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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역사사회철학

교수대의 비망록 | 율리우스 푸치크

2021. 3. 25.
교수대의 비망록

교수대의 비망록

율리우스 푸치크 저 / 김태경

체코의 언론인이며 작가, 문예평론가인 율리우스 푸치크가 게슈타포에 체포된 후 처형되기 전, 프라하의 감옥에서 담배종이 등에 틈틈이 적어둔 글과 편지들을 모았다. 전쟁이 끝난 후 세상에 나온 이 작은 책에서는 죽음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의연함을 잃지 않으며, 미래를 향한 밝은 전망과 주변에 대한 애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여유를 지닌 한 공산주의자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진솔한 글이 전하는 것은 어떤 이념에 대한 맹종이 아닌 인간 본연의 길이기에, 이 책은 70년이 흘러 시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9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꾸준히 읽히고 있다.

 

율리우스 푸치크와의 대화 / 파블로 네루다

 

1. 나와 함께 거리를 걷는 친구

 

프라하의 거리는 겨울이었다

나는 매일 율리우스 푸치크가 고문을 당했던

석조건물의 벽을 따라 걸었다

건물은 어떤 말도 걸어오지 않았다.

 

3. 만약 내가 당신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수천 년 전에 한 사내가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는 자기의 신을 지키다가 죽어갔다

이 지상보다 훨씬 먼 곳을 상상하면서

 

그러나 우리들은 순교와 희생을 팔짱을 끼고 관망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매일 싸우고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그대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 그대가 어느 이름으로 불리든 상관없으되 -

이리하여 그 교수대로부터 또는 십자가로부터

율리우스 푸치크의 죽은 심장은

사형 집행인들을 패주시켰던 것이다.

 

 

푸치크 부인의 서문

 

나는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은 지 2주 만인 1943 9 8일 베를린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가 프라하의 판크라츠 감옥에 있는 동안 글을 썼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감방에 종이와 연필을 넣어주고, 다 쓴 원고를 한 장 한 장 남몰래 밖으로 가지고 나온 사람은 간수였던 A. 콜린스키였습니다.

 

서 문

 

몸을 바짝 긴장시킨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힘주어 올려놓고 눈은 페체크 궁 옥내 구금실의 누렇게 바랜 벽에 고정시키고 차렷!’ 자세로 앉아 있다. 확실히 이것은 명상을 하기에 썩 어울리는 상태는 아니다. 대체 누가 사상에 차렷 자세로 있으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언제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 지금으로선 확인할 길이 없지만 페체크 궁 옥내 구금실은 영화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천재적인 발상이다. 덩그러니 넓은 방에는 긴 의자 여섯 개가 앞뒤로 늘어서 있고, 취조를 받는 사람들은 굳은 자세로 앉아 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벌거벗은 벽은 설령 세상의 영화를 다 모은다 해도, 새로운 취조·고문·죽음의 호출을 기다리는 이 사람들의 눈이 벽 위에 비춘 영화의 수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내 생애에 대한 영화를 백 번도 더 보았다. 자세한 순간들은 천 번도 더 보았다. 지금 그것을 새삼스레 글로 옮기려 한다. 만약 글이 다 끝나기 전에 교수대의 밧줄이 내 목을 죈다 해도 뒤에 남은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그 해피엔드를 묘사해주리라 믿는다.

 

 

제1장 검거 24시간

 

나는 마침 그들이 열어젖힌 문 뒤에 있었으므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등 뒤에서 그들을 거뜬히 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아홉 정의 권총은 두 여인과 무기를 갖지 않은 세 남자들에게 향해 있다. […] 내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그들은 반년 혹은 1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테지만 혁명이 그들을 산 채로 해방시킬 것이다. 그러나 미레크와 나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

 

건강한 한 사람의 몸은 얼마나 오랫동안 매질을 견딜 수 있을까?

[…]

키가 크고 야윈 경감이 득의의 미소를 띠고 방으로 들어선다.

만사 이상 없어요, 편집자님?”

대체 누구 지껄였을까? […]

불어! 정신 차려.”

정신 차리다배반하다를 의미하는 기묘한 사전도 있었던 것이다.

 

열둘, 열다섯, 열일곱? 아니다. 이것은 나를 취조하고있는 경감들의 수이다.

