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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사랑의 사막 | 프랑수아 모리아크

2015. 11. 7.

 

사랑의 사막
국내도서
저자 : 프랑수아 모리아크(FRANCOIS MAURIAC) / 최율리역
출판 :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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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 작품
- 195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일평생 인간 본연의 내적 갈등과 고통의 문제를 연구했다.

쉰두 살의 아버지와 열일곱의 아들이 한 여인을 사랑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존경받는 쿠레주 박사는 ‘산 채로 땅에 묻힌 듯’ 숨 막히는 가정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리아를 남몰래 사랑하고, 사춘기 아들 레몽은 호기심으로 아름다운 연상의 여인 마리아에게 끌린다. 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려고, 혹은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립하기 위해 서로를 갈구하고 사랑하지만, 그 눈부신 사랑은 그들 마음속 황량한 사막 안에서 천천히 시들어갈 뿐이다. 고립된 인간 존재들 사이의 소통 불가능성을 깊이 있게 탐색한 모리아크의 대표작이다.

- 출판사 서평

 

자기 중심적인 자아도취적 사랑. 그리고 만나지 못하는 사랑의 비극. 

 

 

 

1장

 

분노에 찬 기쁨


그는 친구들을 증인 아니면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으로만 이용했다. 그들은 오로지 한 쌍의 귀일 따름이었다.


성숙한 나이, 그러니까 잔꾀쟁이가 아니라 영혼을 울릴 수 있는 뭔가를 가진 이들만이 주변을 지배하는 권좌에 오를 수 있는 나이.


전쟁이라는 선택 벌목으로부터 생존한 이들은 결혼이란 진창에 빠지거나 직업에 의해 변질됐다.


청춘의 살해자, 청춘이 그들을 거부하기도 전에 미리 젊음을 배신한 자들.


그는 늘 쉴 새 없이 흐르고, 한 번 지나가면 죽어버리는 시간의 심연을 주시하며, 뭔가 그 흐름 안에 표지가 될 만한 것을 찾으려 노력한다.

 

2장

 

소년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다.


한집에서 밀착해서 살다 보면 식구들은 각자가 상대방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그릇된 믿음에 빠지게 된다. 자신은 진심을 털어놓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비밀은 파헤치고 싶은 모순된 욕구를 가지게 된다.


타인의 비밀은 투명하게 드러나기 바라면서도, 자신은 타인에게 불가해한 존재로 남기를 소망하는 오만!

 

3장

 

그들에겐 성장통이 추진력인 것이다.


사랑받지 못할 바에야 선수를 쳐서 그 비참함을 아예 자신이 자초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사춘기 소년의 불쌍한 허세.


혼돈기를 통과하는 소년이 가지는 가엾은 교만, 절망에 쫓긴 굴욕.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사랑을 위한 빈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정치가라도, 정부를 위해서라면 세상 전체를 중단시킨다는 것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늘 해답을 발견하고는 했다. 취소된 약속 시간이 지나가면 그는 오히려 기뻐했다.
‘약속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아닌가. 내게는 아직도 기다릴 행복이 남아 있지.’


우린 너무도 쉽게, 이런저런 죄악이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믿지. 살인, 자살, 추문, 이런 흉악한 일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 소관이고,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말이야. 하지만 과연 그럴까.


레몽이 못에서 나온 이유는, 죽음이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 너무 더러워 역겨웠기 때문이다.


인생의 과도기에 있는 덜 여문 영혼에게, 별것 아닌 놀림이 얼마나 큰 타격을 줄 수 있는가.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추구한 모든 꿈과 비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던 책들. - 철학


규율과 훈련이 삶을 쉽게 만든다.


전차 - 하루 치 노동을 마친 사람들의 무게를 실은, 이 거대하고 노란 직사각형의 물체.


그녀가 박사를 성인으로 숭배할수록 그의 사랑은 절망적으로 변해갔다. 박사의 열정은 마리아의 존경이라는 벽에 부딪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존경하기는 하지만, 자기를 한없이 지루하게 하는 남자와의 만남에서, 여자는 얼마나 정신을 딴 데 쏟으며 부재할 수 있는지!


