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긋기/소설/희곡

일곱 해의 마지막

2021. 1. 11.
일곱 해의 마지막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써내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행은 원하는 대로 시를 쓸 수 없는 상황,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까지도 새롭게 배워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를 붙들려 하지만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시를 향한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개인을 내리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압도적이라면 그 마음은 끝내 좌절되고야 마는 걸까. 속수무책의 현실 앞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버려지지 않는 마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일곱 해의 마지막』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한 명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어두운 한 시절을 통과해온 끝에 마침내 김연수가 내놓은 대답처럼 보인다.

 

1957년과 1958년 사이

 

1957년의 포베다

 

벨라와 빅토르는 시인이다. […] 둘은 문학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랑은 존경의 마음과 소유의 욕망이 뒤엉킨 것이라 처음부터 폭발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의 열기와 빛은 점차 사라지리라는 예감이 있었다.

 

“인민의 적이라면 악의 제국이자 파탄이 난 지상 지옥 미국으로 쫓겨나야지, 왜 아름다운 어머니의 땅 시베리아로 가겠소?”

 

조선? 작가동맹? 그런 곳에도 동맹씩이나 할 작가가 있는 모양이지?”

[…]

먼저 작은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고, 그다음에 말벌들이 몰려와 독침을 쏘았다는 거지.”

[…]

“프로펠러 정찰기가 먼저 오고, 그다음에 폭격기가 몰려왔다는 뜻이야.”

[…]

“그게 시네. 독침을 쏘는 말벌이 하늘을 가득 뒤덮은 풍경. 그 나라에 적어도 시인이 한 명은 있는 셈이네.”

 

1958년의 기린

 

기행은 시인이다.

 

기린아,

아프리카의 기린아,

[…]

네 목에 깃발을 달아보자

붉은 깃발을 달아보자,

 

“우리나라에 있는 곰이나 범을 두고, 왜 머나먼 아프리카의 기린을 끌고 와 붉은 깃발을 다느냔 말이오?”

[…]

“아직도 순수문학의 잔재가 남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이해하지 못하니 안타깝소. […] 이 시에는 주체적인 우리의 생활, 우리의 감정이 없소. 주체적으로 시를 창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아프리카의 기린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겠소.”

아무리 노죽을 부려도 퇴짜를 놓는 여인 앞에 선 구혼자처럼 기행은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기린을 생각했다. […] 그때까지도 기행은 기린을 생각했다. 붉은 깃발을 목에 매단 기린이 그의 눈에 보였다. 엄종석이 옳았다. 기린에게는 붉은 깃발을 다는 게 아니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1957년의 파라다이스

 

벨라는 여행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기행의 노트를 떠올렸다. 서양식대로 페이지를 넘기면 결말부터 읽게 된다는, 세로로 써내려간, 동양의 글자들. 인생을 거꾸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장차 시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네크라소프의 시를 읽는다면? 얘는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급우와 대화를 나눈다면? 그렇다면 원래보다 더 슬플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하긴 할 것이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과거는 잘 알고 있으니, 오로지 현재에만, 지금 이 순간에만.

 

1958년의 시바이

 

「송아지」란 시를 두고송아지의 이 고독한 심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고독입니까?’라고 되묻더군. 시인이 엄마 잃은 송아지가 외로워 보인다는 말도 할 수 없다니, 이거야말로 정말 고독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나.”

 

“외로움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니까 그럴 수밖에. 외로워봐야 육친의 따스함을 아는 법인데, 이 사회는 늘 기쁘고 즐겁고 벅찬 상태만 노래하라고 하지. 그게 아니면 분노하고 증오하고 저주해야 하고. 어쨌든 늘 조증의 상태로 지내야만 하니 외로움이 뭔지 고독이 뭔지 알지 못하겠지. […]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슬픔을 모르는 인간, 고독할 겨를이 없는 인간, 그게 바로 당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형인가봐. 그러니 나도 웃을 수밖에.”