그들 중에는 벌써 역력하게 피곤한 기색을 보이는 자도 있다. 그러나 죽음은 아직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또 때린다. 그다음에는 또 말해! 말해라고 소리 지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 왜 당신들은 제게 이렇게 강인한 체질을 주셨습니까?

 

죽는 것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아니, 죽음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 죽는다는 것이 너무 가벼워서 마치 솜털 같다 -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모두 날아가버린다.

 

이제 5분 뒤면 시계는 10시를 칠 것이다. 1942 4 25일의 아름다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 밤이다.

 

제2장 죽음 앞에서

 

이것은 장례식이다. […] 여기에 있는 사람은 저 둘과 나뿐이다. !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내 장례식일지도 모른다.

내 말 좀 들어주십시오. 이것은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터무니없는 일이다. 나는 살아 있다. 미미한 통증과 갈증이 느낀다.

 

모두 다 알고 있단 말이야. 말해봐!”

나는 헛되게 살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모르겠나? 끝났어. 너희들의 완패야.”

진 것은 나뿐이오.”

 

죽음이여, 그대가 찾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나는 그대와 서로 알게 되는 것은 아주 먼 뒷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많이 일하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노래하고 그리고 세계곳곳을 돌아다니리라고 생각했다. 겨우 제구실을 할 나이가 되었고 아직 많은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힘이 없다. 내 힘은 다해가고 있다.

나는 삶을 사랑했고 그 아름다움을 위해 투쟁했다.

 

내가 상처입힌 사람은 누구라도 나를 용서해달라. 내가 기쁘게 해주었던 사람들은 나를 잊어달라. 슬픔이 내 이름에 뒤따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제3장 267감방

 

문에서 창까지 일곱 걸음, 창에서 문까지 일곱 걸음.

나는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민족은 바야흐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 인간이 사물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되기까지 대체 몇 세기가 필요했을까? 인류는 전진 과정에서 지금까지 몇천 개의 감밤을 통과해야 했을까? 그리고 지금부터 또 얼마만큼의 감방을 통과해야만 하는가? 아아, 네루다의 어린 아들 예수여. 인류가 걷는 구원으로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린 아들 예수여, 이젠 잠들지 말아다오. 이젠 잠들지 말아다오!

 

여기는 약간 기계화되어 있고 중앙집중식 난방에 용변 보는 통이 수세식 변기로 변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점이 더욱 중요한데, 인간까지 기계화되어 있다. 마치 자동인형처럼. 버튼을 눌러보라. 다시말해 감방문의 자물통을 철커덕거리든지 간에 튕기듯 일어나 차렷자세로 앞뒤로 늘어선다.

 

아아, 끊임없는 죽음의 공포라는 향료로 맛을 돋운 한 숟갈의 맛있는 굴라시.

 

누가 데리러 올까? SS 제복을 입은 간수인가, 그렇지 않으면 제복을 입지 않은 죽음인가?

 

1년 동안 같은 감방에 있는 두 사람! 이 사이에 아버지라는 호칭에 이미 ‘ ’가 없어졌다. 나이가 다른 두 죄수는 정말로 아버지와 아들이 되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죽을 리가 없는 사람이 잘 죽었다. 그러나 누구나 죽을 것으로 생각한 삶이 살아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정신 차려!”

그다음에 살짝 소곤댄다.

여기에서든, 저기에서든 어디에서나!”

 

그것은 프라하 거리를 지나는 우스운 드라이브이다. 30명의 죄수를 호송하기 위해 귀중한 가솔린을 허비하며 권총을 든 SS대원이 앞뒤로 두 명씩 서서 맹수 같은 눈으로 시체가 도망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267감방은 노래한다. 나는 평생 노래해왔다. 가장 치열한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마지막에 이르러 노래를 중단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태양이 없는 곳에 생활이 없듯이 노래가 없는 곳에는 생활이 없다. 이곳에서 노래는 이중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태양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는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267감방은 북향 감방이다. 그래서 여름내 저녁 해가 동쪽 벽에 있는 철창의 그림자를 아주 잠시 새길 뿐이다. 그때 아버지는 침상에 기대어 잠시 동안의 태양의 방문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광경 중에는 이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그렇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그 따뜻한 빛 속에서 살아가게 되리라. 그것을 안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나는 당장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보잘것없는 것을 알고 싶다 - 태양은 우리를 위해서도 빛날 것인가?

