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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라자르 역 |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2012. 9. 24.

 

 

 

 

생 라자르 역, The Railroad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883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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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어요. 울음소리와 고함소리, 그리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 익숙한 다툼이었지만 그날은 달랐어요. 더는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아빠가 말했죠. 이제 우린 끝이야. 아빠는 떠났어요. 엄마와 아빠는 이제 사랑하지 않는 거죠? 더는 함께 살지 않겠지요? 정말 끝이겠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서운 밤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해요. 일찍 자야 하는 이유지요. 어둠이 내리고 어른의 시간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어야 해요. 엄마아빠는 무서운 밤에 무섭게 싸우곤 했죠. 우리는 깰 수밖에 없었지만 절대 문밖을 나서진 않았어요. 동생이 울음을 터트리며 침대로 와서 나를 껴안아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울면서 깊이깊이 잠들어야 해요. 무서운 밤에 깨어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나니까요.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와 신문을 보고 있는 아빠를 보며 지난밤 나쁜 꿈을 꾼 것이라고 동생에게 말해요. 동생과 내가 같은 꿈을 꿨다는 사실은 애써 생각하려 하지 않아요. 나쁜 꿈이 계속되지만 똑같은 아침이 계속되는 한은 우리 가족은 안전해요.
하지만, 그날 아침은 달랐어요. 꿈에서 깼는데도 여전히 울고 있는 엄마와 텅 빈 식탁, 아빠는 보이질 않았어요. 이것이 아빠가 말한 끝일까요? 아빠는 우리와 작별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아침이 되었는데 나쁜 꿈은 계속 되고 있었지요.
동생과 방에 처박혀 있었어요. 어린 동생은 내게 물었어요. 누나는 엄마와 살 거야, 아빠와 살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린 모두 함께 살 거야.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어요. 동생은 믿지 않았지만, 나는 믿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린 동생을 보며 생각했지요. 누구랑 살아야 하지? 결정하는 순간 가정은 깨져 버리는 거겠지요.
나는 엄마랑 살 거야. 동생이 먼저 말했어요. 이런 건 먼저 말한 사람이 유리해요. 먼저 하면 자신만 생각하면 되죠. 나중이 되어버리면 먼저 말한 동생의 말까지 생각해서 말해야 해요. 나도 엄마랑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말할 수 없었어요. 동생에게 우선권이 있어요. 동생은 어리고 나는 누나이니까요.
엄마는 항상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어요. 엄마와 아빠가 둘 중 하나씩만 데려가겠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동생은 벌써 말했어요. 엄마랑 떨어져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어린 동생을 모른 척하고 나도 엄마랑 살겠다고 하면 너무 이기적인 거겠죠? 둘 다 엄마랑 살겠다고 하면 아빠는 너무 불쌍하잖아요. 다정다감한 아빠는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리잖아요. 어린아이는 아빠보다 엄마에게 더 친근감을 느껴요. 우리도 선택은 너무 힘들어요.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지도 몰라요. 엄마아빠가 결정을 내리고 우리에게 알려주겠지요. 오늘부터 너는 나랑 살아야 한다. 그렇더라도 결과가 다르진 않을 거예요. 동생은 더 보호받아야 할 존재니까요.
결국, 내게 누구랑 같이 살겠느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아빠와 살겠어요. 마치 처음부터 원하는 바라는 듯이, 아빠가 눈치채지 못하게 말할 거예요. 그리고 동생에게 다가가 안심하라고 속삭이겠지요.
엄마, 기차가 들어와요. 저 기차를 타면 나는 아빠에게 가는 거겠지요. 엄마아빠는 묻지 않았어요. 엄마는 조용히 나를 기차역으로 데리고 왔어요.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 아빠의 선택은 전혀 기쁘지 않았고, 엄마에게 버림받고 동생과 헤어지는 것은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 안 돼요. 나는 기쁘게 아빠를 선택한 것이니까요.
기차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엄마, 나를 기억할 거죠. 또 만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엄마잖아요.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요. 엄마 모두 함께 살 순 없는 건가요? 왜 나만 불행해야 하나요? 엄마아빠는 스스로 선택한 거지만 내겐 선택권이 없어요. 이건 불공평해요. 그렇죠, 엄마!

엄마를 돌아봤지만, 엄마는 거기 없었다. 마차가 한 대 멈췄고, 아빠가 내렸다. 내가 미처 아빠를 부를 새도 없이 엄마가 달려가 아빠 품에 안겼다. 둘은 키스를 했다.
끝은 끝이 아니고 다시 시작되었다.
아빠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많이 무서웠구나,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가자꾸나. 아빠는 나를 번쩍 안아서 마차에 태웠고, 마차 안에서 엄마는 아빠와 팔짱을 꼭 끼고 머리를 아빠 어깨에 기대고 웃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이제 어린아이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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