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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사이먼 싱

2012. 9. 18.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저자
사이먼 싱 지음
출판사
영림카디널 | 2004-02-25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17세기 수학자가 남긴 페르마의 정리. 지난 350여년 동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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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이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17세기 프랑스의 아마추어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가 남긴 이 한마디에, 지난 350여 년간 '수학의 아름다움'에 미쳐버린 수학자들의 꿈을 한 편의 드라마로 엮어놓은 이 책은 수학에 친숙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갖고 있는 역사와 명멸해간 위대한 천재들의 치열한 삶을 흥미롭게 펼쳐놓는다. - 책 표지에서 -

재미있다. 오랜만에 읽은 재미있는 책이다. 좀 어렵다 싶은 수학이론은 부록으로 빼두어서 그리 머리 쓰지 않아도 되고, 그냥 완벽한 증명을 통해 완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학자들의 삶은 설핏 웃음짓게 한다. 이 책은 논리적 사고의 항연이다. 물론, 모두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수학의 심장부는 '증명'이며, 이것이 바로 수학과 여타 과학 분야 사이의 차이점이다. 다른 과학 분야는 실험 결과를 설명해 줄 만한 가설에 의해 유지되며, 이 가설이 새로운 실험 결과와 상치되면 곧바로 새로운 가설로 대체된다. 그러나 수학의 최종 목적은 완전한 증명이다. 그리고 일단 한번 증명이 이루어지면 그 결과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아이스킬로스 Aeschylos(B.C. 525~456,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의 한사람,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영웅적 자세를 묘사했다)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해도 아르키메데스 Archimedes(B.C.287?~212, 고대 그리스 자연과학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언어는 사라지지만, 수학적 아이디어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불멸'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수학자들은 이 단어에 가장 근접한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다.
- 하디 G. H. Hardy(1877~1947)


수학자의 연구수명은 매우 짧다. 25~30세가 연구 활동의 전성기이며, 그 이후에 업적을 남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 왕성한 나이에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면, 그 이후에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젊은 수학자는 정리를 증명하고, 늙은 수학자는 책을 쓴다.
수학자에게는 화력한 경력보다 직관력과 대담함이 더욱 필요할 때가 많다.


프리우스의 왕자 레온이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피타고라스는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대답하며, 철학자를 이렇게 정의한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어떤 이는 재물을 탐하고, 또 어떤 이는 권력과 권세를 향한 맹목적 정열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현명한 이는 삶 자체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연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완전무결한 현자란 있을 수 없겠지만, 이들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그들은 지혜를 사랑하고,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는 열정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피타고라스는 회원들의 수학관數學觀을 바로잡기 위해 하나의 윤리체계를 세웠다. 그의 학회는 종교적 색채를 띤 단체였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이란 다름아닌 수 number였다. 숫자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우주의 영적인 비밀을 알아내고, 신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가장 드물면서도 가장 중요한 수는 완전수이다. 완전수는 약수들을 모두 더하면 본래의 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6의 약수를 모두 더하면 1 + 2 + 3이므로 6은 완전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저서 <신의 도성 The City of God>에서 "신은 이 세상을 한 순간에 창조할 수도 있었지만 우주의 완전함을 계시하기 위해 일부러 6일이나 시간을 끌었다"고 적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가이자 미래학자인 아서 클라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저명한 과학자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을 제 아무리 힘주어 주장한다 해도 그것은 바로 다음 날 번복될 수 있다. 과학적 증명은 변덕스럽고 엉성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수학적 증명은 절대적이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피타고라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정리가 사실임을 확고하게 믿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진리로 남을 것이다.


수학이론의 타당성 여부는 전적으로 논리의 구성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피타고라스가 인류의 문화에 기여한 가장 값진 교훈이다. 인간의 어설픈 분별력을 초월하여 절대의 진리를 찾아내는 방법 - 그것이 바로 수학이라는 것이다.


이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천재는 한편으로 장난기 어린 심성을 갖고 있었다. 페르마는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중에도 가끔씩 다른 수학자들과 교신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짓궂게도 그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페르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이 최근 발견한 수학 정리를 아무런 증명도 없이 적어놓고, "당신도 한번 이 정리를 증명해 보시죠. 저는 이미 했습니다" 라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애태우곤 했다. 자신의 증명 과정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 페르마의 이런 행동 때문에, 당신의 수학자들은 꽤 심각한 열등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데카르트는 페르마를 '허풍쟁이'라고 불렀으며, 영국인 수학자 존 윌리스는 '빌어먹을 프랑스 녀석'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영국인들이 유난히 페르마를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페르마가 영국에 있는 사촌형제들과 편지 왕래를 하면서 그들을 실컷 골려먹었기 때문이다.