 

제4장 ‘400호실’

 

부활은 약간 기묘한 현상이다. […] 부활의 날에는 항상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하거나 그 어느 때보다 푹 자고 일어난 기분이 든다.

 

부활은 흡사 당신의 눈에 망원경을 대고 동시에 그 위에 현미경을 덧댄 듯한 것이다. 다시 말해 마치 봄과 같은 현상으로 지극히 평범한 주위에도 뜻밖의 매력이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느 날 당신은 세계로 끌려나간다. 그들은 들것도 없이 당신을 신문에 호출한다. 당신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가능하다. 복도에는 난간이 있고 계단에도 난간이 있다. 걷는다기보다는 기어서 간다.

 

오늘은 메이데이이다.

[…]

이곳에서 붉은 광장에 넘치던 몇백만 명의 왁자한 인파도 없었다. 이곳에서 당신이 보는 것은 수만 명은 고사하고 몇백 명도 안 되는 몇몇 동지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보잘것없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가혹한 불의 시련을 겪고도 재가 되기는커녕 강철로 단련되어온 새로운 세력의 퍼레이드이기 때문이다. 투쟁의 절정에 참호 속에서 펼쳐지는 퍼레이드. 이 참호 속에서 입고 있는 옷은 회색 전투복이다.

 

언젠가 당신들이 이 글을 읽게 될 때, 체험한 적도 없는 이런 일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그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신뢰받고 싶다. 이 퍼레이드에는 힘이 있다.

 

빵을 여느 때와 달리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씩 나누어주는데 이것은 그들의 메이데이 인사이다. 세심한 인간이 몸짓으로 나타내는 인사이다. 빵 밑에서는 손가락과 손가락이 굳게 맞잡아진다. 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눈빛조차 감시받고 있다. 그러나 벙어리는 손가락으로 분명한 의사표시가 가능하지 않은가.

 

이번에는 우리들의 운동시간 30분이다. 내가 체조 시범을 보인다. […] 첫 번째 체조는 하나, , 하나, , 망치를 휘두르는 것이다. 두 번째 체조는 밀 베기이다. 망치와 낫. […] 이것은 우리들의 메이데이 대회이다. 그리고 이 팬터마임은 설령 우리들 앞에 죽음이 있을지라도 언제까지나 굴하지 않겠다는 우리들의 메이데이 맹세이다.

 

내게 종이와 연필을 가져다주고 글을 쓰는 동안 발각되지 않도록 감방 밖에서 망을 보고 있는 체코 경찰복의 저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 이 사실이 알려지면 두 사람 다 한 조각의 종이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쇠창살 속의 오늘과 자유로운 내일의 다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싸우고 있다.

 

죽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리고 영웅적인 행동 뒤에 후광 따위는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투쟁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처참하며 투쟁 속에서 버티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힘이 요구된다.

 

하지만 페체크 궁의 영화관에는 사실 기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곳은 고문실로 가기 위한 대기실이다. 당신은 고문실에서 새어나오는 다른 사람의 신음 소리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을 지탱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리라.

 

더욱 괴로운 것은 나갈 때는 맑고 스스럼없는 눈매였으나 돌아왔을 때는 눈을 정면으로 뜨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경우이다. 그것은 계단 위 어딘가에 있는 고문실에서 약해진 한순간, 동요의 한순간, 공포 속에서 자신만은 고통을 면하고 싶다는 한순간 마음의 방황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이나 내일 이곳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처음부터 그 모든 두려운 체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전우의 손으로 적에게 팔아넘겨진 새로운 사람들이.

 

최초의 놀라움은 […] 그저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사소한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 그것은 내 감시역을 맡고 있던 게슈타포의 부하 - 내 주머니를 샅샅이 뒤진 적이 있어 기억한다 - 가 불이 붙은 담배 반 토막을 내 쪽으로 던져준 데서 생긴 것이다. 3주 만의 담배,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담배이다. […] 이 남자에게는 매수할 뜻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끝까지 피우지 못했다. 담배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나와 미레크 이외에 대체 누가 이 일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대답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대답은 무겁고 가혹했다 - 미레크가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페체크 궁에서 보낸 최초의 나날은 내게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받았던 타격 중 이때의 것이 내게는 가장 참기 힘들었다. 내가 예상하고 있었던 것은 죽음이었지 배반은 아니었다.

