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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얼굴 |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2012. 10. 13.

 

 

  

 

푸른 얼굴, The Blue Face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관련 링크

MoMA          http://bit.ly/TuhUaW

위키백과       http://bit.ly/TufuZO

wikipedia      http://bit.ly/TufxoC

 

 

 

그녀는 내 어머니다.
지금 여느 때와 똑같은 이유로 그녀 앞에 앉아 있다. 그녀 또한 여느 때와 똑같은 잔소리를 끝없이 해대고 있다. 내가 고분고분 그녀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이유를 그녀는 알지 못한다. 난 오늘도 돈을 빌리기 위해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내가 달라는 대로 돈을 주면서도, 어김없이 지루한 잔소리를 해댄다.
'젊은 애가 왜 인생을 그렇게 사느냐?'로 시작해서, '노력해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도 믿지 않는 말하기 좋은 진리를 거쳐, '이제 결혼해서 안정을 찾는 것이 어떠냐?'는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적이 있는 그녀의 믿기지 않는 해결책까지 잔소리의 풀코스를 들어야 한다.
난 그녀의 잔소리를 이자를 치르듯이 듣고 있다. 한 번도 이자는 물론 원금조차 갚아본 적이 없으면서도, 꼬박꼬박 빌린다고 단서를 다는 것도 다 그녀의 잔소리 때문이다. 치를 만큼 치렀다고 생각한다.
난 아버지와 살았다. 아버지는 그리움이나 미련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에 그의 피로하고 고단한 삶을 마감할 때까지 혼자 살았다.
그녀는 보란 듯이 재혼해서 동생을 또 다른 가정에 완벽하게 흡수시켰다. 동생은 나를 낯설어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지만, 동생을 보면 함께 한 시간이 피보다 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으므로 그리 섭섭하지는 않다. 우린 서로에게 공평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자 나를 찾았다. 같이 살 순 없지만 내가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딱히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지만 괜한 고집으로 그녀와 싸우기도 싫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는 만큼, 내겐 그녀에 대한 반감이 없다. 더불어 여느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돈을 좋아한다.
그녀가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난 그녀를 잊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재등장한 그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변화에 대한 재빠른 적응에 나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 후, 난 그녀에게 돈을 빌렸고 그녀는 내게 잔소리를 해대면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곤 했다.

 

그녀는 내 여자 친구다.
그녀는 세상을 열심히 산다. 자유전문직을 꿈꾸는 그녀는 중소기업의 사무직으로 있는 현재를 더 나은 미래와 맞바꾸기 위해 자격증 사냥을 하고 있다. 그녀에게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다. 그녀의 일상은 미래의 자유를 위해 현재의 자유를 압류당하고 있지만, 스스로 대견해할 만큼 익숙해져 있는 일상이다.
내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이 없다. 난 환경을 개선하는 인간이 아니라 환경에 꿰맞추는 인간이다. 동아리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우리는 알았다. 우리가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임을.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녀는 세상사람 모두가 자기 같지 않음을 못 견뎌 한다. 그녀 의 관점에서 보면, 이유 없는 무기력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나는 반드시 버릇을 고쳐놓아야 할 부류의 인간이다. 그녀는 나를 변화시킴으로써 불쌍한 한 인간을 구제하고 나아가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녀는 모두를 바꿔놓진 못하더라도 하나쯤은 바꿔보고 싶다는 야망을 품은 여자다. 그리고 세상을 열심히 사는 그녀는 야망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나도 그녀가 필요하다. 난 내 존재감을 그녀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난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녀 곁에 있을 때는 적어도, 그녀와 다르다는 존재감을 가진다. 그녀는 기준점이다.
그녀가 날 못 견뎌 하면 할수록 나란 존재는 명확해진다.
진정 그녀처럼 될 수 없는 존재이다.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겨울 바다로 떠난다."
"돌아오면 좀 다르게 살아봐!"
"……."
"돌아와서 전화해! 강의시간 다 됐어. 끊어야겠다. 잘 갔다 와!"
그녀는 여전히 바쁘다.

 

