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긋기/소설/희곡

우물과 탄광 | 진 필립스

2021. 1. 24.
우물과 탄광

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저/조혜연

“어떤 여자가 우물 안으로 아기를 던져버렸어.”

하얀 목화밭과 검은 광산이 공존하는 1930년대 미국의 탄광 마을우물물처럼 잔잔한 한 가족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 미스터리,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향하는 독보적인 사랑과 진심의 드라마.

 

 

1 물의 부름

 

테스

 

그 물소리는 아기가 수면에 부딪혔다기보단 우물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았다. 자신 안에 끔찍한 뭔가가 떨어진 사실을 알고 놀라고 당황해 소리를 내지르듯. 내게 도움이라도 요청하듯.

 

앨버트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있다면 어둠 속을 불빛으로 비춰보는 일이었다. 나는 어둠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니, 어둠에 찌들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팔꿈치 주름과 손금 사이사이 그리고 손톱 밑마다 지워지지도 않는 새카만 자국이 들러붙어 있었다. 늘 목구멍 저 밑에서부터 어둠의 맛이 느껴졌고, 한밤중이면 기침을 해대며 그 어둠을 뱉어내곤 했다.

 

테스

 

나는 우물이 그리웠다. 우리집은 아무리 잭이 아직 꼬맹이라고 해도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

어쨌든 잭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었다. 엄마는 정원 한쪽에 장미 덤불을 가꿔 공간을 마련했고, 버지 언니는 숲을 가로질러 혼자 멀리까지 산책을 가곤 했다. 아빠에게는 탄광이 있었다…… […] 내게는 우물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버지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는 우물 옆에 서서, 어떻게 하면 조금은 편히 살 수 있을지 고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까?

 

2 햇살

 

 

다만 아침에 집을 나선 아빠가 그날 저녁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만큼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가장이 되리라는 것도.

 

그후 아빠에게 급작스러운 사고나 비극적인 사건 같은 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어른들만큼 돈을 벌게 될 때까지 절벽의 낭떠러지에 선 듯한 그 느낌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리타

 

나는 천장등보단 스토브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일하는 게 더 좋았다. 이른 아침부터 전깃불을 켜면 눈이 부셨다. 하다못해 태양도 아침에는 잔잔하게 떠오르는데.

 

앨버트

 

테네시컴퍼니가 임대해준 땅 위에 작은 판잣집을 짓고 살며 아등바등 고생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봐온 나는 스스로 다짐했었다. 내 급여를 결정하는 강자들의 손에 내 식구와 가정이 휘둘리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남자라면 회사 소유가 아닌 자신의 땅에 가정을 이뤄야 하지 않겠는가. 곡식을 심고 몇 마리 가축이라도 키울 자기 땅이 있어야 파업을 해도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다.

 

먼지와 연기, 목재와 금속뿐인 이곳에서 초록이나 살아 있는 것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생명체라곤 인부들뿐이었지만 실은 그들도 커다란 기계의 일부였다.

 

테스

 

버지 언니는 옥수수수염 같은 금발이었고 아빠는 은빛, 엄마는 흙길 색깔 같은 머리칼이었지만, 내 머리칼은 석탄 색깔이었다.

 

버지

 

아빠가 다가가 테스의 머리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엄마와는 다른 아빠만의 방식으로 늘 그렇게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엄마는 손끝으로 우리를 토닥토닥 두드리거나 어루만졌지만 아빠는 그저 손 전체를 지그시 대고 있었다.

 

“그 아기는 날 편안하게 해주지 않는걸요. 오히려 슬프게 만들어요. 슬프게만.”

“나는 그 아기가 너한테 애착을 느끼고 있고, 너도 그렇다는 얘기를 하는 거야.” 고모가 테스에게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아기가 너한테 위안을 얻고 싶은 모양이구나.”

[…]

“우선 그 아기가 누군지부터 알아봐야겠지. 그리고 누가 우물 안으로 아기를 던졌는지 찾아보고, 그런 뒤 편히 잠들게 해줘야 할 것 같구나.”

