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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라쇼몽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020. 12. 23.
라쇼몽

라쇼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김영식

예술의 이상향을 꿈꾼 불세출의 천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일본 근대 문학을 견인하며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친 작가. 시대와 세계를 초월하여 문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리한 시선

종교에서부터 민담, 개인의 내면에서부터 사회의 부조리, 자연주의에서 환상 문학까지 아우르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폭넓은 작품 세계는 인간사와 그 저변에 흐르는 인간 본연의 심리를 가장 순수하고 문학적인 언어로 그려 낸 영원한 단편 문학의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라쇼몽

 

하인은 무엇보다 당장 내일 먹고살 궁리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즉 어찌할 바가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을 더듬어가며 아까부터 주작대로에 내리는 빗소리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었다.

 

어찌할 바가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면 수단을 가릴 겨를이 없다. […] 그러나 이 “……않는다면” 은 시간이 흘러가도 끝내 “……않는다면” 에 머물렀다. 하인은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 “……않는다면” 을 완결하려면 당연히 그 뒤에 붙어야 할 “도둑이 될 수밖에 없다” 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때, 누가 하인에게 아까 문 밑에서 하인이 생각하던,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의 문제를 새삼스럽게 꺼낸다면, 아마 하인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굶어 죽는 것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그 정도로 하인이 악을 증오하는 마음은 노파가 마루에 꽂아 놓은 관솔불처럼 기세 좋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던 짓도 나쁘다고 생각지 않어.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야.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년도 잘 알 터이니 내가 하는 짓도 눈감아줄 것이여.”

[…]

이 말을 듣던 중 하인의 마음에는 어떤 용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까 문 아래에 있을 때는 없던 용기였다. 그리고 또 아까 문 위로 올라와 노파를 붙잡았을 때의 용기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용기였다. 하인은 이제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쉰 살이 넘은 스님은 사미승 때부터 내도장 봉공 스님에 오른 지금까지 마음속에 언제나 코에 대한 고민이 떠난 적이 없었다.

[…]

스님은 코에 의해 상처받는 자존심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거울 안에 있는 스님의 얼굴은 거울 밖에 있는 스님의 얼굴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눈을 깜빡거렸다.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누구라도 타인의 불행을 동정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불행을 어떻게라도 극복하게 되면, 이번에는 그것을 바라보던 쪽에서 왠지 섭섭한 마음이 된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 빠뜨리고 싶다는 마음조차 생긴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소극적이기는 하나, 어떤 적의를 그 사람에게 품게 된다… 스님이 이유를 모르지만 왠지 불쾌하게 생각한 것은 이케노오 절의 승려와 속세인의 태도에서 이 같은 방관자의 이기주의를 은근히 느꼈기 때문이 틀림없었다.

 

지옥변

 

언젠가는 대신께서 농담으로 “그대는 어쨌든 추한 것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말씀하셨을 때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붉은 입술로 기분 나쁘게 슬쩍 웃으면서, “그러하옵니다. 얼치기 화공은 추한 것의 아름다움을 알 턱이 없사옵니다” 라고 거만하게 대답했습니다.

 

아까까지 지옥의 징벌에 괴로워하는 듯했던 요시히데는, 지금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광채를, 마치 황홀한 법열(法悅)의 광채를 주름진 얼굴에 가득 드러내며 대신의 앞인 것도 잊었는지 가슴에 팔짱을 꼭 끼고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이, 아무래도 그 남자 눈에는 딸이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하였습니다. 단지 아름다운 화염 빛과,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여인의 모습이 한없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그런 경관으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이상한 것은 글쎄 그자가 외동딸의 단말마(斷末魔)를 매혹된 듯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요시히데에게는 왠지 사람이라 생각되지 않는, 꿈속에서나 보는 사자왕(獅子王)의 분노와 같은 괴상한 엄숙함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물론 소녀가 마치 비속한 현실을 인간으로 드러낸 것 같은 얼굴로 내 앞에 앉은 것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었다. 터널 속의 기차와 시골뜨기 소녀와, 그리고 또 진부한 기사로 가득 찬 석간……, 이것이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해할 수 없고 저급하며 지루한 인생의 상징이 아닌 그 무엇이겠는가.

 

저녁노을에 물든 마을의 건널목과, 참새처럼 소리를 질러대던 세 아이, 그리고 아이들에게 날아가 흩어진 선명한 귤 빛, 그 모든 것은 차창 밖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애절할 정도로 확연히 이 광경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내 속 깊은 곳에서 어떤 정체를 알 수 없는 밝은 것이 용솟음쳐오는 것을 느꼈다.

 

늪지

 

더구나 이상한 점은 이 화가는 울창한 초목을 그리면서 녹색은 전혀 쓰지 않았다. 갈대와 포플러, 그리고 무화과에 칠한 것은 모두 탁한 노랑이었다.

 

물론이죠.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색의 그림을 그리겠습니까. 이걸 선생님이 걸작이라며 감동하고 계신 겁니다.

