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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끝이 없고 | 월터 랭글리(Walter Langley, 1852-1922)

2012. 10. 9.

 

 

 

슬픔은 끝이 없고 


Never Morning Wore to Evening but Some Heart Did Break 

 

월터 랭글리

Walter Langley, 1852-1922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T0ag4M

Works of Art       http://bit.ly/T0aw3K

Wikipedia           http://bit.ly/T09TqF

 

 

“얘야, 실컷 울어라. 눈물이 슬픔을 지우지는 못하겠지만, 사라지지 않는 슬픔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실없는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는 걸 어찌 멈출 수 있겠니.”
‘어머니,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세월이 지날수록 슬픔은 점점 옅어집니다. 슬픔의 크기가 줄어든 걸까요? 슬픔을 담는 마음이 담대해진 걸까요? 매해 남편과 아이를 기억해야 하는 그날, 무뎌진 제 맘을 탓하듯이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시간과 함께 점점 견딜만한 슬픔이 됩니다. 언젠가는 이 눈물마저 멈추면 어쩌죠? 남편과 아이를 사랑했고, 그들의 부재에 가슴 찢어지는 아픔으로 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던 제가 이제 그들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래도 될까요? 죽을 것 같던 산 사람은 변해가고, 결국 죽은 사람만 불쌍한 꼴이 되어버립니다. 슬픔에 익숙해져도 되는 걸까요? 어머니.’
“그들이 떠난 지도 여러 해가 되었구나. 아들과 손자를 잃은 슬픔이 네 슬픔보다 가볍진 않단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단계를 더 많이 겪게 되고 이 모든 것이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지. 너보다 더 많은 이를 떠나보냈고, 슬픔 뒤에 오는 공허함과 끝나지 않는 슬픔에 대한 슬픔을 더 많이 알고 있단다. 슬픔에만 빠져 있으면 삶의 밝은 단면을 놓치게 된다. 우리의 삶은 슬픔만큼이나 기쁨이 많았고, 공허함이란 것은 채워짐 다음에 오는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있지. 네 삶은 그들이 떠난 이후의 삶이 전부가 아니란다. 우리는 가끔 그들과 함께 행복했던 삶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지. 이전의 삶을 기억하기에 이후의 삶이 슬픈 거란다. 그들이 없는 삶에도 모두 슬프기만 했던 건 아니지.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가 웃고 지냈던 날들이 떠오를 거야.”
‘그래요. 내내 슬퍼하며 지낸 건 아니네요. 남편을 삼킨 바닷가에서 일몰에 감탄하며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아이를 삼킨 땅의 수확에도 감사하며 지냈네요. 생각해보면 매해 하루 오늘 같은 날, 그가 떠난 날, 아이가 떠난 날만 슬퍼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해 그날이 있는 걸까요? 사람들은 잊지 못할 것 같던 슬픔도 잊는 존재라서? 한 번씩 일깨워줘야 해서? 그런 걸까요? 어머니, 오늘 전 슬퍼요. 눈물도 멈추지 않아요. 이게 누구를 위한 걸까요? 그가 생각나서, 아이가 생각나서?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어요. 지금 이 눈물은 나를 향한 눈물이네요.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남편도 없고 아이도 잃은 내가 너무 불쌍해서 흐르는 이기적인 눈물이죠.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점점 나아질 거야. 슬픔이 눈물로 흘러나오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나이가 들면 먼저 수분이 빠져나가는 거야. 눈물도 마른단다. 얘야, 이제 그들을 기억하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날도 올 테니 걱정하지 마라. 동네 아이들이 까르륵 웃는 소리에서 네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행복을 떠올릴 수 있는 날이, 맑은 하늘과 잔잔한 파란 바다가 하나가 되면 네 남편의 넓은 가슴을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올 거란다. 기쁨이 충만했던 그 시절을 눈물 없이 추억할 수 있는 때가 올 거야. 삶이 그런 거란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디며 사는 거지. 슬픔이 사라진다고 그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우리 곁에 없지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거지. 나도 곧 네 곁을 떠나겠지만, 네가 툭툭 털고 우리와 함께 씩씩하게 살아갔으면 한단다.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실컷 울어라. 가슴이 후련해질 때까지.”
‘아, 어머니. 그래서 너무 슬퍼요. 그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제 발목을 잡는 것이 그들이에요. 오늘 저는 또 남겨졌답니다. 그는 함께 떠나자고 했어요. 그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자고 했지요. 하지만, 떠나지 못했어요. 그들 때문에 어머니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를 따라가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제가 너무 안타까워서, 또다시 사랑하는 누군가가 없는 삶에 익숙해져야 하는 기나긴 세월이 두려워서, 이후로 내내 어머니를 원망할까 봐 두려워,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오로지 자신만을 불쌍하게 여기는 눈물이에요. 어쩌죠, 어머니. 어머니의 다독거림은 전혀 위로가 되질 않아요.’
‘위로가 되진 않겠지. 나도 알고 있단다. 지난밤 그가 네게 속삭이는 걸 들었단다. 밤 귀가 밝은 늙은이라,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구나. 오늘 아침 네가 없어서 떠난 줄 알았단다. 이곳에서 울고 있는 너를 보고 어찌나 마음이 놓이든지. 내게 얘기했다면 널 잡지 못했을 거다. 아들도, 손자도 없으니 붙잡을 핑계가 없더구나. 얘야, 나를 용서해라. 등을 떠밀어 그에게 보내지 못하고 등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척 너를 잡아두는 이 늙은이를. 홀로 남는다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 또한 익숙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홀로 남겨진다는 게 너무너무 무서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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