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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풍경

피버 드림 | 사만타 슈웨블린

2021. 3. 12.

피버 드림

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저/조혜진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 국내 첫 출간!고요하게 숨통을 조여오는 뉘앙스의 공포‘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장르의 탄생『피버 드림』은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셜리잭슨상 중편 부문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이다.

환경재앙을 섬뜩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이 직품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재난과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 창궐이라는 위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만타 슈웨 블린은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 작가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다.

우연히 “창비 서평단 모집”을 보고 신청했다.

며칠 후 당첨 메일과 함께 얇은 중편소설 가제본 도서가 도착했다.

제목 “피버 드림(Fever Dream)”은 열병, 열몽(熱夢 ), 악몽 등의 뜻이 있다.  

 

소설은 어린 딸 니나와 함께 시골로 휴가를 보내러 왔다가 병원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아만다”와 이웃 카를라의 아들 “다비드”의 대화체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 벌레 같은 거요, 어디에나 다 있는.

[…]

- 벌레 때문이에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돼요. 그리고 기다리면서,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해요.

 

다비드는 정확한 순간을 위해 세세한 것까지 이야기하라고 요구한다.

 

이야기는 두 가지 문장(혹은 단어)이 반복된다.

하나는 “구조 거리”이고, 하나는 “중요하지 않다”이다.

 

아만다는 계속 이야기한다.

 

-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지금 당장은 니나가 느닷없이 수영장으로 달려가 뛰어든다면 내가 차에서 뛰쳐나가 그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나는 그 거리를 계산하며 반나절을 보내. 그러나 항상 실제로 일어날 법한 상황보다 더 많은 위험을 상상하지.

 

아만다는 항상 위험을 측정한다. 딸 니나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항상 위험을 측정하고 구조 거리를 계산한다. 아만다는 거실을 가장 전략적인 장소라고 말한다. 대문, 마당, 수영장이 다 보이고 반대쪽으로는 부엌을 계속 지켜볼 수 있어, 안전하게 딸을 지킬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다비드는 계속 이야기한다.

 

-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은 일이에요.

 

아만다가 말하는 거의 모든 부분에 다비드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 “다비드가 살게 될 거라는 뜻이죠. 다비드의 몸과, 새로운 몸속에 있는 다비드 모두.”

[…]

“그러니까 이게 우리 새로운 다비드예요. 이 괴물이요.”

 

다비드의 엄마, 카를라는 항상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중독 후의 새로운 다비드를 괴물이라 말한다.

 

이유가 명확하게 제시되진 않지만 아이들은 중독되었고, 반점과 기형을 겪는다.

그리고 아만다는 죽어간다. 

 

아만다가 말하는 구조 거리, 다비드를 두려워하는 카를라.

아이들이 아프면, 엄마들은 죄책감을 갖는다.

 

- 독 때문이지? 독이 사방에 있는 거지, 그렇지, 다비드?

- 독은 항상 있었죠.

- 그럼 다른 것 때문인가?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니? 내가 나쁜 엄마였어? 내가 자초한 일이니? 구조 거리.

[…]

- 그게 구조 거리였는데 작동하지 않았어.

 

아만다는 이해할 수 없다.

항상 구조 거리 안에 있었던 니나에게 벌어진 일이.

 

- “아만다, 아이 말투가 너무 이상해졌어요.”

[…]

“이상한 게 지극히 정상일 수도 있겠네요. 이상한 건 어떤 말을 해도 똑같이 돌아오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는 대답뿐일 수도 있거든요. ”

 

카를라는 두려워 한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다비드를.

결국 자신이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니까.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이 섞이고 그 경계가 모호하다. 다비드의 존재도 의심스럽다.

아만다는 자신이 아는 것 모두를 이야기하지만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

독자는 아만다의 혼란 속에 존재하는 불안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 집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수많은 자동차가, 갈수록 더 많은 차들이 아스팔트 위를 덮고 있다는 것도, 교통이 정체되어 몇시간 동안 오도가도 못한 채 뜨거운 배기가스를 내뿜고 있다는 것도. 그이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해. 어딘가에서 불붙은 도화선처럼 마침내 느슨해진 실을. 이제 곧 분출되기 일보 직전인, 움직이지 않는 재앙을.

 

책을 덮으면 불안이 엄습한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 통제할 수 없는 재앙, 그리고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무력감.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했다는 자책.

 

덧붙여......

아르헨티나는 대두의 주요 생산지이다. 대두 재배에 쓰인 살충제의 유해성분이 일으킨 재앙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인데, 사진만 봐도 작가가 그린 모호한 재앙의 실체를 볼 수 있다.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160223-photograph-aixa-argentina-avia-terai-pesticides-glyphos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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