폴은 참 이상해요. 모든 면에서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위를 싫어하다니.
- 중략 -
그의 일그러진 정신은, 박사가 품은 가장 고귀한 생각들을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그가 우리의 신념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피를 흘려가며 사수하던 자신의 신념과 진리를 갑자기 의심하게 되는, 중위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4장

 

전차라는 익명의 공간 안이라서, 그녀와 자기 사이에 어떤 사회적 관계를 예측하지 않아도 되어서였을까?


그 이마를 빛나게 하는 것은 술집의 불빛이 아니라, 여성에게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지성의 빛이었다. 드문 만큼 우리를 더 깊이 감동시키는 저 정신의 빛! 이런 존재 때문에 우리는 ‘사상’이니, ‘이상’, ’지성’, ’이성’ 같은 단어가 원래 여성형의 명사임을 상기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그가 겪는 고통의 엄청난 깊이와, 원인의 하찮음 사이에 있는 이 불균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혼자 남겨지자마자 미친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은 그녀와 다른 성(性)을 가지고 있다. 성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를 전혀 다른 행성에 속한 자로 만든다.


어머니, 인생에서 진짜로 끔찍한 일이 무엇인지 아세요? 각각 다른 주인을 모시는 하녀들이 같은 주방에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지성적인 동시에 동물적인 얼굴.

찬란하게 아름다운 동물의 얼굴, 하지만 사람처럼 의도를 갖고 웃을 줄은 모르는 무표정한 얼굴.


우리 모두는 우리를 사랑해 준 사람에 의해 빚어지고 만들어진다. 그들의 사랑이 쉬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작품인 것이다.

 

5장

 

모종의 비밀스러운 공모.

한 가족이라는, 한 배를 탔다는 의식 때문에, 둘은 관계의 균형을 위협하는 것을 꺼렸다. 인생이라는 갤리선에 함께 승선한 노예로서, 자기들이 타고 있는 배에 화재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생존 본능이랄까.


구원은 헤아릴 수도 없이 깊은 피로의 형태로, 이름도 붙일 수 없는 무기력의 형태로 왔다.


두 영혼이 육체라는 매개 없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그 때.


박사가 용서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악덕이 있었다. 타락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자기 악덕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기술 말이다.


파스칼이 말했듯, ‘심장은 자기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항상 바쁘게 지내는 사람에게는, 이런 무위의 상태가 불편하다.


치료에 앞서, 당신 안에 있는 야수를 길들일 능력이 당신에게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또한 그 야수는 결코 당신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이처럼 우리에게 무관심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다.


모르핀 주사를 맞듯, 그는 일상의 근심거리들을 자신에게 투약했다.


아, 나는 사이비 반쪽짜리 학자밖에는 못 될거야.

 

6장

 

갈등은 괴로우면서도 달콤했다.


아뿔싸, 벌써 집이구나. 갑갑한 감옥 같은 곳. 은하수의 별들이 서로 아득히 떨어져 있다 한들, 외로운 우리 식구들보다 더 멀리 떨어진 채 살 수 있을까?


같은 종교에 입문한 사람들이나, 같은 위험스러운 비밀을 나눈 공모자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이끌린다. 상대방이야말로, 자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상임을 간파하는 것이다.


욕망의 대상을 우리 팔로 껴안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우리는 대체물을 찾는다. 즉 욕망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또 말함으로써 만족을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녀에 대해 지껄여야만 한다.


절망적인 무기력.


한 사람에게서 악한 면만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증거란다. 마리아 크로스 안에는 비참함도 악함도 있지만, 고귀한 성녀도 감추어져 있어.


자기 육체의 힘은 절대적으로 믿으면서도, 그러나 육체가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심한 이 설익은 수컷.

 

7장

 

마리아는 진실했어. 그렇지만 거기에는 너무 많은 만족감이 섞여 있었지. 그래, 그건 전적인 자기희생, 자기부정이라기보다, 미덕에 대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에 불과했는지도 몰라.


사실 마리아만큼 사랑에 대해서 무지한 여자도 없어요. 그녀만큼 사랑의 쾌락에 무감각한 사람도 없고요. 이건 정말 확실합니다. 아주 순진무구한 여자라고요,

 

8장

 

내 모든 행위는 내 쪽에서는 순수한 것이지만, 세상이 보기에는 추악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아마도 세상이 보고 있는 것이 맞겠지.


