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영속(永續), The Persistence of Memory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관련 링크

네이버캐스트      http://bit.ly/RtgkTS

Works of Art       http://www.salvador-dali.org

Wikipedia           http://bit.ly/Rw1cIv

 

 

기억을 잃어버렸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섬광이 스쳐 지나가자 세상은 단숨에 환해졌다. 그리고 현재 내가 존재한다는 실감 이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텅 비어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무언가 담고 있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공허한 상태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받아들일 틈도 없이, 난 또다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울음이 북받쳐 올랐다. 사람들은 만족해한다. 혼돈과 아픔을 잊기 위해 난 잠에 빠져들었다. 실체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잠은 기억상실 이전의 삶과 닮아있는 듯하다. 잠은 현실을 잊기 위한 최선의 도피처였다.
여자와 남자가 면회를 왔다. 유리벽 너머에 부은 얼굴의 여자와 여자를 부축한 남자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서 있다. 여자는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고, 남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눈짓을 해댄다. 매일 일정한 시간이 되면 그 남녀가 또는 그 남녀와 일단의 무리가 면회를 왔다. 나를 둘러싼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모양이다. 그들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밝아졌다.
며칠 후, 난 그들에게 인계되었다. 그들은 나를 위한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 집은 편안했다. 아니, 침대가 편안했다. 난 집을 둘러볼 수가 없었다. 아직은 집 구석구석을 맘대로 돌아다니기에는 내게 제약이 많았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그들이 먹여주고 입혀줬다. 게다가 내게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이제 이름을 기억해야 했다. 그들이 불렀을 때 반응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건 계약이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모여서 세월을 쌓아가게 되자, 적당한 시기에 해야 할 적당한 반응을 요구했다. 걸어야 할 시기에 걸어야 했고, 말해야 할 시기에 말해야 했으며, 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들으면 하지 말아야 했다. 그 모든 적절한 시기가 지나가자, 어느새 그와 똑같은 요구를 누군가에게 강제하고 있었다. 그들과 똑같이 그에게 섬광을 제공하고는, 곧 그를 면회하고 인계받아 계약을 맺었다. 익숙한 반복이다.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졌다. 세상은 너무나 바쁘게 돌아갔다. 난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일보다는 새로운 것을 기억 속에 담고 있었으며,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매일매일 꿈속에서는 무언가 찾으러 다니곤 했다. 깨어 있을 땐 불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많으면 언제나 풍요로워 보이는 법이다. 상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여백이 필요하다. 꿈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여 여백을 만들어주고,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던 무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또다시 빈틈없이 가득 찬 세상이 펼쳐진다.
또다시 섬광이 일자, 이번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모든 감각은 정지했으며, 영혼은 육체에서 이탈해 자유를 얻었다. 남은 자들의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나를 바라본다. 내 삶은 끝났다. 삶에 대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자유로운 영혼은 또다시 삶으로의 회귀를 위해 자신에게 배당된 육체를 찾아간다. 이 세상의 삶은 어머니 뱃속에서 시작한다. 영혼은 존재 이전의 태아에게 스며든다. 영혼이 스며들면 육체 덩어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 영혼은 아직 이전 삶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태아는 끝없는 꿈속에서 생로병사를 모두 겪은 한 인생을 경험한다. 그것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태아에겐 결정권이 없고, 꿈은 영원하지 않다. 그는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은 꼭 필요한 기억만큼만 간직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적정한계를 알고 있다.
섬광이 인다.
또다시 기억을 잃었다.

 

 


Posted by 밑줄긋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