버틀란트 러셀은 확률이론을 다음과 같은 모순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 " '확률'과 '법칙'은 분명히 반대의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수로 '확률의 법칙'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


파스칼의 말이다. 영원한 행복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선행을 쌓아서 천국으로 들어갈 확률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무리 작다 해도 분명히 '유한한 ' 값을 가진다. 따라서 종교란 판돈을 걸 가치가 있는 일종의 확률게임이다. 왜냐하면 '무한한' 가치에 '유한한' 확률을 곱하면 '무한한' 기대값이 나오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로 들어오는 모든 여행객들은 시 경계선을 지날 때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책들을 관리에게 맡겨야 해했으며, 시내를 여행하는 동안 관리는 여행객이 맡긴 책들의 복사본을 만들어 원본은 도서관에 기증하고 알렉산드리아를 떠나는 여행객에게는 복사본을 돌려주었다. 이렇게 세심하게 만들어진 복사본의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지금도 역사학자들은 고대에 유실된 위대한 서적들이 어디선가 발견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수론에 대하여 유클리드의 기하학만큼 유명한 저서를 남긴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로서, 그는 그리스 수학을 선도한 최후의 인물이었다.
"신의 축복으로 태어난 그는 인생의 1/6 을 소년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인생의 1/12 이 지난 뒤에는 얼굴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했다. 다시 1/7 이 지난 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을 맞이하여 화촉을 밝혔으며, 결혼한 지 5년만에 귀한 아들을 얻었다. 아! 그러나 그의 가엾은 아들은 아버지의 반밖에 살지 못했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깊은 슬픔에 빠진 그는 그 뒤 4년간 정수론에 몰입하여 스스로를 달래다가 일생을 마쳤다."
이 묘비에 새겨진 글로부터 디오판토스의 수명을 계산할 수 있을까?


서기 642년, 회교도들의 침략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어이 파괴되고 말았다. 침략에 성공한 칼리프 오마르가 도서관의 처리 문제를 놓고 고심하다가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코란에 위배되는 책은 우리의 적이므로 모두 폐기처분한다. 또한 코란에 위배되지 않는 책들 역시 읽을 필요가 없으므로 폐기처분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란뿐이다." 그이 명령에 따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모든 책들은 아궁이 속으로 던져졌고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화형에 처해졌다.


인도와 아랍의 학자들은 수학의 어휘에 '0'이라는 수를 추가시킴과 동시에 그리스식 기호와 사용이 불편한 로마식 숫자 표기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그들이 고안한 새로운 숫자 표기법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아라비아 숫자' 라고 불리는데 이것 역시 독자들에게는 별볼 일 없는 변화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CLV 에 DCI 를 곱한다고 상상해 보라. 당장 아랍의 수학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우러나올 것이다. 이것을 '155 × 601' 로 표기하는 법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카이사르의 침공과 테오필루스 주교의 이교도 박해사건, 그리고 칼리프 오마르와 투르크족의 대대적인 침공 등 숱한 역경을 딛고 끝까지 살아남은 디오판토스의 <아리스메티카> 여섯권은 그 뒤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페르마의 책상 위에 놓이게 된다.
프랑스 최고 석학 클로드 가스파르 바셰가 번역한 프랑스판 번역본인 <아리스메티카>에는 디오판토스시대에 유행하던 정수론 문제들과 그 해답이 기록되어 있었다. 페르마는 이 책을 연구하면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변형시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만들고, 바셰의 판본에 넉넉했던 여백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다." 이것이 350년동안 유수한 수학자들을 뒤흔들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출발점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유명해진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 -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추가한다면 수많은 수학자들을 좌절시킨 이 악명높은 정리를 아마추어 수학의 왕자인 페르마가 증명을 '했다'는 점이다. <아리스메티카>의 여백에 갈겨쓴 페르마의 주석은 전세계 수학자들을 향하여 하나의 화두를 제시하였다. 그 자신은 정리를 증명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 "나만큼 똑똑한 수학자가 있으면 한번 나와보라구 그래!"


뛰어난 유머감각을 자랑하던 하디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만큼 사람의 애를 태우는 일이 또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평소에 배 타는 것을 무서워하던 그는 결국 다음과 같은 가상의 상태를 만들어냈다. 내가 반드시 배를 타고 여행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맨 먼저 내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전보를 칠 것이다.
"나는 방금 리만의 가설을 풀었다네. 여행에서 돌아오면 자세한 내용을 들려주지."
리만의 가설은 19세기 수학자들을 끔찍하게 괴롭혔던 수학 문제이다. 이렇게 전보를 친 하디는 이제 마음놓고 항해를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만일 하디가 물에 빠져 죽는다면 수학자들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이외의 또 하나의 괴물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진한 수학자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이어서, 자비로운 신이 하디의 목숨을 지켜줄 거라는 이야기이다.


