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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2021. 4. 22.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저/이현경

이 책은 레비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하다가 파시스트 군대에 체포되어 포졸리 임시수용소로 이송되던 1943년 12월부터 러시아군에 의해 아우슈비츠가 해방되던 1945년 1월까지의 일들이 담겨 있다. 각 장은 하나의 주제를 두세 개의 에피소드와 등장인물 묘사를 통해 예리하게 전개해나간다.

 

 

작가의 말

 

운 좋게도 나는 1944년, 그러니까 노동력이 부족해짐에 따라 독일 정부가 사형시키려던 포로들의 평균수명을 연장하기로 결정한 뒤에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다소 의식적으로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확신은 대개 잠복성 전염병처럼 영혼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그 암묵적인 도그마가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되면, 그 논리적 결말로 수용소Lager가 도출된다.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이 인식이 존재하는 한 그 결과들은 우리를 위협한다. 죽음의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이들에게 불길한 경종으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내적 해방을 위해서 씌어진 것이다.

 

여행

 

당시 나는 훗날 수용소에서 급히 익히게 된 어떤 원칙을 미처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 원칙이란 바로 인간의 첫째 의무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것이다.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새벽이 배신자처럼 우리를 덮쳤다. […] 명상의 시간, 결정의 시간은 끝났다. 이성적인 활동은 모두 격정적인 혼란 속에서 흩어져버렸고, 그 순간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집들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이 섬광처럼 번득이며 칼에 베인 것 같은 날카로운 아픔을 안겨주었다.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화물 객차 바깥에서 문이 잠겼다. 객차 안에서는 남녀노소가 싸구려 상품들처럼 무자비하게 포개진 채 무無를 향한, 아래쪽을 향한, 바닥을 향한 여행을 했다. 이번엔 그 객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라는 점만 달랐다.

 

누구나 인생을 얼마쯤 살다 보면 완벽한 행복이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과 정반대되는 측면을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즉 완벽한 불행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 양 극단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인생의 순간들은 서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모든 영원불멸의 것들과 대립하는 우리의 인간적 조건에 기인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늘 모자란 인식도 그중 하나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희망이라 불리고 어떤 때에는 불확실한 내일이라 불린다. 모든 기쁨과 고통에 한계를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도 그중 하나다. 어쩔 수 없는 물질적 근심들도. 이것들이 지속적인 모든 행복을 오염시키듯, 이것들은 또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파편화하고, 그만큼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여행 중에 그리고 그후에도, 끝도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 살려는 의지나 의식적인 체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고, 우리는 평범한 인류의 표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위엄 있게 죽음을 맞을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 침묵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의 침묵을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의 불안한 꿈은 시끄럽고 아무 쓸모 없는 말다툼, 욕설, 주먹과 발길질에 중단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우리의 여인들, 부모들, 자식들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작별인사를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다른 쪽 플랫폼 끝에 있는 거무스름한 덩어리 같은 그들을 잠깐 보았다. 그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서

 

물을 마시지 못한 지 나흘째다. 수도꼭지가 있다. 그러나 그 위에는 물이 더러워서 마실 수 없다는 쪽지가 붙어 있다. 우습다. 내가 보기에 그 쪽지는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것은 지옥이다. […] 물론 우리는 훨씬 끔찍한 무엇인가를 예상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계속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더 이상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 같다. 누군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시간이 한 방울씩 흐른다.

 

그는 신발을 한쪽 구석에 모아두라고 한다. 우리는 신발을 모아둔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렸고, 우리는 세상의 바깥에 있는 것 같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복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간단히 말하고 통역자가 통역을 한다. “장교가 조용히 하랍니다. 여기는 랍비 학교가 아니랍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나쁜 말들을 입 밖으로 내놓느라, 마치 구역질나는 것을 뱉듯이 그의 입이 일그러지는 게 보인다.

 

권투를 잘하는 사람은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옷을 다 입고 각자 자기 구석에 서 있다. 감히 눈을 들어 서로를 볼 수 없었다. 스스로를 비춰볼 거울은 없었지만 우리의 모습은 우리 앞에 서 있는 100여 개의 창백한 얼굴들 속에, 초라하고 지저분한 100여 명의 꼭두각시들 속에 반사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어젯밤에 얼핏 본 그 유령들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그 이름 뒤에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했다.

 

이제, 사랑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집, 자신의 습관, 옷, 다시 말해 말 그대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빼앗겨버린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는 고통과 욕구만 남은, 존엄성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린 텅 빈 인간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는 건 쉬운 일이니까.

 

여러 날 동안, 자유로웠던 날들의 습관 때문에 나는 시계를 보려고 손목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러니하게도 시계 대신 내 새로운 이름, 푸르스름한 표시로 살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청년은 프랑스어를 했다. 우리는 그의 곁으로 몰려가 지금까지 서로에게 계속 묻기만 해대고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한 질문들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는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모두 별로 말을 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는 갓 도착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며 아무것도 모른다. 누가 우리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려 들겠는가?

 

당신들은 집에 있는 게 아니야, 여긴 요양원이 아니야, 여기서 나가는 길은 굴뚝으로 가는 것뿐이야.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수용소가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 사실을 빨리 그리고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와 수줍게 나를 포옹한다. 모험은 여기서 끝났다. 나는 거의 기쁨에 가까운 평온한 슬픔을 마음 가득 느꼈다. 그후로 다시는 슐로메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면서도 부드러웠던 그 애의 얼굴을 잊지 않고 있다. 사자死者의 집 문 앞에서 나를 환영해준 그 얼굴을.

 

“야볼”Jawohl(예, 알았습니다)이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 절대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항상 이해한 척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모든 물건을 도둑맞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방심하면 반드시 도둑맞는다는 것을 배운다.

 

죽음은 신발에서 시작된다. 신발이 우리 대부분에게 진정한 고문 도구라는 게 드러났다.

 

우리의 삶은 그와 같을 것이다. 매일, 정해진 리듬에 따라 아우스뤼켄Ausrücken(나가다) 아인뤼켄Einrücken(들어가다), 나갔다가 들어올 것이다. 일하고 자고 먹고, 아팠다가 낫거나 죽을 것이다. ……

언제까지? 이런 질문을 하면 고참들은 웃는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인 이 두 부류가 그렇게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불가지론자들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화 상대와 상황에 따라, 기억도 일관성도 없이 두 극단적인 입장 사이에서 동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바닥에 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을 경우 과거와 미래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것을 아주 빠르게 배워나간다.

 

우리 이탈리아인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 수용소 한쪽 귀퉁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곧 그만두어야 했다. 숫자를 세는 게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입문

 

나는 졸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졸음이 긴장과 두려움에 가려져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을 하고 또 하는 것이다.

 

멀리서, 막사의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졸리고 화난 목소리로 외치는 “Ruhe, Ruhe!”(조용히 해, 조용히 해)뿐이다.

그게 조용히 하라는 명령인 것은 알지만, 그 독일어 단어는 나에게 낯설다. 그 말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만큼 불안도 더 커진다. […] 뜻을 빨리 포착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화가 닥친다. […] 맨 나중에 온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구석으로 모여, 벽에 몸을 붙인다. 등 뒤에 든든한 방패막이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

 

빵, pane—Brot—Broid—chleb—pain—lechem—keynér,* 그 성스럽고 거무스레한 조각 말이다. 옆 사람의 손에 들린 것은 너무나 크게 보이고, 내 손에 들린 것은 눈물이 날 만큼 작다. 이것은 매일 일어나는 환각인데, 사람들은 결국에는 이런 환각에 익숙해지게 된다.

* 이탈리어, 독일어, 이디시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헤브라이어, 헝가리로 반복한 것.

 

(용변을 본 후나 식사하기 전에 손 씻는 것을 잊지 말 것)

[…]

이 글을 쓴 익명의 저자들은, 아마도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몇 가지 중요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던 것이다. 청결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이곳에서 매일 그 더러운 세면대의 흙탕물로 몸을 씻는 것이 사실상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생명력이 남아 있다는 증거로서 무척 중요하고 도덕이 살아 있게 하는 수단으로써 꼭 필요하다.

 

얼굴을 씻는다는 것은 어리석고 심지어 무례하기조차 한 것 같다. 이것은 기계적인 습관일 뿐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절멸의 의례를 처량하게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아니, 이미 죽기 시작했다. 기상과 노동 사이에 여유 시간이 10분밖에 없다면, 나는 그 시간을 다른 데 쓰고 싶다.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고 윗도리로 몸을 말려야 한다.

 

이 복잡한 암흑 세계와 대면한 나의 생각들은 혼란스럽다. 정말 체계를 세워서 그것을 실천해야 할까? 아니면 체계가 없는 것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더 나을까?

