우 강물이며 하늘이며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푸르고 고요하고 깊은가! 저물어가는 태양은 얼마나 밝고 장엄한가! 저멀리 도나우 강물은 얼마나 부드럽고 반짝이며 빛나는가! 멀리 도나우 강 뒤쪽에 푸르게 보이는 산들, 수녀원, 신비로운 골짜기, 우듬지까지 안개가 낀 소나무 숲은 더한층 훌륭했다…… 저곳은 고요하고 행복에 가득차 있다…… ‘내가 저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 아아, 바로 저것이, 저것이, 지금 내 머리 위와 내 주위에 있는 저것이, 그렇다, 죽음이다…… 눈 깜짝하는 순간에 나는 저 태양도, 저 강물도, 저 골짜기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 쪽으로 눈을 돌린 순간, 총명하고 단호해 보이는 그의 표정은 분명 습관인 듯 의식적으로 변했다. 잇달아 찾아드는 많은 청원자를 만나는 사람에게 흔히 있는 멍하고 위선적인, 그러면서도 그 위선을 숨기려 하지 않는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올랐다.

 

사태를 결정짓는 건 당신들이 뒤렌슈타인에서 하는 소규모 전투나 화약의 힘이 아니라, 그것을 발명한 인간이란 말입니다.

 

젊고 깊은 잠.

 

“당신은 왜 돌아가려는 겁니까? 아니,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압니다. 지금 군대가 위험한 상태니까 빨리 부대로 돌아가는 것이 당신의 의무라고 생각한 거겠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공작, 그건 영웅주의일 뿐입니다.”

천만에요.” 안드레이 공작은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철학자니까, 어디까지나 철학자답게 하십시오. 다른 측면에서 관찰한다면,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것이 당신의 의무라는 걸 곧 깨닫게 될 겁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죽음을 맞으리라.

 

전권을 갖지 않은 장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가 말을 몰고 다가가자 포탄이 꼬리를 물고 머리 위를 스쳐갔고, 그는 신경질적인 경련이 등골을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자기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다시 용기가 솟았다.

 

이제는 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강이 어둠 속을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폭풍이 지나간 뒤에 침울한 바다가 진정되면서 떨고 있는 것 같았다.

 

3

 

‘그러나 그 여자는 바보다. 내 입으로 바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생각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그 여자가 내 마음에 불러일으킨 감정에는 역겨운 어떤 것, 금지된 어떤 것이 있다

 

이 결혼에는 뭔가 역겹고 자연에 반하는 것, 정직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뭘 하는 걸까? 필요한 것은 결단력이다! 내게 결단력이 없는 걸까?’

그는 결심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그가 언제나 자기 안에 있다고 알았고 또 실제로도 있었던 결단력이 어느 틈에 사라진 것을 느끼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피예르는 완전히 결백하다고 느꼈을 때에만 비로소 강해질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안나 파블로브나의 야회에서 담뱃갑을 매개로 촉발된 욕망에 온통 사로잡힌 이래, 그 욕망을 죄악시하는 무의식적인 감정이 그의 결단력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좌중을 결합시켰던 이 같은 부질없고 경박하고 인위적인 흥미 속에 아름답고 건강한 젊은 남녀의 서로에 대한 소박한 갈망이 섞여들었던 것이다. 이 인간적인 감정은 모든 것을 압도하고 그들의 온갖 인위적인 요설 위를 높이 날았다. 농담도 재미있지 않고, 새로운 소식도 흥미롭지 않고, 활기는 분명 꾸며진 것이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렇게도 빨리! 이제 알겠다. 이 일은 그녀나 나 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저들이 모두 그것을 기대하고 꼭 실현될 거라고 믿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어떻게 저들을 실망시킬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실현시켜야 할까?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실현될 것이다,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자기 옆에서 빛나는 그녀의 어깨를 보면서 피예르는 생각했다.

 

‘이것은 모두 이렇게 되어야 했던 일이고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는 그녀의 손 위로 몸을 굽혀 손에 키스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재빠르고 거칠게 머리를 움직이며 그의 입술을 낚아채듯 자기 입술에 포갰다.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변해버렸고, 불쾌한 듯 당황한 그 표정은 피예르를 놀라게 했다.

이제는 이미 늦었다, 다 끝나버렸다. 그리고 난 이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피예르는 생각했다.