 

“생각만큼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미쳐버린 것 같네요. 그것만큼은 굳이 칭찬하자면 칭찬해줄 수 있겠지요.”

기자는 밝은 표정으로 매우 흥미롭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무명의 예술가가……, 즉 우리 중 한 사람이 생명을 희생하면서 세상으로부터 간신히 얻어낸 유일한 대가였던 것이다. […] 그곳에는 어두컴컴한 하늘과 수면 사이에, 젖은 황토색을 띤 갈대와 포플러, 그리고 무화과가, 자연 그 자체를 드러내는 섬뜩한 힘으로 살아 있었다…….

 

의혹

 

불길한 예감과 함께 어떤 막연한 책임감.

 

이번에는 연기뿐 아니라 불티를 사방에 날리는 거대한 불덩이가 닥쳐와 눈앞이 아찔해졌습니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산 채로 불에 타 죽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산 채로? […] 살아서? 산 채로? 나는 거듭하여 무언가 외쳤습니다. “죽어!” 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나도 죽을게” 라는 말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어라고 말했는지도 알 수 없는 순간, 나는 손에 닿는 대로 주위에 떨어진 기와를 들어 아내의 머리를 계속 내리쳤습니다.

 

내 자각을 초월한 비밀.

 

대지진 때 내가 아내를 죽인 것은 과연 어쩔 수 없던 것이었을까……?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아내를 죽인 것은 애초부터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죽인 것은 아니었을까? 대지진은 단지 나를 위해 기회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의혹이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이르러 역시 아내를 죽인 것은, 죽이고자 죽인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혹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제가 점점 더 우울해진 것은 오히려 자연적인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내가 광인이라 해도 저를 광인으로 만든 것은 역시 우리 인간 마음속에 잠재한 괴물 탓이 아닐까요? 그 괴물이 있는 한, 지금 저를 광인이라고 조소하는 사람들조차 내일은 또 나 같은 광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생의 믿음 *헛된 믿음

 

나는 현대에 태어났지만, 뭐 하나 의미 있는 일을 이루지 못했다. 밤낮으로 멍하니 꿈만 꾸는 세월을 보내면서, 그저 무엇인가 다가올 불가사의한 것만 기다리고 있다. 마치 미생이 어두컴컴한 저녁에 다리 밑에서 영원히 오지 않을 연인을 언제까지나 기다렸던 것처럼…….

 

가을

 

노부코와 사촌오빠의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장래 그들의 결혼을 예상하기에 충분하였다. 여대 동창들은 그녀의 미래를 심히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였다. […] 노부코는 한편으로 그들의 추측을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분명한 미래를 은근히 비추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자, 노부코는 그들의 예측에 반해, 오사카의 어떤 상사에 근무하게 된 상대 출신의 청년과 돌연 결혼해버렸다. […]

동창들은 모두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 의아스럽다는 마음속에는, 묘하게 기쁜 감정과, 예전과는 전연 다른 의미인 질투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화롯불에 손을 쬐면서 이런저런 말을 나누었다. 기치의 소설, 공통의 친구 소문, 도쿄와 오사카의 비교 등, 화제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둘 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어떻게 사는지를 묻는 말은 전혀 꺼내지 않았다.

 

테루코의 설명에 따르면, 식탁에 오른 달걀은 모두 집의 닭이 낳은 것이었다. 기치는 노부코에게 포도주를 권하면서, “인간의 삶은 약탈로 유지되는 거야. 작게는 바로 이 달걀부터 말이야” 하며 사회주의 같은 논리를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그곳에 있는 세 사람 중에 가장 달걀에 애착을 가진 자는 바로 기치였다.

 

기치는 닭장을 들여다보고 거의 혼잣말하듯이, “자고 있네” 하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달걀을 사람에게 빼앗긴 닭이…….’ 노부코는 풀 속에서 우두커니 선 채 이렇게 생각하였다…….

 

“테루코는 행복해서 좋겠네.” 노부코는 옷깃에 턱을 묻고 놀리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그곳에 스며 있는 진지한 선망(羨望)의 기색은 아무래도 숨길 수가 없었다. 테루코는 그러나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놀리지 마. 언니.” 하고 째려보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고 곧 다시 “언니도 행복하면서” 라고 어리광부리듯 덧붙였다. 그 말이 쿵 하며 노부코의 가슴을 쳤다.

 

“그래도 형부가 잘해주지 않아?” 이윽고 테루코는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이렇게 물었다. 그 목소리 안에는 분명히 연민의 울림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 노부코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연민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녀는 신문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내려다본 채 일부러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문에는 오사카에서처럼 쌀값 문제가 실려 있었다.

 

“울 것까지 없잖니…….” 테루코는 언니에게 이렇게 위로받아도 쉬이 울음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노부코는 잔혹한 기쁨을 느끼면서 잠시 동생의 떨리는 어깨에 무언의 시선을 쏟았다.

