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긋기/소설/희곡

탬버린 | 김유담

2021. 12. 3.
탬버린

탬버린

김유담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유담의 첫번째 소설집.

탄탄한 서사와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로 꽉 차 있다. 태어나면서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삶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100점을 받기가 어렵다는”, “최선을 다하는 삶의 무용(無用)함”(「탬버린」 156면)을 어쩔 수 없이 체득해버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씁쓸한 속마음을 김유담은 솜씨 좋게 포착한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좇는 여성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우리와 너무도 닮아 “익숙한, 부끄러워 애써 숨기려 노력해온” 표정들을 발견하게 된다. 김유담이 누설하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열등감과 비밀스러운 절박함”(전기화, 해설)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고백 자체가 “이편저편 다 떠나서 그냥 내 편”(김미월, 추천사)이 되어주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다독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 독서밴드 토론도서 * 

 

핀 캐리(pin carry)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날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버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빡에 없더라카이. 그라이까,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보고 싶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케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라는 걸 잊고 싶었다.

 

볼링 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센티미터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봤자, 강한 힘이 덮쳐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토론]

 

1.2. 내게 가족이란? 그리고 가족간의 적정 거리란?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제목이 마음을 탁 치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가족이란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는 게 없는 존재.

가장 가깝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존재.

하지만, 내내 좋기만 한 건 아니면서 가끔은 심하게 싫어지는 존재.

그래서 적정 거리가 필요합니다.

심리적 독립을 위한 물리적 거리가 필요할 것 같긴 한데, 그게 어느 정도일까요?

아직도 그 거리를 재고 있네요.

 

3.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시간이 필요한가? 인숙은?

 

필요합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그렇다면, 인숙은?

새로운 프레임에 서서, 어프로치 라인에 서있군요.

성공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시작점에 설 용기는 있네요.

 

4. 그들의 삶

- 아빠의 삶.

왜 폭력적인 가장은 마지막에 가족을 찾을까요?

그 회귀는 맘에 들지 않지만, 겪어보지 않은 상황을 이성으로만 이해하긴 힘들겠지요.

 

- 엄마의 삶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이지만, 인고의 저력만 있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삶.

참는 것이 전부인 삶. 그것밖에 모르는 삶.

죽을 자리로 가족에게 돌아온 남편을 받아들이고, 자식들에겐 죄인이고, 슬픔을 토해내기도 힘든 삶. 

 

- 오빠의 삶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의 책임을 짊어지고, 자신의 꿈보다는 가족의 꿈을 위해 희생한 삶.

벗어나고 싶었겠지만, 책임감을 떨쳐버리지 못한 삶.

볼링이 그에게 자유였을까요?

내기 볼링이 그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기회였을까요?

 

- 인숙의 삶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라는 걸 잊고 싶었다.

 

인숙은 알고 있습니다.

오빠가 자신을 위해 뭘 포기했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거겠죠.

그의 희생이 없으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니까요.

그의 죽음으로 책임은 인숙에게 넘어옵니다.

인숙도 그 책임이 싫지만, 엄마를 위해 집과 밭을 사고, 아버지를 구박하면서도 받아들입니다.

 

- 나의 삶

그들의 삶의 모습을 내 삶에서도 봅니다.

물론, 정도는 훨씬 약하고 책임도 아주 얕지만……

가족이란, 울타리입니다. 우리를 보호해주기도 하고, 우리를 가두기도 하는.

 

 

공설운동장

 

그렇다고 내가 달리기를 싫어한 편은 아니었다. 그저 나보다 훨씬 앞서서 달음질치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쫓아가는 막막한 기분이 싫었을 뿐이다. 팔다리를 아무리 재게 놀려봐도 아이들은 점점 더 멀어져갔고, 뒤처지는 거리만큼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은 끔찍했다. 달리는 것 자체는 좋았다.

 

위염, 배낭여행, 소설 쓰기와 등록금…… 모두 내 휴학 사유였지만 사실 휴학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휴학 말고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원하는 그 어떤 것도 허락될 수 없다면 사랑 하나라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아버지 자신이 높일 수 있는 것은 베개와 목소리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변하면…… 아버지가 변한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 이미 실패가 깊게 관통된 아버지의 몸과 마음은 빳빳한 힘을 잃은 날짜 지난 신문처럼 구겨진 채 나달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달라져 있었다. […] 나와 동생이 한참 고기를 뜯고 나면 그제야 가장 맛없는 부위를 손에 들던 아버지였건만, 이제는 입에 대접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남편 대접, 아버지 대접, 가장 대접……

 

보란 듯이 비뚤어지고 싶었어.”

내 말에 그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한번 그래보지 그랬어?”