 

아나톨은 여자들 사이에 있을 때면 자신을 여자들이 쫓아다니는 데 염증이 난 인간이라는 위치에 두었지만, 자신이 이 세 여자에게 미친 영향을 보자 허영에 찬 만족을 느꼈다.

 

한 시간 뒤에 그 녀석 앞에서 좋은지 싫은지 말해다오. 나는 알고 있다, 너는 이제부터 기도를 하겠지. , 그것도 좋다, 기도해라. 그러나 그것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 가거라.

 

그는 쇤그라벤에서 있었던 전투에 대해,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이 당시 상황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말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남한테서 들은 일이며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자신이 바랐던 일들까지 그대로, 될 수 있는 한 재미있게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로스토프는 정직한 젊은이라서 결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그는 사실대로 이야기할 생각이었으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가항력적으로 거짓말로 빠져버린 것이었다.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며, 이것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은 드물다.

 

두 황제, 즉 왕위 계승자인 황태자를 대동한 러시아 황제, 대공을 거느린 오스트리아 황제가 8만 연합군을 열병하는 것이었다.

[…]

장군이든 병사든 이 인간의 바다 속에서는 모래알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미미함을 느꼈으나, 그러면서도 이 거대한 전체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위력을 느꼈다.

 

시계의 경우 수많은 톱니바퀴와 도르래의 복잡한 운동의 결과가 다만 시각을 표시하는 바늘의 느리고 정확한 운동에 불과한 것처럼, 이들 16만 러시아 프랑스 양군의 온갖 복잡한 인간의 행동이들의 정념, 희망, 후회, 굴욕, 고민, 오만, 공포, 환희 등의 결과도 다만 세 황제의 회전會戰이라고 불리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패배에 지나지 않고, 인류사의 문자반 위에서 세계사의 바늘이 느리게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수보로프 장군과 그의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말하자면 공격을 받는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공격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는 것이죠. 믿어보십시오, 전쟁터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늙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의 경험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더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일이 흔히 있으니까요.

 

바이로터는 이미 저지할 수 없게 된 운동의 선두에 선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는 수레에 매여 산을 달려내려가는 말과 같았다. 자기가 끌고 가는지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채, 이 운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지 숙고해볼 겨를도 없이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전의 장소로 이끌고 가서 혼자 힘으로 승리를 거둔다. 그런데 죽음과 고통은 어떻게 하지? 다른 목소리가 속삭인다. 그러나 그는 이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고 자기 성공의 꿈만을 이어갔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것을 원하고, 명예를 원하고,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고, 남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원하는 것, 내가 오직 그것만을 원하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죄는 아니다. 그렇다, 그것만을 위해서인 것이다! 나는 절대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아아! 명예와 사람들의 사랑 외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죽음도, 부상도, 가족을 잃는 것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우리의 승리에 의심을 품는다면, 그대들은 적이 쏜 첫 포탄에 몸을 내맡기는 그대들의 황제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승리에는 주저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특히 우리 국민의 명예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프랑스 보병의 명예에 대해 운위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나폴레옹)

 

행군중인 병사는 배에 탄 선원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자기 연대에 둘러싸여 제약을 받으며 끌려간다. 아무리 멀리 가건, 아무리 이상하고 위험한 미지의 곳으로 발을 내디디건, 선원의 주위에 언제나 자기가 탄 배의 같은 갑판, 같은 돛대, 같은 닻줄이 있듯이, 병사에게는 언제나 가는 곳마다 같은 전우, 같은 대열, 같은 상사 이반 미트리치, 중대에서 기르는 같은 개 주치카, 같은 상관이 있다. 병사는 자기 배를 둘러싼 광막한 세계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투 날이 되면 군대의 정신적 세계에 뭔가 결정적이고 장엄한 어떤 것의 접근을 알리는 만인 공통의 준엄한 음조가 어디서 어떻게인지 들려와 병사들에게 유별난 호기심을 유발한다.

 

짙은 안개 속을 한 시간 남짓 더 전진했을 때, 군의 대부분은 발을 멈춰야 했다. 혼란과 무질서에 대한 불쾌한 의식이 대열 사이에 번졌다. 이 의식이 어떻게 전해지는지를 단언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골짜기를 흐르는 물처럼 유독 빠르고 확실하게, 어느 틈엔가 막기 어려울 정도로 번져간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막료의 태도.