 

카베

 

하루하루가 똑같아 날짜를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 […]

주위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적대적이다. […] 수용소의 경계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우리는 늘 세상과 우리를 격리시키는 철조망의 사악한 의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비계 위에, 움직이는 기차 위에, 거리에, 구덩이에, 사무실에. 사람과 사람들, 노예와 주인들, 그리고 그 자신이 노예인 주인들. 공포는 노예를, 증오는 주인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 밖의 다른 힘은 모두 숨을 죽였다. 모두가 우리의 적이거나 경쟁자다.

 

꿈을 꾸는 건 슬픈 일이다. 꿈에서 깨어날 때, 그 의식의 순간은 그 어느 순간보다 날카로운 고통을 준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다. 게다가 꿈은 길지도 않다. 우리는 그저 지친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여하튼 내가 일어설 수 있다는 게 확인되었으므로, 뼈는 다치지 않은 게 틀림없다. 통증이 되살아날까 두려워 신발을 벗을 수도 없다. 게다가 발이 부어오르기라도 하면 나중에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없다.

 

카베KB는 크랑켄바우Krankenbau, 즉 의무실의 약자다. […] 두 달 이상 입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두 달이 되기 전에 우리는 죽거나 회복되어야 한다. 회복의 기미를 보이는 사람은 카베에서 치료를 받고, 병이 점점 심해지는 사람은 가스실로 보내진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했다. 나 자신만 해도 치료도 받지 못한 상처 난 발로 몸을 지탱하는 데 너무나 지쳐 있었고 너무 배가 고프고 추워서 더 이상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더 컸지만 아주 친절해 보이는 인상이다. 배고픔을 겪지 않은 사람만이 그런 인상을 지닐 수 있다.

 

이건 우리를 조롱하기 위한 복잡한 쇼다. 이걸 병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환자를 알몸으로 세워놓고 수도 없이 질문을 한다.

 

카베의 삶은 림보의 삶이다. 굶주림과 질병 본래의 아픔 말고는 불편함이 상대적으로 적다. 춥지도 않고 일도 안 한다.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구타를 당하지도 않는다.

 

잠에서 깨는 것은 무無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카베에서는 음악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 그 곡조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아마 수용소의 기억 중 우리가 가장 나중까지 잊지 못할 것일 게다. 그것은 수용소의 목소리이고 그 기하학적 광기를 지각 가능한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먼저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말살시킨 다음 나중에서야 서서히 우리를 죽여버리려는 그들의 결단을 예리하게 표현한다.

 

의지 같은 것은 이제 없다. 북소리의 박자가 걸음이 되고, 반사작용으로 지친 근육을 잡아당긴다. 독일인들은 이 점에서 성공했다. 1만 명의 동료들은 단 하나의 회색 기계들이다. 그들은 정확할 정도로 결연하다. 생각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걸을 뿐이다.

 

카베는 육체적으로 가장 편한 수용소다. 그래서 아직 의식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기서 의식이 다시 깨어난다. 그리하여 공허하고 긴 날, 허기나 노동이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울타리인 카베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이 아주 연약한 것이며 이 인간성이야말로 우리 생명보다 더 위태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픈 인류로 미어터질 듯한 막사에 언어가, 추억이, 다른 아픔이 들어찬다. 다른 아픔이란 독일어로 ‘하임베’Heimweh(향수병)라는 것이다. ‘집을 향한 아픔’이라는 뜻의 아름다운 단어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바깥 세상에 대한 기억들은 우리의 꿈을, 깨어 있는 시간을 가득 채운다. 놀랍게도 우리가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떠오르는 모든 기억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

그러자 우리가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우리의 밤

 

카베에서 나올 때 […] 알 수 없는 기준에 의해 다른 막사로 가고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카베에서는 알몸으로 나온다. ‘새’ 옷과 ‘새’ 신발(말하자면 카베에 들어갈 때 벗어둔 것이 아닌)을 받게 되는데, 그것들에 빨리, 부지런히 적응해야 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노력과 비용이 든다. 먼저 숟가락과 칼을 구해야 한다. 마지막에는, 이것이 제일 심각한 문제인데, 낯선 환경 속으로, 성격을 모르기 때문에 방어하기가 어려운 카포들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냉담한 동료들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명백히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숨을 구덩이를 파고, 껍질을 만들어내고, 주변에 미약하게나마 방어의 울타리를 쳐놓는 인간의 능력은 놀랍기만 하다

 

인간이 새로 둥지를 틀면 이식의 트라우마는 극복되기 마련이다.

 

알베르토는 당당하게 수용소에 들어왔고 상처 입지 않고 타락하지도 않은 채 수용소에 살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빨리 이 삶은 바로 전쟁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 그는 첫날부터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그를 지탱하는 건 지혜와 본능이다. […] 그는 삶을 위해 이렇게 투쟁하지만 늘 만인의 친구가 된다. 그는 누구를 매수해야 하는지, 누구를 피해야 하는지, 누구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는지, 누구에게 반항해야 하는지를 ‘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부패한 인간이 되지 않았다(바로 이런 그의 장점이 그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소중하고 친근하게 만든다).

 

난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모른다. 늘 같은 사람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기상 시간에 잠시 본 것을 제외하고는 정면으로 얼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얼굴보다는 등과 발을 훨씬 더 잘 안다. 그는 나와 다른 코만도에서 일하고, 소등 시간에야 침대로 들어온다.

 

기관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점점 더 가까워진다. 거의 나를 칠 것 같다. 그러나 기차는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 내 꿈은 아주 가볍다. 아주 얇은 베일이다. 내가 원한다면 찢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할 것이다. 그걸 찢어버리고 싶다. 그렇게 해야 내가 철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난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잠이 깬다. 완전히 깬 것은 아니고 조금 깨어나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계단에서 한 칸 더 올라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잠이 달아날까 봐 눈을 뜨고 싶지 않다. 그러나 소리는 들을 수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는 현실이 분명하다

 

우리의 허기, 이 검사, 내 코를 주먹으로 때렸다가 피가 나니까 가서 씻고 오라고 한 카포에 대해 산만하게 이야기한다. 내 집에 돌아와 친한 사람들 속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강렬하고 구체적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다. 그러나 청중들이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게 빤히 보인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매일매일의 고통이,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장면으로 거듭해서 꿈으로 번역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입술을 핥으며 턱을 움직인다. 음식을 먹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 역시 집단적인 꿈이다. 가혹한 꿈이다.

 

굶주림과 구타, 추위와 노동, 두려움과 혼란으로 뒤범벅된 낮의 고통이, 밤이 되면 전대미문의 폭력이 담긴 무형의 악몽으로 변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신기한 능력에 따라 우리는 시계가 없는데도 곧 기상 사이렌이 울리리라는 것을 아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기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변하지만 언제나 아주 이른 새벽이다. 수용소의 사이렌이 아주 오랫동안 울린다. 그러면 각 막사의 불침번이 근무를 끝낸다. 그는 불을 켜고 일어나 몸을 쭉 편 뒤 매일 똑같은 판결을 내린다. “Aufstehen.”(기상) 혹은 폴란드어로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 “Wstawać.”

 

‘Aufstehen’까지 잠을 자는 사람은 소수다. 그것은 너무나 날카로운 고통이어서 아무리 깊은 잠이라도 그것이 다가오면 모두 흩어져 사라져버리고 만다. 불침번은 그것을 알고 있다. 명령조가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기상을 알리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작게 말을 해도 그 소리가 긴장해 있는 귀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그 소리를 듣고 복종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기상’. 따뜻한 담요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경계, 잠이라는 튼튼하지 못한 갑옷, 고통스럽기도 한 밤으로의 탈출, 이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다.

 

노동

 

그는 서른 살이었지만, 우리 모두가 그렇듯 열일곱 살로도 보이고 쉰 살로도 보였다. 그가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분명 몹시 가슴 아프고 잔인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다 그랬으니까. 수천 수백 가지 이야기, 모두 다르지만 모두 끝없이 비극적이고 마음 아픈 운명의 이야기 말이다. […] 어쨌든 그것들 역시 새로운 성경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거의 맹목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첫번째 침목을 옮기고 난 뒤 내 어깨뼈가 고장난다. 어떤 비열한 행동을 해서라도 두번째 운반은 피해야 한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문다. 작은 외적 통증을 자신에게 부과하는 것이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끌어 모으는 자극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카포들도 그것을 안다. 몇몇 카포들은 단순히 잔인하고 폭력적이어서 우리를 구타하지만, 어떤 카포들은 사나운 말을 다루는 마부들처럼 독려의 의미로, 거의 다정하게 짐을 나르는 우리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매질을 한다.

