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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여인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2012. 10. 14.

 

 

 

  

흐느끼는 여인, Weeping Woman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관련 링크

네이버캐스트       http://bit.ly/Qcep4O

Works of Art        http://bit.ly/QceGEQ

Wikipedia            http://bit.ly/QcegOB

       

 

 

“아가, 아가, 아가.”
엄마 미안해요. 엄마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 정말 미안해요. 엄마 탓이 아니에요.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것이 더는 변명이 되지 않아요. 엄마도 알잖아요. 난 서른아홉 해 동안 너무 어렸어요. 내내 9살 꼬마였다가, 이 순간 서른 살을 한꺼번에 먹어버린 기분이에요. 그 순간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라 정말 미안해요. 조금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텐데. 왜 언제나 깨달음은 후회를 동반할까요?
 “아가, 아가.”
저도 알아요. 엄마는 언제나 넘치는 사랑을 주셨어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아도 되었고, 세상 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도 되었죠. 엄마는 모든 것을 해주었고, 제 곁엔 엄마만 있으면 되었어요. 엄마는 저를 그냥 품고만 있었어요. 제가 해야 할 것들을 엄마가 모두 해주었지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삶이 끝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삶이 기다려요. 지금이 그래요. 난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엄마 없는 세상에 버려지는 것이 너무 무서워요. 원망하는 것은 아니에요. 엄마 탓만은 아니에요. 엄마가 놓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뛰쳐나왔어야 했어요. 그게 성장이죠. 엄마를 잠깐 슬프게 하더라도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어야 했어요. 엄마는 아들을 사랑하니까, 제가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죠. 때를 놓쳤어요.
 “아가, 아가, 아가.”
엄마 앞에서 더 흔들리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끝나겠죠. 비겁해서 미안해요.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엄마 아들은 너무 이기적이네요. 적어도 엄마에게는 그러면 안 되는데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어요.
직장에서는 잘렸고,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떠났어요. 엄마 곁을 떠났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어요. 그리고 술로 세월을 보내며 엄마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죠. 제 곁엔 엄마밖에 없었으니까요. 낙오자의 뻔한 결말이죠.
엄마는 아팠어요. 엄마는 내게 아픈 것을 숨겼어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죠. 엄마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알려줬어요. 움직이질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침대에만 누워 있어요. 그렇게 아팠는데 왜 숨겼을까요? 그렇게 아팠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요? 전 자신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고, 엄마는 아들을 믿지 못했어요. 엄마도 알았던 거예요.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라는 걸을. 말해봤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 아프지 말았어야죠. 엄마 없는 삶을 내게 남겨줄 거라면 뭔가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웠어야죠. 아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엄마의 삶이 기능을 정지하자, 저는 중심이 되지 못했어요. 엄마를 중심에 두지도 못했죠. 전 아무것도 못해요. 엄마를 돌봐야 해요. 아들로서 당연한 일이죠. 엄마,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때까지 우리가 그렇게 가난한 줄도 몰랐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도 몰랐어요. 전 정말 몰랐어요. 엄마가 제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잖아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아가, 아가, 아가.”
그렇게 부르지 마요. 엄마는 거동도 못하고 말도 잃었지만 계속 나를 불러대요. 미칠 지경이에요. 난 이제 아가가 아니에요. 이제 나도 아는데 왜 엄마만 몰라요. 엄마, 소리쳐서 미안해요.
계속 술을 마셨어요. 술에 취하면 현실이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깨기가 두려워요. 마주쳐야 할 현실이, 무언가 해야 할 현실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현실이 너무 무서워요. 엄마 정말 너무 무서워요. 이제 더는 흔들리지 않아요. 이게 끝이에요. 엄마와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 말밖에는 …….
 “아가, 아가, 아가.”

 

햇볕이 뜨거운 여름날. 구급차와 경찰차가 요란하게 들이닥쳤다. 아들은 목을 매 죽은 지 나흘은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침대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더는 흔들리지 않는 아들의 주검을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를 웅얼거렸다. 이웃들은 어떻게 늙고 아픈 어미 앞에서 목을 매달 수 있느냐고 아들을 욕했다. 거의 굶어 죽기 직전의 어미는 무료 요양원으로 갈 것이다.
어미는 구급차에 탈 때까지도 검은 천에 가려진 아들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바싹 마른 눈에 눈물이 말라붙어 있다. 죽을힘으로 살지 못하고, 살 힘으로 죽어버린 아들은 이제 어미의 웅얼거림을 들을 수 없다.
 “아…… 아가, 아, 아가, 내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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