 

안드레이 공작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뒤로 쓰러졌다. […] 머리 위에는 드높은, 맑지는 않지만 측량할 수 없이 드높은 하늘과, 하늘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잿빛 구름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하고 평온하고 엄숙할까. 내가 달리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드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두 허무하다, 모두 거짓이다,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그러나 이 하늘마저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정적과 평안 외에는.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아직 프랑스군에 점령되지는 않았으나, 러시아병은 살아남은 자도 부상당한 자도 오래전에 이곳을 내버렸다. […] 로스토프는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보지 않으려고 구보로 말을 몰았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목숨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필요한, 이 불행한 사람들을 보고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직 젊은 몸으로 우리와의 싸움에 뛰어들었군.”

젊음이 용기에 장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 천박한 허영심과 승리의 기쁨도, 그의 영웅이던 나폴레옹까지도 모두 하찮게 여겨졌기 때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출혈로 인한 쇠약, 고통, 근접한 죽음이 불러일으킨 준엄하고 장중한 상념들에 비하면 모든 것이 무익하고 시시한 것 같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나폴레옹의 눈을 보면서 위대함의 부질없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질없음, 살아 있는 자는 누구도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죽음의 더한 부질없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마리야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명료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가면서 어디서 구원을 찾고, 삶이 끝나면 저기, 무덤 속에서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다 부질없다는 것과,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가 확실히 위대하다는 것뿐이다!

 

 

2

 

1

 

군대에 돌아가기까지 모스크바에서 머문 짧은 기간 동안 로스토프는 소냐와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분명 그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마침 그는 청춘의 어느 시기에 접어들고 있었고, 이 시기에는 그런 일에 얽매여 있을 시간이 없을 만큼 많은 일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고, 다른 여러 가지 일에 필요한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법이다.

 

모스크바 사람들은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기는 한데, 그 좋지 않은 기별에 대해 논의하기는 어려우니 차라리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낫겠다고 느꼈다.

 

사태는 무섭게 치달았다. 경솔하게 시작된 일은 이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게 되었고, 이제는 사람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절로 굴러가, 끝까지 가지 않고는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어리석다…… 어리석다! 죽음…… 허위……” 피예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되풀이했다.

 

세상에는 겉보기에 나약해 보여도 자기 슬픔을 달래줄 벗을 찾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피예르가 그런 부류였다. 그는 혼자 마음속으로 슬픔을 되새기고 있었다.

 

로베스피에르는 폭군이라는 이유로 처형됐다. 대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라, 한 시간 전에 죽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 인생이란 영원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데, 대체 이런 것으로 괴로워할 가치가 있을까? (피예르)

 

산모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고통이 가벼워진다는 미신을 따르듯, 모두는 모르는 체하려 애쓰고 있었다.

 

원래 미덕이란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요, 눈에 거슬리니까.

 

베라는 스무 살의 아름다운 아가씨였고, 소냐는 갓 피어난 꽃 같은 매력을 지닌 열여섯 살의 아가씨, 나타샤는 아이같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아가씨처럼 매력적이기도 한, 반은 소녀, 반은 아가씨였다.

 

그녀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반해 있다.

 

행복한 순간을 붙잡아라. 사랑받고, 사랑하라! 이것만이 이 세상에서 진실이며, 그 밖의 것은 모두 무의미하다. 이것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이다라고 이 분위기가 말하고 있었다. (로스토프가)

 

자네, 언젠가 우리가 승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기억나나…… 요행을 바라고 노름하는 놈은 바보다, 이긴다는 각오로 덤벼들어야 한다고 했던 것 말이야. (돌로호프)

 

2

 

무엇이 나쁜 것인가? 무엇이 좋은 것인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살고, 나는 대체 무엇인가?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인가? 만물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들에 단 한 가지 대답도 얻지 못했고, 한 가지 대답이 있긴 했지만 논리적이지 못하고 또 모든 의문에 대한 대답도 되지 못했다. 그 한 가지 대답이란죽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 죽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거나, 더이상 그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된다였다. 그러나 죽는 것은 무서웠다. (피예르)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가진 지혜의 극한이다.’ (피예르)

 

“혼자서는 누구도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만인이 협력해 하나하나 돌을 쌓아올리면서 인류의 아버지 아담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만의 세대를 거쳐야 비로소 위대한 하느님이 사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신전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프리메이슨)

 

“당신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선생, 그렇기 때문에 몹시 불행합니다. 당신은 하느님을 모르지만, 하느님은 여기, 내 안에, 나의 말 속에, 또 당신 안에, 아니 당신이 지금 한 그 불경한 말 속에 계십니다.”

