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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공장 |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2012. 10. 5.

 

   

 

의자공장, The Chair Factory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1910

 

 

 

 

관련 링크

네이버 캐스트    http://bit.ly/SOukac

Works of Art      http://www.henrirousseau.org

Wikipedia          http://bit.ly/SOubDB

 

 

이곳은 주문식 의자공장이다. 원하는 의자를 주문서에 적으면 원하는 바를 만들어준다. 불가능은 없다. 주의할 점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적어야 한다. 주문서에 기재하지 않은 사항은 전적으로 고객의 책임이므로 의자공장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주문서
직업은 작가다. 의자가 불편해서 글을 쓸 수가 없다. 딱딱한 의자 때문에 자꾸 자리에서 일어난다. 생각의 흐름은 끊기고 다시 의자로 돌아가는 것이 고통스럽다. 고통스러운 반복된 행동이 의욕을 꺾는다. 자꾸 침대에만 눕게 된다. 그리고 불편하고 짧은 잠을 수차례 나눠 잔다. 언제나 피곤하다. 마감이 다가오는데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 작업하는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의자를 원한다.

 

제작과정
기본구조는 휠체어이다. 가장 불편한 이에게도 가장 편한 의자이다. 기본구조에 탁상 작업을 할 때 편안하도록 인체공학적으로 허리 부분을 보완하였고, 기능적으로는 집중을 원할 때 한눈을 팔지 않도록 머리고정대도 추가했다. 의자 앞에는 보조 탁자가 있어 노트북을 올려놓고 작업할 수 있다. 당신은 작업대를 가지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의자에 앉아서 모든 의식주 생활이 가능하다. 등받이는 기울어져 침대로 사용할 수 있다. 등받이는 정해진 시간에만 작동한다. 사용자가 설정해놓은 하루 8시간의 작업시간 동안은 작동을 못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전동으로 작동되므로 힘들이지 않고도 이동 및 생활이 가능하다. 의자는 절대적인 편안함을 보장한다. 의자 자체가 작은 주거공간이면서 작업공간이다.
고객의 요구사항대로,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잠금장치기능도 있다. 이때 사용자의 의지를 믿기 힘들다면 열쇠는 다른 이에게 맡기기를 권한다.     

 

사용 후기
저는 주문자가 아닙니다. 주문자는 마감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자에 자신을 묶고 제게 열쇠를 주었습니다. 저는 한 달 동안 여행을 갔습니다. 그만큼 그의 각오는 남달랐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그는 의자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완성된 원고가 의자에 딸린 보조탁자 위에 있더군요. 의자의 부작용이 아닐까요? 의욕적으로 책 한 권을 완성한 소설가가, 소설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의자에 묶여 죽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는데요.
└ 의자공장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의자와 죽음은 무관합니다. 의사의 소견을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그는 자살입니다. 의자에 자신을 묶는 것은 선택사항입니다. 당신에게 열쇠를 맡긴 것도 선택입니다. 그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자는 핑계일 뿐입니다. 그는 자신을 알았고 누군가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람이길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물인 의자는 괜찮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 통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니까요. 못돼먹은 자존심만이 그를 버티게 해주었으니까요.
벗어날 수 없으니 포기했을 겁니다. 그리고 글을 썼겠지요. 그것밖에는 달리할 것이 없었으니까요.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당신이 돌아올 시간이 다가옵니다. 두려움은 이제 시작합니다. 그가 창작을 업으로 하는 소설가인 이상, 완성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가 의자를 주문한 것을 보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과정이 점점 힘들어졌나 봅니다. 소재 고갈과 창의성 부족을 들킬까 봐 걱정한 듯합니다.
이번 소설이 훌륭했다니, 그에게 불행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후로 그 이상의 작품을 쓸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달은 겁니다. 그는 집중한다는 명목으로 의자에 자신을 가두었습니다. 조금만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의자의 잠금장치는 그리 견고하지 않습니다. 풀려나길 원했다면 충분히 풀려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의자가 파손되긴 했겠지만.
그는 스스로 풀려나기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풀려나면 다시 돌아가 앉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 것입니다. 주문서에도 작업하기 어렵다고 의자 탓만 합니다. 의자에 갇히면서 탓할 상대를 잃어버린 겁니다. 의자를 주문하기 전에도 의자를 두려워했습니다. 아니, 자신을 두려워한 것이죠. 창작의 고통을 못 이긴 자살입니다.
의자는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그에게 최고의 작품을 쓸 수 있게 편안함을 제공한 게 죄라면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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