 

인간의 실존이란 물과 같은 것이고, 그것은 흐름이라서 인연과 조건에 따라 때로는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며 때로는 호수와 폭포수가 되는 것인데, 그 모두를 하나로 뭉뚱그려 늘 기뻐하라, 벅찬 인간이 되어라, 투쟁하라, 하면 그게 가능할까?”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시바이(芝居, 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다면 남고, 못한다면 떠나라. 결국 남은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그러게. 나는 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을까?”

그건 어쩌면 불행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언제나 불행에 끌렸다.

 

 

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이제는 자네가 자네의 시보다 더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해.”

 

1957년의 수치심

 

나는 후회하지 않아,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처음으로 너를 찾아갔을 때, 나는 너를 믿었지만, 고요히, 고요히 흔들리며 흘러가는 볼가여

너는 결코 잠들지 않는구나. 밤과 낮, 어둠과 빛,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도 너는 쉬지 않는구나.

눈과 코와 귀와 혀가 모두 떨어져나간 슬픈 역사의 몸으로.

- 벨라

 

이제 인생은 매사에 벨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생의 질문이란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했다. 어쩔 수 없어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그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1958년의 옥심

 

그땐 다들 그랬다. 모두가 모두의 선의를 믿었다.

 

1957년의 모닥불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력사가 있다

 

1958년의 스푸트니크 2호 우표

 

당은 생각하고 문학은 받아쓴다는 것. 그러자면 쓰는 동안에는 생각하지 말아야만 했는데, 기행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비판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자아가 너무 많았다. 그 자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창작 부진의 작가들을 위한 자백위원회

 

스탈린 거리와 점점 지워지는 소설가

 

팔 년이란 얼마나 짧은 시간일까. 또 얼마나 긴 시간일까. 조국이 해방될 때 기행은 서른네 살이었다. […]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모두가 땀흘려 일해 얻은 바를 즐거이 나누는 새 세상에 대한 꿈으로 그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러나 그 환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여름, 그는 폐허 위에서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잔해에서 쓸 만한 벽돌을 골라내는 법, 경사진 철로를 따라 밀차를 밀고 가는 법, 물을 많이 마시지 않고도 탈수를 피하는 법…… 그리고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까지도.

 

이런 날 안주 삼아 소주 마시면 좀 좋겠나?”라고 말했다. 그 무렵, (소설가 상허)는 집필을 금지당한 채 사실상 가택연금에 처해져 있었기에 […]

기행은 대답을 망설였다. 당시에는 그와 만나기만 해도 사상을 의심받던 시절이었다. 마치 단 한 번의 접촉만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여기듯이. 그러는 동안에도 눈은 그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신발 위에 내려 쌓였다. 그는 그 거리에서 곧 지워질 것처럼 보였다.

 

쥐바고 박사가 피워 올린 작은 불꽃

 

“이런 세상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나쁜 짓이 아닙니까? (옥심)는 지금 혼자서 살아보겠다고 집에서 나와 있는 거예요. 그게 최선이라는 엄마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그건 내가 자백위원회에 소환됐기 때문이오. 적어도 무엇을 자백해야만 하는지는 알아야겠기에.” “자백위원회가 그런 곳은 아닐 텐데요. 아는 것을 자백하라고 강요하는 곳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르는 걸 자백하라고 하는 곳이지.”

 

시대의 눈보라 앞에 시는 그저 나약한 촛불에 지나지 않는다. 눈보라는 산문이며, 산문은 교시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의 말은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산문이다. 준엄하고 매섭고 치밀하다. 하지만 시는 말하지 않는다. 시의 할일은 눈보라 속에서도 그 불꽃을 피워 올리는 데까지다. 잠시나마 타오르는 불꽃을 통해 시의 언어는 먼 미래의 독자에게 옮겨붙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죄와 벌

 

기행은 좀 변했다. 마흔 살이 지나면서부터 만사가 허무해졌고, 술이 늘었다. 따져보니 인생은 전반적으로 실패였다. 원했던 삶이 있었는데, 모두 이루지 못했다. 시인으로 기억되지도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도 못했으며, 시골 학교의 선생이 되지도 못했다.