 

“하느님은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리메이슨)

 

하느님을 인식하기는 어렵습니다. […]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약점과 하느님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프리메이슨)

 

“하느님은 이지理智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에 의해 이해되는 것입니다.” (프리메이슨)

 

다섯 가지 미덕, 즉 용기, 관용, 온후, 인류에 대한 사랑, 복종

 

(보리스)는 올뮈츠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불문율을 완전히 터득하게 됐는데, 이것에 의하면 소위보라 할지라도 장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또한 근무상의 성공에 필요한 것은 노력도, 고생도, 용기도, 불굴의 정신도 아닌 단지 논공행상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을 잘 대하는 요령뿐이라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자신의 빠른 출세에 이따금 놀라고, 다른 사람들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에도 놀랐다.

 

전쟁의 무대로부터는 언제나 그렇듯이 갖가지 곡해되고 모순된 거짓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단 한 가지 조금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건 총사령관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마땅히 적을 피하거나 공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참순에 의해 당연히 우두머리가 되어야 할 북스게브덴 장군을 피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맹렬한 기세로 이 목적을 추구하면서, 여울도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하고 다리를 소각하기도 하고, 적으로부터 멀어지려고도 했는데 그 적이라는 것이 보나파르트가 아니라 북스게브덴이었단 말입니다.

 

정교도 병사들은 약탈을 시작했고, 그것은 요즘 전투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 황제께서는 전 사단장에게 폭도를 사살하는 권한을 주려 하시지만, 나는 이것으로 군의 절반이 나머지 절반을 사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좋지 않습니다, 옳지 않아요……”

왜 옳지 않지?” 안드레이 공작은 물었다. “옳다, 옳지 않다는 인간이 판단할 일이 아니야. 인간은 언제나 잘못 생각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더욱이 옳다, 옳지 않다 판단하는 것만큼 심한 오류도 없어.”

옳지 않다는 건 곧 남에게 악인 것입니다.”

[…]

“하지만 남에게 악이란 게 뭔가, 누가 그런 걸 가르쳐줬나?” 그는 물었다.

악이요? ?” 피예르는 말했다. “자신에게 무엇이 악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 모두가 알고 있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악은 남에게 저지를 수 없는 거야.” […] “내가 아는 한 실제의 악은 두 가지야, 양심의 가책과 질병. 행복은 이 두 가지가 없는 상태지. 이 두 가지 악을 피하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현재 내가 깨달은 전부야.”

 

“이웃에 대한 사랑, 자기희생은요?” […] “간신히 지금에야 남을 위해 살게 되어, 아니 그러려고 노력하게 되어(피예르는 겸손한 마음에서 살짝 고쳐 말했다) 겨우 인생의 모든 행복을 깨달았습니다.”

[…]

“어쩌면 자네 말도 자네에게는 옳은 거겠지.”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거든, 자네는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인생을 망칠 뻔했고 남을 위해 살게 되면서 비로소 행복을 깨달았다고 말했지. 그러나 내가 경험한 것은 그 반대야. 나는 명예를 위해 살았지. (그런데 명예가 뭔가? 남에 대한 사랑,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고, 남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욕망 아닌가.) 그렇게 나는 남을 위해 살았지만 거의, 아니 완전히 내 인생을 망쳐버렸어. 그뒤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게 되자, 마음이 안정됐어.”

 

“아들은요, 누이는요, 아버님은요?”

그들은 모두 나야, 남이 아니라.” […] “자네나 공작영애 마리야가 말하는 남이니 이웃이니 동포니 하는 것들이 그릇된 생각과 악의 주요한 근원이야. 동포란 자네가 선을 베풀려고 하는 그 키예프의 농민들이겠지.”

 

“나는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자네는 병원을 짓고 있어. 어느 쪽이나 시간 때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 그러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선이냐 하는 문제는, 그 판단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에게 맡겨야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야.”

