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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밀크맨 | 애나 번스

2021. 5. 25.
밀크맨

밀크맨

애나 번스 저/홍한별

애나 번스는 북아일랜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다.

소설은 1970년대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과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폐쇄적인 마을 공동체 내에서 유무형의 폭력에 노출된 열여덟살 여성의 일상과 내면을 일인칭 시점의 입말로 들려준다. 직접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지만, 저자 자신의 발언과 소설 내 여러 단서로 미루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무장세력(IRA)과 이를 저지하려는 무장세력(UDA) 간에 테러와 보복이 빈번하게 벌어지던 북아일랜드 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맨부커상 시상식에서 번스가 수상 소감을 통해 이 작품을 벨파스트에서 보낸 유년 시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밝히며 “나는 폭력과 불신, 피해망상이 만연하고 사람들은 가능한 최대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곳에서 성장했다”고 말해 작품에 더 큰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1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 가슴을 총으로 찌르고 고양이 같은 년이라고 하면서 나를 쏘려고 한 날이 밀크맨이 죽은 날이었다. 밀크맨은 국가암살단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가 총을 맞은 일이 나에게는 전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쓰레기인데 언니는 임신했으니 망한 거였고, 게다가 언니는 오래 사귄 남자를 아직도 사랑하고 그 사람이 자기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가 자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믿지 않으려 했으니 더 문제였다. […] 언니는 그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어렸고 너무 불행했고 너무 사랑했다(남편이 아닌 사람을).

 

그 사람이 어느 집 밀크맨인지 나는 모른다. […] 보통 승용차를, 매번 다른 차, 주로 번쩍이는 차를 모는데 정작 본인은 번쩍이지 않는다.

 

어느날 내가 『아이반호』를 읽으며 걷는데 그 사람이 차를 타고 다가왔다. 나는 자주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었다. 나는 그게 뭐가 잘못인지 몰랐는데 그게 나중에는 나를 향한 비난의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가 확실히 그 근거 목록에 들어 있었다.

 

“내 말 잘 들어.” 언니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첫째 형부의 이중성 때문에, 언니가 그걸 참아주고 있기 때문에 안 들었다. 내가 언니를 탓하고 있었다는 걸, 그러니까 첫째 형부가 오래전부터 나한테 그런 말들을 해온 것이 언니 탓이라고 생각해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언니가 형부가 온갖 수작을 부리고 다니는 걸 당연히 알았을 텐데도 사랑하지도 않고 존경할 수도 없는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언니를 원망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보통은 잘 자제한다. 그런데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났다. 언니에게, 언니가 어리고 약한 아내가 되어 남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것에, 형부가 나를 자기와 똑같은 사람 취급하는 것에 화가 났다.

 

보통 19세기 책을 읽으면서 걷는데 나는 20세기를 좋아하지 않고 20세기 책도 안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열여덟살 때, 나는 일촉즉발인 사회에서 자랐고 이곳에서는 신체 폭력이 없는 한, 명백한 언어적 모욕이 가해지지 않는 한, 눈앞에서 조롱당하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기본 원칙이었으니, 그러니 일어나지 않은 일에 피해를 당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곳은 낮에는 커다란 공원 두개가 합해진 곳이고 밤에는 유해한 장소였다. 사실 낮에도 유해하지만 사람들은 어디 한군데라도 갈 수 있는 데가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낮에도 유해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밀크맨과 내가 수풀 옆을 달리는데 ‘찰칵’ 소리가 들렸다. […] 밀크맨 때문에, 밀크맨이 하는 일 때문에 찰칵 소리가 났다는 걸 나는 알았다. 여기서 밀크맨이 ‘하는 일’이란 뭔가에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 ‘관련되어’ 있는 뭔가가 뭐냐면 반란 행위인데, 그 ‘반란 행위’란 이곳의 정치적 문제 때문에 나라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사진 찍혀서 어딘가의 파일에 들어가게 되었고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제는 알려진 동조자가 되었다.

 

밀크맨은 페이스를 조절하느라 천천히 달리는 척했지만 나는 페이스 조절이 뭔지 안다. 달리다가 걷는 건 페이스 조절이 아니다.

 

남자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남자의 뜻을 따르는 대신 남자의 말에 반박하는 여자, 버릇없는 여자, 오만하고 자신감이 지나친 여자는 봐주지 않는다.

 

이 애가 나의 ‘거의 일년째 어쩌면-남자친구’다. […] 가끔은 연애 같다. 가끔은 연애가 아닌 것 같다.

 

공식적인 ‘남자와 여자’ 영역에서는 여자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고 어떤 말을 할 수 없는지가 정해져 있으니, 나는 밀크맨이 내가 달리는 것을 방해하고 속도를 늦춰 결국 걷게 만들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에도 밀크맨이 무례하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무례하게 밀치고 달려나갈 수는 없었다.

 

2

 

나는 셋째 형부가 좋았다. […] 셋째 형부의 또 좋은 점은 남 이야기를 절대 안하고 상스러운 말도 안하고 음탕한 웃음을 흘리지도 않고 그 어떤 것도 비웃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강한 사람이다. 조신하기도 했다. 사소한 잘못에도 물들지 않았고 큰 잘못에는 들썩도 안했다. 정말 특이했다. 그래서 그애한테 끌렸다.

 

이때 이곳에서 폭탄과 총과 죽음과 부상을 포함한 정치적 문제가 불거지면 사람들은 보통 “저쪽 편이 했어” 또는 “우리 편이 했어” 또는 “저쪽 종교가 했어” 또는 “우리 종교가 했어” 또는 “저들이 했어” 또는 “우리가 했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국가 수호자들이 했어’ 또는 ‘국가 반대자들이 했어’라는 의미다.

 

금지된 이름은 특히 어떤 기운이나 역사의 힘이나 해묵은 갈등이나 그 나라가 오래전에 이 나라에 내린 명령과 강제가 서려 있다고 생각되는 이름이고 이름의 본디 국적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여자아이에게는 ‘물 건너’ 이름을 붙여도 괜찮았다. […] 잘못된 여자아이 이름은 잘못된 남자아이 이름처럼 오래된 기억을 들먹이며 과거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거나 역사적 불쾌감을 거론하는 따위의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써도 되는 이름의 목록은 없다. 누구든 허락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허락되는 것을 짐작해야 한다.

 

지나간 일을 지나간 일로 덮지 않던 시대에는 이런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미묘한 암시가 허다했다. 그 사이에는 중립적이고 편 나누기에서 면제된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남자친구의 집에 사람들이 다 모인 가운데 그 이웃 사람이 조준한 것은 화약고 같은 상징이었다.

 

국기는 원래가 본능적이고 감정적이게끔 만들어진 것이라 병적으로 자기애적으로 감정적일 때가 많다.