 

다들 짐을 지기 전에 최대한 미적거리려 한다.

 

박스만이 […]

그의 고향 마을에서 병을 치료하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렇게 야위고 허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2년 동안 이렇게 일을 하고도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니 그 말을 믿게 된다. 그의 눈과 목소리에는 놀랄 만한 생명력이 불타고 있다.

 

변소는 평화의 오아시스다.

 

이제 오전은 거의 다 지나갔다. 오후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노역으로 돌아간다. 11시 30분에 오늘 죽은 어느 정도일지, 맛은 어떨지, 죽통의 윗부분 혹은 아랫부분 중 어느 것이 우리 차지가 될지 하는 판에 박은 질문들이 시작된다. 난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래도 그 대답에 탐욕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부엌에서 실려오는 연기에 코를 킁킁거리지 않을 수 없다.

 

‘Es wird schnell ein Uhr sein.’(곧 11시가 된다.) 모든 감각들은 다가오고 있는 신호에 대한 공포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그것은 이제 문 밖에 있다. 그리고 안으로…….

 

오, 눈물이라도 흘릴 수 있다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대등하게 바람과 맞설 수 있다면! 영혼이 없는 텅 빈 벌레로 사는 이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

 

“Si j’avey une chien, je ne le chasse pas dehors.”(내게 개가 있다면, 이런 날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거야)

 

맑은 날

 

삶의 의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모든 힘줄 속에 뿌리박혀 있다. 이것이 인간 본질이 지닌 속성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은 이러한 목적에 많은 이름을 부여하며 그 성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토론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문제는 훨씬 더 단순하다.

 

오늘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봄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 주위의 모든 것이 회색이다. 우리도 회색이다. […] 매일 해가 뜨는 시간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말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일찍 떴어. 오늘은 어제보다 약간 더 따뜻한데. 두 달 후, 한 달 후, 추위가 휴전을 선포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적이 하나 사라지는 것이다.

 

나 역시 옷을 뚫고 들어오는 온기를 느꼈을 때 인간이 왜 태양을 숭배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L’année prochaine à la maison!”(내년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그가 내게 소리치며 덧붙인다. “……à la maison per la Cheminée!”(굴뚝을 통해서 말이야)*

 

부나의 경계 안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땅은 석탄과 기름 같은 유해물질로 젖어 있다. 기계와 노예들 말고는 살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기계가 노예보다 더 오래 산다.

 

우리는 노예 중의 노예여서 모두 우리에게 명령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이름은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고 옷에 수놓인 번호이다.

 

부나 한가운데 서 있는, 꼭대기가 거의 항상 안개 속에 가려져 있는 카바이드 탑을 쌓은 건 바로 우리다. 부나의 벽돌들은 mattoni, Ziegel, briques, tegula, cegli, kamenny, bricks, téglak이라고 불렸다. 그것을 쌓아올린 건 증오였다. 바벨탑처럼 증오와 반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탑을 바벨투름, 보벨투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탑에 담긴, 우리의 주인들이 꿈꾸는 위대함을, 신과 인간, 우리 인간들에 대한 그들의 멸시를 증오한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독일인들이 4년 동안이나 사용했고 수많은 우리들이 고통스럽게 일하다 죽어나갔던 부나 공장에서는 단 1킬로그램의 합성고무도 생산되지 않았다.

 

오늘은 맑은 날이다. 우리는 시력을 되찾은 맹인처럼 주위를 둘러본다. […]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근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 인간이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말을 그토록 자주 듣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인간이 애초에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누릴 수 없어서라기보다 불행의 상태가 지니는 복잡한 성질을 늘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없이, 차례대로 늘어선 그 불행의 이유들이 단 하나의 이름을, 가장 큰 이유의 이름을 갖게 된다. 그 이유가 힘을 잃어버릴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그 뒤로 또 다른 이유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비탄에 잠길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뒤로 또 다른 이유들이 줄을 서 있다.

 

그리하여 겨우내 우리의 유일한 적이었던 추위가 가시자 우리는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

그러나 어떻게 배가 고프지 않기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수용소 자체가 배고픔이다. 우리 자신이 배고픔, 살아 있는 배고픔이다.

 

우리의 육체는 얼마나 허약한지! 나는 배고픔으로 인한 이런 환상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 눈앞에 방금 요리한 파스타가 어른거린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생각 없이 식사를 중단했다. 만약 그때 우리가 알았더라면! 만약 다시 한 번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세상에 확실한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알베르토는 배고픔과 주머니 속의 빵은 서로를 상쇄시키는 음수와 양수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만나자마자 자동적으로 사라져버리며, 한 개인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Wer hat noch zu fressen?”(누가 처먹을 거냐)

이 말은 우리를 비웃는 것도, 놀리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선 채로, 숨 쉴 겨를도 없이 입천장과 목구멍을 데어가며 정신없이 먹는다. 그것은 ‘essen’, 경건하게 식탁에 앉아 먹는 인간의 식사법이 아니라 ‘fressen’, 짐승의 식사법이다.

 

모두 기분이 좋다. 카포도 우리를 구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어머니를, 아내를 생각한다. 보통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자유로운 인간들 식으로 불행할 수 있다.

 

선과 악의 차안(此岸)에서

 

 

우리는 모든 사건에서 상징과 기호를 찾으려는 고집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다. […] 아우슈비츠로 들어올 새 물품들을 모을 수 없고, 그래서 교환할 속옷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떠돌았다. ‘그러니까’ 해방이 멀지 않은 것이다. 속옷의 배급이 늦어진다는 것은 수용소의 일소一消가 다가왔다는 분명한 표시라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었다.

 

더럽고 찢어진 속옷은 수용소 재봉실로 아무렇게나 전달된다. 거기서 대충 수선이 되어 증기 소독(세탁이 아니라!)을 받은 뒤 다시 배급된다.

 

시장은 항상 활기가 넘친다. 모든 교환(아니, 모든 형태의 소유)이 명백히 금지되어 있음에도,

 

그들은 기껏해야 보잘것없는 배급받은 빵 반 덩어리를 가지고 있다. 아침부터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며 먹지 않고 아껴둔 것이다. 이 빵으로 순진하고 시세에 어두운 사람과 유리한 거래를 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서.

 

이러한 일은 지쳐서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혹은 현장에서 급습을 당해 몇몇 희생자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엄벌을 받을 때까지 계속된다. 하나밖에 없는 속옷을 팔러 시장에 온 사람들도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카포에게 들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

그러므로 카포는 그들을 구타할 것이고, 그들에게 다른 속옷이 배급될 것이며, 조만간 똑같은 일이 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그리스인들이 있다. […] 그 죽은 그들의 노동·단결·동포적 연대의 산물이다.

 

부나에서 빵이나 담배를 받고 팔기 위해 금니를 빼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 ‘높은 수인번호’, 즉 수용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배고픔과 수용소 생활의 긴장감 때문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신참은 값비싼 그의 의치 때문에 ‘낮은 수인번호’의 주목을 받는다.

 

부나에서와는 달리 수용소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거래의 최대 총액은 배급 빵 네 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수용소에서는 신용거래도, 많은 양의 빵을 다른 이들의 식탐과 허기로부터 지켜내는 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수용소의 규정이 명시한 범죄 행위이며, ‘정치적’ 범죄 행위와 유사해 특별히 가중 처벌된다. ‘Handel mit Zivilisten’(민간인들과의 거래)을 한 것이 확실한 해프틀링은 영향력 있는 후원자가 있지 않은 한, 글라이비츠 3, 야니나, 하이데브렉의 석탄 광산으로 보내진다. 이것은 몇 주간의 노역에 지쳐 죽는다는 뜻이다.

 

민간인 노동자는 […] 그들에게 수용소는 벌을 받는 곳이다. […] 만약 그들과 우리의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세상에 우리의 죽음을 선언하는 벽에 틈새를 낼 것이며, 우리의 상황에 대해 자유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비밀에 빛을 비춰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수용소는 벌을 받는 곳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수용소는 게르만식 사회구조 한가운데에서 시간 제한 없이 우리에게 부과된 존재방식일 뿐이다.

 

그 이유 때문에 SS가 그것을 그렇게 엄하게 금지하는 것이다. 우리 이빨의 금은 그들 소유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에게서 뽑아낸 금은 모두 조만간 그들 손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금이 수용소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그들이 통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둑질 그 자체에 대해 수용소 당국은 아무런 적대감도 없다. 정반대의 암거래에 대해 SS가 보여준 관대한 묵인의 태도가 그것을 증명한다.

 

어떤 경우에는 수용소의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인데도 그것을 공급받는 유일하고 정기적인 방법이 부나에서 도둑질을 해오는 것밖에 없다.