 

앨버트

 

영리한 아이였다. 나는 이 아이를 절대 탄광 속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경영대 아니면 법대에 보내리라. 일주일 내내 손톱에 아무것도 묻히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토마토는 정말 행복한 열매 같아요, 그쵸 아빠?” 토마토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테스가 물었다. “아주 신나고 즐거운 열매예요. 레몬은 뾰로통하고 복숭아는 바람둥이 같은데.”

 

3 매미 허물

 

 

언제나 자연의 힘에 의해 그 모습이 결정되는 마을이었다. 자연은 우리가 석탄을 채굴해가는 대가로 바람, 불, 땅을 통해 이따금 인간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앨버트

 

보통 나는 여자들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리타는 리타다.

 

나는 조용히 담배를 절반 정도 피웠고 흔들의자에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 의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거기에 앉은 사람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느리지만 꾸준한 사람, 성급하고 변덕스러운 사람, 달팽이처럼 게으른 사람.

 

몇 년 전, 남자 다섯 명이 가스 폭발로 불에 타 사망했는데 발견된 시체들을 보니 하나같이 석탄처럼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흑인 여자와 백인 여자가 같은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나란히 서서 새카만 통나무처럼 변해버린 시신들 중 자신의 남편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의미하는 바가 많았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결국 흑인들에 대한 대우가 우리 자신들에 대한 대우이기도 했다. 흑인들이 낮은 임금을 받으면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흑인들을 함부로 해고하는 관리자들을 방관하면서 우리에겐 더 잘해줄 것을 요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지면 다 같이 좋아지고, 나빠지면 다 같이 나빠진다.

 

어차피 돈 한푼 주지 않아도 공짜로 일해줄 일꾼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

노예와 다름없이 부려지는 그 죄수들이 딱히 큰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곡식 한 자루를 훔쳤거나 만취해 집에 가는 길에 조금 시끄럽게 군 정도였다. 고작 그런 이유로 지하에 끌려가 등에 채찍을 맞으며 일하게 된 것이다. 다른 백인 인부들의 처지도 다를 바 없었지만 적어도 채찍을 맞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얘기들을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지붕 밑에 새로 생긴 벌집 하나가 보였다. 어쩌면 예전부터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테스

 

그런데 한편으론 우리가 이름과 엄마, 그리고 집과 인생을 되찾아주면 아기가 우물을 놓아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우물은 다시 내 것이 된다.

 

“왜 평범한 모습이 아닌데?”

“미친 여자일 테니까. 아주 사악하거나.”

“하지만 그녀가 늘 하는 게 그런 일일걸. 평범한 척하는 거.”

[…]

“미쳤거나 사악한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어.”

 

정말 그런 뜻은 아니었다. 가끔은 그럴 의도가 아닌데도 잘못된 농담이 튀어나올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 입은 머리보다 지나치게 빠를 때가 있다. “난 정말 진지하다고.”

 

버지

 

초급 문법 시간에 ‘바깥에outside’라는 단어를 전치사라고 배웠다. “그 공을 상자 바깥에 놓으시오”라는 문장처럼. 하지만 내가 살아온 이 동네에서 ‘바깥’이란 손으로 직접 만지고 느껴볼 수 있는 것, 즉 명사와 다름없었다.

 

“버지 무어.” 엘라가 분명하게 말했다. “칭찬을 들으면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봐. 누군가 너한테 영화배우를 해도 될 외모라고 말하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 되는 거야. 붉어진 얼굴로 멀뚱히 서 있지만 말고.”

 

테스

 

끔찍한 일을 겪고도 어떻게 잘 버텨내고 있느냐며 걱정하듯 물었지만 진심으로 내 눈을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떻게 아기를 꺼냈는지, 그리고 누가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지에만 관심을 보였다.

 

4 쓸모없는 슬레이트

 

앨버트

 

비가 테라스 위로 강하게 몰아쳤고 바닥을 때리는 빗방울은 물이라기보단 얼음 조각 같았다. 빗방울이 내 부츠에까지 튀었다. 어찌나 거센지 발치의 양동이마저 움푹 패게 할 기세였다. 양동이야 새로 지붕을 고치는 일에 비하면 한없이 쌌지만.