 

국기는 감정적이다. 원시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그 국기가 ‘물 이쪽’에 있는 ‘길 이쪽’에 등장할 가능성이 극도로 희박한데도 친구들은 이웃의 말이 말도 안된다고 콧방귀를 뀌는 대신 열을 내며 반박했는데, 그때가 피해망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칼날 위에 선 시대, 원시적인 시대,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시대였다.

 

누구나 전리품을 추구하는 시대였지만 전리품에 대해 겸손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쩌면-남자친구도 이웃 앞에서는 들뜬 기색을 감췄다.

 

사실 셰프는 셰프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술이 한잔 들어가면 요리학교에 가서 셰프가 되겠다고 말하곤 했다. 셰프의 직업은 벽돌공인데, 남자가 요리를 좋아하면 안되는 시대에 요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공사장 사람들이 그를 셰프라고 부르며 놀렸고 그게 이름으로 굳어졌다.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심을 말하지 않는 한편 누가 자기 생각을 읽으려 하면 그 사람에게 가장 위쪽 마음 상태만 드러내고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는 의식의 수풀 안에 감춘다.

 

그래도 참을 만했다. 어쩌면 우리 관계가 ‘어쩌면’ 단계이기 때문에 참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공식적으로 그애와 같이 사는 건 아니고 우리가 공식 커플은 아니니까. 우리가 정식 관계이고 공식 커플로 같이 산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하게 될 일은 떠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홍등가의 특징에 반감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냥 나이 많은 어른들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고 했다. 예를 들면 부모님, 조부모님, 세상을 뜬 조상님,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 백골이 진토 되어 특히 쉽게 상처를 받을 법한 선조들이 언론매체에서 “타락, 퇴폐, 풍기문란, 비관주의, 예의범절 파괴,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부도덕”이라는 논조로 말하는 세태에 충격을 받을까봐 이사하는 거라고 했다.

 

주저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친밀감과 취약함이 딱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상실을 일으키고 일종의 미시감을 경험했다. 우리는 우리가 기억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서로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하고 전에도 가까운 관계를 시도했으나 우리의 어쩌면-관계의 민감한 상태 때문에 잘되지 않았음을 일깨워야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지만 나도 내적모순이 등장할 때마다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하지만 어쩌면-남자친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걸 집어냈다.

 

사실 나는 보통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안했다. 아무 말도 안하는 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내가 정보를 내놓지 않아 생긴 공백을 엄마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상상으로 꾸며내어 직접 메웠다. 엄마 혼자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통째로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엄마는 결혼의 의무에 대해, 로맨스에 대한 갈망과 현실 여성의 목표를 혼동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다. 행복을 누리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혼은 신의 명령이고 공동체적 소임이자 책무이고 나이에 걸맞은 행동이고 맞는 종교의 아이를 낳고 의무와 한계와 제약과 구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엄마가 다른 세상에 살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도 거기로 와서 살아야 한다고 고집해서 기운이 빠졌으며 또 내가 엄마를 정형화된 인물, 캐리커처, 내가 절대 되지 않을 무언가로 여긴다는 사실 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내뱉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 없이 무례하게 “어쩌라고요”라고 말한 것이다.

 

그때는 수치를 해소할 방법도 극복할 방법도 없었다. 수치가 공적인 감정일 때가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치의 효과를 증폭하려면 수치를 주는 사람이건 수치를 목격하는 사람이건 수치를 당하는 사람이건 간에 사람이 많아야 했다. 이렇듯 수치는 복잡하고 복합적이고 고도로 발달된 감정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수치를 피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다. 사람을 죽이고, 말로 상처를 주고, 정신적 상처를 주고, 게다가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했다.

 

그때가 “미안해요”라고 말할 순간이었는데 물론 ‘미안’도 ‘수치’처럼 우리가 쓸 줄 아는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안’이라는 말 없이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다. 우리는 수치와 마찬가지로 미안한 감정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걸 표현하는 법은 몰랐다.

 

이건 내 삶이고 난 엄마를 사랑하지만, 어쩌면 사랑하지 않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고 그렇게 살 거고 이게 우리 사이의 선이에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책 읽으면서 걷는 것을 관두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그만 독서등을 달고 다니는 것도 관두고 위험하고 무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다시 보면 행복해질 거라는 말이죠?” “행복하고는 상관없어.” 셋째 형부가 말했는데 그 말은 그때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내가 들어본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이었다.

 

아는 것은 힘이 아니고 안전이나 안도감도 아니고, 어떤 사람에게는 힘, 안전, 안도감의 정반대 것일 수도 있다. 예민하게 깨어 있다보면 자극이 계속 쌓여 고조되기 마련인데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할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걸으면서 책을 읽는 것은 알지 않으려고 일부러 하는 행동이다. 경계하지 않으려고 경계하는 것이다.

 

형부의 직접적인 질문에 나는 바로 미시감 상태로 들어갔다. 잘 알아 마땅한 것을 모르는 일로 여기는 것, 그게 나의 반응 방식이었다.

 

3

 

물론 우리는 사실 하늘이 파란색 말고 다른 색일 수 있다는 것, 다른 색이 두가지 더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인정할 이유가 없었다. 나 자신도 인정하지 않았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우리 관습이었다. 세부적인 사항을 인정한다는 것은 선택을 의미하고 선택은 책임을 뜻하는데 우리가 책임을 다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본 탓에 추궁을 당하고 무너지게 되면 어쩌겠는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만약 그게 좋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건 간에 좋았고 마음에 들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에서 위안을 얻고 의존하게 되었는데 그게 사라진다면, 그것을 빼앗긴다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하나? 애초에 없는 편이 낫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그래서 우리 하늘의 색은 파란색이어야 했다.

 

“창문 전체에 파란색은 하나도 없는데요. 다시 한번 보세요. 제발 다시 봐요.” 그러고 나서 잠시 멈추었다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저 밖에 온갖 색이 있지만—사실 아무것도 없긴 하죠.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저 바깥쪽 허공이 어떤 색이든 될 수 있다는 걸 보아두세요.”

 

선생님 말이 사실이라면, 저 하늘—저 밖에 있는 하늘이—저 밖에 없는 하늘이—무엇이든 간에—어떤 색이든 될 수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무엇이든 아무 색이나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아무것이 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미 그러고 있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말이 되지를 않았다.

 

우리가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종교 간 대척지점에서 복잡하고 위험하게 만나는 까닭은 그가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그가 곤란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내가 그에게 우리 엄마를 설명하는 곤란한 일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내 옆에서 어쩌면-남자친구와 주위의 이상한 사람들은 전부 해넘이를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가 저 사람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하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그곳에서, 문득 내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파란색, 파란색, 또 파란색—모든 사람이 알고 당연히 거기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공식적 파란색이 아니라, 진실이 내 감각을 두들겼기 때문이다. 거기에 파란색이라고는 한점도 없다는 게 점점 확실해졌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색을 봤고 일주일 뒤에 프랑스어 수업에서도 색을 보았다.