그랬다가는 절대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았어.”

 

자신이 특별하다는 오만한 믿음 하나만이 유일한 자존심이었던 그 소녀는 소도시에서의 평범한 삶을 세상에서 가장 경멸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던, 이곳을 떠나기만 하면 제법 근사한 미래가 그려질 거라 믿었던, 나조차 미워하고 있는 나의 열일곱을 L은 따뜻하게 기억해주었다.

 

그에 대해, 그의 미래에 대해 말하면 말할수록 나와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간절하게 바라는 삶은 내가 가장 도망치고 싶은 삶과 겹쳐 있었다.

 

이몽룡만을 기다리는 춘향의 사랑은 그와 함께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때로 어떤 연애는, 미래를 약속하고 맹세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만 혹독한 현재를 견디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의 꿈은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내 꿈은…… 고향을 떠나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너는 결국 밀양에 돌아오게 될 거야.”

그래, 그럴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내 가 이곳을 떠나는 이유가 선생님 때문이 아니듯, 혹시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해도 선생님 때문은 아닐 겁니다.”

나는 선생님이라는 단어에 일부러 힘을 주어 말했다. 평소와는 다른 깍듯한 경어체였다.

 

나는 허리를 숙여 운동화 끈을 조였다. 어깨를 뒤로 젖혔다가 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문 닫힌 공설운동장 주변을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토론]

1. 인생이 달리기라면 당신의 달리기 실력은?

 

어렸을 때는 뚱뚱하고 다리는 짧아,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국민학교를 어떻게 다니냐고 어머니께서 걱정했던 기억이 있네요. ^^

100m 20초 넘게 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보다 훨씬 앞서서 달음질치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쫓아가는 막막한 기분에 공감합니다.

 

인생이 달리기라면, 그곳에서도 크게 잘 달릴 것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오래 걷기는 좀 합니다. 요즘은 허리 때문에 강제 걷기를 하고 있는데, 혼자 걸으니 다른 이의 뒤통수를 볼 일도 없습니다. 천천히 지치지 않고 가볼랍니다.

 

2.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시도해서 성공한 적이 있나요?

 

제자리가 어딜까요?

아버지는 입에 대접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남편 대접, 아버지 대접, 가장 대접……

아내가 자식이 원하는 그의 제자리는 남편이며 아버지이며 가장이겠지요.

아버지가 바라는 제자리도 그 언저리겠지요.

 

돌아가기 전에 제자리의 좌표 정리부터 필요할 듯 합니다.

항상 지금 이 자리를 제자리로 알고 있지 않았나 싶네요.

 

3. 비난을 감수하고 가족의 눈을 외면하고 내 길을 걸어가야 하나?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이 싸웠을 때 동생과 집 밖에 나와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이 헤어지면 누구하고 살 것인가?

동생이 먼저 말했죠. 난 엄마. 그러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도 엄마랑 살고 싶지만, 아버지를 선택해야 할 것 같은 기분.

우리 가족도 여느 가족처럼 지지고 볶으며 여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적이 있었다는 순간의 기억입니다. ^^

 

비난을 감수하고 내 길을 가야 하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난을 감수하고 내 길을 갈 수 있나?

아마 가지 못할 겁니다. 가족이니까.

 

4. 무엇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가?

 

소설을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시작만 하고 끝을 내지 못했지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환경은 이를 허락하지 않네요.

건강해지고 싶습니다. 이놈의 허리 통증이…… ㅜㅜ

 

소설까진 아니라도 뭐라도 써보고 싶네요.

여행은 시간이 해결해줄 듯 하고.

운동은 다시 시작이라기보다는 그냥 시작해야겠네요.

 

[단상]

밀양이라는 공간이 친숙합니다. 저의 본향이거든요. ^^

벗어나고 싶은 가족, 영원한 과제입니다.

 

이몽룡만을 기다리는 춘향의 사랑은 그와 함께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때로 어떤 연애는, 미래를 약속하고 맹세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만 혹독한 현재를 견디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의 꿈은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내 꿈은…… 고향을 떠나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이 글을 보면서 영화 <라라랜드>가 생각났습니다.

혹독한 현재를 견디기 위함이라해도, 사랑이 될 수도 있었던 그와의 헤어짐은 그녀가 견뎌내야 할 그녀의 몫입니다. 

 

성당의 종소리가 7시를 알렸을 때, 장밋빛 하늘에는 아주 밝은 별 하나만이 떠 있었다. 배는 처량한 작별의 고동을 울렸다. 그러자 나는 내 사랑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사랑들로 목이 메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마르께스

 

마지막 그녀의 울음과, “함께 읽기를 하고 있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 나오는 그의 목 메임은 일맥상통하네요.