 

비겁한 자는 자신의 생명 이상의 것을 잃는다. 그는 영광에 넘친 군대에서 탈주한 끝에 적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적에게조차 경멸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살아 있다 해도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 그는 달리 벌충하려 했으나 두 번 다시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것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감옥에서는 무서운 일이다.

 

옥중생활과 고독. 이 두 개의 개념을 사람들은 흔히 혼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오류이다. 죄수들은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하나의 커다란 집단으로서, 아무리 엄격하게 격리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이탈하지 않는 한 어떤 사람도 이 집단에서 떼어내기란 어렵다. 예속된 상황에 놓여 있는 이곳 사람들 사이의 연대는 압력에 좌우된다. 그러나 그것은 연대를 밀도 있게, 강고하게 만들고 나아가 민감하게 만든다.

 

감방에는 손이 있다. 당신이 신문으로 재기불능이 되어 돌아올 때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손을 피부로 느끼고, 급식을 중단해 아사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당신은 그들 손으로부터 음식물을 받는다. 또한 감방에는 눈이 있다. 당신이 처형장으로 끌려나갈 때 그들의 눈은 당신을 꼼짝 않고 바라본다. 거기서 당신은 가슴을 펴고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왜냐하면 그 눈들의 주인들과는 형제이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텐데 그럴 권리가 당신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를 흘리는 가운데서에서도 유지되는 불굴의 연대이다. 이 연대의 구원이 없다면 당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십자가의 10분의 1도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든 어느 누구이든.

 

‘400’ […]

언제라도 게슈타포 신문관들의 손 안에 두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설치된 피신문자용 대합실의 지소였다.

[…]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투쟁에 헌신적이며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는 집단정신이다.

 

‘400호실’, 그곳은 인간이라는 동물을 철저하게 아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 다른 곳에서는 신문 때 말이 방패 혹은 무기일 수 있었다. 그런데 ‘400호실에서는 말 뒤에 숨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곳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의 말이 아니라 당신의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이다. 당신의 내부에는 핵심적인 것만 남아 있다.

 

충실한 자는 버틴다. 반역자는 배반한다. 프티부르주아는 절망한다. 영웅은 싸운다. 어떤 인간의 내부에도 강함과 약함, 용기와 공포, 확신과 동요, 순수함과 더러움이 공존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어느 한쪽만이 남도록 요구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그들이 체코의 오랜 가문 출신이라든지 징용을 당해 게슈타포에 근무하게 되었다든지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굉장하다.

 

제5장 인간과 나무 인형(1)

 

이 시대에 살아남은 당신들에게 나는 한 가지 부탁하려 한다. 좋은 사람들은 물론, 나쁜 사람들까지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나의 구스티나는 […]

몇 년 동안 그녀는 내 최초의 독자였으며 최초의 비평가였다.

 

많은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큰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가난한 자의 부, 내면에 있는 부로 인해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게 협박이 되지 못합니다. 마지막 소원입니다. 저 사람을 처형시킨다면 저도 처형시켜주세요!”

바로 이것이 구스티나이다. 사랑과 강한 믿음.

그들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 그렇지 않소. 구스티나? 그렇지만 우리의 명예, 우리의 사랑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자유와 창조로 가득 찬 아름다운 해방 후의 삶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리들이 바라고 기다리며 힘껏 노력하다 이제 죽음으로써 성취하려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아아, 그때에는 사자死者가 된 우리들까지 당신들의 커다란 행복의 단편 어딘가에서 살고 있으리라. 왜냐하면 그 단편을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즐겁고 기쁘다. 설령 이별이 슬플지라도……

 

나는 부모님의 사랑과 소박한 고귀함 때문에 그분들께만은 다른 무엇보다 볕이 드는 가을을 보장해드리고 싶다. 내가 함께 있지 않다고 해서 그분들 생애의 가을이 우울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노동자는 죽지만 일은 살아 있다.” 부모님을 둘러싸고 있는 따뜻함과 빛 속에서, 나는 언제나 그 곁에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살며, 기쁨을 위해 투쟁할 것이며, 기쁨을 위해 죽어간다. 그러므로 슬픔이 우리의 이름과 결부되는 일은 결코 없으리.