 

문제는 그게 안전한 것이냐 위험스러운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저녁놀을 보고 불편해하는 것도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는 것도 다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니까. 깨어난다는 의미니까. 본심을 들켰다거나 망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시내 외곽 십분 지역 가까이에 와 있었다. 십분 지역은 공식적으로 십분 지역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통과하는 데 십분이 걸려서 그렇게 불린다.

 

누가 알겠니?—엄마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애초에 어떤 사악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어떤 곳은 그냥 그런 곳이 되고 그렇게 착각을 일으키는 거야.

 

엄마는 우울증이 없었고, 우울증을 참아주지도 않았고, 우울증이 없고 우울증을 참지 않는 이곳 다른 사람들처럼 엄마도 우울증이 있는 사람을 정신을 차릴 때까지 마구 흔들어주고 싶어했다. 물론 그때에는 그걸 우울증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아빠에게 세상 돌아가는 게 그렇다고, 승리도 극복도 있을 수 없으며 극복은 환상이고 승리는 몽상이고 노력과 재노력은 헛된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확신을 주고 심지어 위안도 줄 수 있었다.

 

엄마와 엄마 유형, 그러니까 우울한 사람이나 비극 앞에 굴복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이 아니라 다른 불쌍한 사람이 그런 끔찍한 운명을 겪도록 선택한 신의 은총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조차도, 내내 속 편하게 지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좋아한다는 이유로 죽인다’라는 말 때문에 등골이 오싹했다.

 

인간의 어두움과 결탁했거나 혹은 그 어둠에서 나온 물리적 환경이 빛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빛을, 투명함을, 광휘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그걸 즐기게 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익숙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걸 믿게 되고 기대하게 되고 감명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희망을 갖게 되고 해묵은 전통을 버리고 빛에 물들고 빛을 흡수해서 우리 자신이 빛을 내기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빛을 뺏기거나 빛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두려움과 슬픔이 압도하는 환경에는 빛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알약소녀 동생은 내 또래였다. 이 애를 싫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은 우리가 이 애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이미 적응한 좁아진 세상에 남아 있기가 더 쉬웠다. 알약소녀 동생을 알약소녀와 비슷하게 취급하는 게, 그러니까 상도를 벗어난 사람, 철저히 배척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더 쉬웠다.

그러니까 빛나는 것은 나쁘고 ‘너무 슬픈’ 것도 나쁘고 ‘너무 기쁜’ 것도 나쁘니 따라서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살아야 했다. 또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적어도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게 하면 안되므로 다들 자기 생각을 저 아래 깊이 안전하게 감추었다.

 

“너무 타성에 젖었고, 너무 연연하고, 너무 음울해. 어떤 합당한 이유도 까닭도 없는데 말야. 상상일 뿐인데. 그게 십분 지역의 유래야. 그러니까 아무 유래가 없다는 거지.”

 

그것은 증오였다. 엄청난 증오였다. 70년대의 막대한 증오였다. 이 증오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려면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거추장스러운 정치적 문제나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깔끔한 결론으로 정리한 정치적 문제 따위는 일단 미뤄두어야 했다.

 

비록 최후에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은 내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이런 놀라운 감정을 품는다.

 

밀크맨의 질문은 진짜 질문이 아니었다. […] 자기가 이미 다 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리고 암시하고 경고하기 위해서 강하게 진술하면서 마치 질문인 양 수사적으로 되묻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여자들하고는 달랐다. ‘허락되는 것’과 ‘허락되지 않는 것’의 구분이 남자들 사이에서는 더욱 엄격하고 까다로운데 그런 구분을 나는 잘 몰랐다.

 

물론 여기에 사는 사람은 어떤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극단적이고 끔찍한 시대에, 전장이나 다름없는 그 거리에서는, 이곳에 살면서 어떤 관점을 갖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거의 늘 등을 돌리고 19세기, 때로는 18세기, 가끔은 17세기, 16세기에 빠져 살았지만 그래도 어떤 관점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운동에 빠져 사는 셋째 형부도, 우리 구역 사람들 모두가 아무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셋째 형부조차도 알고 보니 날카로운 관점이 있었다. 관점을 갖지 않기가 불가능한데 문제는 지역마다, 편마다 관점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어 관점이 있긴 하지만 폭발적인 충돌에 끼고 싶지 않다면 예의와 겸손함으로 폭력, 증오, 비난을 상쇄해야 했다. 아니면 어떻게 살겠는가? 이건 정신분열증이 아니었다.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트라우마와 어둠속에서 정상성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적대감은 누르고 좋은 점을 보려고 애쓰는 게 필수였다.

 

그 시대에는 어디든 다 닫혀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평범함을 입에 올리기는 하나 온건함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평범함도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반대자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편에도 속하지 않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모르는 척했다. 반대자들이 존경을 받긴 했다. 최소한 원조 반대자들, 저항과 투쟁에 원칙이 있던 구식 반대자들은 존경을 받았으나 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감옥에 갇혔고, 그리하여 엄마 말마따나 반대자들 사이에서 “깡패, 속물, 출세지향주의자, 개인적 목적”이 우세하게 되었다.

 

밀크맨이 하는 말을 내가 마침내 알아들었으면서도 못 알아들은 척한다는 사실을 밀크맨이 안다는 사실도 나는 알았다. 모르는 척한 건 모르는 척하도록 사회화가 되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무서워서이기도 했다.

 

내가 밀크맨과 불륜관계라는 소문이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지라도 나만은 내가 밀크맨과 불륜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마찬가지로 밀크맨이 무장단체 구성원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과급기처럼 ‘물 건너’ 애국심의 전형적인 상징이었으므로 ‘물 이쪽’에 있고 ‘길 이쪽’에 있는 사람이라면, 제임스 본드를 볼 수야 있겠지만 그런다는 사실을 말하면 안되었다.

 

이곳의 필부필부는 정치적 문제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평범한 민간인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우리 명예를 맡아 관리하는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과연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확신할 수가 없으므로 불안을 느꼈다. 죽음, 점점 늘어나는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상처, 망각된 피해, 반대자의 작전이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 결과로 겪어야 하는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고통 때문이기도 했다.

 

그랬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나는 결혼을 거부하는 사악한 노처녀일 뿐 아니라 결혼식도 안 올렸고 정식으로 매인 데도 없는 헤픈 여자였다.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그건 엄마 딸이 책에서 읽은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 자신이 어디에서 주워들은 것으로 상상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엄마는 나에게 나와 밀크맨 사이의 최신 루머를 전달하는 동시에 그걸 기정사실로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확대하고 갱신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홀딱 빠져서 확대경을 들고 그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어떤 문턱에 있다는 사실이나 정치적 문제와 어쩌면-남자친구와의 어쩌면-관계 같은 삶의 애매모호함을 맞닥뜨려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었다.