 

 

우리가 이웃하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참을성이 좋은 편이었다. 인고의 시간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버티다보면 나쁜 상황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원장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얼 했느냐고, 엉망진창이라며 혀를 찼다. 마치 내 인생 전체에 대한 비난같이 들려 주눅이 들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자가라는 것은 자기 소유라는 말이잖아. 그런데 주공아파트는 임대아파트잖니. ‘임대는 빌린 집이라는 거야.”

[…] 생각지도 못한 문제로 꾸지람을 당하자 괜스레 서러워지면서 묘한 수치감마저 느껴졌다.

 

그 일 이후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일이 거짓말처럼 재미없어졌다. 시시하고 멍청한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것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선택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조금 머뭇거렸다.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강압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길 만하면 기다렸다는 듯 돈 들어갈 일이 생겼다. 그것도 아주 급박하게. 여유라는 건 무리를 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것을 당연히 가지고 있었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넉넉함이 여유였다.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사가 끝나면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는 꿈은 이미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다. 남은 석사과정조차 제대로 끝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썩은 꿈을 도려낸 자리에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침대 위에서 잠든 성희도 나쁜 꿈을 꾸는지 호흡이 거칠었다. 나는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성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 자다 깬 성희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아, 성희야. 성희는 다시 눈을 감았고 몸을 벽 쪽으로 돌려 잠들었다.

 

배를 잡고 웃는데 가슴이 쿡쿡 쑤셨다.

 

아직 아랫니 하나의 신경치료가 남아 있었다. 치근관 깊숙한 곳에 있는 썩은 치수까지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고, 신경치료가 마무리되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라던 성희의 말이 떠올랐다. 왜 신경제거라고 하지 않고 신경치료라고 하는 걸까. 신경이 제거되면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이 도시에 온 이후 나는 점점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는 무신경한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토론]

 

1. 참기 힘든 통증에 대하여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면접이나 시험이나 유학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음에 대한 가능성이 없는 포기는 썩어버린 꿈에 와닿네요.

공교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주에게는 학회 참석을 치통 때문에 포기했을까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어진 좋은 핑계였을까요?

궁핍보다는 고통이 내보이기에 좋았을지도……

 

직장을 그만 두고 자영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정이 좋지 않아 자영업을 접을 즈음, 이석증으로 인한 어지럼증이 생겼습니다.

고통으로 포기했다기보다는, 포기를 앞두니 고통이 생기더군요.

정리하고 나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무슨 큰 병인가 고민한 기억이 있군요.

 

2. 썩어버린 꿈에 대하여

 

나는 참을성이 좋은 편이었다. 인고의 시간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버티다보면 나쁜 상황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썩어버린 꿈이라는 것은 꿈의 소멸입니다. 이제는 버려야 하는 꿈.

다른 국면은 한 국면의 마무리 같네요.

 

감사하게도 환경 때문에 꿈을 보낸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저의 의지 박약 때문에 꿈을 보냈지요.

가끔 그게 정말 제 꿈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3. 엮이는 것의 불편함에 대하여

 

침대 위에서 잠든 성희도 나쁜 꿈을 꾸는지 호흡이 거칠었다. […] 자다 깬 성희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아, 성희야. 성희는 다시 눈을 감았고 몸을 벽 쪽으로 돌려 잠들었다.

 

영주는 성희와 엮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죠.

자신과 다르지 않은 성희와.

성희와 다르지 않다고 인정해야 하는 자신과.

괜찮아, 성희야.

그건 성희와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잠시라도 편히 잠들 수 있게.

깨어나도 변하는 게 없을 지라도.

 

조그만 가게를 할 때, 옛 직장 동료가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두고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직장 산악회를 함께 하긴 했지만, 그리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저를 찾아왔더군요.

엮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매몰찬 거절에 대한 마음불편함이 공존합니다.

대화 속에서 제 맘을 읽었는지 다시 찾아오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 한 걸까? 내 말 속에 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걸까? 다시 볼 수 있을까?

 

4. 신경을 제거하는 것에 대하여

 

고통을 느끼지 않게 신경을 제거하는 것.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고통이 사라진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외면한 고통은 누군가에게, 또는 자신을 파괴하고 있진 않을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신경에 저를 제외할 순 없군요.

아파트 생활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납니다. 인사도 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죠. 이름도 모르고, 분명 몇 층에서 내리는 것을 봤는데, 다음에 만나도 몇 층에 사는지 모릅니다.

딱 그만큼의 거리군요. 저의 이웃과는.

 

 

탬버린

 

살아가면서 어떤 노래 한곡을 마음에 품게 된다는 것은 결국 그 노래와 관련된 추억을 간직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송에게서 배웠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꼽지 못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송과 함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렀던 모든 노래를 사랑했으니까.

