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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칠하기/속깊은인터넷친구

우람

2012. 11. 21.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 때가 있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순간이 있다.
내게 한 때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딸보다 손녀가 우선이 된다.
우람이. 바로 이 녀석이다.
체중미달로 태어난 이 녀석은 오직 우람하게만 자라기를 바라는 
온가족의 바람으로 인해 아람이나 아름이가 아닌 우람이가 되었다.

특히, 할머니는 손녀를 우람하게 키우기 위해 집안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냉동실에는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는 과일이, 선반 곳곳에는 과자들이 쌓여갔다.
나보다 더 내 집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하는 오직 한 녀석을 위해.

내가 특별히 식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난 즐겨 먹진 않지만 곁에 있으면 먹어치운다.
그날도 이제 막 깨끗이 먹어치운 참이었다.

현관에서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녀석이 왔다.
녀석은 먼저 구석구석 먹거리를 뒤진다.
물론, 아무것도 없다. 

녀석은 나를 째려보며 너무나 당당하게 한마디 한다.
“누가 다 먹었어?”
나는 발가락으로 주섬주섬 먹거리의 흔적을 어정쩡하게 숨긴다.
한편으론 숨겨야 할 듯 하고 한편으론 숨겨야 하나 싶어서 행동은 언제나 어정쩡하다.
“할머니, 할머니, 꼬모가 꼬모가…”
원참, 치사해서…

난 속으로 외친다.
‘이것도 다 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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