 

자기들이 나한테 먼저 접근해놓고 내가 자기한테 접근했다고 생각하고, 나는 일단은 친절하게 대할까 아니면 사정없이 쳐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건데 머리가 나빠서 그것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절대로,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차에 타면 안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그 마지막 선을 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 선을 넘어 차에 탄다면 그것으로 ‘끝’이자 무언가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그(진짜 밀크맨)는 무기를 버려서 반대자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또 지역의 규칙과 규정에 불만을 표해서 또 반대자들의 미움을 샀고 또 반대자들이 규칙 위반 심판을 벌여 주민들이 그들의 규칙과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사정없이 처벌하는 것에 반대해서 또 미움을 샀고 또 밀고자로 의심받는 사람이 실종되었을 때 법석을 떨어서 또 미움을 샀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평판을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누굴 도와주거나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실제로는 자주 도와줬다. 우리가 그의 좋은 행동을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가 누구에게나 불친절하다는 평판이 의식에 너무 확고하게 박혀 있어서 사실로 헛소문을 밀어내려면 의식적인 노력을 엄청 기울여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소문이 도는 까닭은 여기에서는 그냥 죽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죽음을 맞을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자연사하거나 창문에서 떨어지는 등의 사고로 죽을 수가 없기 때문에, 특히 지금 이 구역에서 이렇게 많은 폭력적인 죽음이 일어나는 마당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뭐든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 그가 말했다. 국경에 관한 것이어야 납득할 수 있는 거야. 정치적인 게 아니라면, 평범하지 않고 극적이고 충격적인 죽음이어야 하지.

 

여기에서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극단적이어야 해, 진짜 밀크맨이 말했다

 

일단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상도를 벗어난다. ‘여성’이라는 말도 가까스로 상도를 벗어나지 않는 정도인데. ‘문제’ 등과 같은 일반적인 단어와 결합해 어감을 좀 부드럽게 해보아야 페미니스트와 여성이 합해지는 순간 끝난 거다. 우리 지역에서는 이 문제 여성들에 대해 심하게 말한다. 뒤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한다.

 

4

 

그러는 커플이 많았다. 퇴근해서 집에 가는 길에 그런 정식 커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볍고 편하게 일상처럼 만나 가볍고 편하게 일상적인 일들을 했다. […] 우리는 아니었다. 내 일과와 어쩌면-남자친구의 일과가 달라서 이런 친밀함이 자랄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우리의 ‘어쩌면’ 상태 때문에 이런 친밀감이 생기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데올로기적 대의에 헌신한 사람들이 항상 대의를 위한 행동만 하지는 않는다는 건 나도 알았다.

 

“여기 사람 대부분은 자동차 폭탄 때문에 죽지 않아. 폭발로 죽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 게다가 어쩌면-여자친구야, 누군가가 언젠가 나를 죽일 수 있다고 해서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사람들 말에 따르면 나와 밀크맨의 불륜이 상당히 무르익었다고 했다. 사실과 소문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람이 꿍꿍이를 감추고 있을 때에도 꿍꿍이가 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소문에 따르면”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린 장본인이 아닌 양 소문을 의인화해서 말했다

 

이들에게 대적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내 속마음을 숨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최대한 빠르고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상대방의 의도를 전혀 모르는 척하면서 어떤 질문에든 계속 “모르겠어요”라고만 답하는 방법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내가 알게 된 또 한가지 사실이 있는데, 내가 믿는 몇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게 좋다는 사실이다.

 

나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때, 내가 상대방에게서 의도가 숨겨진 말, 은밀한 눈빛, 나를 중상하려는 욕구를 알아차렸음을 드러내면 안된다는 걸 알았다. 또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땐 최대한 유순하게 말하고 동시에 상대와의 거리를 필사적으로 유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거리를 둔다는 사실을 감추어야 했다.

 

내 안에 있는 진짜 ‘ 나’가 내 얼굴에 지시를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내가 나를 도와줄 부하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 나를 무시하고 하극상을 벌일 반역자를 선택했다는 생각은 못해봤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얼굴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굳어버린 것이다.

 

지금은 안다. 내가 어떻게 했든 간에 소문이 잦아들거나 멈추거나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남자가 나를 손에 넣고 가진 다음 버리기 전까지는.

 

감정이 표출되기를 멈춘 것이다. 그러더니 아예 사라져버렸다. 무감함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지역 사람들만 내 속을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내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내면세계가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불신이 너무 강해서 나를 도와주고 지지하고 위로해줄 사람이 있었을 텐데도 친구를 만들고 지원을 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을 못 믿었고 나 자신을 못 믿었고 나한테 도움을 구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여전히 나는 무엇이라도 사람들에게 말할 만한 일이 있는지 아닌지조차 확신을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어쩌면, 어쩌면 아닌지도, 아마도, 모르겠다. 계속적인 암시, 상징, 재현, 은유가 있었다. 내가 받아들인 의미가 그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밀크맨이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놓고 보거나 각 사건을 따로 떼어 묘사한다고 해보자. 아무리 애써 말로 전달해봤자 별것 아닌 일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적이고, 테러리스트이고, 민간인 테러리스트이거나 테러리스트 동조자이거나 테러리스트임이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을지라도 테러리스트 용의자들이었다.

 

이제 프랑스어 수업도 반짝임을 잃고 시들해졌다. 내가 반짝임을 더이상 원하지 않게 된 것이겠지만. 재미도 없어지고 ‘무슨 의미지? 의미가 없어’가 점점 나를 사로잡아 이제는 매주 수업을 들으러 시내에 가는 게 힘들었다.

 

그 사람들 말마따나 “이 슬픈 시기에 관련된 잡다한 것들 중에서 나중에 어떤 게 가치 있는 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국가에서는 밀고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사진을 찍고, 반대자들은 밀고자가 이미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사진을 찍고, 미래의 사업가들은 밀고자라는 이유로 살해를 당해서 유명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사진을 찍는 것에 더해, 국가에서 제1목표물의 동조자의 동조자라는 이유로 두배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남자친구는 몰랐겠지만 나는 알았다

 

인생은 짧고, 가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으니 공모를 했다거나 공범이라거나 이 지역 주민으로서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스스로 초래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 어쩌면-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아예 끊는 게 상책이었다.

 

사실 아이버가 아무리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도, 어쩌면-남자친구를 돕기 위해 폴라로이드 백장을 보내고 진술서 이백장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하더라도, 어쩌면-남자친구의 지역에서는 아이버의 말을 믿지 않을 터였다. 아이버가 그들 중 한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어쩌면-남자친구에게 밀크맨과 우리 지역에서 퍼지는 나와 밀크맨에 대한 소문 이야기를 안했지만 어쩌면-남자친구도 자기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나나 모든 사람에게 고집스럽게 침묵의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 사이에 긴장감이 커졌고 티격태격 옥신각신이 심해졌다.