 

방을 가진다는 건 말이야, 좀더 특별한 대우를 받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

[…]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흠뻑 빠져들곤 했다.

 

탬버린 연주를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하는 송의 모습은, 연습보다는 연마에 가까워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몸속 깊은 곳에 숨겨둔 감정의 덩어리가 탬버린의 박자를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일종의 흥()에 가까운 감정이었는데 마냥 신이 나지만은 않아서 묘한 형태의 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음악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불판을 닦는 일과 탬버린을 치는 일은 비슷하다고, 둘 다 힘으로만 덤비는 게 아니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리듬을 타는 게 중요하다고 송은 말했다.

 

그럴수록 탬버린이 중요한 거야. 어떨 때는 양팔이 진짜 붙어 있긴 한 건지 의심 갈 정도로 아무 감각이 없을 때가 있거든. 바로 그때 허공에다 탬버린을 흔들어보는 거야. 그러면 알 수 있어. , 팔이 떨어져나가진 않았구나.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내 발밖에 없으니까.”

 

웃을 일은 아닌데 상대가 웃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웃어야 하는 상황들.

 

직원들은 회식 때 박수를 받는 것과 업무에 대한 평가는 별개라는 것을 알면서도, 심지어 노래 실력과 노래방 점수가 무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박또박 한음 한음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각자의 곡조를 타고 흐르는 통속의 욕망이 어쩐지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것은 단순히 상금 오만원을 향한 물욕을 넘어서는 마음이었다.

 

탬버린에 달린 이 동그란 금속을 뭐라고 하는 줄 아니? 징글(jingle)이라고 해.”

징글? 징글벨 할 때 그 징글?”

아마 그럴 거야. 악기에 달린 짤랑거리는 금속 방울을 통틀어서 징글이라고 하니까. 얘의 이름을 알고부터는 말이야. 탬버린을 흔들 때마다 징글징글징글,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는 그 소리가 좋아. 나만 징글징글하게 사는 게 아닌 거 같아서. 어때? 너도 들리니?”

 

정말 탬버린이 징글징글 하고 울리는 거라면 그것에 호응하는 게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은 가사를 얹지 않아도 음악일 수 있지만, 탬버린은 누군가 흔들어주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가 사리지게 되는 거라고, 탬버린의 존재를 확인해주기 위해서는 힘껏 흔들어줄 수밖에 없다던 송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간주를 틈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김상무님, 그건 아니죠. 룰에 어긋나잖아요. 규칙은 규칙이니까요.”

[…]

”99점과 100점은 엄연히 다릅니다.”

 

니가 뭘 알아? 내 인생이 쉬웠는지 어려웠는지 니가 봤어?”

그 순간 반장이 울음을 터뜨렸다. 내 말에 상처를 받아서 운다기보다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우는 울음 같았다. 반장이 겨누고 있는 미움의 칼끝이 실은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은 지금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벌을 주는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아파 보였다.

 

겨우 1점 때문에 교사의 꿈이 좌절돼야 하는 상황 자체가 반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인생이 재미없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재미없었다는 것을 송은 내게 알려주었다.

 

전학 가던 날 나는 송에게 연락할게라고 했고 송은 잊지 않을게라고 했다.

 

미술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꺼낼 때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네가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있다고, 재미도 없고 힘들지만 그래도 연습을 해나갈수록 조금씩 실력이 느는 게 느껴져서 신기하다고, 조금 더 잘하고 싶어진다는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왠지 미안했다.

 

그때는 이미 송과 연락이 끊어진 후였다. 나는 송이 변해버린 탓이라고 생각했다. 매사에 분명하고 자신감 넘치던 송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매번 말이 바뀌고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내심 불편했고, 그런 송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우리가 멀어진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나느 속으로 여러번 합리화했다.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 나는 운이 좋아서 하는 데까지 해볼 수 있었고, 아마 송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의 무용(無用)함에 자주 빠져들었던 나는 사실 최선을 다해도 상황은 매번 쉽지 않다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100점을 받기가 어렵다는 삶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경험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지내왔다. 그렇다해도 내 인생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운이 좋았고 그나마 쉽게 풀린 축에 속해봤자, 고작 지금의 내가 되었을 뿐이다. […]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송에게서는 아직 답이 오지 않고 있었다.

 

[토론]

 

1. 성공과 무관하게 열심히 한 무엇

 

사진이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어렸을 때 집에 니콘 필름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카메라가 있다는 이유로 중학교 때 사진동아리에 들었죠. 그게 시작이었네요.