 

이와 같은 절도와 반反 절도의 복잡한 그물망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는 건 카베다. 카베는 저항이 가장 적은 장소이고, 규정을 가장 쉽게 피하고 카포의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진공관이다. 죽은 사람, 그리고 선발되어 비르케나우를 향해 알몸으로 떠난 사람의 옷과 신발을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는 사람이 바로 간호사들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간호사들은 또 숟가락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숟가락이 없으면 물이 반인 죽을 먹을 도리가 없는데도 수용소에서는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숟가락을 주지 않는다.

 

카베에 숟가락을 갖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갖고 나올 수는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회복된 사람들이 카베를 나와 옷을 입기 전에 간호사들이 숟가락을 압수한다. 간호사들은 그것을 다시 시장에 내놓는다.

 

민간 관리국은 부나에서 도둑질하는 것을 벌주지만, SS는 오히려 허용하고 조장한다.

 

나는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이라는 단어가 수용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가 스케치한 그림과 위에 예시한 예들을 토대로 세상의 일반적인 도덕이 철조망 이쪽 편에서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각자 판단해보시기를.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우리는 사실 인간의 모든 경험이 의미가 있고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나이·사회적 지위·출신·언어·문화와 습관이 전혀 다른 수천 명의 개인이 철조망 안에 갇힌다. 그곳에서 그들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고 통제당하는, 만인에게 동등한 삶, 그 어떤 욕구도 충족되지 않는 삶에 종속된다. 이 삶은 생존을 위한 투쟁 상태에 놓인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에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실험장이다.

 

우리 생각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는 것뿐이다.

 

인간들을 뚜렷하게 구별짓는 두 개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그것은 구조된 사람과 가라앉은 사람이라는 범주다.

 

보통의 삶에서는 한 사람이 완전히 혼자서 길을 잃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보통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공하거나 추락할 때 옆 사람들의 운명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한없이 힘을 키워나가거나, 실패를 거듭하다가 파멸의 나락에 떨어지고 마는 일은 아주 예외적이다. […] 실제로 한 국가가 문명화될수록, 비참한 사람은 너무 비참해지지 않도록, 힘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지혜롭고 효과적인 법률들이 더욱더 많아진다.

 

수용소 안의 사정은 이와는 다르다. 여기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쉴 수가 없다. 모두 절망적일 정도로, 잔인할 정도로 혼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놀라울 정도로 원시적인 인내심과 약삭빠름을 발휘해 몹시 힘든 노동에서 살짝 빠져나올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빵 몇 그램을 얻어낼 수 있는 기술을 발견했다면 그는 그 방법을 숨기려 무진 애를 쓸 것이다. 그는 이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존경받을 것이고, 거기서 독점적이고 개인적인 이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래서 두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두려운 존재는 그 자체로 생존 후보자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의사, 재봉사, 구두 수선공, 음악가, 요리사, 매력적인 젊은 동성애자, 수용소 권력자의 친구거나 동향 사람이었다. 혹은 카포나 블록앨테스터나 기타 등등에 임명되었던(SS 당국이 임명했다. 이런 자리에 선택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악마의 인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별히 잔인하고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이었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지는 못했지만 영리함과 힘으로 늘 성공적으로 일을 조직해서 물질과 명성을 얻어내는, 수용소 권력자들로부터 특혜와 호평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삶에는 제3의 존재방식이 있다. 그것은 곧 법칙이다. 그러나 강제 수용소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스실로 가는 무슬림들은 모두 똑같은 사연을 갖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런 사연도 갖고 있지 않다. […] 그들의 삶은 짧지만 그들의 번호는 영원하다. 그들이 바로 ‘무젤매너’Muselmänner(무슬림), 익사자, 수용소의 척추다. 그들은 끊임없이 교체되면서도 늘 똑같은, 침묵 속에 행진하고 힘들게 노동하는 익명의 군중·비인간들이다.

 

그들을 살아 있다고 부르기가 망설여진다.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 앞에서, 그들의 죽음을 죽음이라고 부르기조차 망설여진다.

 

특히 흥미로운 건 유대인 특권층이다.

[…]

유대인 특권층들이 만들어내는 인간상은 슬프면서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과거·고래古來의 고통들, 이방인에 대한 전승되고 학습된 적개심이 그들 안에서 하나가 되며,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비사교적이고 무례한 괴물로 만든다.

[…] 노예 상태에 있는 몇몇 개인에게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높은 생존 가능성이 제공되는데, 대신 그들은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배신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는 자신을 압제하는 사람들에 대한 욕구불만의 찌꺼기를 자신이 압제하는 사람들에게 비이성적으로 퍼붓는다. 위에서 받은 모욕을 밑에 있는 사람에게 증오의 형태로 폭발시키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운명의 호의를 받지 못했지만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다양한 부류의 포로들이 있다. […] 적에게 저항해야 하고 경쟁자를 동정하지 말아야 한다.

 

죽지 않기 위해 우리가 고안해내고 실행한 방법들은 수없이 많았다. 인간들의 다양한 성격만큼이나 많았다. 그 방법들은 모두 전체를 향한 개인의 힘겨운 투쟁을 담고 있다. 그중 많은 수가 적지 않은 일탈과 타협을 수용하고 있다.

 

* 엔지니어인 알프레드 L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L이 부유해 보이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믿을 수 없는 강인함을 발휘하여 자신의 배급 빵을 지불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손에 넣었고 또 그래서 더더욱 궁핍한 기간을 견뎌냈음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수준이 평준화되는 수용소 같은 곳에서 존경받을 만한 외모는 실제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보증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엘리아스 린친

 

나이는 아마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일 것이다.

 

그가 뛰어난 일꾼이라는 소문이 금방 퍼져나갔다. 덕분에 그는 수용소의 이상한 법칙에 따라 그때부터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수용소의 원시적인 삶에 어울리는 원시인이 아닐까. 혹은 수용소의 산물이 아닐까.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수용소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변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아닐까.

 

만일 엘리아스가 다시 자유를 찾게 된다면 인간사회의 가장자리에,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갇혀 살게 될 것이다. […] 지켜야 할 도덕률이 없기 때문에 범죄자가 없으며, 우리가 하는 행동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일 뿐,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병자도 없다.

 

엘리아스는 틀림없이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앙리

 

앙리의 이론에 따르면 집단학살을 피하기 위해,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 있다. 조직을 꾸미는 것과 동정을 얻는 것, 그리고 도둑질이다.

 

앙리는 단 한 번의 눈길로 대상을, ‘son type’(자기 타입)를 평가한다. […] 그의 말을 듣고 불행한 젊은이의 운명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래지 않아 그 사람은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앙리와 대화를 하고 나면, 아무리 그의 이야기가 친절했다고 해도 늘 가벼운 패배감 같은 걸 맛보게 된다. 나 역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앞에 한 인간으로서 존재한 게 아니라 그의 손에 좌우되는 도구였던 건 아닌지 혼란스러운 의심이 든다.

 

화학시험

 

걷는 동안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 앞에서 절뚝거리는 사람의 나막신을 밟아서 벗기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고 뒤에서 절뚝거리는 사람 때문에 내 나막신이 밟혀서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허한 얼굴로, 이렇게 머리를 빡빡 민 채, 이렇게 부끄러운 옷차림으로 화학시험을 보다니.

 

그러니까 독일인들은 화학자가 그렇게 필요한 걸까? 아니면 이건 또 다른 속임수, “pour faire chier les Juifs”(유대인들을 멸시하기 위한) 새로운 음모일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우리에게, 무無에 대한 황량한 기다림 속에서 이미 반쯤 미쳐버린 우리에게 이런 시험을 보게 한다는 게 그로테스크하고도 부조리하다는 걸 알까?

 

‘Ne pas chercher à comprendre.’(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조용히 기다려.

우리는 이 사실이 기뻤다. 기다리면 시간이 평온하게 흐른다.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와는 달리 일을 할 때는 매 순간이 힘들게 흘러가서 부지런히 그것을 쫓아버려야만 한다. 우리는 늘 기다리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낡은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들처럼 완전히 무디고 무기력하게 몇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다.

 

나는 스핑크스 앞에 선 오이디푸스가 된 기분이다. 내 생각들은 또렷하다. 지금 이 자리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이 순간에도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라져버리고 싶은, 이 시험을 피하고 싶은 정신 나간 충동이 인다.

 

일은 잘된 것 같았지만 나는 그것을 믿을 정도로 무분별하지는 않다. 아무리 낙관적일지라도 그 어떤 예측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이해할 정도로 수용소에 대해서 이제 알 만큼 알았다.