 

“학교니 교육이니 하면서 말하자면 자네는 저 사내를,” 그는 모자를 벗고 그들 옆을 지나가는 농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물적인 상태에서 끌어내 정신적인 욕구를 일깨우려고 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유일하게 가능한 행복이란 동물적인 행복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자네는 그에게서 그것을 뺏으려 하는 거야. 나는 그가 부러울 뿐인데 자네는 그를 나 같은 인간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나만큼의 지력도, 나만큼의 감각도, 나만큼의 재력도 주지 않고. 다음으로, 자네는 그의 노동을 덜어준다고 말했네. 그러나 내 생각에 육체노동은 나나 자네에게 정신노동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존재의 필요조건이야. […] 나라면 그런 끔찍한 육체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죽을 거고, 그는 내가 누리는 육체적인 무위를 견디지 못하고 피둥피둥 살이 쪄서 죽을 거란 말일세.”

 

게다가 의학이 언제 사람을 구한 적이 있었나, 그게 무슨 망상인가…… 죽이는 거면 몰라도그렇지!”

 

“반대로 자기 생활을 되도록 즐겁게 만들어야지. 나는 살아 있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 의미인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잘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하지만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꼼짝없이 앉아만 있어야 하잖습니까.”

인생이란 누구도 가만 내버려두질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도 한편에서는 이 지역 귀족회에서 나를 회장으로 선출하는 영광을 안겨줬고, 나는 그것을 간신히 거절했네. 그들은 그런 일을 맡는 데 필요한 친절함과 세세한 데까지 신경쓸 수 있는 범속함이 내게 없다는 걸 몰랐던 거지. 그리고 바로 여기에, 나는 내가 평온하게 살 곳을 얻기 위해 집을 지어야 해. 민병대 일도 있고.”

 

이 주 전에는, 만약 내가 두 시간 늦었더라면 아버지는 유흐노프에서 한 기록원을 교수형시킬 뻔했어.”

[…]

“나는 민병대원들의 구두인지 뭔지를 훔친 기록원에게는 조금도 관심 없고, 지금도 그래, 도리어 그놈이 교수형 당하는 걸 봤다면 아주 기뻐했을 거야, 내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건 내 아버지, 곧 나 자신이네.”

 

농노해방은 도덕적으로 몰락해가는 자신에 대해 후회를 느끼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거야, 그들은 그런 후회를 압살해버리고, 옳건 그르건 간에 사람을 벌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난폭해지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나 역시 농노해방을 바라네. 자네는 아직 못 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무한한 권력이라는 전통 속에서 자라난 선한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성마르고 잔인하고 난폭해지고, 스스로 그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점점 더 불행해지는 것을 봐왔네.”

 

“결국 내가 불쌍히 여기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든가 양심의 평안이라든가 순결 같은 것이지, 그자들의 등이나 이마가 아니야, 그런 건 아무리 때리고 깎아도* 여전히 같은 등, 같은 이마니까.”

* 지주가 농노를 시베리아로 보낼 때는 탈주를 막기 위해 머리털 반쪽을 깎았다.

 

“그런데 자네는 우리 형제단에 가입하면 우리가 인생의 목적과 인간의 사명과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어. 그 우리가 누구지?―인간 아닌가. 당신들은 어떻게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왜 당신들은 보는데, 나는 볼 수 없는 걸까? 당신들은 이 지상에서 선과 진리의 왕국을 보는데, 왜 내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지?” (안드레이)

 

“만약 하느님이 있고 내세가 있다면, 진리도 있고 선도 있으며, 인간의 최고 행복은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피예르)

 

더욱이 돌로호프와의 카드놀이에서 진 후(가족 모두가 위로해줬지만, 그는 아무래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자기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전과는 달리 훌륭하게 근무해서 나무랄 데 없는 우수한 장교이자 동료, 이른바 훌륭한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것은 세상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연대에서는 가능한 일 같았다.

 

파블로그라드스키 연대는 전투로는 두 명의 부상자를 냈을 뿐이지만, 굶주림과 질병으로는 거의 반수의 병력을 잃었다. 병원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죽어 나오게 되니, 형편없는 음식으로 인해 발열과 부종에 시달리는 병사들도 병원에 가느니 간신히 발을 끌면서라도 전선에 남는 편을 택했다.