디카로 넘어오면서 수적으로 엄청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끔 누군가, 그렇게 사진을 찍어서 뭐해? 라고 물으면, 취미에 사전적 의미를 들려주곤 하였습니다.

취미는 뭘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거라고.

 

2. 징글 vs 징글징글

 

송은 징글을 통해 징글징글을 듣습니다.

송은 징글징글하게 탬버린을 흔들면서 징글징글한 삶을 털어버리고 싶었을까요?

송이 탬버린을 흔드는 동안은 삶은 여전히 징글징글합니다.

그래서 송의 탬버린에 대한 집착을 은수의 말처럼 마냥 신나지만은 않네요.

 

3. 내 안에 감추어진 탬버린은? 탬버린을 흔들어주지 않는다면?

 

너무 꽁꽁 감추어버렸을까요? 내 안의 탬버린이 딱히 떠오르질 않네요.

지금은 누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남말 무지 듣지 않는 내가 보이네요.

결국 내가 흔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네요.

 

4. 노래에 간직된 추억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함께 본 공연이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콘서트였습니다.

 

봄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봄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갯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인생의 선물이라는 곡입니다.

귀가길에 가끔 공연보러 와요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엄마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공수표가 되어버린 그 약속도 생각납니다.

 

5. 반장의 마음

 

니가 뭘 알아? 내 인생이 쉬웠는지 어려웠는지 니가 봤어?”

그 순간 반장이 울음을 터뜨렸다. 내 말에 상처를 받아서 운다기보다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우는 울음 같았다. 반장이 겨누고 있는 미움의 칼끝이 실은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은 지금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벌을 주는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아파 보였다.

 

스스로에게 주는 상처가 가장 아프지요. 이해가 갑니다.

핀트가 어긋난 분노의 방향. 그걸 알면서도 화는 먼저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닫습니다. , 이게 아닌데……

 

6. 그저 단상

 

전학 가던 날 나는 송에게 연락할게라고 했고 송은 잊지 않을게라고 했다.

 

은수는 연락할게, 라고 하곤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송는 잊지 않을게, 라고 하고 잊지 않아서 답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아직 답이 오지 않았지만, 결국 답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멀고도 가벼운

 

우리 엄마는 결혼한 후로 지금까지 계속 평범한 가정주부였어. 따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으셔.”

우리 엄마 역시 평범한 주부였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 […] 그것이 나에 대한 특별한 이해라기보다는 은호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연애가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연애라는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간의 부담을 지우고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두려웠다. 여자 친구에게는 아까울 게 없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은호도 쌓이고 쌓이다보면 내게 비난의 화살을 겨누게 될 것 같았다. 도대체 염치라는 게 없다고 보배 이모를 비난하던 엄마처럼.

 

이불 부드럽고 따뜻하지?”

[…]

무겁고, 불편해.”

 

이모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 일이 자신에게는 부업이 아니라 생업이라고 답했다. […] 전사지 작업을 하기 위해 우리 집에 모인 사람들은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라고 자주 강조했다. 다들 한푼이 아쉬운 처지였지만, 여자가 그악스럽게 돈을 벌러 다니는 건 남편의 체면을 깎는 일이라는 분위기가 당시 시골 마을에는 있었다.

 

니 우째 그래 계산적이고?”

계산적인 게 왜 나쁜 거에요? 저는 계산적인 게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계산을 틀리게 하는 게 나쁜 거죠.”

 

그때 엄마가 이모가 요구한 대로 돈을 제대로 주었는지, 이모가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는지 나중에 물었을 때 엄마는 그런 일이 아예 없었다고, 이모와 싸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엄마와 이모는 친자매처럼 사이가 좋았다고, 이모가 사정이 어려워 엄마가 가까이에서 많이 챙겼다고, 지금도 뉴질랜드 이모가 많이 보고 싶다고 그리움에 젖은 표정으로 말하는 엄마는 눈가마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형수님 부잣집 딸인가봐? 이불 비싸 보인다.”

이불 끝을 매만지며 내가 물었다.

아냐 되게 평범해. 아버지는 공무원 퇴직하셨고 어머니는 선생님이랬어.”

 

근데 왜 예단으로 이불을 준비해오는지 알아? 허물을 덮어달라는 의미래.”

 

걱정 마. 난 그런 거 다 생략할 거야. 내가 우리 형 지켜보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 결혼 과정에서 허례허식 너무 많아.”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갑자기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면서 숨이 막혀왔다.

 

전자회사는 지방 공장으로 많이들 보낸대. 난 지방에서는 못 살 거 같아.”

지방 풀신인 나를 앞에 두고 지방은 절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음호의 무신경함에 마음이 상했지만 굳이 티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떨어진 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무 상심하진 말았으면 좋겠어.”

