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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를 세다 | 토머스 에이킨스(Tomas Eakins, 1844-1916)

2012. 10. 8.

 

 

 

 

카운트를 세다, Taking the Count


 

토머스 에이킨스

Tomas Eakins, 1844-1916

 

 

 

 

 

 

 

관련 링크

네이버 캐스트     http://bit.ly/TjEbdp

Works of Art       http://www.thomaseakins.org

Wikipedia           http://bit.ly/TjDv7C

 


강한 펀치였다. 그의 주먹이 시야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멀어진 주먹이 다시 내 눈앞을 스치는 것은 순간이었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그의 얼굴이 아니라 링의 바닥이었다.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심판은 카운트를 세고 있었다. 내겐 시간이 없다. 선택해야 한다.
"세븐."
벌써? 카운트를 듣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채 카운트는 셋을 남겨두고 있었다. 승부를 시작할 때는 이기는 것이 목표다. 객관적인 평가가 상대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해도 승리를 목표로 링 위에 서야 한다. 패배의 가능성을 안고 시작할 순 없다. 승패는 결과다. 시작하면서 결과를 단정하지 않는다. 결과가 뻔한 승부는 무의미한 승부다. 적어도 선수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시합은 그와의 승부가 아니라 나와의 승부다. 지금 내게 말을 건다. 링에 두 발로 우뚝 서서 그와 다시 마주할 것인가? 그의 발끝을 보며 링 위에 편안히 누워 있을 것인가? 후자의 유혹이 크다.
객관적인 평가가 마음을 흔든다. 모두 나의 패배를 예측한다. 지금 이 편안함에 몸을 맡기면 시합은 끝난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과다. 예측이 빗나가지 않는 경기를 하고 있다. 부끄러울 것도 없다. 쓰러지기까지 부끄럽지 않게 싸웠다. 도망 다니지도 않았고 그의 주먹에 주먹으로 대응했다. 물론, 정확도나 스피드는 그가 월등했다. 패하겠지만 다음 시합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멈춰도 된다. 이 순간 패배가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트."
이제 관중도 심판과 함께 카운트를 세고 있다. 바닥에 누워 관중을 바라본다. 편을 지어 응원하러 온 사람들, 링 위의 승부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 링 위의 격렬한 격투에 비명을 지르면서 흥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경기를 본다.
희미한 시야에 무리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링 위의 상황 전체를 바라보며 심판과 함께 카운트를 세며 내가 패배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승패가 갈릴 즈음이 되자 승자의 편에 서서 함께 환호할 준비를 한다. 패자는 모든 시선이 승자에게 쏠릴 때, 눈에 띄지 않게 쓸쓸하게 퇴장해야 한다.
승리의 기쁨은 나눌 수 있어도 패배의 슬픔은 나눌 수 없다. 코치나 가족이 패배를 위로하고 다음을 기약하라며 격려할 것이다. 위로와 격려는 되지만 그렇다고 패배의 아픔이 줄어들진 않는다. 패배는 고스란히 내 몫이다. 모든 것을 다하지 않았다면 아픔은 커지고 오래간다.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후회를 남기게 된다.
심판이 챔피언의 손을 들어 올리면, 링 안으로 뛰어들려고 코치가 준비하고 있다. 심판도 관중도 코치조차도 이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묻는다. 정말 일어날 수 없는 것인지? 정말 더는 뛸 수 없는지? 몸이 움찔한다. 나를 속일 순 없다. 링 바닥이 편안하다. 이 편안함 때문에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더 뛸 수 있다.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뛸 수 있다. 나는 안다.
"나인."
마지막 카운트다. 심판이 마지막을 세면 끝이다. 내게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일어날 수 있다. 편안함에 취하면 일어날 수 없다. 몸이 움찔한다. 마지막 안간힘으로 한쪽 무릎을 세웠다.
심판은 마지막을 카운트하기 전에 한숨 고른다. 관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챔피언에게서 내게로 시선을 옮긴다. 코치는 링에 뛰어들 자세를 풀지 못하고 일시 정지하고 있다. 모든 시선이 나를 주시한다. 승리를 눈앞에 둔 챔피언의 얼굴이 가장 마지막에 나를 바라본다. 올 테면 와봐라,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러나 그도 경기를 마무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시작됨은 마땅치 않다.
인간에겐 한계가 있다. 매 순간이 한계이다. 경기에서는 첫 펀치를 맞았을 때도 한계를 느낀다. 한계를 극복하면 한계치는 한 단계 올라간다. 바닥에 누워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다시 일어서면서 생각한다. 아직은 아니다. 한계를 만나면 마음속으로 카운트를 센다. 내가 인정하면 거기까지다. 내가 무릎을 세우는 순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나머지 무릎을 마저 끌어올려 두 발로 서서 그를 마주했다. 관중은 순간의 정적에서 깨어나 다시 환호한다. 심판은 카운트를 세던 손으로‘파이트’를 외치고, 코치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경기의 끝은 모른다. 다시 시작하기로 한 이상, 승패를 예단하지 않는다. 경기에서 내 한계를 만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다음에 넘어서야 할 한계를 만드는 것이다. 더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언제나 더 나아가고 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스포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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