 

리타

 

우리의 몸무게에 둘의 고단함과 해야 할 일들과 내야 할 고지서들의 무게까지 더해졌는지 침대 매트리스가 안쪽으로 푹 꺼져버렸다.

 

“왠지 우리가 알고 지내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말이야.”

[…]

“쓸데없는 짓이야, 앨버트. 괜한 미움만 키울 뿐 얻을 게 없어요. 그냥 잊어요.”

[…]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그런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냐고.”

[…]

“그냥 잊어버리려고 하면 되잖아.”

[…]

“나도 잊으려고 매일같이 애쓰는데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지 마요.”

 

버지

 

아줌마는 한때 꽃무늬가 예쁘게 그려져 있던 원피스 주머니에서 옷핀을 꺼내 아이의 엉덩이 주변으로 천을 두르느라 애를 썼다. 그 얼굴에서 짜증 같은 감정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 리스트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자식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아줌마가 아기를 버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더는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거라고 말이다. […] 하지만 아기를 본 순간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부끄러웠다.

 

단순히 아이가 있다고 해서 혹은 집안에 아이들이 득실거린다고 해서 이성을 잃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 여태껏 롤라 아줌마는 내게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날 내가 아줌마의 집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향한 그 미소를 보기 전까지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블랙베리와 빵마저 없으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고 엄마와 아빠가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엄마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음식을 가져다줄 때면 블랙베리와 빵은 가져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엘렌이 나와 테스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단순히 찢어지게 가난한 것과 외부에서 온 타인이 적나라하게 지켜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5 조나

 

테스

 

“왜 깜둥이가 문 앞에 있는 거예요, 아빠? 난 깜둥이들이라면 질색인데.”

그때 아빠가 순식간에 잭을 휘어잡더니 뒤쪽으로 쾅하고 거칠게 밀어붙였다.

[…]

“사람을 혐오하는 말은 하는 게 아니야.” 턱이 떨릴 정도로 거칠게 잭을 흔들며 아빠가 말했다. “하느님은 그런 말을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엄마는 가끔 그랬다. 다친 곳을 어루만져주다가도 그 상처를 전보다 더 아프게 건드렸다. 엄마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지만 엄마의 실망한 모습을 보는 건 아빠에게 열두 번을 맞는 일보다, 심지어 벨트로 맞는 일보다 우리를 더 아프게 했다.

 

나는 우물에 아기를 버린 사람이 그냥 여자가 아니라 흑인 여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았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단정짓는 건 흑인들을 마을 한 구석에 떨어져 살게 하는 일만큼 비열한 짓 같기도 했다.

언니는 한동안 조용했다. “아빠가 석탄가루를 뒤집어쓰면 결국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했어. 흑인인지 백인인지 분간할 수 없다고.”

 

버지

 

아빠에게 선함이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아주 구체적인 것이었다. 석탄 암석처럼 단단하고 확실한 무엇. 무게를 달고 길이를 재보고 처음과 끝을 구분할 수도 있는 것. 아빠에게 누구든지 사람을 혐오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확실한 도덕적 관점은 아빠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원하고 기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실망할지를 알게 한다는 면에서 좋았다. 하지만 자신의 도덕적 관점이 확실한 대신 남의 도덕적 관점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와는 그 어떤 의견 조율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는 스스로에게 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다.

 

그런 식으로 친척들에게 받은 귀금속을 팔아 번 돈을 챙겨 테네시주로 도망갔다. 하지만 아빠는 화조차 내지 않았다. “사람은 뺏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기 위해 살아가는 거야”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빠는 남에게서 그 어떤 것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남과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

 

가끔 아빠와 엄마를 보면 석탄 대신 용광로에 들어가도 그 안에서 타버리는 대신 오히려 더 단단하고 강해져 절대 흔들림 없는 무언가가 될 것만 같았다.

