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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2012. 10. 9.

 

 

 

질투,  Jealousy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관련 링크

네이버캐스트      http://bit.ly/QPLqpD

Works of Art       http://www.edvardmunch.info

Wikipedia           http://bit.ly/QPL95Y

 

 


그녀는 그와 함께 있으면 소리 내어 웃곤 했다. 내가 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가 그와 함께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난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뇌리에는 가장 먼저 남겨질 그녀가 스쳐 지나갔다. 여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는 홀로 남은 삶은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그녀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제 난 그녀가 없는 죽음과 내가 없는 그녀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내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켜야 한다. 그녀는 아직 준비되어 있질 않았다.
때마침 그가 나타났다. 그는 내 오랜 친구이다. 외국에 오래 있다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 부부와 자주 어울렸고, 그녀도 그를 좋아했다. 그는 부유했으며 자상했고 유머가 있었으며 더불어 우정이 있었다. 그는 나를 대신할 적당한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가 그녀를 맡아준다면 맘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색이 깊어지자 나는 그에게 그녀의 기분전환을 위해 둘이서 외출을 하라고 부탁했고, 그는 죽어가는 친구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녀 또한 우중충한 집안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반기는 것 같았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남녀는 가끔 현관을 들어서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사라진 다음에는 그들은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안심이다. 그녀가 행복하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는 내 친구이니, 이제 아무 걱정이 없다.
병이 점점 깊어진다. 마지막에 다다랐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병상 주위에 그녀가 그와 함께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고, 그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이 정도면 됐다. 난 충분히 행복하다. 꽤 괜찮은 마지막이 될 것이다.
난 그녀의 손을 그의 손에 얹어 두 사람의 손을 힘주어 쥐고 말했다.
"아무래도 먼저 가야겠네. 아내를 부탁하네. 난 두 사람이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들딸도 낳고 행복하게 ……."
말을 아직 마치지 못했는데 숨이 가빠온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 그건 슬픔의 표현이 아니다. 내가 마지막 본 그녀의 얼굴은 분노였다. 왜지?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슬픔을 분노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내가 그 누구보다도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가, 마지막 순간에 날 친구에게 떠넘겼다. 내게 슬퍼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는 시한부를 선고받고 그의 친구와 나를 엮어서 생각했다.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월권이다. 산자의 일은 죽은 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의 친구는 좋은 사람이며 매력적인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게 필요한 것은 그가 없는 삶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현재의 삶이었다. 그는 그가 함께하지도 못할 내 미래를 대비하느라 나와의 마지막 순간을 낭비했다. 그는 날 위해서라고 변명했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내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다.
사랑은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난 그가 사라진 다음에도 한동안 그를 사랑하고 싶고, 시간이 흐르면 그를 추억하고 싶고, 그러다가 때가 되어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온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내게서 멀어질 테고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사랑이라 말했지만, 난 그것이 질투라고 말한다.
먼 훗날 내가 필요가 아닌 사랑으로 선택하게 될 그 누군가에 대한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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