 

또 서울이나 평양처럼 큰 도시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풍경을 떠올렸지. 그랬더니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 그때에도 보름이면 이 세상은 달빛으로 가득차지 않겠나? 달이야 거기 사람이 있든 없든 찼다가 이지러지는 그 자연의 법칙을 반복하겠지. 그런 무심한 것이 자연이라는 것도 모르고 인간들은 거기에 정을 둔단 말이지. 마치 해와 달이 자기 인생을 구원해주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하지만 해와 달은 그 누구의 인생도 구원하지 않아. 우리도 그런 자연을 닮아 노래는 들리는 대로 들으면 되고, 춤은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 거지, 좋으니 나쁘니 마음을 쏟았다 뺏었다 할 필요는 없었던 거야.”

 

해와 달의 이야기를 할 때, 상허의 얼굴에서 잠시나마 표정이 사라졌다. 기행은 그 무표정이 반가웠다. 잘 모를 때는 그 무표정이 까끈한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여겼으나 상허가 조금 이상해지고 난 뒤부터는 그게 얼마나 인간적인 표정인지를 기행은 알게 됐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상허의 말처럼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볼 뿐 거기에 뭔가를 더 덧붙이지 않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전쟁이 멈춘 뒤 몇 년 동안 계속된 사상 검토의 잔인함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건 매일 오전 일과 시간이 시작되기 전이나, 오후부터 밤까지 사람을 단상에 세워놓고 스스로 가장 믿어 의심치 않는 바로 그 점을 부인할 때까지 자백을 강요하는 일이었다.

 

그는 담찬 표정으로 자신이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 소비에트 사회를 얼마나 지지했는지, 새로 탄생한 인민공화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했다. 하지만 자백위원회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고백이 아니라 자백을 원했다. 그러면서도 자백과 고백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자백을 하라는 말에 상허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자백위원회의 무대에서 침묵은 유죄의 간접적 증거였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고 말했던 친구가 누구였지? 그땐 다들 그 친구를 불쌍히 여겼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해방이 되기 전에 요절한 그이가 가장 행복했구나. 상허는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웃집 할머니에게 부탁해 암탉 한 마리를 잡아달라고 했다.

[…]

“차마 내가 기르던 걸 못 찌르겠어요라고 했다고. 그러면서 상허는 돌이켜 생각하니, 눈물겹다고 했다. 돈은 받았으되 기르던 닭을 찌르지는 못하는 처지. 차마 아무것도 못하는 처지.

그런 게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이지.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아직 식지 않은 빵과 당나귀와 카자흐 여인들

 

그 작은 역 주변은 낮은 언덕들이 부드럽게 융기하며 계속 이어질 뿐, 시선이 가닿는 끝까지 광활한 초원이었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의 초원은 인간을 윽박지르지도 어르지도 않건만, 거기서 한 해를 보낸 사람들은 초원 생활이 혹독하다고도 말했고, 풍요롭다고도 말했다. 거기서 살아가려면 초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있는 그대로. 그것은 혹독함과 풍요로움이 같은 상태를 뜻한다는 걸 이해하는 일이었다.

 

“아빠는 늘 우리 남매들에게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생명의 법칙은 그렇지가 않다고. 그러니 생명의 힘, 인간의 힘을 믿으라고. 그 힘은 살려는 힘, 살리려는 힘이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대신에 저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그랬더니 아빠는 힘없는 목소리로, 빵이 식을세라 모포에 감싼 채 당나귀에 싣고 온 카자흐 여인들을 잊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 모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건 그런 인민들의 힘이라며. 그 말을 듣고 저는 아이 때로 돌아간 것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믿을 수 없어요, 아빠, 다 거짓말이에요, 라고.”

 

1936년 겨울, 서울 계동의 난향

 

“그렇다면 왜 쓰지 않는 겁니까?”

