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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 |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

2012. 10. 15.

 

 

 

 

호텔방, Hotel Room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

 

  

 

관련 링크

위키백과            http://bit.ly/RXOzVS 

Works of Art       http://1.usa.gov/RXOCB6

Wikipedia           http://bit.ly/RXOn8U

  

 

호텔방에 성경책이라,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성경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이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일요일마다 습관처럼 나가는 예배에서 성경 구절과 설교를 듣지만, 그게 전부다. 그때의 성경 구절을 다 모아놓는다고 해도 그건 일부지 전부가 아니다. 너무 익숙해서 모두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책이 성경이다. 정작 전체를 정독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원래 고전(古典)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 호텔방 침대에 걸터앉아 성경을 읽고 있다. 지금 내겐 믿음과 시간이 필요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1~2]
눈을 떴다. 전날 밤을 함께 했고 미래를 함께할 거라고 믿었던 남자가 곁에 없다. 이럴 때 여자의 직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철썩 같이 믿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는 믿음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랑했고, 사랑은 아직 당하지 않은 배신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배신을 당하고서야 예견했으면서도 믿어버린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없이 초라해진다.
부모님은 그를 싫어했다. 그는 어른들에게 호감을 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성실하지도 않았고, 헛된 꿈을 꾸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남자였다. 그렇다고 나쁜 남자는 아니다. 착하지만 서툴고 어린 남자였다. 생각해보면, 그를 그렇게 잘 알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몰랐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지금 당장 웃으면서 저 문을 열고 들어와, 왜 쓸데없는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느냐며 안아줄지도 모르고, 그 때문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질지도 모른다.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성경은 벌써 신약을 시작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마태복음 1:2~3]
믿음이란 이상한 것이어서, 믿어야 한다고 다짐할수록 믿음은 흔들린다. 그는 돌아올 것이다. 잠시 산책을 갔을 뿐이다.
함께 떠나기로 했다. 왜 그리 멀리 가고자 했을까? 사실 집을 나오기만 해도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을 거역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하는 데는 그걸로 충분했다. 어린애도 아니다. 불같이 화를 내겠지만, 나를 내치고 말지 쫓아오진 않을 거였다. 돈이 될 만한 것을 챙겼다. 멀리 낯선 곳에 가면 뭔가 대단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아무것도 없었고, 내겐 그가 전부였다.
차마 가방을 열어보지 못한다. 확인하고 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시간은 흘러가고 믿음은 흐릿해진다. 아직은 분명한 현실보다는 불확실한 희망이 필요하다. 분명한 현실과 대면할 자신이 없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면 더 기다릴 수 없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영원히 호텔방에 머무를 수도 없고, 성경도 몇 장 남지 않았다. 읽는 것이 아니라 넘기고 있어서 그런지, 위안조차 되지 못한다.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가야겠지. 다른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용서할까? 반겨줄까?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에게 상처받고, 그 때문에 상처 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세상에 너무 뻔한 통속을 하나 더 보탠 꼴이다.
마지막 성경 구절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 22:21]

침대맡 작은 탁자 서랍에 성경이 들어 있었다. 어제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이 드는 물건이었지만, 오늘은 성경책을 보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 같은 이들을 위한 호텔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뭔가 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다. 성경책을 덮는다.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분명하다.
그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기다림이 끝나자 그를 잊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 그가 아닌 나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먼저 배신했으니 당연하다. 정말 당연한 걸까? 모든 걸 버리고 그와 함께 떠나려고 했는데 그가 없는 이 현실이 이렇게 빨리 현실로 받아들여지다니.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랑은 없었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다. 은혜일지도 모르겠다.
해가 중천에 떴다. 어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집에 못 들어간 듯, 오늘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우선은 아무렇지 않게 호텔방을 나서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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