수학을 여행에 비교한다면 그것을 잘 닦인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여행이 아니라, 낯선 황무지를 정처없이 헤매는 방랑길과 비슷하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종종 길을 잃기도 한다. 황무지의 지도는 여행자로부터 날아온 '엄정함'이라는 신호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일단 지도의 한 부분이 만들어지면 여행자는 이미 그곳에 없다.
- 앵글란


오일러는 두 눈을 모두 잃은 뒤에도 7년동안 수학연구를 계속했다. 그가 수학계에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펜과 노트를 쓰지 않고 복잡한 수학개념들을 오로지 생각만으로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그의 머리는 도서관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기억을 담고 있었다.
그는 1783년 9월 18일에 치명적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리철학자였던 콩도르세 후작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세상에 알렸다.
"오일러는 삶과 계산을 멈추었습니다."


힐베르트는 무한대가 갖고 있는 기묘한 성질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제를 만들어냈다. '힐베르트의 호텔이라고 불리는 이 유명한 예제는 힐베르트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가상의 호텔에서 시작된다.
이 호텔에는 무한개의 객실이 있다. 어느날 한 손님이 호텔로 찾아왔는데, 객실이 무한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마다 모두 투숙객들이 들어 있었으므로 빈 방을 내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호텔 종업원인 힐베르트는 잠시 생각하던 끝에 새로 온 손님에게 빈방을 마련할 수 있노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그는 객실로 올라가 모든 투숙객들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한다.
"죄송하지만 손님들께서는 옆방으로 한 칸씩만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해심 많은 투숙객들은 힐베르트의 성가신 부탁을 잘 들어주었다. 1호실 손님은 2호실로, 2호실 손님은 3호실로... 잠시 뒤 이동은 끝났다. 기존 투숙객이 자기방을 못찾아 헤매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손님은 비어있는 1호실로 여유있게 들어갔다. 이것은 무한대에 1을 더해도 여전히 무한대임을 말해주는 좋은 예제이다.
그런데 다음 날 밤, 호텔에는 더욱 곤란한 문제가 발행했다. 투숙객이 방을 모두 점거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한히 긴 기차를 타고 온 무한대의 손님들이 새로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힐베르트는 당황하기는커녕, 무한대의 숙박료를 더 받을 수 있다며 혼자서 쾌재를 부른다. 그는 곧 객실에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손님 여러분, 죄송하지만 현재 묵고 계신 객실 번호에 2을 곱하셔서, 그 번호에 해당되는 객실로 모두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리하여 1호실 손님은 2호실로, 2호실 손님은 4호실로... 모두 이동을 마쳤다. 자기방을 빼앗긴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도, 어느새 호텔에는 무한개의 빈 객실이 생긴 것이다. 힐베르트의 재치 덕분에 새로 도착한 무한대의 손님들은 홀수번호가 붙어 있는 무한개의 객실로 모두 배정되어 편히 쉴 수 이었다. 이것은 무한대에 2를 곱해도 여전히 무한대임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풀리지 않는 암호란 존재하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암호란 그것을 해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뿐, 풀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비밀정보를 암호화하는 데 주된 목적은 아군의 정보를 적으로부터 완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 정보가 노출될 때까지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 옮긴이 주 -