 

기행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옆에 앉은 한 시인과 눈이 마주쳤다. 해방 전 평양 시내의 다방에서 자주 봤던 얼굴이었다. 둘은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마주봤다. 옛날만큼 쓰지 못하는 것은 기행이나 그 시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둘은 다시 서로를 외면했다.

 

막다른 골목 끝, 불타는 집

 

 

우리가 알던 세상의 끝

 

지옥의 탈출구, 완전한 패배

 

바람이 불면 빛과 그늘의 경계가 흔들렸다. 그늘은, 빛이 있어 그늘이었다. 지금 그늘 속에 있다는 건,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에게 그 빛이 아직 도달하지 않았을 뿐.

 

“스탈린그라드가 자랑할 것은 전쟁의 기억이 아니라 볼가강입니다. 그 도시는 볼가의 것이지, 스탈린의 것이 아니에요.”

 

“그 도시에도 강이 흐르나요? 그렇다면 그 강은 한번 보고 싶군요. 여기 평양도 마찬가지지만, 도시의 강은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옵니다. 거기 늘 흐르는 강은,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사라진 것들을 떠올리게 하니까.”

 

“조선의 스탈린그라드라는 말은 그런 뜻이었군요. 하지만 스탈린그라드는 영웅 도시일 수 없어요. 비통의 도시지. 저는 세상의 어떤 도시도 스탈린그라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영화 <스탈린그라드의 격전>

마지막 장면을 좋아해요.”

“마지막에 나치 지휘관인 프리드리히 파울루스가 붉은 군대에 항복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영화 전체가 악몽과도 같은데, 그 장면에서 영화는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는 듯하죠. 그게 바로 패배의 미덕인데, 파울루스는 그걸 아는 듯한 표정이지요. 지옥의 탈출구를 발견한 사람의 표정이랄까요.”

지옥의 탈출구?”

그러니까, 완전한 패배 말이에요.”

 

전쟁이 끝나자 지옥보다 더 나쁜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지옥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이었다. 그런 삶에도 탈출구가 있는 것일까?

 

이제 그 상을 더이상 스탈린상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소련연방상으로 이름을 바꿨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아무리 혹독한 시절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사전에서세상의 뜻풀이는 이렇게 고쳐야 해요. 영원한 것은 없는 곳이라고.”

 

메디나충증 박멸의 교훈

 

흰돌 동무와 에하라 노하라 상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

 

그 시절의 새벽, 기행의 이웃들은 아직 푸릇푸릇한 기운이 감도는 대동강 변을 따라 하염없이 걷거나 제자리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거의 매일 목격했다. […] 꽉 막힌 세계 속에서 오갈 데 없이 헤매는 기행의 비판받는 자아들처럼.

 

아이고, 좀 들여보내주세요.

 

꼽추 잠자듯이, 눈 꼭 감고

 

“잘 지냈습니까?”

꼽추 잠자듯이 지냈지.”

[…]

“꼽추가 바로 누우면 등 배기고 모로 누우면 팔 저릴 텐데, 그럼 힘들게 지냈다는 뜻인 게요?”

에이, 꼽추가 어디 그러고 잔다던가?”

그럼 서서 자요? 어떻게 자요?”

눈을 감고 자지. 꼽추 잠자듯이, 눈 꼭 감고, 뭐 그렇게 지냈지. 우리 흰돌 동무도 눈 꼭 감고 살면 좋을 텐데……”

 

구두 불쌍해서 모자와 바꿔 신소.

벌써 내 머리는 구두를 썼을 테니

이것을 웃으신다면 웃는 당신 내 웃지

 

석양이 붉은 뜻을 오늘이야 알았노라.

미친놈 다 돼가는 나를 볼 면목 없어

저 응당 미안한지라 얼굴 붉어짐이지

 

눈 치우는 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눈이 쏟아지며 무채색의 고요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묵음과 무채색, 그것은 그즈음 기행의 내면 풍경과 같았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찾을 길이 없는 비애뿐이었다.

 

내가 열매가 속히 달리도록 너희들에게 과업을 주었으니 그걸 지키지 않을 시에는 가만두지 않겠다 운운하면서 말이야.”