 

그녀의 마음은 차분하였다. 그러나 그 차분함을 지배하는 것은 쓸쓸한 체념이었다. 테루코가 울음을 그친 후, 화해는 다시 새로운 눈물과 함께 금세 두 사람을 원래의 사이 좋은 자매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사실은 엄연한 사실로써 지금도 노부코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기치의 귀가를 기다리지 않고 인력거에 몸을 실은 때, 이제는 동생과 영원히 타인이 된 듯한 느낌이 사정없이 그녀 가슴을 얼어붙게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마침내 인력거를 지나쳐갔다. 엷게 흐린 하늘,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 키 큰 나무들의 노랗게 물든 잎……, 그리고 여전히 지나는 사람 적은 교외의 거리 풍경이 있을 뿐이었다.

‘가을…….’

노부코는 싸늘한 인력거 안에서 온몸으로 쓸쓸함을 느끼면서 애절하게 이렇게 생각하였다.

 

버려진 아이

 

“그런데 실제로 저는 친자식이 아닌 것을 알게 된 후, 어머니에 대한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

“전보다도 더 애틋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 비밀을 알게 된 후, 어머니는 버려진 아이인 저에게는 친어머니 이상의 분이 되었으니까요.”

손님은 숙연하게 대답을 하였다. 마치 그 자신 또한 친자식 이상의 사람이었던 것도 모르는 듯이. 

 

덤불 속

 

- 검비위사의 심문에 대한 탁발승의 진술

 

인간의 목숨이라는 것은 이슬처럼 허망하고 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네요.

 

- 다조마루의 자백

 

저는 죽일 때에 허리에 찬 칼을 사용합니다만, 나리는 칼을 사용하지 않고 권력 하나로 죽이고, 돈으로 죽이고, 까닥하면 세상을 위한다는 말 하나로 죽이시지요.

 

- 청수사에 와 있던 여자의 참회

 

입으로는 한마디도 할 수 없던 남편은 찰나의 눈 속에 모든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번뜩인 것은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단지 저를 경멸하는 차가운 눈빛이었습니다. 저는 남자 발에 차인 것보다 그 눈빛에 일격을 맞은 듯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도미의 정조

 

“뭐, 아무것도 아니지만, 글쎄, 몸을 맡긴다는 것은 말이야, 여자 일생에 아주 큰일이지. 그런데 아가씨는 고양이 목숨과 바꾸려고……, 그건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행동 아닌가?”

[…]

“아아, 나비도 사랑스럽고, 마님도 생각한 건 틀림없지. 그래도 단지 나는 말이야…….”

오도미는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먼 곳이라도 보는 듯한 눈을 하였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단지 그때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말이야.”

 

인사

 

여느 글쟁이처럼 정신없이 쫓기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 ‘내일’ 은 생각해도 ‘어제’ 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리를 걷거나 원고용지를 마주하거나 전차에 탄 동안에는 문득 과거의 한 정경이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대개 후각의 자극에서 연상을 낳는 결과인 것 같았다. 또 그 후각의 자극이라는 것도 도시에 사는 탓으로 악취라고 불리는 냄새뿐이었다. 예를 들어 기차 매연 냄새는 아무도 맡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여자의 기억……, 오륙 년 전에 마주친 어느 여자의 기억은 그 냄새를 맡기만 하면 굴뚝에서 내뿜는 불꽃처럼 곧바로 되살아났다.

 

야스기치는 아직 동서를 막론하고, 근대 소설의 여주인공으로 완벽한 미인을 본 적이 없었다. 작가는 여성을 묘사할 때, 대개 ‘그녀는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는 식의 묘사로 시작하였다. 짐작건대 완벽한 미인을 등장시키는 것은 근대인에게는 체면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녀와 얼굴을 마주친 순간에 무언가 상식을 벗어난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하고 병적인 불안이었다.

 

이것도 또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단지 야스기치가 기억하는 것은, 언젠가 그를 습격하기 시작한 어렴풋한 우울뿐이었다. 그는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를 바라보며, 한동안 우울하게 그녀만을 생각하였다. 기차는 물론 그 사이에도 아침 햇살이 내려쬐는 산과 산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흙 한 덩어리

 

오스미는 그후 3, 4년간 묵묵히 고생을 감내하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한창때의 말과 똑같은 멍에를 짊어진 늙은 말이 겪는 고생이었다. […] 보이지 않는 채찍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그녀를 위협하였다.

 

오스미는 손자의 자는 얼굴을 보던 중에, 점점 그녀 자신이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또 그녀와 악연을 맺은 아들 니타로와 며느리 오다미도 딱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순식간에 9년간의 미움과 화를 흘려보냈다. 아니, 그녀를 위로하던 장래의 행복조차 흘려보냈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딱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단 한 사람, 끝내 살아남은 치욕을 당한 그녀 자신은 가장 불쌍한 인간이었다.

 

세 개의 창

 

말하지 않아 슬픔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슬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이 깊은 슬픔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니, 그 슬픔은 그저 두 눈빛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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