 

반대자가 장악한 지역에 살다보면 “지역의 수호와 대의를 위해 당신의 무엇무엇을 징발해야겠습니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무엇무엇에는 뭐든 들어갈 수 있다—집, 자동차, 무엇이 되었든 할인받아 얻은 이익의 일부.

 

‘거의 일년째 어쩌면-남자친구’

‘아직까지 거의 일년째 어쩌면-여자친구’

 

나는 점점 혼란에 빠져서 어쩌면-남자친구를 탓할 일이 아닌 일이나 어쩌면-남자친구가 한 일도 아닌 일을 가지고 어쩌면-남자친구를 원망했고 어쩌면-남자친구도 마찬가지 정신 상태인지 나를 대하는 태도나 말투가 나와 다를 바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우리 사이에 밀크맨이 단단히 자리 잡았고 어쩌면-남자친구가 밀크맨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우리 사이에 단단히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 그 사람들하고는 상관없는 일이고 게다가 난 아무 짓도 안했는데.” 내가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짓도 안했어. 어쨌거나 지금도 안하고, 앞으로도 안할 테지. 이미 관에 들어가 일상적 장소에 묻혔으니.”

 

누가 내 말을 들어주었고, 누가 내 말을 듣고 이해했고, 말을 끊거나 생뚱맞은 자기 생각을 들이밀지 않았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한참 동안 가장 오래된 친구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그래도 불편하지 않았다.

 

“네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 이해해. 그럴 만하지. 지금은 네가 여기에서 상도를 벗어난 사람으로 간주되니 그럴 수밖에.”

 

“네가 자초한 거야, 가장 오래된 친구야. 내가 계속 말했잖아. 초등학교 때부터 죽 정말 오랫동안 너한테 그 습관 고치라고 말했는데 이제 거기 중독된 것 같더라—길에서 걸으면서 책 읽는 거 말야.” “하지만—” 내가 말했다. “자연스럽지가 않아.”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말했다. “사람들이 불안해해.”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말했다. “하지만—나는 네가 차 사고 위험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줄 알았어. 내가 차에 치일까봐.” “차가 문제가 아니었어. 차 때문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 때문이었지. 아무튼 이제 늦었어. 사람들이 너에 대해 결론을 내렸으니.”

 

“걸어가면서 최신 헤드라인을 보려고 신문을 펼치는 것하고는 다른 일이라고, 친구야. 네가 하는 양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메모를 하고 각주를 확인하고 밑줄을 긋고 등등 마치 개인 공부방이나 서재에서 커튼을 닫고 램프를 켜고 찻잔을 옆에 놓고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거나 논문을 쓰거나 공부를 할 때처럼 보이니까 그러는 거야. 불편하다고. 비정상이야. 착시를 일으켜. 공공정신에 위배돼. 자기보호 본능에도 어긋나.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행동이고. 턱 앞에 적이 있고 적에 포위되어 있어 다들 힘을 합해야 하는 상황에서 뭐 하러 너 자신한테 주의를 끄니?”

 

“어쨌거나 너의 읽으면서 걷기보다는 더 정상이야. 이건 주변을 얼마나 인식하느냐의 문제인데, 네가 하는 행동에서는 인식하고 있다는 티가 안 나.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 상황적 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네 말이 맞아. 밀크맨이 셈텍스를 가지고 다니는 건 괜찮고 네가 책을 읽고 돌아다니는 건 안 괜찮다는 말.”

 

“걸으면서 책을 읽는 사람의 수가 적다고 해서 내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잖아. 가장 오래된 친구야, 만약에 단 한 사람만 정상이고 나머지 사람 전부가 정상이 아니라면, 집단의식에서는 그 한 사람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겠지.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니?” “응.” 친구가 말했다. “자기와 대립하는 세상에서 겹겹의 장애물을 맞닥뜨리면서도 자기 방식을 고집한다면 미친 거지. 하지만 넌 그런 사람조차 아니야.”

 

나는 갑작스러운 슬픔을 느꼈다. 내가 지금 가장 오래된 친구와 연을 끊고 물러나는 게 아니라 가장 오래된 친구가 이미 나에게서 멀어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애정이야 남아 있을지라도 믿음은 끝이 났고 그 남아 있는 애정이라는 것도 어쩌면-관계와 비슷한 것이었다.

 

친구는 핵심에서 벗어나면 안된다고 했다. 친구가 말하는 핵심이란 내가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어서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는 점,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사람도 존재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설명하려 한다는 점, 정치적 문제가 팽배한 곳에서 정신을 딴 데 두고 다니면 안된다는 점, 내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던지는 가벼운 질문이나 아무 속뜻 없는 질문에도 비정상적으로 불안해한다는 점이었고, 나는 아니라고, 나는 질문을 꺼리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친구는 고개를 저으면서 문학적인 질문만 받아들이고 그것도 19세기나 그 이전 시대에 관한 질문만 인정하지 않느냐고 했다. 친구는 멍한 얼굴을 하고 몸을 둔하게 해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데도 내가 그 방법을 계속 고집한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걸어다니는 소녀라고?” “그래, 너 말이야. 가끔은 책을 읽고 가끔은 생각의 참호를 깊게 파 그 안에 들어간 채로 걸어다니면서 단호하고 고집스럽게 버티는 소녀 말이야.” 그러더니 지금부터는 직설적으로 말하겠다며 마치 지금까지는 직설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말했다.

 

“알았어. 이제 안할게.” 나는 걸으면서 책을 읽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나의 고집스러운 침묵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제를 읽으면서 걷기로 돌린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걸으면서 읽기도 그만두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만 그만두겠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 내 힘을 빼앗는 세상에서 그게 나의 마지막 남은 한가지 힘이었다.

 

친구가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카메라, 찰칵 소리, 정보 수집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밀크맨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나에 대한 파일이 있었을 거라고 했다. “공동체 전체가 용의자니까. […] 만약에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에 사는 사람 중에 파일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수상한 사람이라는 확실한 증거야.”

 

친구는 밀크맨하고 상관없이 내 주변 인물들 때문에 이미 내 이름이 박힌 파일이 있었을 거라고 했다. 무슨 주변 인물이냐고 물으려는데 친구가 말을 끊었다. “세상에. 믿기질 않는다. 네 정신머리! 네 기억력이라니! 머리를 분리하고 의식을 쪼개기라도 한 거니! 나 말이야! 너와 내 관계! 네 오빠들! 둘째 오빠! 넷째 오빠!”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알면서도 모르는 것들 있잖아, 친구야. 네 뇌와 바깥세상을 분리하니까 그렇지. 그런 정신적 오류는 정상이 아니라고. 비정상이야. 알면서 모르고, 기억하면서 기억 못하고, 빤한 것을 인정 않지.”

 

나는 친구의 비난에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친구가 금세라도 나를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몰고 갈 것만 같았다.