[…]

그러고는 득의양양해서 가만히 사과나무들을 바라보는데, 어쩐 일인지 점차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과나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거야. 그제야 열매를 맺지 못한 책임은 사과나무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걸, 그래서 지금까지 한 비판은 모두 자신의 자아에게 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거지. 생각해보게나, 티호노프가 자기 자아를 앞에 세워두고 바라보는 모습을.”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었군요.”

그렇지. 하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먹겠는가?”

기행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해도 병도는 틀렸다고 할 것 같았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안 열린다면, 사과가 열매를 맺었다고 쓰면 되는 거야. 알겠어? 그게 바로 창조의 원리거든. 그걸 잘 알아야 해. 우리 문학가들은 창조자들이야. 당이 원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만들어내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하는 문학이야. 알겠어? 자네는 시로 그 힘을 보여야 해.

 

“내가 자네한테 항상 말했지. 감상적 허약함에서 벗어나라고. 시대는 이제 새로운 인간형을 원하고 있어. 그런 인간형을 창조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작가들이야! 우리는 위대한 창조자들이야. 나는 전형을 만들어간다네.”

 

병도가 말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가무락조개, 나줏손, 귀신불, 이랑 같은 것들

 

그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 말들로 남아 있었다.

저 역시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제 안에서 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음식 이름들, 옛 지명들, 사투리들…… 폐허에 굴러다니는 벽돌 조각들처럼 단어들은 점점 부서지고 있어요.”

그 위에 새로운 사회주의 공화국의 시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새로운 시들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벽체를 올려 아파트를 건설하듯이 한정된 단어와 판에 박힌 표현만으로 쓰였다.

 

그들은 기행에게 어렵게 쓰지 말라고, 개성을 발휘하지 말라고, 문체에 공을 들이지 말라고 충고했다.

 

“숲이 비어 있는 것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고, 폐허가 꽉 차 있는 것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지요. 저는 모든 폐허에서 한때의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시를 씁니다. 괴링이 이끄는 독일 폭격기가 육백 대나 날아와 포탄을 쏟아부었을 때, 스탈린그라드는 영원히 불타는 줄 알았어요.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죠. 밤은 낮처럼, 낮은 밤처럼. 물은 불처럼, 불은 물처럼. 악은 선이 되고, 선은 악이 됐죠. 그게 바로 전쟁, 지옥의 풍경이에요. 그렇게 몇 달 뒤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불이 꺼졌을 때, 도시는 완전한 폐허가 됐죠. 그 폐허를 응시하는 일이 시인의 일이잖아요?”

 

전쟁은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일이지만, 그 대가는 절대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 전 죽음에, 전쟁에, 상처에 책임감을 느껴요.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무아를 향한 공무 여행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묻는 기행에게 이천육백 년 전의 시인이 대답했다. 그 까닭은 우리가 무쇠 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시대에 좌절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운명에 불행해지고 병들더라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고.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완전히 다른 의 마지막 기회

 

해가 바뀌어 기행은 이제 마흔아홉 살이 됐다. 공자가 천명을 알았다는 나이가 눈앞이었지만, 그가 알게 된 것은 전보다 마음이 덜 부대낀다는 것. 늙은 몸은 쉬 피로해졌기에 마음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덕분에 마흔아홉 살의 시련은 몸이 독차지했다

 

체코의 공산주의자 율리우스 푸치크 <교수대 앞에서의 말>

 

어느 날 보안서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그를 체포했다.

전등 불빛으로 환한 대기실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확인하던 그때, 율리우스 푸치크의 글이 그를 위로했다. 푸치크는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면서도 글을 썼다.

[…] 기행은 그 단호함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지만, 세상에 그런 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큰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

 

‘현실 속에는 관객이 없다. 마지막 막이 오른다. 사람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랑했다. 깨어 있어주기를!’