 

오디세우스의 노래

 

장은 특별한 피콜로였다. 그는 빈틈없고 튼튼하고 온화하며 친절했다. 수용소와, 죽음과, 강인하게, 용기 있게, 개인적으로 비밀스럽게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특권을 가지지 못한 동료들과의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 앞니가 튼튼하며 등과 꼬리에 뾰족한 바늘가시가 있는 동물. ‘호저 딜레마’는 사이가 가까울수록 이기주의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그는 이탈리아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어한다. 나도 그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면 정말 기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이것을 하나 저것을 하나 매한가지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 이 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스파이인 프랭클이 지나간다. 우리는 걸음을 재촉한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는 악 그 자체를 위해 악을 행하는 자다.

 

……오디세우스의 노래. 어떻게, 무엇 때문에 그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올랐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이미 한 시간에서 시간이 얼마쯤 흘렀다. 장이 똑똑하다면 이해할 것이다. 이해할 것이다. 오늘 나는 그가 충분히 그럴 것이라 느낀다.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이고 베아트리체는 신학이다.

 

왜 ‘misi me’(나를 던졌다)가 ‘je me mis’(나를 놓다)가 아닌지를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이 훨씬 더 강하고 대담하며, 이미 깨져버린 관계를 나타내며, 자기 자신을 경계 너머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충동을 잘 알고 있다. 깊고 광활한 바다. 피콜로는 바다를 여행한 적이 있고, 그래서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수평선이 저절로, 자유롭게, 일직선으로 단순하게 뻗어나가는 때를 의미한다. 그때는 이미 바다 냄새밖에 나지 않는다. 달콤한 것들이지만, 잔인할 만큼 멀리 있다.

 

나는 산문으로 들려줄 수밖에 없다. 신성모독이다. 겨우 한 구절밖에 살려내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 구절은 머물러 음미할 가치가 있다.

 

그 누구도 넘어 나아가지 못하도록

 

‘나아가다’(si metta). 나는 이 말이 조금 전의 그 표현 ‘misi me’와 같다는 것을 알기 위해 이 수용소에 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德과 지知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잠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그게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고된 노동을 하는 인간, 특히 수용소의 우리들과, 죽통을 걸 장대를 어깨에 지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내가 밀라노에서 토리노로 기차를 타고 돌아갈 때 희끄무레하게 보였던 그 산들 생각에 빠져들게 내버려두지 말아줘!

됐다, 계속해야지. 이런 것들은 생각은 하지만 말하지는 않는 것들이다.

‘그렇게 높아 보였다’ 다음과 맨 마지막 행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면 오늘 먹을 죽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피콜로를 붙잡는다. 이 구절을 꼭, 그것도 빨리 들어야만 한다. 내일 그가, 아니면 내가 죽을 수도 있고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너무 늦기 전에 “그분이 원하는 대로”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 그리고 나 자신도 이제야 순간적인 직관 속에서 목격한, 이 거대한 무엇인가를, 어쩌면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오늘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마침내 바다가 우리 위를 덮쳤다.

 

그 여름의 사건들

 

그들이 우리에게 했던 약속과 화학 시험에 통과한 것이 아무런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았어도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도, 지나치게 슬퍼하지도 않았다. 간단히 말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변화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있었다. ‘변화란 무조건 나쁜 것이다’, 수용소의 격언 중 하나였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경험은 우리에게 모든 예측이 헛되다는 것을 수도 없이 보여주었다. 우리의 그 어떤 행동도, 그 어떤 말도 미래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뭐하러 고통스럽게 앞일을 예측하려 하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도, 스스로 자문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 삶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흐릿했고 아득했다. 그래서 몹시 달콤하고 슬펐다.

 

배고픔과 절망감은 너무나 구체적이었고 그 외의 나머지 것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 시간의 단위들은 항상 어떤 가치를 지닌다. […] 그러나 우리에게 한 시간, 하루, 한 달은, 즉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고 싶었던 이 무가치한 잉여의 물질은 생기 없이, 그리고 항상 너무 느리게 미래로부터 과거로 내려앉았다. 하루하루 생기 있게, 소중하게,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던 시기가 끝나고 잿빛의 불투명한 미래가 우리 앞에, 마치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서 있었다. 우리에게 이야기는 정지되어 있었다.

 

부나의 독일 민간인들은 오랜 지배의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파멸을 보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확신에 찬 인간 특유의 분노를 품은 채 한없이 포악스러워졌다.

 

새로운 위험과 새로운 불편을 평소와 다름없는 무관심으로 참아냈다. 의식적으로 체념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구타에 길들여진 짐승들처럼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간단한 이야기이다.

 

그들 중 우리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에게 우리는 ‘카체트’, 중성 단수 명사일 뿐이다.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善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

 

하지만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그는 이 무화無化의 세상 밖에 있었다.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1944년 10월

 

우리는 겨울을 맞지 않으려고 온힘을 다해 싸웠다. 우리는 따뜻한 시간에 매달렸다. […] 그리고 오늘 아침은 한겨울이었다.

 

지난 겨울을 여기서 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 이것은 앞으로 몇 달 동안, 그러니까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우리들 열 명 중 일곱 명은 죽는다는 뜻이다. 죽지 않은 사람은 매 순간, 매일매일,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배고픔이 한 끼를 굶은 사람의 그것과 같지 않듯이, 우리의 추위에도 특별한 이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허기’라는 말을 쓴다. ‘피로’, ‘공포’, ‘고통’이라는 말도 쓴다. ‘겨울’이라는 말도. 하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것들이다. 자기 집에서 기쁨을 즐기고 고통을 아파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자유로운 단어들이다. 만일 수용소들이 좀더 오래 존속했다면 새로운 황량한 언어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첫 눈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작년 이맘때, 이 수용소에서 다시 겨울을 맞을 거라고 그들이 말해줬다면 아마도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건드려보려 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천막이 해체되었고, 2,000여 명이 우리 막사로 몰려들었다. 우리 고참 포로들은 독일인들이 이런 변칙적인 상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곧 포로 수를 줄이기 위한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절망이 흘러넘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의 집단적 사기는 너무 흐리멍덩하고 단조로워서 불안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다. 배고픔, 추위, 그리고 노동과의 싸움 때문에 생각을 위한 여백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이 ‘셀렉챠’에 대한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자넨 안심해도 되겠어. 자네 차례는 아닐 거야. Du bist kein Muselmann(자네는 무슬림이 아니야). 오히려 내가 걱정이지…….”

[…]

그것은 요즈음 수용소의 명령어이다. 나도, 세세한 이야기는 빼놓더라도, 카임이 내게 말해준 대로 나 자신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

이런 보잘것없는 근거를 바탕으로 1944년 10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하게 그 엄청난 선발을 겪어냈다.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속일 수 있었기 때문에 침착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선발이 되지 않았던 건 그저 우연 때문이었을 뿐, 내 믿음이 근거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수용소와 부나의 규칙은 전혀 느슨해지지 않는다. 노동, 추위와 배고픔은 우리들의 관심을 하나도 남김 없이 완전히 쏟아부을 만큼 엄청나다.

 

늘 그렇듯, 소식은 모순과 추측의 후광에 싸여 전해진다.

 

젊은이들끼리는 노인들이 모두 선발될 거라고 말한다. 건강한 사람들끼리는 병든 사람만 선발될 거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제외될 것이다. 독일 유대인도 제외될 것이다. 낮은 번호들도 제외될 것이다. 너는 선발될 것이고 나는 제외될 것이다.

 

아직은 아무도 자신의 운명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선발된 쪽이 오른쪽으로 넘어간 것인지, 왼쪽으로 넘어간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거나 미신적인 배려를 할 때는 아니었다. 모두들 제일 나이 많은 사람들, 제일 여윈 사람들, ‘무슬림’들 옆으로 모여든다. 그들의 카드가 왼쪽으로 갔다면 왼쪽이 선발되는 게 틀림없다.

 

선발된 사람에게는 두 배의 죽이 배급될 것이다. 그것이 블록앨테스터의 터무니없는 자비심에서 나온 생각인지 SS의 분명한 명령인지는 알 수 없었다.

 

치글러가 반합을 내밀고 보통 양의 배급을 받은 뒤 가만히 기다리고 서 있다. “왜 그러는 거야?” 블록앨테스터가 묻는다. 치글러에게 두 배의 죽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치글러를 밀쳐 쫓아버리지만 치글러는 다시 돌아와 불쌍하게 계속 고집을 부린다. 그의 카드는 왼쪽으로 넘겨졌고 모두 그것을 보았다. 블록앨테스터가 카드를 확인하러 간다. 치글러는 두 배의 배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 배급이 정확히 주어지자 치글러는 죽을 먹으러 조용히 침대로 간다.

 

쿤 노인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상체를 거칠게 흔들며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그 소리를 듣는다. 쿤은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하고 있다.

