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창


 

박항률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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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언제 한번 갈게요."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는 언제나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난 그 언제를 만들지 못하는 척하며 한 번도 만들지 않았고, 할머니는 크게 기대하지 않은 척했지만 언제나 동구 밖에서 기다리곤 했다.
할머니는 내겐 엄마이자 아버지이자 그리고 할머니였다.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멀리멀리 갔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까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의 삶은, '언젠가'라는 막연한 시점에 희망을 걸고 살아온 삶이었다. 그 '언젠가'가 다다를 수 있는 희망의 시점이라면 할머니의 남겨진 삶이 짧아질수록 그 시점을 만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직 남은 나날이 더 많은 내 삶에서 그 '언젠가'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시점에 대한 위선일 뿐이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남발하고 있는 '언젠가'처럼.
하지만, 할머니는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그 언젠가를 앞당겼다.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졌고, 돌볼 사람이 나밖에 없으므로 내 곁으로 왔다. 할머니는 의식불명인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난 할머니를 사랑한다. 다만, 너무 바빴고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너무 귀찮았다. 할머니에게 다녀오면 그 다음 날이 더 바빠질 게 뻔했고, 그래서 더 피곤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이 귀찮다. 나보다 더 큰 사랑을 지닌 할머니는 항상 이해했다. 게으름과 귀찮음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내 거짓말을 모든 게 귀찮을 정도로 피곤한 걸로 이해해주었다.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이해하기를 포기한 것일까?
할머니는 내게 이해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고 있다.
난 할머니를 이해해야 한다.
무엇을?
할머니는 의식을 찾았고, 나흘 동안 깨어 있었다.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할머니가 의식을 되찾아 일반병실로 옮겼다. 3일 휴가를 내고 내내 할머니 곁에 있었다. 3일을 괜찮으셨으니 이후로도 한동안은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4일째 할머니 곁을 떠나 출근을 했고, 바로 그날, 할머니는 나를 영원히 떠났다.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다리지 않았다.

꿈을 꾸었다.
시골 할머니 집이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다가가 보자. 아니다. 이제 기다리고 있는 건 나다. 내가 창밖 대문을 바라보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파란 하늘이 까맣게 변하고 초승달 하나만이 외로이 어둠을 밝히는 밤이 되었지만 아무도 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문을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 아니 내가, 계속 …… 언젠가 올 누군가를 아니 할머니를, …… 기다리고 기다린다.
갑자기 대낮같이 밝아진다.
하얀 새 한 마리가 문이 아니라 담장 위로 날아든다. 할머니다. 난 알 수 있다. 할머니는 이제 괜찮단다.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니 기다릴 필요가 없단다. 네가 오지 않은 것도, 내가 이승을 떠난 것도 네 탓이 아니다. 세상일은 한 사람을 탓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얽혀 있는 법이다. 자책이나 오만은 이제 벗어던지고 삶을 자유롭게 살라 했다.

꿈을 깼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건 할머니의 배려일까? 나의 배려일까?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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