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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 |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2012. 9. 24.

 

 

 

해먹, The Hammock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QtCbg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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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pedia           http://bit.ly/QtC7gm

 


 

해먹이라는 게 있다.
야자수 두 그루에 양쪽 끝을 매단 흔들리는 그물침대 말이다. 해먹은 역시 야자수에 묶어야 제맛이다. 해먹에 누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 낭만적이었고 평화로워 보였다.
삼십여 년을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이가 해먹에 누워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사실 해먹을 실제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막연한 환상만 지니고 있는 사물 중의 하나다.

어느 날, 내 손에 해먹이 하나 쥐어졌다.
산악회 기념품이었다. 보통 '제 몇 회 무슨 무슨 기념'이라고 찍힌 글자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기념품들이 무수한 세상에서, 이 흔하지 않은 기념품은 내게 상당한 즐거움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문제는 이걸 설치해서 한번 누워보고 싶은 나의 조급증을 해결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파트의 벽과 벽 사이는 너무 넓었고, 열린 방 문틀 사이는 너무 좁았다. 설치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산악회도 산을 오를 때보다는 기념품 받을 때 더 많이 참여하는 불성실한 회원이었으므로, 산에 가서 나무에 걸어볼 기회도 없었다. 이 환상 속의 물건은 배낭 속에 그다지 쓰지 않는 다른 등산용품과 함께 일상에서 밀려났다.

세월이 좀 지나서 가족과 함께 사는 삶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독립했다. 당연히 집은 아담했다. 그건 벽과 벽 사이가 좁아진다는 의미로, 해먹을 걸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해먹을 찾았다. 배낭 속에는 코펠, 아이젠, 판초, 손전등 등등의 등산 장비들이 고스란히 있었지만 해먹은 없었다. 이상하다. 어디 뒀더라? 정말 짜증이 나는 일이다. 모든 환경이 다 갖춰졌는데,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전체를 좌우할 때가 있다. 그 단 하나는 내가 생각만 해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배낭에 두었는데 ……. 결국, 해먹을 찾지 못했다. 그 집을 떠날 때까지 해먹은 나오지 않았다. 벽과 벽 사이의 적당한 너비는 전혀 의미 있게 쓰이질 못했다.
다시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다.

이삿짐을 싸고 푸는 과정에서 해먹을 찾았다. 해먹은 배낭 옆면 주머니에 있었다. 이상하다. 그때 분명히 배낭을 몽땅 뒤집었는데, 그 주머니를 보지 못한 거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다. 이건 찾지 못하는 것보다 더 불쾌하다. 그러나 해먹은 거기 있었다.
이 집은 해먹을 걸 공간이 마땅치 않다. 전혀 없다. 꼭 한 가지가 부족하다. 공간이 있으면 해먹이 없고, 해먹이 있으면 공간이 없다. 젠장! 이번만은 억지를 부려서라도 꼭 누워보리라 다짐하고 집을 구석구석 뒤져보았다. 배낭 주머니 속의 해먹을 눈앞에 두고도 못 찾았듯이, 이 집구석 어딘가에는 내가 깨닫지 못하는 공간이 있을 것이다. 눈만 조금 크게 뜬다면 항상 거기 있었던 공간이 나타날 것이다.

찾았다. 현관을 들어서면 거실로 들어서기 직전의 공간, 이 정도면 적당하다. 양 벽면에 못을 박고 해먹을 걸었다. 근데, 이 해먹이란 걸 너무 높이 단 게 문제였다. 중심을 잡지 못해 편안하게 누울 수 있을 때까지는 몇 번 굴러떨어져야 했다. 그 편안함도 생각만큼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내려오기도 쉽지 않았다. 내가 그 그물침대에서 내려오려고 요동을 치자 해먹은 더 흔들렸다.
내가 쩔쩔매고 있을 때 현관을 열고 외출했던 가족이 들어왔다. 그들은 내려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흔들림에 편안하게 몸을 맡기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웃음을 애써 참으면서.
그 순간은 평화롭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환상은 현실에 부딪혀 깨지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해먹은 야자수가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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