자연현상 중에도 소수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매미의 일생'을 들 수 있다. 매미는 가장 오래 사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알에서 부화한 매미의 유충은 땅 속에서 나무 뿌리의 수액을 빨아먹으며 길고 지루한 세월을 인내하다가 17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매미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애벌레로 지냈던 그 긴 세월에 비하면, 날개를 달고 밖으로 나온 매미의 삶은 허망할 정도로 짧다. 겨우 수주일 이내에 짝짓기를 하여 알을 낳고는 금방 죽어버리는 것이다.
"매미의 생명주기가 이렇게 긴 이유는 무엇인가?" - 곤충학자들은 이 질문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혹시 매미의 수명과 '소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소수의 수명을 사는 것이 종족 보본에 무언가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일까?
매미의 긴 수명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론이 하나 있다. 먼 예날, 매미의 몸 안에 주로 서식하는 기생충이 있었는데, 매미는 가능한 한 이 기생충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피했다는 것이다. 만일 기생충의 수명이 2년이라면 매미는 2로 나누어 떨어지는 수명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며 매미와 기생충의 수명 주기가 대대손손 일치하여 종족 보존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생충의 수명이 3년이라면 매미는 3의 배수에 해당하는 수명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화해온 매미는 결국 기생충의 수명이 몇년이건 간에 이들과 수명주기를 달리하는 최선의 방법이 소수에 해당하는 수명을 사는 것임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17은 어떤 수로 나누어도 떨어지지 않으므로, 기생충의 수명이 17년이 아닌 한, 매미의 가계는 효과적으로 기생충을 피할 수 있다. 만일 기생충의 수명이 2년이라면 매미의 후손과 기생충의 후손은 34년에 한번 씩 만날 것이며, 기생충의 수명이 16년인 경우에는 272년(16*17)만에 한번씩 만나게 된다.
그런데, 매미가 이 정도로 똑똑했다면 기생충 역시 바보는 아니었을 것이다. 기생충은 매미의 몸 속이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도 종족 보존을 위해 가능한 한 자신의 수명을 매미의 수명과 일치시키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매미의 기생충이 17년을 살았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매미는 애벌레의 모습으로 16년을 지낸 후에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숙주의 몸에 들어가기 위해 16년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인 발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의 수명을 17년이 될 때까지 진화하려면 '16년의 수명'을 가진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데, 이 단계에 이르면 갓 부화된 기생충이 이제 막 밖으로 나온 매미와 마주치는 운 좋은 경우는 272년 동안 단 한번 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둘 중 어느 경우이건, 매미는 소수해의 수명을 살면서 기생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을 보호해왔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현재 매미의 몸 안에서 기생충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생충들은 매미의 수명을 따라잡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해왔지만 그들이 수명이 '마의 벽'과도 같은 16년에 이르던 그 순간부터 향후 272년간 매미를 보지 못하고 고생하던 끝에 모두 멸종해버린 것이다. 만일 이 논리가 사실이라면 앞으로 매미들은 굳이 17년을 살 필요가 없다. 그들을 못살게 굴던 기생충들이 이땅에서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8)


오귀스탱 코시는 매우 독선적이고 괴팍한 인물로 평판이 나 있어 수학자들이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프랑스 학술원의 학자들이 코시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던 것은 그가 천재적인 수학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증명이란 수학자들이 스스로를 고문하면서 추구하고 있는 그들만의 우상이다. - 아서 에딩턴 경


수학자들은 엄밀한 증명 없이는 어떠한 사실도 받아들이지 않는 지독히 까다로운 사람들이다.
천문학자와 물리학자, 그리고 수학자가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검은 양 한마리를 보았다. 그러자 천문학자가 말했다. "그것 참 신기하군. 스코틀랜드 양들은 죄다 검은색이잖아?" 이 말을 듣고 있던 물리학자가 천문학자의 말을 반박했다. "그게 아니야. 스코틀랜드산 양들 중에서 일부만이 검은 색이라고 말해야지." 이들의 말이 한심하다는 듯, 수학자는 하늘을 잠시 쳐다본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린 거야. 스코틀랜드에는 적어도 몸의 한쪽면 이상의 면적에 검은 털이 나 있는 양이 적어도 한마리 이상 방복되고 있는 들판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 - 이래야 말이 되는거라구!"


많은 수학자들은 아직도 수학의 확실성을 믿고 있다. 다만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을 뿐이다. 저명한 정수론 학자인 앙드레 베일은 이렇게 말했다. "수학이 완전하기 때문에 신은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완전성을 증명할 수 없기에 악마 역시 존재한다."


수학은 과학기술 분야에 자주 응용되고 있지만 이를 위해 수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냈을 때 느끼는 즐거움 - 이것이야말로 수학의 진정한 존재가치이다.


하디 <수학자의 변명> 중에서...
나는 지금까지 '유용한'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 동안 내가 이루어온 수학적 발견들을 이용하여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세상에 무언가 유용한 공헌을 하거나 해를 끼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또 그럴 가능성도 없다. 현실적인 기준에서 판단해 볼 때, 수학에 매달려 살아온 내 인생의 가치는 한마디로 無 그 자체이다. 수학으로 일관했던 나의 삶이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잇는 것은 내가 창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언가를 창조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창조한 것은 절대로 부인될 수 없는 존재이다 -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지는 내 스스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데이빗 로지는 그의 저서 <영화 팬>에서 무한대와 비슷한 개념인 '영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서술하였다 ; "지구만한 크기의 쇠로 만든 공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쇠공 위에는 100만년마다 한 번씩 파리가 날아와 잠시 앉았다가 다시 날아간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어 쇠공이 모두 닳아없어질 만큼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그것은 영원의 시간에 비하면 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영원의 시간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아무리 뛰어난 수학자라 해도 아무런 소득 없이 수년의 세월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었습니다. 물론 어떠한 문제이건 간에 거기에 매달려 해결책을 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일이 진행되는 와중에 간간이 새로운 수학적 사실들이 발견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수학 문제란 문제 자체의 수학적 가치보다는 연구과정에서 새로운 수학적 관심사를 창출해내는, 그런 문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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