 

앨버트

 

“그런 일을 한 여자라면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겁니다, 감독관님. 못된 여자가 아니고요. 죽은 자식을 데려가 착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우물에 던져버린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 사건이 말해주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감독관님 말씀대로 그 여자가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

 

“그 여자가 이번 생에서 삶을 포기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 자체가 무의미한데 그 작은 아기는 말할 것도 없었겠죠. 어쩌면 여자는 다음 생의 삶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도 아기의 작은 육신도 중요치 않은 그런 세상 말입니다.”

 

“제시 브릿지먼이 자살했다는 소식은 들었지?”

[…]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봐온 느낌이야. 그게 껍데기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껍데기를 까거나 깨서 그 안에 든 걸 보려는 시도도 안 했던 거지.”

 

버지

 

많이 배운 나이든 여자는 최악의 신붓감이라고 했다. 셀리아 고모는 남편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여자는 아무도 원치 않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 고모가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똑똑해지려고 애써봤자 인생에 크게 도움될 것도 없어.” 그 말에 왠지 모르게 화가 났었다. 내가 그 얘기를 전하자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멍청한 채로 지내봤자 그 역시 도움될 것도 없지.” 결국 나는 끝까지 노력해 복잡한 나눗셈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리타

 

“너나 너희 가족이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순간 버지와 테스가 옆에 있다면 세게 때려주고 싶었다. 비록 진실은 아니었지만 나는 롤라에게 누구도 널 별다르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롤라의 삶은 가난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불운하기 그지없는 힘든 삶을 그래도 남들처럼 잘 꾸려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버지

 

“버지 무어라,” 선생님이 말했다. “아기가 발견된 곳이 너희 집이구나?”

[…] “너무 끔찍한 일 아닌가요?”

그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끔찍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선생님이 생각하는 최악은 뭔데요?”

“글쎄.” 선생님이 말했다. “최악의 상황은 모르겠다만 아기가 혼자 남겨지는 것, 아무도 없이 완전히 혼자 남겨지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겠지. 적어도 그 아기는 좋은 사람들의 집에 남겨졌잖니. 진심으로 마음을 써주고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집에 말이다.”

 

“우리 가족은 그 아기의 이름을 알고 싶어요.”

선생님은 내가 그런 말을 할 줄 이미 알았다는 듯 반응했다. 우물에 빠진 아기를 발견한 여자아이들을 많이 만나보았고, 다들 매번 똑같은 말이라도 했다는 듯. “그래,” 선생님이 말했다. “바로 그거야.”

 

테스

 

이 세상이 잠시 들렸다 가는 곳이라는 설교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게 세상은 목련이나 초콜릿케이크, 아기 병아리와 같은 것들이 가득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어쩌면 목사님의 설교대로 세상은 증오와 위험이 넘치는 곳인데 나만 그 중요한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물의 여자를 통해 처음으로 깨달았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요정을 잡아먹는 주머니쥐가 목련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6 목화 따기

 

테스

 

“벌써 점심을 먹는 거야?”

[…]

“우린 밝을 때 시작해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우리는 각자 빵을 한 덩이씩만 가졌지만 그걸 반으로 잘라 나눠 먹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애들이 밥도 먹지 못하고 일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내가 이 빵을 먹으면서 죄책감까지 맛보지 않도록 사라줘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애들이 눈앞에서 없어지자 죄책감도 금방 사라졌다. […] 그렇게 다 먹어치우고 나자 마치 속쓰림처럼 죄책감이 다시 밀려왔다.

 

그런데 우리는 탤버트 아저씨네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나눠주지 않았다. 단순한 죄책감이라기보단 아주 간단한 일에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든다는 게 괴로웠다. 그러지 말아야 했지만 나는 그런 상황이 싫었다.

아기 사건이 있은 후로 세상의 퍼즐 조각이 예전처럼 잘 들어맞지 않았다.

 

“테스, 가정부한테 존댓말을 쓸 필요 없어. 우리는 그렇게 안 해.”