 

미역오리같이, 굴껍지처럼

 

그때는 그랬다. 그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따뜻한 것들로, 좋아하는 것들로, 다정한 것들로. 이를테면 잘 길들여진 돼지처럼 순하고, 남국의 산록같이 보드라운 것들로.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두 겹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사랑이 있다면 그 뒷면에는 미움이 있고 즐거움과 괴로움은 서로 붙은 한몸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를 때였다.

 

‘녯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녯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라고 시를 쓰면서도 기행은 그의 말을 믿었다. 철석같이.

 

혜산은 봉우리 너머에

 

1935 3이라는 날짜만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기행의 내면에서 팽팽하게 유지돼오던 뭔가가 툭 하고 끊어져버렸다. 이 날짜만 그대로 두고 책에 실린 자음과 모음을 해체해 다시 조립한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누가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행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를 떠날 수 없었다.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 자신만의 그 세계를.

 

전쟁의 광기로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원한 그 언어와 문자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기행은 궁금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인가, 당의 것인가? 인민들의 것인가? 아니면 수령의 것인가?

 

수령이 문학에서 낡은 사상 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라고 교시를 내린 뒤, 전국의 도서관과 도서실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이 소장중인 책들 가운데 반당 반혁명 작가의 책들을 회수해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거기서 불타는 한 권 한 권은 저마다 하나의 세계였다. 당연히 서로의 주장은 엇갈리고, 지향점은 다르고, 문체는 제각각이다. 그렇게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현실은 그 무수한 세계가 결합된 곳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또 추악한 세계가 있다. 협잡이 판치는 세계가 있고, 단아하고 성실한 세계가 있다. 어떤 세계는 지옥에, 또 어떤 세계는 천국에 가깝다. 이 모든 세계가 모여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실 전체가 몰락하는 것이다.

 

수많은 세계를 불태우고 남은 단 하나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들의 현실은 한없이 쪼그라들다가 스스로 멸망하리라. 언어와 문자는 언어와 문자 자신의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리얼리즘이란, 그런 언어와 문자가 스스로 실현되는 현실을 말한다. 거기에는 당과 수령은 물론이거니와 기행의 자리마저도 없는 것이다.

 

그 밤과 마음

 

“그래서 삼수까지 오신 게 아닙니까?”

[…]

“그 시에 이미 쓰시지 않았습니까?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정말 시인 백석 선생님이 아니십니까?”

아니오, 아니오.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됩니다.”

 

그건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리는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이라면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이런 세상이 나타난 것일까? 자신은 다만 시를 한 편 들었을 뿐인데…… 그나마 오래전 자신이 쓴 시였는데…… 기행은 가만히 서서 푹푹 나리는 눈을 맞으며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대는 흰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관평의 양

 

아침이 되어 재를 치우느라고 난로 아래쪽의 재받이통을 꺼내자 타버린 종잇조각들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손끝으로 집어들어 살펴보니 글자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비비니 종이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져 먼지처럼 흘러내렸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기행은 무척 기뻤다. 자신이 쓴 글자들이 강철이나 바위 같은 것이 아니라 사그라드는 불씨에도 쉽게 타버려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들이어서.

 

하얼빈에 소련군이 들어오자 백계러시아인들 중에는 자살자가 속출했다더군. 지금 생각하면 그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선택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지 싶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니까. 죽음을 선택하는 게 삶이라니까 이상하게 들리는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쓰고 나니 비로소 기행은 살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세상, 나도 없는 세상을 훤히 비추는 달빛에 대한 이야기. […] 그는 비로소 알게 됐다.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그 빛은 영원하리라는 것을.

 

You, still alive, or a ghost

 

“왜 그랬답니까?”

끔찍한 말들을 듣다가 기행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자 영감들이 혀를 찼다.

이 아바이, 인생 헛살았네. ‘?’라는 건 소학교에서나 모르는 게 있을 때 손들고 선생님한테 묻는 거지, 인간사에다 대고 왜가 어딨어?”

 

어른들에겐 타인의 불행과 병만큼 재미난 장난감이 없었다. 그게 무쇠 세기를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당신, 아직 살아 있는 건가요, 아니면 유령입니까? 난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영어, 할 줄 아시오?”