순수한 의도였지만, 세상이 돌을 던졌던 그 모든 일들. 어쨌든 결과가 부도덕했고, 그 결과에는 그녀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멸시받아 마땅한 걸까? 그렇다면 비밀리에 어둠 속에서 행해졌기에, 그녀 혼자만 알고 있는 악행은 어찌 되는가?


누가 우리의 이 행복을 금지할 수 있나?


산자를 전율하게 만드는 것은 죽은 자가 아니다. 죽은 자가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심연의 언저리에서 죽은 자를 불러내는 것이다.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 헛되게도, 우리는 그가 말없이 동의하고 있다고 여긴다. 죽은자의 침묵과 부재가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9장

 

‘좋아, 이제 단념하자. 모든 게 다 끝났어.’ 이 명백한 예상은, 그러나 얼마나 가혹한가!


이 고독한 사랑은 왜 이다지도 매혹적인가? 팽팽하던 긴장 속에서 상대가 사라지고 나자 그 사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자기의 정염의 맹렬함뿐이었다.


폭풍이 소란을 일으키며 휘몰아치는 것은 평범한 현상이다. 그러나 폭풍 중의 적막이 이 세상의 사물을 마비시키는 것을 보면, 괴이한 인상을 받는다.


평화로운, 지나치게 평화로워서 불안하기까지 한 고요였다. 정염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이제 자신 안의 공허를 새롭게 의식함을 의미한다.


잠겨 있지도 않은 문 안에 영원을 두고 스스로 갇혀버린 사람처럼,


선한 의도로 행한 일들이 모두 더럽게 변질되어 버리는 것이 인간의 엄혹한 운명이라면, 그렇다면 완전을 향한 노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토록 어렵게 정숙하게 행하고 나서, 막상 남아 있는 것은 내 안의 가장 더럽고 추악한 부분뿐인 것을……


너는 그 짐승이, 네가 사모하던 앳된 청년이 아니라고 믿겠지. 그렇지 않아. 그는 같은 사람이야. 다만 가면을 썼을 뿐.


우리들 사이에는, 어떤 사랑도 채울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할지도 몰라.


내가 꿈 꾼 건 어떤 침묵이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침묵. 욕망이 태어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 안에 있는 욕망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통하는 침묵.

 

10장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존재들. 비참할 정도로 유한한 이 사랑들.


우리는 이 단 하나의 사랑에 일치할지도 모른다는 바람에서, 우연한 만남들과 눈짓들과 입술들을 모아들이지요. 유일무이한 대상에 가닿겠다는 게 얼마나 미친 희망인지.


박사님, 정말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쾌락이에요. - 중략 - 하지만 슬프게도 모든 사람에게 쾌락을 즐길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나의 본성은 쾌락과 뭔가가 맞지 않아요. 쾌락만이 우리가 갈망하고 있는 것을 망각하도록 해주지요. 그리고 쾌락이 목표 그 자체가 돼버리고요. ‘모든 걸 잊고 바보가 돼보세요.’ 말은 쉽지요.


제겐 마치 번개와 천둥처럼, 쾌락과 혐오감이 뒤섞여 있어요.


우리가 가닿을 수 있고, 소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단 하나의 존재…. 육체로가 아니라…. 그 존재에 의해 우리 또한 소유될 수 있을 거예요.


육체의 행복, 단순한 자들에게 열려 있는 천국…. 사랑은 가난한 자들의 쾌락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였지?


자주 인생은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치명적 사건을 일으킨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존시킨다.


그들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그래서 죽음은 사랑을 썩지 않게 보존하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사랑을 분해시키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삶이다.

 

11장

 

한 여자가 우리 안에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을 끄집어내어 그걸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고 하자. 가혹한 운명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녀가 만들어낸, 앞으로 절대로 변할 가능성이 없는 그 단단한 상(像)에 영원히 묶이게 된다. 이 화학 법칙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 뒤로, 우리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똑 같은 이미지를 끄집어낸다. 흔히 그것이, 우리가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가 가진 가장 고귀한 미덕들은 지워버리고, 우리의 가장 약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에만 밝은 빛을 비춘다.