어른들에게 항상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아빠가 말해왔기 때문에 그건 무례한 일 같았다. 하지만 미시의 부모님은 흑인을 어른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었다. 두 부모님 중 어느 한쪽이 잘못된 말을 한 거라면 나는 당연히 그게 미시네 부모님임을 알겠지만 미시는 우리 부모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가정부에게 존댓말을 안 써도 괜찮을지 늘 혼란스러웠고, 그후로 그 집에 갈 때면 되도록 그녀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좀더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몰아붙이고 괴롭혔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무시했다.

 

앨버트

 

소녀들은 그 소년들이 자신들을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 갤러웨이의 흑인 인부들은 그 소녀들이 성매매를 하는 아이들이었고, 흑인과 성매매한 사실이 발각되자 난처해져 거짓말한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백인들은 소녀들이 정직했으며 소년들은 사형선고 받을 짓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늘 실제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점박이든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법이나 다른 규율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았다. 법이나 규율은 울타리를 치고 선을 규정하는데, 왜 그런 선 긋기가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선 안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 선 안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셈이었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차이.

 

7 이야기 지어내기

 

버지

 

“사랑에 빠진 남자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단다.”

 

테스

 

“나는 아는 사이 중에, 특히 가까운 사이 중엔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 가끔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의 묘지에 가지만 너무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잘 모르고.”

“음, 나는…… 가까운 사이 중에 죽은 사람은 많은데 묘지에 묻힌 사람은 없어.”

“그럼 어디에 묻는데?”

“묘지에 묻을 돈이 없으면 뒷마당에 묻지.” 그애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뒷마당에 세 명이나 묻었는걸.”

“세 명을 묻었다고?”

“응, 아기들. 둘은 태어날 때부터 죽어 있었어. 하나는 자다가 갑자기 죽었고.”

루 엘렌은 뒷마당에 아기를 묻는 게 별일 아니라는 듯 계속 발로 목화 자루를 찼다. 마치 죽음이 풀과 함께 자라고, 해와 함께 떠오르고, 우물물과 함께 올라오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8 우물의 여자

 

앨버트

 

수천 혹은 수백만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석탄은 이곳에 묻혀 우리를 기다렸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섬광과도 같은 순간에 불과했다. 스스로를 연료삼아 순식간에 불타올랐다가 잔재처럼 날아가 부서지고 그후엔 한줄기 따스한 연기로 홀연히 사라지는.

 

내가 항상 하는 생각은 남자와 석탄이 얼마나 비슷한가였다. 새카만 모습으로 땅속에 파묻혀 매일같이 단단해져가지만 언젠가는 조각조각 바스러질 운명. 나는 샤워장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이 열심히 캐고 있는 석탄과 같은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고.

 

테스

 

“슬로스 용광로에 가서 불꽃을 손으로 잡아볼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요.”

[…]

“꼬맹아, 그 근처에 갔다가는 손도 데고 몸에 불도 붙을 거야.”

“하지만 불꽃을 잡아보고 싶어요.”

 

“용광로에서 나오는 저 불꽃들은 바람을 타고 카본힐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날아가다 중간에 예쁜 굴뚝을 발견하면 황새가 알을 떨어뜨리듯 그 아래로 떨어져서 자신만의 더 큰 불꽃을 만드는 거예요.”

 

“테스, 내가 보기에 넌 종이랑 붓이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구나. 설령 말도 안 되는 그림이더라도 넌 그것만으로 참 행복하겠지.”

 

리타

 

나는 잭이 자면서 내는 소리들의 미세한 차이도 알아챘다. 그나마 낑낑대는 소리라도 내는 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보다 안심됐다.

조용히 누워 있는 잭을 보면서 다시는 아이에게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

 

테스

 

“주변에 아무도 없고 달빛만 비출 때 잠시 우리끼리 뒷마당을 차지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

“아마 모두가 잠들면 귀뚜라미들이 한데 모여 큰 밴드가 되어 연주하겠죠. 부엉이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자는 새들을 장난삼아 툭툭 건드려보겠죠. 땅에 툭 떨어지는지, 아니면 떨어지기 전에 깨어나는지 보려고요.”

[…]

“네 상상 속 얘기들이 이토록 그리울 줄은 정말 몰랐구나.