 

“또 미시감이라니 무슨 말이야? 내가 미시감에 빠지고 그것도 자주 그런다는 거야?” 그러자 친구는, 내가 주기적으로 어쩌면-남자친구와 제대로 된 관계로 나아가려고 시도했던 일을 기억에서 지워 없었던 일로 만들고 다시 시도할 때마다 매번 처음으로 우리 관계를 한단계 진전시키려 한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지금도 내가 전에 늘 국가안보기관에 검문을 당해놓고 검문을 당한 적이 없다고 착각한다고 주장했다.

 

술집에서 이렇게 만나고 헤어진 뒤에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가장 오래된 친구와 세번 더 만났다.

친구의 결혼식, […] 친구 남편의 장례식, […] 친구의 장례식.

 

5

 

가장 오래된 친구는 알약소녀를 조심해야 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은 어른인 그 불쌍한 소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거든.”

 

국가 반대자들이 검은 옷에 복면을 쓰고 권총을 들고 들어와서 불량배나 미성년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술집에는 보통 불량배나 미성년자가 많지만 반대자가 누구를 밖으로 끌어내거나 쫓아내는 것은 못 봤다. 그냥 시늉만 하는 것이다. 이게 힘을 과시하기 위한 시늉이고 매주 꼭 해야 하는 연극이라는 걸 누구나 알았다.

 

그렇게 군대가 차례로 들어와 저마다 둘러보고 과시하고 권력을 휘둘렀고 다른 사람들—그러니까 우리들, 댄스플로어 위의 젊은이들, 테이블에 앉은 젊은이들, 바에 앉은 젊은이들, 구석진 곳에서 키스하고 애무하는 젊은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했다.

 

알약소녀가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하나, 지금과 다른 시대, 의식도 다르고 삶과 죽음과 관습에 대한 생각도 달랐던 그때에는 알약소녀를 그냥 참았다. 날씨를 참듯이, 천재지변을 참듯이, 금요일 밤 군인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참듯이. 알약소녀를 상도를 벗어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자신이 분열되고 강탈되었다고 본 거지.” 자기의 한 면은 독을 넣는 사람이고 다른 면은 독을 넣지 않는 자기 동생인데, 이 구역에서 대조적인 두 면이 공존할 수는 없으므로 자기보호 차원에서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가장 오래된 친구는 알약소녀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알약소녀를 설명하려는 공동체의 시도가 더욱 난관에 봉착했다고, 만약 내가 얼굴을 책에 파묻고 돌아다니기를 그만두고 현실을 직시한다면 공동체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당연하지만 여기에서는 누구나 움직인다. 모두 거의 쉴 새 없이 한걸음씩 움직인다. 모래가 이동하듯 일어나는 순리적인 변화는 공동체의 민족의식에 쉽게 통합될 수 있지만 알약소녀 같은 상도를 벗어난 이들은(지금은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나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자기 자신이 법칙이다.

 

“그렇게 세상일을 훤히 아는 척하면서 어떻게 그건 몰랐니?” 나는 엄마가 세상일이라고 하는 게 뭘 뜻하는지 몰랐다. 내가 아는 세상일이란 우라질 지옥, 우라질 지옥, 우라질 지옥이고 이 표현에 자세한 내용은 안 들어 있지만 이 표현 자체가 자세한 내용이다.

 

“가짜 밀크맨이 널 수정시킨 거야?” “뭐라고요?” 엄마가 쓴 단어가 너무 이상해서 순간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널 채웠냐고?” 엄마가 부연설명을 시작했다. “수태시켰냐고. 잉태시켰냐고. 결합시키고 골치 아프게 하고 당황하게 하고 씨를 뿌리고 후회하게 만들고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하고 빌게 만들었냐고—하느님 맙소사, 내가 내 입으로 말해야 해?” 아니 왜 입으로 말하지 않는 건데? 그냥 임신이라고 말하면 안되나? […] 다음 주제는 낙태였고 […] 뭘 구해서 먹었고 매춘부 이모 중에 누구한테서 받았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우리 지역에 매춘부 이모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반대자들이 매춘부들을 내버려두거나 혹은 못 막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지식의 샘인 엄마가 어두운 세계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나무라면서 나한테 가르쳐주는 건 참으로 엄마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나를 믿게 만들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뭐 하러? 지난번에 그렇게 하려 했을 때 엄마는 나더러 거짓말쟁이라고 했고 내가 이미 진실을 말했는데도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했다. 엄마는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오직 내가 소문을 시인하기만을 바랐다.

 

“아니, 그럼 뭔데?” 엄마가 물었고 통증과 중독의 와중에도 나는 안도감과 위안이 내 몸 안에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나를 비난하기를 잠시 멈추고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를 사랑하기는 쉬웠다. 엄마를 사랑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가끔은 나도 느꼈다.

 

뭔가 경찰에 보고할 만한 문제가 있을 때 병원에 가면 안된다는 관습.

 

“겁을 주고 옭아매고 연루시키고 왜곡할 거고—아, 길거리 개보다도 못한 놈들—그자들 말을 안 듣고 버틴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여기에서는 밀고자라는 한점의 의혹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이곳은 의심, 추측, 부정확에 열광하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불가능한 곳이라 뭐라 말하건 말건 무조건 그게 진리가 되었다.

 

이때에도 거리를 두고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안타까움, 정말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안타까움이었는데, 그 순간 벼락 맞은 듯 독을 먹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깨달았다.

 

문제 여성들은 알약소녀가 젠더 불평등이라는 문제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부당함을 다 끌어들여 광기를 은폐한다고 말했다. 광기를 감추려고 다른 사람들이 교육, 직업, 가정생활, 성생활, 종교, 건강, 포식, 단식, 육아, 독립 투쟁, 정부 행정 등 온갖 것을 내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엄마는 히틀러로 오인된 남자에게 독을 먹인 사람이 알약소녀라는 사실은 받아들였으나, 내가 밀크맨과 얽혔다는 루머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확고하고 나에 대한 믿음은 너무나 약한 탓에 나도 알약소녀에 의해 중독이 되었다는 사실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는 걱정하고 있었다. 반대자들이 알약소녀를 죽인 게 아니라면(반대자들은 자기들이 죽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만약 그들이 죽였다면 전부터 알약소녀를 죽일 거라고 공포하고 돌아다녔으니 안 죽였다고 말할 이유가 없었다) 평범한 살인이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평범한 살인은 섬뜩하고 불가해한 것이고 여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종류의 살인이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살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분류하고 토론해야 할지 몰랐다. 이곳에서는 정치적 살인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치적’이란 당연하지만 국경과 관련된 모든 것에 얽힌 살인이다. […] 정치적인 것과 무관한 죽음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했다.

 

“평범한 살인일 리가 없지. 여기서는 평범한 살인은 안 일어나. 분명 정치적 살인인데 어떤 면에서 정치와 연결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뿐이야.”

