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날개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이슬이

거미줄 그늘에서 잠자는 로잘리의 눈을 뜨게 한다


A Dew Drop Falling from a Bird's Wing Wakes Rosalie,

who Has Been Asleep in the Shadow of a Spider's Web 

 

후안 미로, Joan Miro, 1893-1983

 

  

 

관련 링크

네이버지식백과   http://bit.ly/Rw2eUV

Works of Art       http://joanmiro.com

Wikipedia           http://bit.ly/Rw16AB

 

 

"난 지난 2년간 감옥에 있었어."
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냥 궁금할 것 같아서."
다른 이의 짐작대로 살아간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짐짓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척했다.
"앞으론 어떻게 살려고?"
"죽지 않는 한 살아가겠지."
그의 과거는 궁금했으나 꼬치꼬치 캐묻고 싶어 하는 유치한 호기심을 드러내기 싫었고, 그의 미래에 대한 염려는 전혀 안중에 없었지만, 의례적인 문구들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심오한 뭔가가 담긴 듯했으나, 속내는 단지 막막함만을 담고 있었다.
"요즘 모두 형편이 어려워 쉽지 않을 텐데."
"언제는 안 그랬나?"
그의 막막함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슬슬 연막을 쳐보지만, 늘 그러하였기 때문에 뭐 특별한 것도 아니라는 단 한마디로 연막 뒤에 숨은 나를 끌어내버렸다. 
"형석이는 어떻게 지내?"
"만나지 않은 지 꽤 됐어."
이왕 그와 함께 막막한 미래를 나누어야 한다면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여 그 짐을 나누고 싶었지만, 못 만난 것도 아니고 의도가 분명한 만나지 않음을 못 박음으로써 그는 오로지 나와만 함께 하고자 했다.
"부인은? 아이도 있지?"
"마누라는 도망갔고, 아이들은 늙은 어머니가 돌보고 있어."
빠져나가려고 구멍을 팠는데, 결국 제 무덤을 판 격이다. 이런 걸 왜 물었지? 이제 더는 빠져나갈 수 없다. 그의 형편은 뻔했고, 2년 만에 나타난 이유 또한 뻔했다.
"잠깐 화장실 좀 ……."
"그래."
변기에 앉아서 지갑을 꺼냈다. 어느 정도가 인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지출로 친구의 우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정선일까? 5만 원을 세어서 다른 돈과 섞이지 않도록 그 사이에 오천 원짜리 지폐를 끼워두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는 카페 벽면에 걸린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면에선 나보다 여유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뭘 봐?"
"엉? 응. 이 그림의 제목이 재밌네. 새의 날개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이슬이 거미줄 그늘에서 잠자는 로잘리의 눈을 뜨게 한다. 도대체 이 그림과 이 제목이 무슨 관계람."
"세상이 그래. 전혀 관계없는 것들도 이래저래 얽히게 되어 있고, 돈독한 관계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 어쩌면 화가는 그 제목을 그림과 관계 짓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무슨 말이야?"
"글쎄. 헛소리지, 뭐."
나도 모르겠다. 왜 갑자기 그림 얘기가 나온 거지?
그만 이 자리를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한다.
"내가 좀 바빠서 긴 얘기는 못 하겠다."
다음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지갑에서 경계 지어진 오천원권 앞쪽의 지폐를 무턱대고 꺼내서 준다는 듯이 호기 있게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어머니께 뭐라도 사 들고 가야지. 아이들도 보고 하려면 ……."
그는 돈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웃음과 비슷하지만, 전혀 유쾌하지 않은 묘한 표정을 살짝 입가에 머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널 찾아올 땐 단지 반갑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지. 지금 이 돈을 받고 보니 내가 원한 게 이거라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도 이거였구나 싶어."
그는 돈을 꼬깃꼬깃 접어서 주머니에 집어넣고,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형석이도 만나고 싶어지네. 그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일 테니까."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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