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덧칠하기/그림, 그리고

아침식사 - 폴 시냐크 (Paul Signac : 1863-1935)

2012. 9. 6.

 

 

 

아침식사, Breakfast


폴 시냐크 

Paul Signac, 863-1935 


 





관련 링크

네이캐스트 http://bit.ly/OoGHcz

위키백과    http://bit.ly/OoGC8H

wikipedia   http://bit.ly/OoHcDr

 

식사 후의 차 한 잔.
흔히 평안과 휴식이 떠올려지는 그 테이블에는 침묵과 반목, 그리고 어설픈 무관심이 감돈다.
저녁 식사 내내 시중드는 이의 신중한 발걸음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교양이 넘치는 그들은 그 흔한 포크와 나이프가 부딪치는 소리조차 일지 않는 일상적인 식사를 끝낸 직후이다. 내심 적막한 평안을 깨운 벨소리가 반가울 지경이다.
그녀는 칠흑 같은 커피의 물결에 선명하게 비친 일렁이는 자신을 본다. 고정된 모양새를 유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 커피 잔을 든 손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커피잔 속의 자신을 마시며 내내 식탁에 올려져 있는 종이꾸러미를 힐끔거린다. 그것이 유언장임을 그는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는 불이 댕기지 않은 시가를 손에 들고 있다. 최근 건강 때문에 담배를 끊었지만 담배 향이 그에겐 유혹이 아니라 위안이 되는 모양이다. 담뱃재를 터는 시늉을 하면서 그는 벨소리의 주인공이 그녀에게 전해달라고 한 편지를 흘깃거린다. 그놈의 편지다. 그녀는 이제 당당하게 편지를 건네받으며 아버지의 시선을 받는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기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숨겨두기 바쁘다.
그들은 오늘 아침 심하게 다투었다.
그녀는 여느 어린 딸들과 마찬가지로 연륜이 알려준 지혜를 가진 아버지들이 반대할만한 사랑을 시작했고, 그는 여느 아버지들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예정된 실패를 탓하는 역할을 자청했다.
그들의 의견 차이는 좀처럼 좁혀질 줄 몰랐고, 상대의 의견은 재고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버려졌다. 그는 딸의 첫 번째 반항에 화가 났으며, 그녀는 자신의 인생관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언성이 높아졌고, 감정이 격해졌다.
그녀는 아버지를 떠날 것을 공언했고, 그는 딸에게 한 푼도 남겨줄 수 없음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는 딸 없는 쓸쓸한 삶이 두려웠고, 그녀는 한 푼 없는 빈곤한 삶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혀 화해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내일, 또 내일도 저녁 식사를 함께 할 것이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심해서 결코 상대에게 확인하지 못하는 진실을 나는 알고 있다.
서재를 청소하면서 유언장을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유언장을 고치지 않았다. 변호사는 유언장을 가져와 그에게 전했을 뿐이다. 그 유언장은 내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편지를 들고 오면서 언뜻 편지를 읽었는데, 편지는 그녀가 쓴 것이었다. 그녀의 애인은 너무나 사랑하지만 함께 도망가자는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심경을 적은 편지를 돌려보냈다. 봉투도 없이 적당히 접어 보낸 편지는 애인의 낙담처럼 구겨져 있었다.
그들은 노년의 외로움이나 빈털터리 신세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단 한 가지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다. 아버지는 딸을 사랑했으며, 딸은 아버지를 사랑했다.
다른 사람의 유언장이나 편지를 훔쳐보는 것은 나쁜 짓이 아니냐고? 적어도 한 사람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노련하고 신중한 가정부는 항상 진실에 가까이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너무나 노련하고 신중한 가정부이므로 아무에게도 결코 이것을 얘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솔직히 난 이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