 

마음속에 무서운 의혹이 일었다. 얼굴이 완전히 달라지고 아집도 사라진 데니소프,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과 오물과 질병으로 가득한 병원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 병원에서 맡았던 시체 냄새가 아직도 너무 생생해서 대체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렸을 정도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제 황제가 되어 알렉산드르 황제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손이 희고 자기만족에 빠진 보나파르트가 떠올랐다.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이나 전사자들은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우리가 할 일은 자기 의무를 다하고 적을 베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뿐이야.” (니콜라이)는 말을 맺었다.”

 

3

 

‘아니다, 인생은 서른한 살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갑자기 최종적으로, 변치 않을 결단을 내렸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나 혼자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줘야 한다, 피예르에게도,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소녀에게도, 모두에게 알려줘야 한다, 내 생활이 나만을 위해 영위되어 그들이 내 생활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아서는 안 되며, 내 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반영되어야 하고 나도 모두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법안을 써대고 있습니다만, 그건 쓰는 것이 실행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죠.”

 

“나는 몽테스키외를 숭배합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말했다. “그리고 군주정치의 원리는 명예라는 그의 사상. 논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귀족계급의 권리와 특권은 어느 정도 이 감정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명예란 근무하는 데 해가 되는 특전 같은 것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명예, 명예란 비난받을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개념, 아니면 상찬이나 그 표현인 보상을 받기 위한 경쟁의 한 근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을 괴롭힌 것은, 자기의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거울 같고 냉정한 스페란스키의 눈빛과 희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누구든 보통은 권력을 쥔 사람의 손을 보게 되는데, 안드레이 공작도 그 흰 손을 보았다. 그의 거울 같은 눈빛과 부드러운 손은 왜 그런지 안드레이 공작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잠을 자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피예르)

 

폭력적인 개혁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현재와 같은 상태에 있는 한 인간은 절대로 악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지혜에는 폭력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피예르는 이 집회에서 처음으로 어떠한 진리도 두 인간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인간의 견해라는 것이 한없이 다양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깜짝 놀랐다.

 

‘올바른 사람도 아무도 없고 죄지은 사람도 아무도 없다면, 그녀(옐렌)에게도 죄가 없다.’ (피예르)

 

“속세의 격동 속에서만 우리는 이 세 가지 주요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1)자기인식, 인간은 비교를 통해서만 자기를 알 수 있고, 2)자기완성, 이것은 투쟁으로써만 얻을 수 있으며, 3)주요한 덕성, 이것은 죽음에 대한 사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변전變轉만이 우리에게 인생의 허무를 가르쳐주고,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나 새로운 삶의 부활에 대한 사랑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류사회는 궁중이나 대무도회 같은 곳에서는 서로 결속했지만, 실은 고유의 색을 띤 몇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야회를 여는 데 우매함이 필수인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속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것인지 아무튼 속임수는 드러나지 않았고, 아름답고 총명한 부인이라는 평판은 옐레나 바실리예브나 베주호바에게 아주 꼭 달라붙어 그녀가 아무리 쓸데없고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그 한마디 한마디에 감탄하고, 그녀 자신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깊은 뜻을 그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가 황제의 새 계획을 들려주었다. 나는 비난하려다가 나의 계율과 은인의 말을 상기했는데, 참된 프리메이슨은 국가가 참여를 요구할 때 열성적인 실행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냉정한 관찰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나의 혀는 나의 적이다.

 

나의 주된 욕망은 태만이라고. (피예르)

 

나타샤는 인생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커다란 행복을 느꼈다. 그녀는 사람이 완전히 선량하고 친절해지고 악과 불행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때 느끼는 행복의 절정에 있었다.

 

(안드레이)가 울고 싶어진 중요한 이유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한없이 위대하고 포착하기 어려운 무언가와, 그 자신과 그녀에 의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좁고 육체적인 무언가 사이에 가로놓인 무서운 모순이 느닷없이 생생하게 자각됐기 때문이었다. 이 모순은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를 괴롭혔고, 기쁘게도 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했던 피예르의 말은 진리이고, 나도 지금은 그것을 믿는다. 죽은 자를 묻는 일은 죽은 자에게 맡겨야 하며, 생명이 있는 한 살아서 행복해져야 한다고 그(안드레이)는 생각했다.