[…]

그 어떤 위로의 기도로도, 그 어떤 용서로도, 죄인들의 그 어떤 속죄로도, 간단히 말해 인간의 능력 안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절대 씻을 수 없는 혐오스러운 일이 오늘 벌어졌다는 것을 쿤은 모른단 말인가?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크라우스

 

비가 오면 우리는 울고 싶어진다.

 

그것도 아니면 속옷과 등 사이에 마른 헝겊이라도 댈 수 있다면. 삽질을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마른 헝겊이야말로 실질적인 행복이라고 믿어버린다.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좋다, 나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건드리거나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 수 있다. 그러면 비는 끝이 날 것이다.

 

그(크라우스)는 아직 모든 것을, 숨쉬는 것, 움직이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 아끼는 우리의 비법을 배우지 못했다. 차라리 매를 맞는 게 더 낫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매를 맞아 죽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고된 노역으로는 죽는 경우도 많고 병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다. 그는 아직 생각을 한다……. 오, 안 돼, 가엾은 크라우스. 그의 행동은 이성적인 생각에 의한 게 아니다. 보잘것없는 피고용인의 어리석은 정직함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아침에는 영원처럼 까마득해 보였던 하루의 분초를 통과했다. 이제 오늘 하루는 끝이 났고 곧 잊혀진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하루가 아니며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지 않으리라. 우리는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것을 안다

 

기억이란 희한한 도구다.

 

어느 날, ‘내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을 때까지.

 

수용소의 은어들 중 결코 사용하지 않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Morgen früh’, 내일 아침이다.

 

선량한 청년 크라우스는 부르주아 출신이 분명했다. 그는 이 안에서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첫눈에 알 수 있고 수학의 정리定理처럼 증명 가능하다. […] 지금 그의 감정의 둑이 무너져내렸다.

 

가엾고 어리석은 크라우스. 이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가 안다면. 내가 그의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것을, 나에게도 그는 이 잠깐 동안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저 수용소 안의 배고픔, 추위와 주위에 내리는 비 이외의 나머지 모든 것들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가 안다면.

 

실험실의 세 사람

 

이게 마지막 전투가 되리라는 데 의심을 품을 이유가 없다. 하루 중 그 어느 때든 우리 몸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팔다리에 질문을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답은 하나다.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것.

 

우리는 이 실험실 안에 있기 위해서라면 시험관을 씻든 바닥을 쓸든 수소 플라스크를 옮기든 무엇이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겨울이라는 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다.

 

감시가 얼마나 삼엄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미 수용소 생활 1년째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할 작정을 하고 진지하게 그 일에 몰두하면 아무리 감시가 심해도, 아무리 몸수색이 심해도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보다 수용소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아마도 생존에 대한 희망과 자유에 대한 생각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운명의 선물이다. 운명의 선물은 단번에, 가능한 한 철저히 즐기면 된다. 내일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할 수 없으니까. 내가 깬 첫번째 유리 때문에, 첫번째 측정 실수 때문에, 첫번째 부주의 때문에 다시 눈과 바람 속으로 돌아가 기운을 빼다가 굴뚝으로 갈 준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러시아군이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독일인들은 귀가 먹고 눈이 멀어서 고집과 흔들림 없는 무지의 갑옷 속에 갇혀 있다. […] 그들은 방공호와 참호를 만들고 피해 입은 곳을 수리하고 건설한다. 전투를 하고, 명령하고, 조직하고 학살한다.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독일인들이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깊이 숙고되고 신중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본성과 이미 선택된 운명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달리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몸에 상처가 나도 그 상처는 어찌 되었든 아물게 된다. 비록 그 사람은 하루 안에 죽겠지만.

 

내가 사나운 바람을 피해 실험실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내 옆에 한 친구가 등장한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다, 카베에서나 쉬는 일요일마다 나타나던 친구다.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내게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세상의 다른 실험실에 있는 여자들이 모두 그렇듯, 이 여자들도 수다를 떠는데, 이게 우리를 정말 불행하게 만든다.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한다. 배급, 약혼자, 집, 다음에 열릴 파티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

“거짓말 같아. 올해가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말이야!”

……올해가 빨리 지나간다. 작년 이맘때 나는 자유인이었다. 법의 울타리 밖에 있었지만 자유인으로서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욕심 많은 정신이 있었고, 건강하고 민첩한 육체를 갖고 있었다. […] 누군가가 죽고 죽이는 일이 나와는 관련이 없는, 문학적인 허구로 보였다. 나의 하루하루는 행복하면서도 슬펐지만 그 모든 날들이 아쉬웠다. 모든 날들이 충만하고 긍정적이었다. 풍요로운 미래가 내 앞에 있었다. 당시의 내 인생 중 오늘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배고픔과 추위로 인한 고통뿐이다. 자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낼 기운도 없다.

 

마지막 사람

 

메나슈카는 특별 주문제작한 아연반합으로, 반합이라기보다는 양동이에 가깝다.

[…]

메나슈카는 물질적인 이익 외에도 우리의 사회적 위치를 눈에 띄게 개선시켰다. 우리가 가진 메나슈카는 귀족의 작위이고 문장紋章이다.

 

다른 모든 걸 떠나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겼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이득이다.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수용소에서는 모든 것이 무료다.

 

우리 해프틀링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샤워를 매우 꺼린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샤워는 의무다. […] 몸이 젖어 있는 사람은 표를 받고 건조한 사람은 곤봉으로 다섯 대를 맞는다. 표를 보여줘야만 다음 날 아침 빵을 배급받을 수 있다.

 

알베르토의 관심은 바로 그 표에 집중되었다. 대개 표는 보잘것없는 종이로 만들어져서 회수할 때는 축축하게 젖고, 구겨지고,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알베르토는 독일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안다. 그리고 블록앨테스터는 모두 독일인이거나 독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질서, 체계, 관료 제도를 사랑한다. 게다가 그들은 거칠고 화를 잘 내기는 해도 반짝이는 총천연색 물건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오늘 우리 앞에서 처형될 남자는 모종의 방식으로 그 반란에 가담했다. […] 독일인들은 이 외로운 죽음이, 그를 위해 마련된 인간의 죽음이, 그에게 치욕이 아닌 영광을 가져다주리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독일인의 연설이 끝나자 다시 처음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Habt ihr verstanden?”(알아들었나)

여기에 “야볼”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누굴까? 모두이자 아무도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우리들의 저주받은 체념이 하나의 형체를 부여받은 듯했다. 그것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하나의 목소리로 변하기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죽어야 할 사람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무기력과 복종의 두텁고 낡은 장막을 뚫고 들어와 우리들 내부에 살아남은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Kamaraden, ich bin der Letzte!”(동지들, 내가 마지막이오)

비굴한 무리인 우리들 속에서 어떤 목소리, 어떤 신음 소리가 들렸다고, 동의의 신호들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우리들 중 힘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힘이 있던 마지막 사람은 지금 우리들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다. […] 그들은 여기서 다만 노예들, 우리를 기다리는 무기력한 죽음에 어울리는 기운이 다 빠진 우리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절대 아니지만 독일인, 당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 당신들의 눈앞에 온순한 우리가 있다. 우리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반란 행위도, 도전적인 말도, 심판의 눈길조차 없을 테니까.

 

우리는 망가지고 패배했다. 이 수용소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해도, 마침내 우리의 식량을 마련하는 법을 배우고 고된 노동과 추위를 견디는 법을 배웠다 해도, 그리고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열흘간의 이야기

 

그 소식은 내게 그 어떤 직접적인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나는 수용소의 특징인, 한 발 물러선 객관적인 방식으로만 고통·기쁨·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방식을 ‘조건부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예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면(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공포는 극도로 전염성이 있다. 공포에 질린 사람은 제일 먼저 도망을 치려고 애쓴다.

 

밤이 깊어졌을 때 그리스인 의사가 어깨에 배낭을 메고 발라클라바 모자를 쓰고 다시 왔다. 그는 내 침대에 프랑스 소설책 한 권을 던졌다. “이거 받아, 읽어봐, 이탈리아인. 다시 만났을 때 돌려주면 돼.” 바로 이 말 때문에 오늘까지도 나는 그를 증오한다. 그는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침내 주변에서 독일의 것이 아닌 힘이 느껴졌다. 저주받은 이 세계 전체의 붕괴가 임박했음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적어도 지치고 배가 고프긴 해도 움직일 수는 있는 건강한 사람들은 그렇게 느꼈다. 너무 허약하거나 헐벗었거나 신발이 없는 사람들이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느낀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우리가 완전히 속수무책이며 운명의 손에 맡겨졌다는 무력감이었다.

