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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서머셋 몸 단편선 | 서머셋 몸

2020. 12. 23.
서머셋 몸 단편선

서머셋 몸 단편선

윌리엄 서머싯 몸

의과대학을 졸업했느아 의료활동을 포기한 채 수많은 단편들을 발표하여 명성을 떨친 서머셋 몸 작품집!

대중성을 존중한 서머셋 몸 작품의 특색은 단순한 문체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나가면서 독자를 매혹시키는 동시에, 인간이란 복잡하고 불가해한 존재라는 것을 날카롭게 묘사하는 점에 있다. 통속적 흥미에다 오묘한 구성과 풍자성까지 가미되어 작가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들을 실었다.

 

 

척척박사

 

막스 켈라다란 사람을 알기도 전에, 나는 도저히 그와 친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14일 동안이나(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코하마까지 가는 길이었다) 한 방을 나눠 써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낙심천만인데다가, 상대방의 이름이 스미스나 브라운이었다면 그토록 당황하지는 않았으리라.

 

자기가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의심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는 언제나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편지

 

“제아무리 점잔을 뺀다 해도 여자에게는 어떠한 무서운 잔학성이 숨어 있을는지도 몰라.”

 

약속

 

나는 누구나가 똑같은 얼굴로 보이는 짙은 화장을 한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인이 분가루, 볼연지, 입술연지를 발라 그 표정에 싱싱한 맛을 가시게 하거나 개성을 모호하게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애인에게는 성실하지 않았던 그녀도 친구에게는 충실했다. 따라서 설사 그녀가 어떠한 짓을 저질러도, 그녀는 퍽 좋은 사람이라는 것 이외의 비평은 허락치 않는 친구가 언제나 몇몇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솔직함과 고결함과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결코 위선자는 아니었고, 관대하고 성실했다.

 

신분이 높은 부인들이 일단 그 신용을 잃으면, 종교는 고리타분하고 해서 예술에 관심을 나타내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게 되면, 그녀들은 작가, 화가, 음악가의 사회에 몸을 드러내는 수가 많다.

 

지금 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고, 사랑의 세계에선 현재만이 문제니까요.

 

“그 사람이 요구하지도 않는데도 당신 쪽에서 그 약속을 이행하시려는 겁니까?”

그녀는 그 길고 가느다란 손을 조금 움직였는데, 그때 그 거므스레 빛나는 에메랄드 빛깔에 웬지 불길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그거야 물론 지켜야죠. 누구나 신사답게 행동해야 하니까요.

 

삼십육계 줄행랑

 

여자가 일단 남자와 결혼하려고 결심했다면, 그 남자는 즉시 삼십육계를 놓지 않는 한 자기를 구해 내지 못한다고 나는 항상 확신해 왔다

 

 

그를 보고 첫눈에 느낀 점은 무슨 억압된 불덩어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강렬한 인상일 뿐만 아니라 막연한 불안마저 느끼게 했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에는 그들에겐 죄의식이란 전혀 없었으니까요. 계명(戒命) 따윈 하나하나 모조리 범하고 있으면서도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 겁니다. 역시 저의 일 중에서도 이 점이 가장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즉 원주민들에게 죄의식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이 말입니다.”

 

“처녀가 가슴을 드러내 보이거나 남자가 바지를 입지 않는 것도 모두 죄악이라고 저는 가르쳐 주었지요.”

“어떻게요?” 맥파일 박사는 다소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벌금을 정했지요. 두말할 필요 없이 자신의 행동이 죄악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걸 저지른 직후에 즉각적으로 형벌을 내리는 일입니다.”

 

“카드라도 가지고 올까?” 하고 맥파일 박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맥파일 부인은 ‘글쎄요’ 하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데이빗슨 부부와의 대화가 어쩐지 그녀를 좀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드놀이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언제 그들이 들어올지 모르니까요’라고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맥파일 박사가 일어나서 가져왔다. 그리고 그가 혼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그녀는 막연히 죄의식을 느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서글픈 정욕.

 

악습이 불가피하다면 제일 좋은 방법은 그걸 일정한 곳에 집결시켜 단속한다는 겁니다.

 

맥파일 박사는 빗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내리는 영국의 비와 다르다. 무자비하고 웬지 무시무시한 느낌마저도 느끼게 하였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원시적 자연력이 지니는 적의(敵意)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과연 옳은 일이냐 하는 점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럼 가령 다리에 탈저정(脫疽塞)이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절단하는 게 좋은데도 불구하고 우물쭈물 말을 못하는 사람을 당신은 참을 수 있단 말이오?”

“탈저정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의 문제이니까요.”

“그럼 죄악은?”

 

“전 박사님을 매우 존경합니다. 그런데 당신에게서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 몹시 가슴 아프군요.”

“아니예요.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여간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저 따위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으실 테죠” 하고 맥파일 박사가 대꾸했다.

 

최후의 심판

 

“만약 하느님이 악을 미리 막을 수 없다면 전능이 못 되고, 또 막을 수도 있는데 그럴 의사가 없다면 전선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러한 논쟁은 전지(全知)의 신으로서는 물론 처음 당하여 생각하기를 언제나 거절해 왔던 것이다. 사실 하느님은 모르는 것이 없었으나 이 문제에 대한 대답만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느님이라 할지라도 2에 2를 더하여 5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때때로 생각하지만, 별이 길가 개울의 흙탕물 속에 그 빛을 반사할 때만큼 아름답게 빛난 적은 없다.”하고 불멸의 신은 말했다.

그러나 세 명의 유령은 아직도 하느님 앞에 서 있었는데, 자기들의 불행한 이야기를 깡그리 해버렸으므로 어쩐지 만족스러운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괴로운 악전고투였으나 그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 불멸의 신은 그들을 완전히 절멸해 버린 것이었다.

 

“나는 가끔 기이한 생각이 드는데, 도대체 어째서 인간들은 내가 궤도를 벗어난 성관계를 그렇게 중요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좀더 주의하여 내가 만든 것을 이해해 준다면, 특히 이러한 인간적 약점에는 내가 언제나 동정을 기울여 왔다는 것쯤은 깨달을 만도 한데.”

 

메이휴

 

인간은 대체로 그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일생을 보내는 법이다. 숙명에 의하여 정해진 경우는 부득이하다고 단념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듯이 궤도 위를 달리는 전차와 다름없고, 재빠른 싸구려 자동차가 들락날락하면서 질주하거나, 확 트인 시골을 경쾌하게 가로질러 내닫거나 하는 것을 경멸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량한 시민이요, 선량한 남편이요, 선량한 부친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금을 부담하는 자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부담하는 이가 바로 그들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 따위는 없을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어쨌든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착각만은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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