 

게슈타포에는 그런 대로 활달함 같은 것이 있었다. 무섭지만 그래도 생명의 단편임에는 틀림없었다. 그 속에는 정열이 있었다. 한편에는 전사들의 정열이 있었고 또 한편에는 사냥하는 사람들, 맹수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어디에나 흔한 강도들의 정열이 있었다. 그 한편에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일종의 확신마저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예심판사에게는 관공서 업무밖에 없다. 가슴에 달고 있는 커다란 철십자 배지는 확신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의 내부에는 그것이 없다. 배지는 단지 이 시대에서 불완전하나마 그럭저럭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가련한 하급관리가 그 몸을 숨기는 방패이다. […] 그의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것은 피가 아니라 묽은 스프이다.

 

나는 여기에서 13개월간, 다른 사람들과 내 생명이 걸려 있는 투쟁을 했다.

[…]

이것은 희망과 전쟁의 경주이다. 죽음과 죽음의 경주이다. 파시즘의 죽음과 나의 죽음, 어느 것이 먼저 올까? 이것은 나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수만에 달하는 죄수들이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다.

 

옐리네크 부부

대장, 아무도 나를 가엾게 생각하지 말고 또 이런 일로 무서워하지 말라고 바깥 사람들에게 전해주세요. 나는 노동자로서 주어진 의무를 다했으며 또한 그것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그녀는 고작 파출부였다.

 

리다

그녀가 작은 일을 맡고 있는 동안은 그녀에게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할 마음은 없었다. 검거되었을 때에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자신을 지키기 쉽다.

 

그녀는 아직 젊다. 설령 우리가 이 세상에 없다 해도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나의 경감 

국내 적과의 싸움에서 발휘한 용맹성에 대해 수여되었던 흑, , 3색 훈장을 가진 남자들이 있었다. 프리드리히, 찬더, 그리고 나의 경감요제프 뵘이었다. […] 정치이념을 위해서 싸운다기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싸웠다. 각자 가기의 방식으로.

 

찬더는 […] 금전상의 거래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 그의 손아귀에 떨어진 자는 불행했지만, 그에 더해 집에 예금통장 혹은 유가증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중으로 불행했다.

 

프리드리히는 […] 집념의 표적은 주검이다. 그에게는 억울한 사람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집무실 문턱을 넘는 자는 모두 유죄이다.

 

-나의 경감-은 돈에도 주검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 그는 입신출세를 꿈꾸는 모험주의자이다.

 

더 중요한 일은 검거와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눈앞에 늘어세워 놓고 보는 것이다. […] 2백 명을 검거한 적이 있는데, […] 그다음에 그들 중 150명르 석방했는데, 이로 인해 그 150명의 가정에서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기뻐했다.

 

자네는 내게 제일 거물이야라고 내게 매우 솔직하게 말했으며 내가 사실상으로도 거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을 긍지로 여겼다. 어쩌면 이것이 내 목숨을 연장해주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서로 끊임없이 온 힘을 다해서 거짓말을 했지만, 함부로 하지는 않았다. […] 그는 진상을 밝혀내는 일보다는 자신의 거물에게 흠을 잡히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자네가 프라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 자네가 없어지더라도 프라하는 여전히 아름다울 걸세……”

[…]

“…… 그 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진 날에 프라하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게 될 거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그날에는…… 그렇다면 자네는 지금도 우리가 승리한다고 믿지 않는 건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물었다.

[…]

체코 공산주의자를 한 사람 죽일 때마다 당신은 독일 국민의 한 조각 희망마저 없애고 있는 거요. 우리의 이념만이 독일 국민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을 거요.”

 

패한다면 우리에게 구원은 없소.” 그리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 마지막 세 발은 자신을 위해 들어 있는 거야.”

…… 그렇지만 이미 이것은 나무 인형만의 특징은 아니다. 저물어가는 시대의 특징인 것이다.

 

멜빵 바지의 간주곡

날짜를 벌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바로 그 하루가 그녀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것이다. […] 내일을 살아서 맞이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내일은 모든 것이 변해버릴지 모른다.