 

병을 앓는 우리는 두려움을 압도하는 무력감 속에서 우리끼리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카베 전체에 800여 명쯤 되었을 것이다. […] 거대한 기계인 수용소의 리듬이 사라지고 난 뒤, 세상과 시간이 사라진 열흘이 우리에게 시작되었다.

 

두 명의 프랑스인은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몹시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마지못해 그들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그들이 겁을 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났다. 그들은 수용소 생활이 한 달도 채 안 되었다. 아직은 배고픔이 무엇인지도 거의 몰랐고 유대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토록 겁을 내고 있었다.

 

지금 나는 아우슈비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시대에 그 누구도 신의 섭리에 대해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간, 극한 상황에서 구원을 받는 성서의 모든 일화들이 바람처럼 모두의 머릿속을 스쳤던 것은 사실이다.

 

토바로프스키(23세의 프랑스계 폴란드인으로 발진티푸스 환자)가 이런 일을 해낸 우리 세 사람에게 빵 한 조각씩을 주자고 제안했고 다른 환자들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었다. 수용소에는 이런 불문율이 있었다. “네 빵을 먹어라.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네 옆 사람의 빵도 먹어라.”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갖지 마라. 지금 이 일은 수용소가 죽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우리 사이에서 일어난 최초의 인간적인 제스처였다. 나는 바로 그 순간이 어쨌든 살아 있던 우리가 해프틀링에서 다시 서서히 인간으로 변모한 그 변화 과정의 시작으로 기록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쟁이 한창인 얼음 뒤덮인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에서, 병원균들이 우글거리는 어두운 병실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과 화합했다고 느꼈다. 우리는 피로에 지쳐 있었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쓸모 있는 어떤 일을 해낸 기분이었다. 어쩌면 천지창조의 첫날을 보낸 하느님 같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불 속에 누워 근육과 신경과 의지가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로 나를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처럼 무심하게 모든 것이 끝나기를 혹은 끝나지 않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수용소 밖의 삶이 아름다웠고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며 지금 우리가 사라지게 된다면 정말 안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샤를이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한 내 이름을 우연히 듣고는 그때부터 끊임없이 신음을 하며 애원했다.

물론 나는 그럴 만한 수단과 힘이 있다면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그들의 집요한 외침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도. 밤이 되어 모든 일을 끝냈을 때 나는 피로와 몸서리를 억누르며 물과 그날 우리가 먹고 남은 죽이 담긴 반합을 들고 더럽고 깜깜한 복도를 더듬거리며 그들이 있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결과는 이랬다. 그때부터 이질 환자 병실의 환자들은 얇은 나무 벽을 통해 밤이고 낮이고 내 이름을 외쳤다. 내 이름은 전 유럽의 모든 억양으로 불렸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구제해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울고 싶었다. 그들에게 욕을 하고 싶었다.

 

단순히 안심시키려는 목적으로 나는 모든 사람의 코에 장뇌 도포제(면실유와 장뇌유를 섞은 자극 완화제)를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세르텔레를 안심시켰다. 나 자신도 그렇게 믿으려고 애썼다.

 

1월 24일. 자유. 철조망에 난 구멍은 자유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조심스럽게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보면 이제 더 이상 독일인도, 선발도, 노동도, 구타도, 점호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조금 뒤에는 집에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거기서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확신을 가지려면 노력이 필요했고, 그 누구도 그런 생각을 즐길 만한 여력이 없었다. 주위에는 온통 파괴와 죽음의 흔적뿐이었다.

 

당시 나는 인간이 죽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러시아군이 곧 도착할 거라고 서로에게 말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공언했다. 모두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진심으로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희망을 갖는 버릇, 자신의 이성을 신뢰하는 버릇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는 모든 일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것은 쓸모없었다. 그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고통의 원천이자, 그 고통이 일정 한계를 넘으면 자연의 섭리에 의해 무뎌져버리는 감수성이라는 것을 되살려내기 때문이다.

 

1월 26일. 우리는 죽음과 유령들의 세계에 누워 있었다. 문명의 마지막 흔적은 우리 주위에서, 우리 내부에서 사라져버렸다. 승승장구하던 독일인들이 시작했던, 인간을 동물로 만들려는 작업은 패배한 독일인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인간을 죽이는 건 바로 인간이다.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도, 부당함을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거리낌 없이 시체와 한 침대를 쓰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옆 사람이 가진 배급 빵 4분의 1쪽을 뺏기 위해 그 사람이 죽기를 기다렸던 사람은,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미개한 피그미,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전형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다.

 

우리 존재의 일부분은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눈에 하나의 사물일 뿐인 시절을 보낸 사람의 경험이 비인간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월 27일. 새벽. 바닥에 쇼마지의 것인 뼈와 가죽만 남은 보잘것없는 육신이 있다.

우리에겐 급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몸을 씻을 수 없으므로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고 난 뒤에야 그에게 손을 댈 수 있다.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만큼 역겨운 일은 없어.

 

살아 있는 사람들은 요구가 많다. 죽은 사람들은 기다릴 수 있다. 우리는 다른 날들처럼 일을 시작한다.

 

부록 1 독자들에게 답한다

 

인간처럼 책에도 운명이 있다. […] 이 책 「실험실의 세 사람」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 나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라고 썼다.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강렬히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곳, 독일 연구실에서, 추위와 전쟁 속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1. 당신의 책에서는 독일인들에 대한 증오도 원한도 복수심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다 용서한 것인가?

 

성격상 나는 쉽게 누구를 증오하지 못한다. [… ] 내가 보기에 증오는 개인적인 것이고 한 사람에게, 어떤 이름에게, 어떤 얼굴에게 향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를 박해했던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갖고 있지 않았다. […] 그들은 멀리 있었고, 눈으로 볼 수 없었으며, 접근할 수도 없었다. 나치스 체제는 용의주도하게도 노예와 주인이 최소한의 접촉만 하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또 이 책이 쓰인 그 몇 달 동안, 즉 1946년에 나치스와 파시즘은 정말 얼굴이 없는 듯했다. 그것들은 무시무시한 악몽처럼, 정확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다시 허공 속으로 흩어져버린 듯했다. 새벽닭이 울면 유령들이 사라져버리듯이 말이다. 그런 유령 집단을 향해 내가 어떻게 분노를 키우고 복수를 바랄 수 있겠는가?

 

파시즘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가면을 쓰고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파시즘은 새옷을 입고 다시 나타나기 위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나는 범죄자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이탈리아와 외국의 파시즘이 범죄였고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진심으로 비판하고, 그들과 다른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나는 용서할 수 있다. […]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려는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2. 독일인들은 알고 있었나? 연합군은 알고 있었나? 수백만 명의 집단학살이 어떻게 유럽 한복판에서 아무도 모르게 진행될 수 있었나?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금방 다 알 수 있다. 오늘날 정보는 ‘제4계급’을 만들어냈다. 적어도 신문기자와 리포터는 이론상으로 어디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고, 접근을 금지할 수도 침묵을 강요할 수도 없다. 모든 게 아주 쉽다.

 

독재국가에서는 그렇지 않다. 진실은 위에서 명령한 한 가지밖에 없다. […] 모두 똑같은 진실만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파시즘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웠던 소련도 이런 국가에 포함된다. 독재국가에서는 진실을 마음대로 바꾸고, 과거를 되돌려 역사를 다시 쓰고, 사실을 왜곡하고 삭제하고 거짓을 첨가하는 게 합법적이다. 프로파간다가 정보를 대체한다.

 

강제 수용소라는 거대한 기관의 존재를 독일 국민에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나치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혀 바람직한 일도 아니었다. 한없는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나치즘의 목표였다.

 

연합군 라디오에서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을 여러 번 묘사했다. 하지만 너무나 잔인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그걸 믿지 않았다.

 

독일인들은 수용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수용소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모든 독일인들이 여러 형태로 자행된 잔인한 반유대주의의 증인이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는 특별한 불문율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아는 것, 그리고 알리는 것은 나치즘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이었다. 나는 독일 국민이 전체적으로 이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3. 수용소에서 탈출한 포로들이 있었나? 집단적인 반란은 왜 일어나지 않았나?

 

오늘의 젊은이들은 자유를 그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재산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강제수용이라는 단어는 즉시 탈출이나 반란과 연결된다.

 

아우슈비츠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은 수백 명도 되지 않았고 그들 중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수십 명밖에 안 되었다. 탈출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극도로 위험한 행동이었다.