내 잘못 아닌 거 알면 상심 안 해도 되는 거니?”

 

하지만 버티다보니 버텨졌고, 시간이 흘렀다. 우리 회사에서 오년 근속하고 대리 달아 나가면 이 업계 어디에서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걸 인정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몰아넣고 그것을 견뎌낸 자에게만 주는 훈장 같은 것을 업계의 인정이라고 일컫는 모양이었다.

 

집성촌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쇠락한 시골 마을이 되었다. 나이 든 친척 어른의 다수가 세상을 떠났고, 젊은 사람들은 집을 떠났다.

 

아니, 지금까지도 이모는 쉽지 않은 시간들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뿐이니까. 동화 구연을 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하던 뉴질랜드의 삶이 그저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처럼 필터링을 거친 인스타그램 사진에 담긴 이모의 일상을 보는 것은 지치고 성마른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효과가 있었고, 먼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다정한 마음과 응원을 보내는 행위는 내 일상에도 약간의 온기를 돌게 했다.

 

[토론]

1. 취업전 연애에 대한 지연의 초조와 불안, 그리고 은호

 

취업이 되기까지 살아가야 할 삶이 다릅니다.

상대적으로 지연보다 은호는 여유가 있습니다.

지연은 시골을 떠나옵니다. 실패로 인한 귀향은 이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피하고 싶은 현실입니다.

 

서울 가가 공부하고 좋은 대학 나온 남자 만났다고 자랑은 씨게 하드만 지금 사는 꼴이 그기 머꼬.”

 

연애는 이 비난에 하나 더 붙게 됩니다.

공부한다 하더니만, 연애만 어쩌고 하는……

생계에 대한 절박함도 있겠지만, 지연은 그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 은호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지연이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2. 무겁다.

 

우리 엄마는 결혼한 후로 지금까지 계속 평범한 가정주부였어. 따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으셔.”

우리 엄마 역시 평범한 주부였다.

 

형수님 부잣집 딸인가봐? 이불 비싸 보인다.”

이불 끝을 매만지며 내가 물었다.

아냐 되게 평범해. 아버지는 공무원 퇴직하셨고 어머니는 선생님이랬어.”

 

이불 부드럽고 따뜻하지?”

[…]

무겁고, 불편해.”

 

삶의 무게.

은호의 평범함에는 지연의 어머니는 속하지 않습니다.

형수의 평범함에 지연이 속할 수 없습니다.

결혼을 말하는 은호의 말에 숨이 막힙니다.

지연의 삶의 무게는 은호가 견딜 수 있는 평범의 테두리를 훌쩍 벗어나 있습니다.

지연은 은호와 자신의 삶의 무게를 나누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합니다.

 

근데 왜 예단으로 이불을 준비해오는지 알아? 허물을 덮어달라는 의미래.”

 

결혼의 시작부터, 지연의 현실이 허물이 될 것 같은 느낌.

지연은 식은땀이 흐릅니다.

 

3. “멀고도 가벼운의 의미, 나에게 멀고도 가벼운 것.

 

필터링을 거친 인스타그램 사진에 담긴 이모의 일상을 보는 것은 지치고 성마른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효과가 있었고, 먼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다정한 마음과 응원을 보내는 행위는 내 일상에도 약간의 온기를 돌게 했다.

 

거리는 무게를 나누지 않아도 됩니다.

이모에게 선뜻 연락하지 못하고, 인스타그램으로 필터링된 사진에서 위로를 얻는 지연.

가볍지만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깊은 관계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죠.

지연과 이모의 관계는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멀고도 가벼운 이 거리감과 무게감은 관계가 아니라, 일상의 위로일 뿐이죠.

 

웹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에게 멀고도 가벼운 관계라는 생각을 합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보다는 닉네임으로 친숙한 이들.

그들의 사연을 모르니, 가볍게 맞장구를 칩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그 정도, 그들이 바라는 것도 그 정도인 관계.

 

 

가져도 되는

 

인희는 월 28만원짜리 여성 전용고시원에, 나는 40만원짜리 하숙집에 살았다. […] 인희는 우리가 분명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한달에 12만원, 일년으로 치면 144만원의 차이라고, 그 차이만큼 누리고 가질 수 있는 게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인희가 딱 잘라 말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비난을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억울했다.

 

28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살인적인 아르바이트에 시달려야 했던 인희와 40만원짜리 하숙방에 살면서 적은 돈이나마 고향에서 올라오는 용돈에 의지할 수 있었던 내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연애 시절에는 잘 알지 못했다.

 

동류의 인간에게 느끼는 호감과 불편감.