 

밀크맨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었다.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밀크맨의 짓이었다. 밀크맨이 죽였다. 정치가 아니라 평범한 이유로 죽였다. 알약소녀가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게 못마땅해서 죽였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우리 공동체 최고의 영웅이 추악하고 평범한 살인을 저질렀다. 낯짝 두꺼운 여자 하나의 앙갚음을 해주려고.

 

더 가까이 다가왔지만 나는 그전까지만 해도 그의 낙인이 다가온다고 생각했지 나에게 이미 낙인이 찍혔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 “너는 고집이 세고 가끔은 말도 안되게 멍청하게 굴잖아. 네가 속을 비치지를 않으니까 사람들이 너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되는 거야. 그러면 위험해. 특히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는 네가 밖으로 내놓지 않으면 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낼 거야.”

 

“뭔가를 던져주라고. 뭐라도 말이야. 네가 한 말을 사람들이 안 믿더라도 사람들은 안 믿는 데에서 만족감을 얻겠지. 적어도 그러면 네 위치를 고깝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사람들이 모두 함께 내가 망나니짓을 하도록 몰아가긴 했으나, 어쨌거나 나에게 최악의 타격을 입힌 행동은 튀김가게에서 내가 직접 한 망나니짓이었다.

 

6

 

나는 진짜 밀크맨이 죽지 않았기를 바랐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죽는 게 항상 기본이었다. 그러니 아직 미룰 수 있는데 굳이 안 좋은 소식을 미리 찾아들을 필요는 없었다.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지는 극단적 지점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구역에서 가장 경건한 다섯 여인 중 한명인 우리 엄마가 ‘신이 위대하기는 하지만’이라고 말한 것이다. 충격적이면서 짜릿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다. 경건한 사람이 100퍼센트 경건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뜻일 수도 있고 아니면 경건함의 의미를 몸 아래쪽까지도 포함하도록 조정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진짜 밀크맨은 페기가 아니라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연유로 진짜 밀크맨의 별명이 생겨난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

 

사랑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저 밖에 사는 누가 보았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혀 안 맞는 사람들끼리 저렇게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만한 경우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짝을 짓는다. 첫째 이유는 이곳의 정치적 상황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짝이, 이른 나이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같이 살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나를 버리고 무덤으로 가버릴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에게 온 마음을 바칠 수 있겠나? 또다른 이유는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자동으로 붙게 되는 사회적 오명이 두려워서다. 그래서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는 거다. 저 남자면 되겠어. 저 남자쯤이면 되겠지. 아니면 저 여자면 돼. 저 여자로 하자. 관습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식구들을 실망시킬 수 없기 때문에 떠밀려서 결혼을 하게 된다. 날짜가 정해졌고 케이크도 주문했고 신혼여행도 예약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압박을 받아서 결혼식을 올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 또 한가지 이유는, 나와 같은 사람을 원했던 다른 사람들의 질시와 분노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물론 딱 맞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 가장 중대한 이유는 바로 이거다. 만약에 바로 그 사람, 내가 사랑하고 원하고 또 나를 사랑하고 원하는 사람과 진실하고 건실하고 충만하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합을 이룬데다가, 내 짝의 사랑도 식지 않고 나의 사랑도 식지 않고 두 사람 다 정치적 문제 때문에 살해당하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그렇게 영원히 행복하고 즐겁다면? 정말로, 진실로,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나? 이곳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고 지속적인 행복을 바라는 것은 과도한 일로 봤다. 그래서 의심, 죄책감, 후회, 두려움, 절망, 원망 속에서 끔찍한 자기희생을 치르며 결혼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암묵적인 필수 코스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려고 결혼을 안하고 버텼다.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엉뚱한 사람과 결혼했다. 이제 나는 아빠가 엉뚱한 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더 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장 큰 걱정, 우리가 안고 있는 걱정, 우리가 그 걱정만 없다면 다른 걱정 전부가 있다 해도 말할 수 없이 행복해질 걱정, 우리를 뼛속까지 저주하고 부정적으로 바꾸어놓고 앞에 열거한 두려움들 같은 사소한 두려움조차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걱정은 정신의 기이한 무언가인데—수재나 너도 정신의 기이한 무언가를 기억하겠지? 우리 안에 들어와서, 너도 알다시피 아직까지 우리를 사로잡는 밝음과 선함을?

 

나는 언니가 왜 독을 먹이는지 알아내고 생각이 꼬인 데를 풀고 언니가 정신을 추스르게 하려고 했어. 언니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나쁜 일들이 있는데, 잊을 수 없는 나쁜 일들이 이렇게 많은데 좋은 일만 보면 위험하다고 했어. 새로운 나쁜 일들뿐 아니라 오래된 나쁜 일들도 기억하고 새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헛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고 했어.

 

알약소녀는 나쁜 일들을 놓아버리면 안된다, 그러면 용서가 뒷문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알약소녀는 나는 용서할 수 없다고, 특히 아직 사과도 받지 못했는데 용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공포는 아마 알약소녀가 죽었어도 자기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계속 무시무시하게 굴 거라고. 타인에 대한 공포처럼 다른 사람의 심리를 장악하는 것들은 숙주가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고 숙주를 제거하면 자기도 제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취약한 상태를 더이상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르자 오빠는 운명에 의해서건 누군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건 그걸 잃거나 뺏기기 전에 스스로 끝내는 방법을 택하고 말았다.

 

어쩌면-남자친구한테 말했다가 무시당하는 게 아예 아무 말도 안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매력도 사그라들고 어쩌면-남자친구다운 느낌도 줄었다. 그러더니 아예 매력이 안 느껴지고 전혀 어쩌면-남자친구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대신 점점 밀크맨 같아졌다.

 

“세상에 맙소사, 어쩌면-여자친구! 20세기 전화번호부도 보면 안되는 책이야?” 어쩌면-남자친구가 처음으로 내 독서 취향을 공격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남자친구도 마찬가지구나. 나는 생각했다.

 

“네가 뭐라고 말을 했겠지.” “왜 내가 말을 했을 거라는 거야?” 나는 또다시 주의를 듣고 다른 사람이 오해한 것을 내가 반박하고 해명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성가시게 설명할 필요 없어”라는 말이 결정타였다. 어떻게 “성가시게 설명할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있지? 내가 자기를 계속 성가시게 했다는 듯이, 설명하려고 해서 자기를 지치게 만들었다는 듯이, 지금까지 내내 자기 할 말 다 하고 나한테 해명하라고 해놓고는.

