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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큰새 |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

2012. 10. 10.

 

 

 

소년과 큰새, Boy with Grande Bird


 

에밀 놀데

Emil Nolde, 1867-1956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QcuDNk

Works of Art       http://bit.ly/QcuJ7N

Wikipedia           http://bit.ly/OSPx7w

 

 

나는 미운 아이다.
미운 아이는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는 언제나 내가 형이니까 동생을 잘 돌보라고 말했다. 언젠가 동생이 춥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라고 재떨이에 종이를 태웠다. 종이는 생각만큼 얌전하게 불타지 않았다. 불똥을 실은 한 조각이 가볍게 날아올라 이불에 옮겨붙으면서 집을 홀랑 태워버릴 뻔했다. 엄마는 화가 치밀어 나를 흠씬 팼다. 동생은 옆에서 포근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엄마는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개가 말썽을 부리지 않도록 잘 단속하라고 했다. 엄마는 집을 비웠고 개는 이제 한창 만개해서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엄마의 꽃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냥 두면 망가질 게 뻔했다. 엄마의 꽃밭은 엄마에겐 몇 가지 안 되는 자랑거리였다. 난 개를 끌고 창고에 들여놓고 문을 잠가버렸다. 개는 꽃밭에 얼씬도 못했다. 엄마가 창고 문을 열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창고에는 술독이 깨져 있었고, 곡식 자루는 넘어져 있었으며, 술과 곡식은 서로 섞여서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창고에 가두었다. 창고 문틈으로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밭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예의 바른 아이가 되라고 했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데 아비 없다는 소릴 들으면 안 된다니 참 난감했다. 엄마가 장사 나간 사이,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내 하나가 집으로 들어와 길을 물었다. 개도 짖지 않았다. 사내는 이것저것 물어댔고 난 예의 바르게 대답했으며, 목이 마르다 하여 더더욱 예의 바르게 부엌에 들어가 물을 떠 왔다. 그 사이 사내는 사라졌다. 내가 일러준, 장롱 속의 비밀장소에 숨겨둔 돈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엄마는 넋을 놓았다. 엄마의 표정은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보다 '돈 한 푼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았으련만, 너무 늦었다. 엄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고 소리치며 귀를 비틀어 잡고 문밖으로 나를 끌어냈다.
문은 열릴 기미가 없다. 뒷산으로 갔다. 엄마가 화가 나면 난 뒷산 검은 바위에 기대어 잠을 잔다. 한겨울에도 검은 바위는 따뜻하다. 엄마의 품 같다. 엄마의 품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분명하다. 엄마의 품과 같이 따뜻하다. 그리고 새털처럼 가볍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본다. 내가 사는 마을이 보이고, 내가 사는 집이 보이고, 그 곳에 울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 울지 말세요. 하늘을 날아서 엄마에게 이르러 엄마의 눈물을 훔친다. 한 움큼의 눈물은 다시 하늘로 솟아오르고 손가락 사이로 새나간 눈물은 비가 되어 내린다. 비가 마을을 휘둘러 흐르는 강물의 수위를 높이는 바람에 징검다리는 사라져 버렸다.
마을은 이제 갇혀버렸다. 날아다니는 한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난 이곳에 머문다. 여기엔 엄마가 있다. 어딘가 내려가 쉬고 싶다. 잠을 자야 할 것 같다. 이건 꿈속인데, 꿈속에서도 너무 피곤하다. 잠을 자야 한다. 아, 졸린다.

따뜻하다.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눈이 뜰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를 그렇게 쫓아내면 어떡해."
"비도 오는데 애가 얼어 죽지 않는 게 기적이야."
"엄동설한에 웬 비지?"
"그래도 비 때문에 도둑을 잡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도둑이 비 때문에 미처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했으니 잡았지, 안 그랬으면 모두 큰일 났지, 그럼."
엄마의 손은 내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다.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다. 나는 엄마 곁에 있다. 나는 간신히 눈을 조금 떴다 다시 감았다. 곯아떨어질 것 같다. 그전에 소리를 들었다. 귀에 익은 소리다. 새가 운다.
'엄마, 엄마, 새가 울어요. 문을 열어주세요. 새가 보고 싶어요.'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두 팔을 휘젓는다. 엄마는 사람들을 내쫓았다. 아이에게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틈이 생겼다.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나는 외부와의 통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간신히 눈을 떴다. 그 틈으로 나는 보았다.
따뜻한 검은 바위가 고목에 앉아서 날개를 펴고, 다시 언덕 위 그곳으로 날아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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