 

심리학자를 꿈꾸던 내 여자친구는 어느새 인생의 목표를 정규직이라고 외치며 매번 지원 회사에 맞게 자신의 꿈을 바꾸어가며 입사 원서를 썼다.

 

고향의 가족들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와 부모 형제와 무관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라고 인희는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자신이 버리고 온 것들로부터 한시도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이 원해도 가질 수 없었던 자리를 누군가는 도피처로 생각한다는 게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걔가 어떤 마음으로 대학원에 갔는지 네가 알 수 없는 거잖아. 어차피 너와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나는 조명아를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나는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던 걸까.”

 

기분이 안 좋아서 예쁘고 반짝거리는 새것으로 자신을 꾸며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에…… , 저 아이는 자신의 기분을 살피면서 살고 있구나,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나빠지지 않게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아는구나.

 

인희는 기분보다는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였다. […] 하지만 요즘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기본의 기준이 갈수록 버거워진다고 느끼고 있었다.

 

주례사 마음을 처리하는 법’.

[…]

나는 처리되지 않은 묘한 기분의 정체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서 있는 오늘의 주인공에게만 집중하려고 연단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길게 목을 늘였다.

 

[토론]

3. “가져도 되는의 의미

 

가져도 되는가질 수 있는의 타협적 반대말 같습니다.

그 반대가 가질 수 없는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이 정도는 가져도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승규의 현실타협점이라고.  

조명아와의 하룻밤을 보내고도 승규는 쉽게 포기합니다.

인희의 상처를 들먹이지만, 조명아는 가질 수 없는존재입니다.

 

1. 아내 인희를 바라보는 태도

 

인희는 월 28만원짜리 여성 전용고시원에, 나는 40만원짜리 하숙집에 살았다.

 

인희는 기분보다는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였다. […] 하지만 요즘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기본의 기준이 갈수록 버거워진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이 단편집에 자주 등장하는 같은 부류입니다.

연애시절엔 동질감을 느끼지만, 결혼 이후 자신의 현실을 대변하는 상대가 짜증스럽기도 하죠.

승규는 인희의 기본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희의 기본은 점점 버거워집니다.

인희의 친정은 여전히 경제적 부담이고, 인희가 딸에게 기본으로 해주고 싶어하는 영어유치원, 호텔에서의 결혼식 등등도 마찬가지죠.

 

결혼식에서 보여주는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인희의 안간힘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집니다. 아슬아슬한 위태로움을 승규는 고스란히 느낍니다. 가족이므로, 그건 개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2. 딸 윤지를 바라보는 시선

 

딸은 기준점입니다.

인희는 딸의 기준점을 제시합니다. 누구나 다 하는 것을 아이에게 다 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승규는 다 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신호를 감지합니다.

인희의 옛날 가방에 매달리며, 신발에서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뿜으며 뛰어다니는 딸.

자신 때문에 딸도 아내처럼 기분보다는 기본에 연연하며, 기본이 채워지면 더 나은 기본이 제시되는 삶을 살게 될까 두렵습니다. 딸아이의 신발에 내뿜는 불빛이 경고등처럼 보입니다.

 

결국 아내와 딸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머에는 자신의 모습이 있겠지요.

마음을 처리하는 법이라는 주례사를 들으며, 처리되지 않은 묘한 기분의 정체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은 이유겠지요.

 

 

두고두고 후회

 

아버지는 센 척하면서 결국은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그의 약함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그래 많이 모았네. 5만원이면 우리 식구 다 같이 나가서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돈인데……

[…]

삼겹살이 익어가며 피어오르는 연기가 유난히 매웠다. 연기가 너무 매워서 눈물이 났다.

 

그날 이후로 미묘하게 달라진 친구들의 태도에 예민하게 굴지 않으려, 아니 그 앞에서 나의 예민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고 또 썼다.

 

눈 결정 모양의 가느다란 반지를 나눠 낀 친구들의 손가락을 볼 때마다 마음에 가느다란 실금이 그어지는 느낌이었고, 하나씩 늘어난 실금이 점점 퍼져가면서 가슴이 바스러지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무의미한 연명이라는 말에 울컥 화가 치솟았다. 연명이 왜 의미가 없는가. 이렇게 햇빛을 보고 공기를 마실 수 있는데.

 

어떻게든,이라고 말하는 것은 은재의 오랜 말버릇이었다. […] 은재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원하는 게 있으면 손에 넣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 전문대를 졸업하고, 각종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가정을 꾸려 살게 되기까지 은재가 얼마나 다양한 어떻게든을 거쳤는지 나는 모른다.