 

베라 역시 남편에 대한 우월감에 미소지었는데, 그가 덕망 있고 훌륭한 남자이긴 하지만 역시 다른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르그는 자기 아내를 기준으로 모든 여자를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베라는 자기 남편 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판단에서 나아가, 모든 남자는 이성을 자기들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이해 못하는 오만한 이기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미묘한 문제는 답하기가 어렵지만, 내가 보기에는 인기 없는 여성일수록 정절을 지키는 것 같습니다하고 덧붙이고 그는 마침 곁으로 다가온 피예르를 바라보았다.

, 맞는 말씀이에요, 공작, 이 시대는,” 베라는 말을 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이 시대라는 말을 즐겨 쓰고,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가 시대의 특징을 잘 알고 또 평가할 수 있다고, 인간의 본성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피예르)는 불행한 사람들이 자기 일을 바라볼 때 떠올리는, 이 세상의 불행에서 구원되길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노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빛나고 환희에 찬, 인생을 새출발하는 얼굴로 피예르 앞에서 발을 멈췄고, 자기 행복의 이기심에 상대방의 슬픈 얼굴을 알아채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내면의 슬픔에 허영심에서 비롯된 슬픔이 더해져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나타샤)

 

‘정말 이 낯선 타인이 이제부터 나의 전부가 되는 걸까?’ (나타샤)

 

안드레이 공작은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았으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녀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랑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별안간 완전히 바뀌어, 예전의 시적이고 신비로운 희망의 매혹이 사라진 자리에, 그녀의 여성스럽고 아이 같은 연약함을 가련해하는 마음, 그녀의 헌신과 믿음에 대한 두려움, 그녀를 자신과 영원히 결합시킨다는 괴로우면서도 기쁜 의무의 자각이 들어섰다. 예전처럼 환하고 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 감정은 한결 진지하고 강력했다.

 

약혼한 남녀가 있는 자리에 반드시 뒤따르기 마련인 시적인 지루함과 침묵이 집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공작영애 마리야를 끊임없이 지독하게 모욕했지만, 딸은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일부러 애쓰지 않았다. 대체 아버지가 딸에게 나쁜 짓을 할 수 있을까,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가(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불공평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 공평이 무엇인가? 공작영애는 공평이라는 오만한 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인류의 온갖 복잡한 법칙도 그녀에게는 한낱 단순하고 명백한 법칙사랑과 헌신에 집약되어 있었고, 그것은 인류를 위해 사랑으로 고통을 받은 존재인 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공평과 불공평 같은 것이 그녀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녀는 몸소 고통받고 또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나의 벗이여, 우리를 절망에서 구하는 것은 종교이고, 아니 종교뿐이고, 오직 종교만이 위로가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종교의 도움 없이는 우리 인간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설명할 수가 없으며,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줄 알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남의 행복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선량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하느님 곁으로 불려가고, 악하고 무익하고 해만 끼치는 인간과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무거운 짐이 되는 사람들만이 살아남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종교뿐입니다.

 

공작영애 마리야는 인생을 살아갈수록, 인생을 경험하고 관찰할수록 이 세상에서 쾌락과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근시안에 점점 더 놀랐는데, 그들은 있을 수 없고, 허상 같고, 죄 많은 행복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고 고민하고 싸우다 서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 그들은 모두 다투고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한순간의 행복을 얻기 위해 자기의 영혼, 영원한 자기의 영혼을 해치고 있다.

 

‘한 장소에 도착하면 기도를 올린다, 익숙해지고 애착이 생기기 전에 다시 나아간다.’

[…]

그러나 그런 뒤에 아버지나 특히 어린 코코를 보면 결심이 흔들려서 남몰래 울며 스스로를 죄 많은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녀는 신보다 아버지나 조카를 더 사랑했던 것이다.

 

4

 

성서의 전설에 의하면, 노동을 하지 않는 것무위은 타락하기 전 최초의 인류에게는 행복의 조건이었다고 한다. 무위를 좋아하는 마음은 타락한 인간 속에 그대로 남았지만, 신의 저주가 끊임없이 인간에게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스스로 빵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 때문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편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무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만약 인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유익한 인간, 의무를 다하는 인간이라고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발견한다면 그는 원시적 행복의 일면을 발견한 셈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의무적이고도 비난받지 않는 무위의 상태를 향유하는 커다란 하나의 계급은 바로 군인 계급이다. 의무적이고도 비난받지 않는 무위야말로 군무의 주된 매력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아, 아아, 늘 같은 얼굴, 늘 같은 이야기, 아버지도 언제나처럼 찻잔을 들고 차를 불고 계시고!’ 나타샤는 이런 생각이 들었고, 늘 같다는 이유로 온 집안 식구들에 대한 혐오가 치밀었다는 것을 느끼고 움찔했다.