 

종전 시기에 관한 장밋빛 추측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나돌면 모두가 크게 기뻐하며 거기에 달려든다. […] 당신은 그런 것에 맞서 싸운다. 허망한 희망에 찬물을 끼얹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을 강하게 해주기는커녕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진실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은 당신 자신에게 있다. 결정적인 그날에 대한 믿음과 당신이 앞당길 그날에 대한 믿음이 끝까지 단념하지 않은 삶과 당신을 위협하는 죽음의 경계 저쪽으로 당신을 건네줄지도 모른다.

 

제6장 1942년의 계엄령

 

만약 당신이 답을 하려야 할 수 없는 신문으로 녹초가 되어 있다면, 신문이 없는 반나절은 신에게 받은 선물 같을 것이다.

 

이 사람들의 죄가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 죄이다. 검거를 했으나 어떤 거물과도 관계가 없고 신문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죽여버린다.

 

시체는 겹겹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다. 그 수는 이미 수십도, 수백도 아니고 수천, 수만이다. 끊임없는 새로운 피는 야수들의 코를 자극한다.

 

그런데 이 공포 속에서 인간은 살고 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살고 있는 것이다.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고 그리고 죽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수천 가지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필시 목 언저리 어딘가에는 엄청난 무게가 매달려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무게를 견디어내며 머리를 숙이거나 지치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내가 본 것은 생명이었다. 내가 그 속에서 나온 것이다. 총체적으로 말해서 생명이다. 하나가 죽임을 당하더라도 또다시 백 명이 되어 새롭게 성장하는 생명이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의 맛이 쓰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동안에는 우리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 공포의 시대를 꿋꿋하게 살았다. […]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견디어내는 인간을 얼마나 기묘한가!

 

제7장 인간과 나무 인형(2)

 

판크라츠 

감옥에서는 두 가지 생활이 있다. 하나는 감옥 안에 감금되어 세상으로부터 엄중히 격리되는 것이다. […] 또 하나는 감방 앞의 긴 복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엷은 어둠 속에 있다. 그것은 제복을 입고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립된 자기만의 세계, 나무 인형은 많지만 인물은 적은 세계이다.

[…]

흔히 인간적인 면이 극히 적지만 예외적으로 많은 사람도 더러 있다 - 그 양으로 형태가 이루어지고 구별이 가능하다.

 

감옥은 기쁨이 없는 곳이다. 그렇지만 감방 앞의 세계는 감방 안보다 더 어둡다. 감방 안에는 우정,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우정이 살아 있다! […] 그러나 체제의 수비자인 독일인 간수들 사이에는 그런 우정이 거의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그들은 밀고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 감시한다. 각자 공적으로는 동지라고 부르면서도 경계한다.

 

이들을 잘 보라! 마구잡이로 끌어모은 유형이나 나무 인형은 하나도 없다. 나치스의 정치적 군대의 일부이다. 선택된 인간들이며 체제의 지주들이다. 나치스 사회의 기둥이다.

 

뢰슬러 

한 가족이 일주일에 20코루나로 지내야 하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 자네도 알겠지? 그럴 때 그들이 와서 말하는 거야. ‘일을 줄 테니 우리와 함께 가자.’ 그래서 갔지. 과연 그들은 일을 줬어. 나나 다른 모두에게. 이제 우리는 먹고 지낼 만해.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 사회주의라고? 그렇지 않아. 내가 상상하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어. 그렇지만 전보다는 더 나아.”

 

나는 전쟁은 바라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도 바라지 않았고. 나만이라도 살고 싶었을 뿐이지.”

 

그 사람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 왜소함을 고민하는 데에 정신적 왜소함이 얼마만큼 작용할까.

 

콜린 

혹시……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쓰고 싶은 것은? 물론 현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당신이 어떻게 해서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누가 당신을 배신했는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당신과 함께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두들겨 패기만 하는 무리들과 같은 제복 속에서 내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일이 없도록 뒤에 나타날 사람들을 위해서 할 말을 전하고, 끝내 살아남은 사람들과 하다못해 잠깐 동안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쳐오는 사람, 친구를 찾아낼 수 있다니 너무나도 달콤한 이야기가 아닌가.

 

네 속에서 그 체코인 근성을 내던져 버려!”

그러나 소장은 착각하고 있다. 체코인 근성만이 아니다. 콜린스키의 내부에서 인간미마저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끊임없는 위험 속에서 오히려 단련된 사람.