 

참 안됐어, 깜이 되지 않는 이가 대통령이 되어서 결국은….. […] 나는 그 대통령을 좋아했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이유와 아버지가 그를 미워했던 이유는 정확히 일치했다.

 

체력이 좋은 암 환자, 듬직한 신용불량자, 젖이 나오지 않는 수유부, 소설을 손에서 놓은 소설가가 커다란 불판 하나를 둘러싸고 장어를 굽고 있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함께 외식을 하고 바다를 보러가고, 그런 일들은 우리에게 너무 사치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막상 시간을 내어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지 가늠할수록 과거에 그냥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는 주치의의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 인생에서 무엇도 제대로 선택할 기회가 없었고, 번번이 실패만 해온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라는 요구가 허황되게만 느껴졌다. 이미 실패한 사람은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후회에 사로잡힌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후회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고 더 나아질 수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후회였다.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이야말로 가장 소용없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나는 묻고 싶다.

 

엄마는 끝까지 안 오려나. […]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일출과 일몰 중 어느 것도 보지 못하고 일어서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 나중에 후회로 남을지 그리움으로 남을지 아직은 예상할 수 없었고, 우리 모두에게 너무 많이 후회되거나 그리워지는 순간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영국산 찻잔이 있는 집

 

소냐는 피티가 항상 표정이 밝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피티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는 것이 피티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피티는 한없이 우울하고 외로운 아이였다.

 

너라도 나를 피티라고 불러줘. 내 목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가늘게 뜬 피티가 말했다. ‘왓 어 피티(what a pity)!’라고 말할 때의 그 피티인가? 내가 묻자 피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민. 너라도 나를 불쌍하다고 여겨줘.

 

피티를 걱정하는 소냐를 본 것은 처음이다. 피티의 머릿속은 늘 언니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냐의 양쪽 손목에는 여러 개의 자상이 실뱀처럼 꼬여 있었고, 힘을 주어 걸레질을 할 때마다 손목에 박힌 실뱀들이 튀어나올 듯 꿈틀거렸다. 마르고 하얀 팔에 힘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을 주어 걸레질을 하고 있는 소냐를 볼 때면 피티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늘 학교에서 기도했어. 적어도 내가 소냐의 죽은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은 아니기를.

 

나는 피티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소냐가 죽는 것인지, 아니면 소냐가 죽어있는 모습을 대면하는 순간 그 자체인지. 소종한 사람을 잃는다는 건 그 사람이 사라진 상황을 견디는 것이자, 그 이후의 남은 삶을 견디는 거잖아.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나는 어느 쪽도 자신이 없어.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함부로 선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를 지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변을 둘러싼 컬러가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 게 맞는다면, 검정에 가까운 진한 고동색의 앤티크 가구 일색인 집에서 자란 내가 천연색 꿈을 꿀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꼴이야. 손님 앞에서 쪽팔리게. 나는 피티에게 물었다. 너는 저 개가 싫어? 싫고 좋고가 어디 있어? 가족인데. 피티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잰 그냥 우리 가족이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 너는 사람들이 왜 자살하지 않고 사는 줄 아니. 난 지금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좋은 냄새가 나는 산책로를 걷고, 예쁜 티포트에서 적당히 잘 우린 차 한잔을 따라 마시다보면 말이야…… 이딴 고민이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냥 이렇게 살면 되지 뭐,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

 

그 침대는 나와 소냐가 쓰는 침대야. 그런 섹스를 원하는 거라면 너희 집에 가자. 나는 피티의 말이 서운했다. 그곳은 내 집이 아니라 할머니의 집이라고, 그 집에서 내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는지 여러 번 얘기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풍스러운 그림이 그려진 2인조 찻잔 세트를 하나하나 신문지로 싸면서 할머니는 나중에라도 딸이 결호늘 하게 된다면 이것을 혼수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는 늘 나밖에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좋은 것이 생길 때마다 우리를 버린 딸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 순간 그녀가 내게 보여주었던 희미한 미소를 보면서 알았다. 그녀에게도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헤어지던 순간에도 나는 피티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너한테도 내가 필요해. 소냐 아닌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피티는 싸늘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장 이상한 것은 이 집 자체일지도 모른다.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화사함, 지나친 깨끗함, 과장된 보호막 같은 것들. 피티가 안간힘을 쓰며 지키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다만, 피티 자신만 사라졌을 뿐이다.

 

쉴 새 없이 내게 말을 건네는 소냐에게 이전과는 달리 묘한 활력마저 느껴졌다. 소냐 또한 피티가 아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 않을 티타임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피티, 어떤 갈망을 삶을 견디는 힘이 되는 동시에 삶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던 걸까. 그제야 나는 피티가 가장 좋아하는 찻잔으로는 단 한번도 차를 마셔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