 

“그럼요. 기억나요, 아버지가 푸른 외투를 입고 현관 층층대에서 총을 쏘았잖아요?” 두 사람은 추억을 더듬으며 미소지었고, 늙은이의 추억처럼 슬픈 것이 아니라 시적이고 젊은 추억을, 꿈과 현실이 뒤섞여버린 아주 먼 과거의 인상을 되새기며 낮은 소리로 함께 웃었다.

 

“그렇죠, 하지만 영원을 상상하는 건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에요.” 온화하면서도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며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왔던 디믈레르가 지금은 그들처럼 조용하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영원을 상상하는 것이 왜 어려워요?” 나타샤는 말했다.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고, 항상 그럴 것이며, 또 어제가 있었고, 그저께도 있었고……”

 

어머니로서의 본능은 나타샤에게 무엇인가가 너무 많고, 그래서 행복하지 못할 거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5

 

(피예르)는 현재의 자신이 칠 년 전 그가 그토록 멸시했던 모스크바 퇴직 시종관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따금 그는 잠시 이렇게 사는 것일 뿐이라고 자위했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이와 머리털이 성했을 때 잠시만 하는 기분으로 이런 생활과 이런 클럽에 들어왔다가 이도 머리털도 다 빠진 채 나갔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이 허위와 혼란을 알고 있다.’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나는 시도해보았지만, 언제나 알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속으로는 나와 같은 것을 깨닫고 있지만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다. […] 그도 많은 사람들처럼, 특히 러시아인들의 불행한 능력, 즉 선과 진리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또한 믿으면서 그 실현을 위해 진지하게 참여하기에는 너무도 뚜렷하게 인생의 악과 거짓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보잘것없는 것도 없고, 중요한 것도 없다, 다 마찬가지다. 그저 되도록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피예르는 생각했다. ‘다만 그것을, 무서운 그것을 보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신랑 신부는 이제 어둠과 멜랑콜리의 그림자를 떨어뜨리는 나무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화려한 저택의 설비에 관한 계획을 세우고, 그곳에서 올릴 화려한 결혼식을 위한 모든 것을 준비했다.

 

방탕아들, 이른바 남자 막달레나들에게도 여자 막달레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믿는 잠재의식, 죄를 용서받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돌로호프에게는 자기에게 필요한 이런 타산 외에도 남의 의지를 지배한다는 그 자체가 쾌락이자, 습관이자, 요구였다.

 

(아나톨)가 자신(나타샤)을 좋아한다는 데서 허영에 찬 만족감을, 그들 사이에 마음의 장벽이 없다는 데서 공포감을 느꼈다.

 

나타샤는 통통한 조르주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고,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통 이해할 수 없었으며, 종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불가사의하고도 분별없는 세계에,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무모한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빠져버린 자신을 다시금 느낄 뿐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또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이 두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왜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이따금 완전히 멍해져 그녀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그럼 나는 비로소 완전히 행복해질 텐데, 지금 나는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하고, 둘 중 어느 쪽을 잃든 행복할 수 없을 거야.’

 

아나톨은 흔히 둔한 사람이 자기 지혜로 도달한 추론에 대해 느끼는 특별한 열정을 품고 이미 백 번이나 돌로호프에게 했던 주장을 되풀이했다.

 

“당신(아나톨)도 결국은 알게 되리라 생각하지만, 당신에게 쾌락이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과 평안이란 것이 있는데, 당신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다른 이의 일생을 망치려 하고 있습니다.” (피예르)

 

“저는 개인적으로 스페란스키를 좋아하지 않고 전에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저는 정의를 사랑합니다.” 피예르는 그제야 비로소, 너무도 괴로운 내면의 상념을 쓸어버리기 위해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에 흥분하며 논쟁하고 있는, 자기가 너무나 잘 아는 친구(안드레이)의 성벽을 알아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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