 

셰프는 그냥 셰프니까. 특이한 남자, 무해한 남자, 다른 남자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남자, 약간 얕잡아보고 우습게 여길 남자, 특히 음식에 열중해 있을 때에는 우습고 딱한 존재였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셰프를 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도 정말 공감해서 안타깝게 여긴 것이 아니라 ‘셰프로 살려면 얼마나 힘들까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야’ 하는 심정이었다.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고 동등한 위치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셰프에게, 그리고 나에게, 자기도 ‘적당히 안주하는 사람’이었다고, 안전하게 가려고 맞는 짝 대신에 엉뚱한 짝을 택했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얼마나 바보인가.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엉뚱한 짝과 맺어지는 일을 피하려고 어쩌면-관계에 머무른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어쩌면-관계에서도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될 수 있었다. 둔감하게 있지 않고, 상황을 인식하고, 사실을 알고, 사실을 받아들이고, 현재에 존재하고, 어른이 되는 일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이제야 나는 진실을 깨달았다.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화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 무감함 아래 깊은 곳에 분노가 있다는 건 알았다. 전-어쩌면-남자친구를 향한. 셰프를 향한. 처음 소문을 만들어내고 퍼뜨리고, 내가 어리석게도 밀크맨을 속이고 시내 너머에 사는 또래 남자애와 사귄다는 최신 소문까지 만들어낸 첫째 형부를 향한 분노. 형부의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고 없는 이야기를 꾸며낸 뒷이야기꾼들에 대한 분노. 나를 싫어하면서 알랑거리는 사람들, 튀김가게 종업원들, 언젠가는 내가 좋아할 것 같은 물건을 나한테 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모든 가게 주인에 대한 분노. 다만 지금은 분노가 사라진 듯 흔적도 없었다. 다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느껴지지 않고 바닥을 밟고 있는데도 떠다니는 기분인 한편으로 내가 달리 행동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테니 나에게는 분노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나는 비틀거렸고 그 순간 흰색 승합차가 내 옆에 멈춰섰다. 조수석 문이 열렸고 아빠가 말했던 “그 공포의 장소에 처음으로 가는 게 아닌 느낌”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당연한 듯이 올라탔다.

 

그동안 이것만은 결사적으로 피했는데, ‘그의 차에 타지 않는다’가 나의 마지막 보루였는데, […] 일단 그 문턱을 넘어서고 나니 상상했던 것처럼 격렬한 혼란과 감정이 일지는 않았다. 아무 혼란이 없었다. 감정도 없었다. 언젠가는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났을 뿐. 그런 일이 있을 거라는 말을 계속 들었으니까. 이것이 시작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여자친구야…… 네 얼굴을 보면 감각기관이 사라지는 중이거나 이미 사라진 것 같아.” 어떤 말들은 떨쳐지지 않는다.

 

적어도 놀라기라도 해야 하는데, 내가 이 악명 높은 차에 악명 높은 남자 바로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조차 않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 모두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인 사실을 나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미 밀크맨의 것이었다는 기정사실.

 

7

 

밀크맨이 죽어서 행복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게 행복이고 기쁨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닐 이유가 뭔가?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평생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안도감이었다.

 

밀크맨과 그 이전에 밀크맨으로 오인된 여섯명이 총에 맞고 난 이제야 밀크맨의 신상이 공개됐는데, 나이, 거주지, 아내, 자식 등과 함께 밀크맨의 이름이 정말로 ‘밀크맨’이라는 사실도 밝혀져 있었다.

 

결국 산다는 일이 믿음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아무튼 밀크맨의 이름에 대한 소식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속았다고 생각했고 겁에 질렸고 당혹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밀크맨’을 가명이나 암호명이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신비스럽고 은밀하고 연극적인 가능성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이름이 상징이 벗겨진 채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친근한 톰, 딕, 해리 같은 이름의 세계로 끌어내려지자 무장단체 핵심요원의 이름에 덧붙었던 존경심이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아예 사라져버렸다.

 

아무개 아들 아무개는 오래전부터, 밀크맨이 나타나기 전부터도 복수를 다지고 있었다. 내가 착한 여자여야 하고 그것도 자기의 착한 여자여야 하는데 뭔가 잘못되어 그에게 혼란과 모욕만을 안겨주었지만 밀크맨이 눈독을 들일 때에는 한발 물러서서 원한을 삼켜야 했었다. 그때는 정의를 실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실제로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밀크맨이 사라졌고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다 받아들였으니 이제 자기를 막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정확히 무슨 죄목으로 기소를 할지 애매했는데 누군가가 4분의 1 강간으로 고발했다.

반대자들은 그런 식으로 했다. 우리가 범법자, 범죄자, 경멸스러운 악당이 되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범죄, 경범죄, 반사회적 행동을 낱낱이 세세히 구분하여 좀스럽고 백과사전적이고 강박적이긴 하나 어쨌든 대단한 체계에 따라 엄밀하게 성문화하여 가히 사용설명서에 버금갈 문건을 집대성했다.

 

어린 동생들은 국제적 커플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한창 설명하는 중이었다. “진짜 멋있어.” “그런데 남자애들 때문에 거의 망할 뻔했어.”

 

남자아이들은 ‘물 건너’ 국가의 군인들이 우리 지역에 나타날 때마다 군인들에게 미니 대인공격 장치를 던지는 놀이나 계속하려고 했다. 야단치고 구슬리고 눈물까지 흘려보았는데도 남자아이들은 고집스레 거부했다.

 

실행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우스꽝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혼란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정치적 상황의 관점에서만 실행 불가능하고 우스꽝스럽고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이 여인들이 이 지역의 전통적인 아내이고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사사로운 관점에서도 그랬다.

 

지역이 기이하게 조용해졌고 적막으로 가득 찼다. 사방이 으스스하고 고요했는데 끝없이 묵주를 굴리고 기도를 웅얼거리는 배경음이 멈추기 전에는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전혀 의식을 못했던 것이다.

 

“온 세상을 싸돌아다니면서 볼룸 댄스를 추고 아무 거리낌 없이 화려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댄스 대회를 싹쓸이하는 여자가 나랑 나이가 비슷하다는 거 아니? 그렇단다! 우리도 다 그렇게 멋있을 수 있다고. 식은 죽 먹기지 - […] 그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아니, 딸아? 갓난아기 여섯을 너희들끼리 알아서 잘 살아봐라 하고 소파 위에 내버려두고 팔리스 아기 과자 몇개 던져놓고 나왔단다. 쇼에 나가서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커리어를 시작하려고. 어떻게 그러니? 그런 엄마가 어디 있어? 최고가 되는, 최고 중에서도 최고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는 했지만, 또 증오와 폭력의 기나긴 역사가 있는 곳에 평화와 화합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래 하지만의 말을 더 잘 들으니 나로서는 엄마의 기운을 북돋기가 불가능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내가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자, 가요.” 우리는 작은 대문을 열고 닫고 할 것도 없이 작은 산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고 나는 초저녁의 빛을 들이마시며 빛이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부드러워진다고 부를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수지 공원 방향으로 가는 보도 위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빛을 다시 내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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