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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집시 |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2012. 10. 8.

 

 

 

 

잠자는 집시, The Sleeping Gypsy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1910  

 


    

관련 링크

네이버 캐스트    http://bit.ly/SOukac

Works of Art      http://www.henrirousseau.org

Wikipedia          http://bit.ly/SOubDB

 

 

사막에서 사자가 집시를 만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낮은 뜨겁게 파랗고, 밤은 차갑게 까맣다. 눈길이 닿는 곳은 거침없이 텅 비어있고, 발길 닿는 곳은 길 없이 끝없다. 사막은 침묵하는 공간에 멈춰진 시간이다. 그 한가운데 서있으면 모래든 산이든 달이든 물이든 심지어 사자조차 모두 사막이 된다.
그녀는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멈췄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더는 갈 수 없어 다다른 그곳에 주저앉는다.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주저앉아 잠드는 대신 그녀의 악기를 연주한다. 아름다운 선율이다. 그녀의 음악은 거칠 것 없는 시공간을 가르며 곧장 날아와 바람을 가른다. 메마름을 적시고 지친 어깨를 다독이고 존재를 일깨운다. 가슴이 먹먹하다.
사막에는 고요한 잡음들이 침묵 속에 배회한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시공이면서도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는 시공이다. 그녀의 음악은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흐르게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세상 모든 것이 되게 한다. 어제까지는 모든 것은 사막이었다. 오늘 그녀가 사막을 일깨워, 산이고 물이고 달이고 사자이게 한다. 그녀로 인해 그는 사자가 된다.
그녀는 사막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소리를 내는 존재였고, 자신의 빛깔을 가진 존재였다. 그녀의 음악은 메마른 모래에 스며든 촉촉한 물 기운을 한곳에 불러 모아 물방울이 맺게 한다. 음악이 만든 파장은 바람을 가르고 바람은 모래에 굴곡을 만든다. 그 높낮이의 차이가 산이 되고 샘이 된다. 물방울은 샘에 고이고, 어느새 그녀가 있는 그곳은 오아시스가 된다. 하얀 달은 까만 밤에 그녀를 볼 수 있는 약하지만, 충분한 빛을 준다. 그녀가 만든 세상은 그녀까지 포함해서 사자의 세상이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자는 그를 깨운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어머니이자 연인이다.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그녀는 유일했다. 메마르고 텅 빈 사막은 공포이자 위안이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공포와 아무도 해칠 수 없다는 안도감이 함께 온다. 사자의 존재는 그녀에게 위협이다. 다가갈 수 없다. 그녀는 그녀가 변화시킨 사막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녀는 그저 무아지경에서 연주를 계속한다. 음악은 멈출 수 없다. 그녀는 음악이 멈추면 그게 끝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이 흐르는 한은 그녀는 살아 있다. 아직 삶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자는 그녀의 눈앞에 설 수 없다. 사막의 사자는 그녀의 삶이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막의 사자는 사막의 그녀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사자는 다가가지 못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막에서 집시는 사자를 만났다. 그럴 수도 있겠다.
엄밀히 보자면 그녀는 제삼자일 뿐이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 꿈속에서 마지막 연주를 하는 자신과 자신을 바라보는 사자를 바라볼 뿐이다. 사자는 스스로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지만, 그녀는 애초에 그들과 소통이 차단되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사이 어딘가를 어정쩡하게 서성인다.
꿈 밖에서 그녀는 슬프게도 사자를 사랑한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이상하고 기괴하고 결코 현실일 수 없는 것조차도 꿈속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본다. 그녀 생애 마지막 연주가 일으킨 사막의 변화와 모래 속에서 깨어난 사막 사자의 한발 물러선 사랑, 그리고 그녀 자신의 다가가고 싶은 사랑.
사자는 절대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잠들지 않는다면.
그녀는 결코 사자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그녀가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이미 잠들었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계속 연주하고 있는 그녀는 이미 잠든 것이다. 현실을 깨닫자마자 꿈속의 그녀도 한계에 이른다. 그녀도 잠이 든다. 긴 여정을 끝내고 이제 기나긴 휴식의 시간이다. 음악은 멈췄지만, 그녀는 계속 거기 있다. 사자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간다. 사자는 그녀의 잠든 모습을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은 음악이 사라진 사막만큼이나 고요하다.

사막에서 사자와 집시는 서로 사랑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이것은 꿈이다. 꿈에서 깨지만 않으면,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겠다. 영원히 잠든다면 그것은 꿈일까, 죽음일까? 눈을 떴을 때 마주할 세상은 텅 빈 사막일까, 불가사의한 사자일까? 지금 깨어나고 싶은가, 계속 꿈을 꾸고 싶은가?
그녀는 선택했다. 사자와 그녀는 짧은 순간 서로 마주하고 사랑을 확인했다. 사랑의 시작이자 끝이다. 집시와 사자는 한 줌 모래가 되어 다시 사막으로 돌아갔다.

바람이 불면 그녀의 만돌린만이 그들의 사랑을 아련히 연주하고 샘에는 눈물이 고이고 달빛은 그들을 기억한다.
그 이후를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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