 

스코레파 아버지 

밝지만 우울함을 자아내는 감옥 잡역부의 제복을 입은 사람.

 

강하며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이다. 순수한 인간이다.

 

나는 그 인물들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제 남은 시간이 몇 시간밖에 없다. “살아가노라면 길지만, 노래로 부르려면 짧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제8장 역사의 마지막 증언

 

내 감방 앞에는 멜빵이 걸려있다. 바로 내 허리띠이다. 그것은 이송을 의미한다. 밤사이에 나는 재판과 그 밖의 것을 위해 독일 본국으로 연행된다. 내 생애 한 조각에서 시간은 마지막 한 입을 탐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 증언일 것이다. 아마 내가 최후의 살아 있는 증인이 될 그런 역사의 한 단편이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계산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게슈타포의 손아귀에 떨어지면 마지막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도 그 사실에 근거를 두고 행동한 것이다.

내 연극도 끝나려 하고 있다. 연극의 대단원을 미리 쓸 수는 없다. 나로서는 그것이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연극이 아니다. 생활이다.

그리고 진실한 생활에는 관객이 없다.

종막이 오른다.

사람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랑했다.

부디 늘 깨어 있기를!

 

1943 6 9

율리우스 푸치크

 

부록 옥중 서간

 

스타니슬라프 스프린거에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전쟁이 끝나기 전에 내 인생이 끝날 것이, 싫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기 때문이오.

[…]

그때그때의 상황이나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개괄적인 보고를 써 보내주면 대단히 고맙겠소.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냉정한 보고이니 결코 일시의 위안 같은 것은 써 넣지 말아주오.

 

아내 구스티나에게

 

이 글을 당신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내가 완전히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주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기를. 그 사람이 내게 준 연필과 종이는 첫사랑 때와도 같이 나를 설레게 했고, 지금은 나에게 사고하기보다는 느끼게 하고, 단어나 문구를 조립하기보다는 꿈을 꾸게 하고 있소.

 

심장과 머리는 가득하나 벽이 텅 비어 있소. 문학에 관해 쓴다고 하면서도 눈으로라도 바라볼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것은 진정 기묘한 일이오.

 

이것을 후회하지는 않소. 단 한 점의 후회도 없소. 힘이 있는 한 우리의 목적을 위해 진력했소. 그것도 기쁘게. 그러나 빛, 빛을 나는 사랑했소. 그리고 가능하면 쑥쑥 높은 곳까지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싶었소. 그러나 이것으로도 만족하오.

우리가 밑에서 받치고 들어올린 나무 위에서는 새로운 세대, 노동자, 시인 그리고 또 문예비평가, 역사가 같은 사회주의적 세대가 성장하고 꽃필 것이오. 이 사람들은 내가 일찍이 말할 수 없었던 것까지, 아니 그보다 더 잘 말해주리라 믿소. 그리하여 내 열매는 비록 내 산 위에 눈이 내리지 않을지라도 그런 대로 조금은 달콤하게, 알차게 성장할 것이오.

 

부모님과 두 누이에게

 

저 대신 그녀를 돌봐주십시오. 그녀는 마음이 아름답고 강한 사람으로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합니다. 절대로 그녀를 내버려두지 말고 행복해지도록 도와주세요. 설령 제가 그 자리에 없는 경우에라도.

 

두 누이에게

 

내가 편지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찾고 또 찾아내는지 너희들로서는 상상이 안 될 것이다. 너희가 편지 속에 써 보내지 않은 것까지 찾아낸단다.

 

너희는, 사형 판결을 받을 것이 확실한 사람은 끊임없이 그것을 생각하며 괴로워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단다. 나는 처음부터 죽음을 계산에 넣고 있었다. […] 그래서 내 표정에서 고뇌의 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은 전혀 염려하지 않는다. 죽음은 항상 살아 있는 사람들,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만 슬픈 것이다.

 

두 누이에게

 

희망은 낙엽처럼 조용히, 슬며시 떨어진다. 감상적인 사람은 그것을 보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낙엽이 떨어지더라도 나무는 아프지 않다. 이런 것은 모두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겨울은 나무를 완성시키듯이 인간도 완성시킨단다. […] 머리 하나만큼 키가 작아졌다고 해서 인간이 그만큼 작아지는 것은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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