난 그녀를 모른다.
오늘 아침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겨울 바다가 떠올랐다. 난 바다를 싫어한다. 새파랗게 질린 겨울 바다의 냉기가 싫다. 그러기에 겨울 바다는 내가 죽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그런데 돈이 없다. 나를 묻을 곳이지만, 그곳까지 찾아가는 나는 편하고 따뜻하고 싶다. 궁색한 변명 같지만, 궁색하게 죽고 싶진 않았다.
그녀와 통화한 후, 그녀에게 빌린 돈으로 강릉행 열차에 올라타자 그녀가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난 다른 이에게 별반 관심이 없지만, 그녀의 초점 없는 두 눈은 눈길을 끌었다. 내 관심이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네, 전 앞을 보지 못합니다."
"저어, 미안합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전 사람들의 호기심이 낯설지 않아요. 사람들이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죽이면 전 그걸 느낄 수 있답니다. 인간에게 오감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요! 보지 못할 뿐, 다른 감각은 살아 있으니까요. 그러나 뭐 어떻겠습니까? 그들도 제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뿐인 걸요."
"네, 어디로 가십니까?"
"겨울 바다를 보려고요."
"네에. 네?"
"아, 미안합니다. 전 가끔 제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그녀에게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을 것 같은 상처나 우울함이 없었다. 사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영화나 소설 속에서 그려진 그들의 잔상만으로도 편견을 갖는 데는 충분한 모양이다. 그녀에게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이와의 만남에 벽(壁)이 아니라 문(門)을 만들어준 모양이다.
"난 죽으러 겨울 바다에 갑니다."
내가 뱉어놓은 말에 나도 적잖이 놀랐다.
"그렇군요."
그녀가 너무나 평범하게 대꾸를 해서, 배가 고프다, 날이 덥다 정도의 말을 무슨 충격적인 고백이라도 하는 양했던 자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왜요?"
"이 자리에 앉으면서 쭉 그 이유를 찾는 중입니다. 근데 잘 모르겠습니다. 죽는데도 이유가 필요할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불행하다. 난 시도 때도 없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일찍부터 알고 있다. 불행한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고 있는데, 행복과 불행을 초월한 난 왜 죽으러 가는가?
"죽음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진 않군요. 죽음의 이유는 오히려 죽기 싫은 사람들이 찾아대곤 하던데.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어느 날 문득 죽음은 찾아옵니다. 왜 그리 조급해요?"
"난 열다섯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 후 좀 불편하긴 했지만 불행하진 않아요. 난 내가 본 15년의 영상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요. 처음 본 일곱 빛깔 쌍무지개, 온기 어린 일출이나 발그스레한 석양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내 가족의 얼굴을 기억하지요.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본 모양입니다. 아니면,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지.”
그녀의 말은 아름다웠지만 내 결심을 흔들어놓진 못했다. 그녀의 말은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지언정, 내가 죽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그녀와 역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살아야 했고 난 죽어야 했다. 우리는 갈 길이 달랐다.

 

그녀들이 내 곁에 있다.
서서히 바다로 빠져 들어간다. 이유가 있기에 바다가 두렵지 않다. 겨울 바다의 첫 감촉은 살을 에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곧 따스함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편안하다. 얼굴까지 완전히 바다에 잠기자 나도 모르게 허우적대고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차츰차츰 발버둥은 잦아들어 마지막으로 의식을 내려놓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따뜻한 겨울 바다는 나를 포근하게 덮어준다.
난 죽기 위해 한적한 겨울 바다를 찾았지만, 겨울 바다는 그리 한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차가운 낭만을 찾은 몇몇 연인들이 나를 발견했고 구조대가 바다에서 나를 건져냈다. 누군가 나를 건져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것을. 이 세상 어느 누가 날 다시 들어 올릴 수 있겠는가? 난 죽기에는 머리가 너무 나빴다.
눈을 떴을 때 눈앞에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물은 낯설었다. 그녀는 왜 울지? 그녀는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 이제 그녀에게 반감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할 모양이다. 내가 죽으려고 했던 것이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듯이, 그녀의 이혼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히려 인생에 대한 무감함이 더 힘들다는 것을.
또 하나의 그녀가 어머니에게 커피를 건넸다. 그녀는 시퍼렇게 날 선 얼굴로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내 실패를 통쾌해한다. 그것 보라는 듯이 묘한 미소까지 짓는다. 달리 보면,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이다. 내 이유 없는 무기력증은 죽음까지도 비켜갔다. 죽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열정이 있다. 내겐 열정이 없다. 그녀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잘 갔다 오라는 인사를 할 수 있었고, 지금 내 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여자 친구는 내가 의식을 찾은 것을 확인하고는 거의 동시에 참았던 말을 뱉어낸다.
"넌 왜 그리 삐뚤어져만 가니? 흑흑."
"너 이렇게 살고 싶니?"
난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옆 침대에 사람들이 몰려 서 있다.
"오늘이 죽기 좋은 날인가? 왜 이리 자살하는 사람이 많지!"
"눈먼 여자가 왜 거기까지 올라가서 몸을 던졌을까? 쯧쯧.”
"뭐, 그게 확실하긴 하지."
마치 내 치밀하지 못함을 책망하는 듯하다. 그들의 대화 중 한마디 때문에 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옆 침대에 누워 있는 이를 보았다. 확인해야 했다.
하얀 천이 얼굴을 덮기 직전에 보았다. 그녀의 핏기 없는 푸른 얼굴을. 초점 없는 그녀의 두 눈은 이제 감겨 있었다.
그날 이후 난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진정 죽을 사람은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이야기한다.
그날의 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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