. 고향의 교회에서 배웠습니다. 미국에서 온 교회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신 노래를 밤새 들었어요. 굿 나잇, 아이린. 굿 나잇, 아이린.”

내 노래가 아닙니다. 당신 노래지.”

내 노래라고?”

. 당신 노래. 그 겨울 내내 얼어 있다가 봄이 되자 노래가 녹았고, 골짜기마다 울려퍼졌어요. 굿 나잇, 아이린. 굿 나잇, 아이린.”

봄이 올 때까지 노래가 얼어 있었다고?”

. 당신 노래. 얼어 있던 노래. 봄이 올 때까지.”

당신 노래, 당신 노래라고 말하는데, 그럼 나는 누구요?”

당신, 이미 죽은 사람.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으니까. 하지만 봄에 내가 분명히 들었어. 당신의 노래.”

 

서희가 사람들로 북적대는 혜산역 대합실 한켠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선한 표정으로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고 시를 읊조리기 시작하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 순간, 자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 시의 한 음절 한 음절이 어떻게 자신의 귀에 와 박혔는지, 그리고 이제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아름다운 언어가 어떻게 쇠도끼 날처럼 자신의 머리통을 내리쳤는지. 그래서 어떻게 자신과 시를 둘로 쪼개놓았는지. 이제 시는 자신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불행과 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한참 걷던 기행은 문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러자 눈보라가 그를 뒤흔들었다. 기행은 지금 그렇게 가만히 서 있다.

 

오체르크, <눈 깊은 혁명의 요람에서> (초고)

 

몽롱하고 혼돈한 천계가 한 반쯤 열린다. 그러자 백은빛 눈부신 능선의 한 부분이 드러난다. 거룩하신 백두의 체용이 조금 드러난 것이다. […] 높으시매 이렇듯 우러르기 어려운 것인가. 거룩하시매 이렇듯 절 드리기 수월치 않은 것인가.

 

작고 가볍고 하얀 꿈 세 가지

 

인생은 우리에게 왜 이다지도 혹독한 것인지. 우리의 삶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러자 기행이 말했다.

그래도 꿈이 있어 우리의 혹독한 인생은 간신히 버틸 만하지. 이따금 자작나무 사이를 거닐며 내 소박한 꿈들을 생각해. 입김을 불면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작고 가볍고 하얀 꿈들이지.”

 

 

일곱 해의 마지막

 

1963년 여름, 삼수

 

이 세상에 태어나 어른들이나 책에서 배운 바와 마찬가지로 그 밤에도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가 믿는 것과, 그 믿음에도 불구하고 기나긴 밤 안에서 그가 죽게 되는 것을 생각했다. 그때에도 기나긴 밤, 깊은 어둠은 무심하게도 계속 흘러가겠지.

 

녹손의 피습 소식을 읽고 함흥의 병실까지 찾아갔을 때, 병도는 굳은 표정으로내가 붓을 가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는 그 붓으로 세상의 권력에 맞설 수 있다고 믿었고, 그때는 기행도 그 말에 동의했다. 자신들이 언어를 쓴다고만 생각했지, 자신들 역시 언어에 의해 쓰이는 운명이라는 것을 모를 때의 일이었다.

 

화전민들이 개간하기 위해 피우는 불이 땅속 뿌리로 타들어가는 지불이라면, 그래서 석 달 열흘씩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보이지 않는 불이라면, 천불은 저절로 생겨나 순식간에 숲 전체를 활활 태우며 나무들을 서 있는 숯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 불을 보고 두메의 화전민들은 생을 향한 어떤 뜨거움을, 어떤 느꺼움을 느낀다고 했다. 불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살길이 열리는 것이기에. 천불을 바라보며 흥분한 청년 옆에 서 있자니 기행의 가슴도 은은하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때 골짜기로 사이렌의 고고성이 울려퍼지며 잠든 마을이 깨어났다. 그때까지도 기행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천불에 휩싸여 선 채로 타오르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의 말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백석은 1996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제 나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된 그를 본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