“진짜 인생은 스물다섯이나 서른 이후에야 시작된다고요.”
- 중략 -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춘기가 끝날 때쯤이면 이미, 우리가 인생에서 완수해야만 하는 과업들이 구체적 형태를 가진다. 그리고 청년기 문턱을 넘어서면, 인생의 게임과 드라마 전체가 완전히 윤곽을 드러내고, 한번 만들어진 구조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란 존재가 자기 아들에 대해서 얼마나 할 말이 없는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예요.


레몽은 눈을 들어 거울 속에 들여다보았다. 거기 시들어가는 청춘이, 막 시작된 노쇠의 첫 징후가 확연히 보였다. 사랑받기만 하는 시절은 영원히 끝났다. 이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사랑을 거부하거나 부인하는 사람은, 오히려 미래에 더 큰 쾌락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쾌락을 아끼거나 미루는 것이 오히려 극대화된 기쁨을 위한 현명한 전략은 아닐까.


죽었던 자들이 이 세상으로 되돌아온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지겠는가! 죽은 자들은 자주 우리의 모습,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숨기고 없애버리고 싶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은 자가 조류에 밀려 다시 떠오르면, 우리가 난처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다.


다시는 서로 보지 않을 것이 확실한데, 왜 굳이 편지 왕래하는 부자연스러운 수단으로 우정을 이어가야만 하는 거요? 더구나 당신에겐 편지 쓰는 게 고역일 텐데…. 우리는 늙어가면서 비겁해지는 것 같소, 마리아. 우린 각자 자기 고통의 몫을 짊어지고 있지. 거기다가 또 다른 슬픔을 보태기는 싫소.

 

12장

 

세계대전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영웅적 죽음을 선사했던 것이다.


예순아홉, 아니 일흔인가…. 저 나이에도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니,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사랑에 빠지면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면 난 화가 나요. 그래서 사랑이 지나가기를 잠자코 기다리지요. 오늘은 그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내일이 되면 모든 게 변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테니까. 내게 그토록 커다란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 언젠가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는 대상이 될 거니까. 사랑하는 것은 끔찍하게 힘든 일이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도 수치스런 일이지요.


아버지의 육체가 정염을 담는 질그릇이라면, 정염은 그 그릇 안에 쌓이고, 쌓이다가 고인 물처럼 썩고, 살아 있는 그의 육신을 부식시키기에 이른다.


많은 가족을 책임지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넌 모를 거다…. 식구들의 수만 가지 걱정거리를 짊어진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주사를 수십 번 맞는 것처럼 따끔따끔한 자잘한 아픔을 느끼겠지만, 알겠니? 그게 좋은 건 그 자잘한 일들 때문에 내적인 심각한 상처는 잊게 되니까 말이야.


중요한 것은 피난처를 만들어두는 거야. 태어날 때와 같이 죽을 때도 한 명의 여성이 우리를 품어주어야만 해.


금지된 쾌락이 있다고 믿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광신인가요!


차라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진짜 바람을 피우고 불성실하게 행하는 게, 나처럼 30년 동안이나 상상 속에서 가족을 배신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 - 중략 - 나는 부도덕한 짓들을 꿈꾸기만 했어…. 실제로 행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어쨌든 그녀가 다른 약속 시간을 정해 준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겠지. 연기된, 저 멀리서 새롭게 빛나는 희망이, 인생의 끝없는 공허를 지탱해 줄 것이다. 이제부터 레몽의 인생이란, 기다림으로 채워야 하는 텅 빈 공허일 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금욕은 어떨까? 그 역시 회의적이다. 금식은 정염의, 배고픔의 감각을 오히려 날카롭게 만들 뿐이다. 출구가 없구나. 쾌락을 아무리 만족시켜도 그 다음에 채워야 할 욕망의 양이 늘어날 뿐 영원한 만족은 없다. 반대로, 모든 쾌락을 포기하고 덕을 추구해도, 결과적으로 그 미덕은 오히려 자기 반대편에 있는 정염의 존재를 더 거세게 일깨우고 자극한다. 해소되지 않은 정염은 그렇게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으면서도 우리를 매혹시킨다.


둘은 마리아 크로스라는 매개체를 통한 일종의 근친인 것이다.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들만이 영원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법이니까.


아버지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몹시 행복해했지만, 아들이 내리기도 전에 기차가 출발하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걱정 때문에 이 간만의 행복을 망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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