 

9 커피와 저녁식사

 

 

우리에겐 과거를 펼쳐보고 그때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더듬어보는 일이 가장 재미있다. 서로가 기억의 빈자리를 메워주면서.

 

앨버트

 

흑인들만 거주하는 지역, 흑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식당, 마음 내키는 대로 흑인들을 연행해가는 경찰들…… 내가 그런 일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내 의지대로 하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일.

 

“남들의 시선이나 관습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감독관님.”

[…]

“저 말고 다른 흑인 인부들도 저녁식사에 초대할 건가요? 흑인과 백인이 같은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지사에게 편지라도 쓰게요?”

[…]

“감독관님은 정말 좋은 분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결코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리타가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리타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해시키려고 다투지만, 리타는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동의할 때까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돌이켜보면 그 방법이 내게도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다.

 

“굳게 결심한 일이라면 내일 커피라도 한잔 마시러 가겠습니다.”

“저녁식사는 왜 안 되는 건가? 커피나 저녁식사나 다를 바 없네.”

“다르다는 걸 아시잖아요.” 사실 그 차이를 알았다. 커피는 테라스에 앉아 마실 수 있었지만 저녁식사를 함께하려면 그가 우리집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우리와 한 식탁에 둘러앉는 건 분명 다른 일이었다.

 

버지

 

남자아이들과 농구 경기를 보러 가거나 잭의 병실을 지키는 일들을 겪으며 그 의문의 여자의 삶이 어둡고 끔찍했으리라는 것도 더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물 사건 자체가 좀더 평범하고 지루한 일로 느껴졌다.

 

“결혼이 비참하기만 한 건 아니란다.” 이모가 자신의 치마는 내버려둔 채 다시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무조건 이 탄광 마을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괜찮지. 하지만 네가 주변에서 봐온 결혼생활이 전부는 아니니 그것만으로 마음을 정하지는 마라.”

 

“세상에, 넌 의사도 될 수 있단다. 상원의원이 될 수도 있고.”

물론 이모의 말은 농담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살거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삶을 원치 않았다. 물론 지금 같은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에너지 한 방울까지 남편과 득실대는 아이들에게 바치고 나만의 즐거움이라곤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내게 남은 가장 큰 숙제는 대단한 그 무엇과 카본힐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삶을 찾아내는 거였다.

 

테스

 

“사람들한테 알리겠다는 거야?” 언니가 물었다.

“입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테스, 아줌마는 지금 정상이 아니야. 그저 아기를 그리워하는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크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알면 아줌마를 몹쓸 사람 취급하면서 수군댈 거야. 그래서 좋을 게 뭔데? 그냥 조용히 있자.”

 

리타

 

그가 조나를 좋아하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고, 내가 흑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부류도 아니었다. 나 역시 그들이 사람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즉 규율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런 규율들을 무시하고 살아가면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앨버트

 

“감독관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요. 단지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아는 것뿐이죠.”

“그게 무슨 말이지?”

“누가 지금 이 상황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감독관님이요? 아니면 제가요? 감독관님, 최근에 여섯 시간 넘도록 내리 자본 게 언제입니까? 해지기 전에 일을 끝내본 건요? 저희에겐 이 세상을 바꿀 만한 시간이 없습니다.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고요.”

“그렇다고 노력조차 할 수 없는 건 아니지 않나.”

“세상을 바꿀 시간을 대체 하루 중 언제 마련하시려고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우리 가족에게 안전망이 되어줄 이웃들이. 나는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조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는 나보다 먼저 깨달았으리라. 나는 저녁식사 한 번이 이토록 많은 것들을 의미하게 되는 걸 원치 않았을 뿐이다.

 

테스

 

“사슴을 쏠 때 기분이 어땠니, 잭?” 내가 물었다. “위험해 보여서 무서웠어? 아니면 예뻐서 쏘면서도 미안했어?”

잭은 입안에 음식을 가득 문 채 대답했다. “둘 다였던 것 같아, 내 생각엔.”

잭은 나보다 더 일찍 그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정답이 동시에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