 

몇몇 수용소에서 실제로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 이 반란들은 바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난 반란과 마찬가지로, 아주 특별한 도덕적 힘을 표현한 것이었다. 모든 반란은 어떤 식으로든 특권을 가진, 그러니까 신체 상태나 정신 상태가 다른 일반 포로들보다 훨씬 나은 포로들에 의해 계획되고 지휘되었다. 이건 놀랄 일이 아니다. 고통을 덜 받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건 처음에는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 ‘거지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이 수용소의 포로들은 대개 조직이나 군대의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유럽 전역에서 온 사람들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나 굶주려 있었고 기운이 없었으며, 다른 포로들보다 훨씬 더 지쳐 있었다. 수용소에서 그들의 생활 조건이 더 가혹했기 때문이고, 또 그들이 게토에서부터 이미 오랫동안 허기와 박해와 굴욕에 시달려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의 결과로, 그들이 이 수용소에서 머무는 기간은 비극적일 정도로 짧았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죽음에 의해 계속 줄어들었다가 새 수송열차의 도착으로 다시 채워지는 유동인구일 뿐이었다. 그렇게 황폐하고 그렇게 불안정한 인간 조직에서 반란의 싹이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억압에 굴복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저항을 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의식이 파시스트 치하의 유럽에 그리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은 아니고,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그러한 의식이 약했다는 것 말이다. 그러한 의식은 정치적 행동주의자였던 소수의 인간들이 지니고 있던 자산이었다. 그러나 파시즘과 나치즘은 그들을 고립시키고 추방하고 테러를 가하고 심지어 아예 목숨을 빼앗아버렸다. 독일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수십 만 명 중 첫 희생자들이 반反 나치스 정당의 정치가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려는 민중의 의지는 훨씬 뒤에야, 무엇보다 유럽 공산당 덕택에 싹트기 시작했다.

 

4.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뒤 다시 찾아가본 적이 있는가?

 

아우슈비츠라는 수용소 제국은 하나가 아니라 40여 개의 수용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폴란드 정부는 수용소를 일종의 국립 박물관으로 바꿔놓았다. 막사들은 깨끗이 청소가 되고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으며,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잘 가꿔진 화단도 있었다. 몇 톤은 될 듯한 머리카락, 수십 만 개의 안경, 빗, 면도용 솔, 인형, 아이들 신발 같은 가슴 아픈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곳은 어쨌든 박물관, 정지되어 있고 질서정연하고 인공적인 어떤 것일 뿐이었다. 내 눈에는 수용소 전체가 박물관 같았다. 내가 머물던 수용소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포로였을 때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심한 아픔을 느꼈다. 그곳은 변한 게 전혀 없었다. 진흙이 있었다. 아직도 진흙이 있었다.

 

그녀는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물었다. “저 불길은 뭐지요?” 그러자 여자들이 대답해주었다. “저기서 타고 있는 건 바로 우리야.”

 

첫째 부류는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혹은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대개 이런 사람들이 불운 때문에, 그러니까 정치 활동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다가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고통은 사고나 질병 같은 트라우마일 뿐, 의미나 가르침이 전혀 없는 경험이었다. […] 그들은 그 기억을 지우려고 애썼다.

 

둘째 부류는 반대로 ‘정치적’이었던, 혹은 어찌되었든 정치적 경험이 있거나 종교적 신념 또는 강한 도덕성을 소유한 포로들이다. 이 귀환자들에게는 기억하는 것이 의무다. 그들은 잊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세상이 잊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수용소 체제를 향해 가게 된다.

 

5. 레비는 왜 독일 수용소 이야기만 할 뿐 러시아 수용소는 언급하지 않는가?

 

나는 심판관보다는 증언자 역할이 좋다. 난 내가 경험하고 본 일들을 증언자로서 인용한다. 내 책에는 허구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소련의 수용소와 나치스의 수용소.

 

중요한 차이는 목적성에 있다.

 

독일 수용소는 피로 물든 인간의 역사에서 유일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냈다. 정적을 제거하거나 겁을 준다는 오래된 목적과 함께, 한 인종과 문화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리겠다는 현대적이고도 무시무시한 목표가 자리잡고 있었다. 대략 1941년부터 그 수용소는 거대한 죽음의 장치가 되어버렸다.

 

소련의 수용소는 그렇지 않았다. […] 죽음은 자주 일어나는 사고로서, 잔인할 정도의 무관심으로 묵인되었지만 본질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 일반적으로 독일 수용소에는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었다. 죽음 이외의 그 어떤 다른 결말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와는 달리 소련 수용소에는 항상 끝이 있었다. 스탈린 시대에 ‘죄인들’은 놀랄 만큼 경미한 죄목으로 엄청나게 긴(15~20년까지도 되는) 유형을 언도받았다. 그렇기는 해도 결국은 풀려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소련에서 간수와 포로들 사이의 관계는 좀더 인간적이었다. 모두 같은 나라 사람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했으며, 나치즘에서처럼 ‘군림하는 인간’과 ‘복종하는 비非인간’이 없었다.

 

소련의 수용소는 여전히 비합법성과 비인간성을 비참하게 증명하고 있다. 수용소들은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수용소는 소련 정부와 아무 상관이 없는, 혹은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차르 전제주의 시대의 야만적 유산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 우리는 수용소 없는 사회주의를 그려볼 수 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실현된 일이었다. 하지만 수용소 없는 나치즘은 상상도 할 수 없다.

 

6. 자유의 몸이 된 후 『이것이 인간인가』의 등장인물들 중 다시 만난 사람이 있는지?

 

피콜로 장

이상하게도 그는 모노비츠에서 보낸 한 해를 대부분 잊어버렸다. 그는 오히려 철수 행군 때의 끔찍했던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그 행군 중 그는 친구들이 극도의 피로 때문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그중에는 알베르토도 있었다).

 

피에로 손니노

그가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했던 비극적인 사건들보다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던 모험적인 사건들을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7. 유대인에 대한 나치스의 광적인 증오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적절하게도 반유대주의라고 불리는, 유대인을 향한 적대감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즉 그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품는 적대감의 한 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지만 이런 동물적인 불관용을 모두 용인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반유대주의는 전형적인 불관용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소수인 유대인들은 그래서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 사람들과 달랐고 다르다고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종종 자신들이 다르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그것이 옳든 그르든). 이 모든 것이 유대인들을 몹시 공격받기 쉽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세기, 거의 모든 지역에서 가혹하게 박해를 받았다.

 

반유대주의의 본질에는 거부라는 비이성적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 국가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굳어져가기 시작하던 때부터 반유대주의가 종교적인, 아니 신학적인 옷을 입게 되었다.

 

독일계 유대인인 시인 하이네

“책을 불태우는 사람은 조만간 인간들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

 

나치즘 역사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전반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광적인 분위기가 나치즘에 깔려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였다.

 

나는 솔직히 히틀러와 그의 뒤에 있던 독일의 광적인 반유대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 몇몇 진지한 역사학자들(블록, 슈람, 브라허)의 겸손함을 좋아한다.

이와 같은 일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되어서도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정당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전쟁은 항상 끔찍한 사건이다. 유감스러운 사건이지만 우리의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 전쟁에는 이유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치즘의 증오 속에는 이유가 없다. 그 증오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밖에 있다. 파시즘이라는 유해한 나무에 열린 유독한 열매지만, 파시즘 밖에 그것을 뛰어넘은 곳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며 경계해야만 한다.

 

그들의 생각은 대개 비정상적이거나 어리석거나 잔인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환영을 받았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수백만의 추종자들이 그들을 따랐다. 비인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을 포함한 이런 추종자들은(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이성과 다른 도구로, 혹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앞세워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판단과 우리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진짜 선각자와 가짜 선각자를 구별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모든 선각자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좋다.

 

훨씬 더 소박하고 덜 흥분되는 진실, 차근차근,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부와 토론과 추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실, 확인되고 입증될 수 있는 진실에 만족하는 게 훨씬 더 좋다.

 

그럴 경우 지혜로운 충고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 저항할 힘을 찾아야 한다. 이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유럽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기억이 힘이 되고 교훈이 될 것이다.

 

8. 수용소 포로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당시를 떠올리면 어떤 기분인지? 어떤 요인들 덕에 생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사실 우리의 미래는 외적 요인들,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택과는 전혀 무관한 요인들과 우리가 의식하고 있지 못하는 내적 요인들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 잘 알려진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본인의 미래도 이웃의 미래도 알 수가 없다. 또 같은 이유로 과거의 일에 대해 “만약에”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아우슈비츠의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글을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냉소주의자로 치부되는 게 싫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지금 수용소를 떠올리면 격렬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짧았지만 비극적이었던 포로 생활의 경험이 길고 복잡한 증언 작가로서의 경험과 합산되어, 그 결과는 분명 긍정적이다.

 

아마도 그보다는 지칠 줄 몰랐던 인간에 대한 관심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뿐만 아니라 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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