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15. 11. 22. 20:22


이방인
국내도서
저자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 김예령역
출판 : 열린책들 2011.05.15
상세보기

 

 

 

 

북아프리카의 알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 여자 친구와 해수욕을 즐기고 코미디 영화를 본다. 며칠 뒤 일요일에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알게 된 친구의 별장에 초대되어 갔다가 해변에서 우연히 한 아랍인을 마주치고 별다른 이유 없이 그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왜 죽였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그는 단순히 <햇빛 때문>이었다고 대답한다. 한여름 해변의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모든 재판 절차와 일상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심지어 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가운데 다만 재판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 반면에 검사는 뫼르소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여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진술을 바탕으로 그를 비도덕적 인간으로 몰아간다. 결국 사형 선고를 받은 뫼르소는 자신이 처형되는 날 많은 군중이 몰려들어 증오의 함성을 질러 주기를 기대하며 소설은 끝난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


해야 할 이유도 없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는 삶. 별 상관이 없는 삶. 

 

 

 


제1부


1


양로원에 도착했을 때 처음 며칠간 엄마는 종종 울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동안 몸에 밴 습관 때문이었다.

 


 

이 고장에서 저녁이란 마치 애수 어린 휴식 시간과도 같았을 게다. 오늘, 끓어 넘칠 듯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인해 일렁이는 풍경은 비인간적이고도 위압적이었다.


 

나는 푸르고 하얗게 빛나는 하늘과 이 모든 색깔들의 단조로움, 그러니까 녹아 문드러지는 아스팔트의 번들거리는 검은색, 사람들이 걸친 옷의 생기 없는 검은색, 그리고 래커 칠을 한 마차의 윤나는 검은색으로 인해 약간은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2

 

나는 마리에게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같은 말을 이미 사장에게도 하지 않았나. 그말엔 아무 뜻도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사람들은 언제나 약간씩은 잘못을 저지른다.

 

3

 

셀레스트는 그 둘을 두고 항상 <불행한 일이야>라고 말했지만, 기실 아무도 속사정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는 또다시 자기와 친구가 되고 싶은가 물었다. 나는 그래도 별 상관없다고 했다.


 

내가 레몽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묻는다면…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누가 있겠느냐만서도 그가 그녀를 단죄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이해된다고 대답했다.

 

4


벽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왜 엄마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 그 : 개를 잃어버린 노인


5


이러나 저러나 내겐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장은 내게 삶에 변화를 주는 데 큰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모든 삶이 어쨌든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법이며, 따라서 여기서의 삶도 내게는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사장에게 불만을 안겨 주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나로선 내 인생을 바꿔야만 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또 다시 잠깐 침묵하다가 내가 기묘한 사람이며, 아마도 자기가 지금은 그 점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언젠가는 내게 혐오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마리는 파리는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지저분해. 사방에 비둘기들이 있고 마당들은 시꺼매. 사람들은 허여멀겋고>라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살라마노 영감에게 다른 개를 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영감은 자신이 익숙한 것은 그 개라는 점을 내게 일깨웠다. 맞는 말이었다.


개가 피부병에 걸린 후로 살라마노는 매일 아침저녁 개에게 연고를 발라 주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따르면, 개의 진짜 병은 바로 늙는다는 것이었다. 늙음에는 약이 없는 것이다.

 

6

 

거리에 나서니, 피로하기도 하고 방 블라인드를 줄곧 내려 두었던 탓도 있어 이미 한창인 햇빛이 마치 내 따귀를 갈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리는 뛸 듯이 기뻐하며 날씨가 너무 좋다고 연신 감탄했다.


모든 것이 여기, 바다와 모래, 태양, 그리고 피리와 물이 만들어 내는 이중의 침묵 사이에서 멈춰 섰다.


아까와 똑 같은 태양, 똑 같은 모래 위의 똑 같은 빛이 그곳까지 이어져 들어왔다. 낮이 더 이상 꿈쩍하지 않은 지 벌써 2시간이

나 되었다. 2시간 동안이나 낮은 끓어 넘치는 금속의 대양 속에 닻을 던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 네 발의 총성이 내게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았다.

 

 

제2부

 

1

 

아마 나도 엄마를 무척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기도 하지 않는가.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또 어느 정도는 나를 탓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에게 나도 모든 사람과 같다고, 모든 사람과 절대적으로 똑같다고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결국 이 모든 것은 그다지 쓸모없는 짓이고, 그래서 그만 게을러진 나는 그렇게 하기를 포기했다.


그는 종전과 같이 지친 표정으로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는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 진짜로 후회하고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지긋지긋함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2

 

“그렇고말고. 자유가 그런 거니 말일세. 자네가 박탈당한 게 바로 자유야.”

“맞는 말입니다. 안 그러면 대체 뭐가 처벌이겠어요?”


한 번 더 말하자면 요점은 시간을 어떻게 죽이느냐 하는 데 있었는데, 회상하는 법을 터득한 순간부터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는 하루하루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긴 동시에 짧을 수 있는지 몰랐다. 살아 내기에는 길다 할 수 있을 나날의 시간들은 늘어나고 또 늘어난 끝에 마침내 서로 범람하기에 이르렀고, 그럼으로써 제 이름을 잃고 말았다. 이제 내게는 어제나 오늘이란 단어만이 유일하게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무렵이야말로 내게는 언급하고 싶지 않은 시간, 감옥의 전 층으로부터 저녁의 소리가 침묵의 행렬을 이루며 타고 올라오는 이름 없는 시간이었다.


3


잉여적인 존재인 듯한 기묘한 느낌.


바로 이것이 이 소송의 모습입니다. 모든 게 다 옳은 동시에 아무것도 옳지 않은 거죠.

 

4

 

나는 그에게 우정 어린 태도로, 아니 거의 애정을 담아서, 그동안 내게는 그 어떤 것에 대해 진정으로 후회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해 주고 싶었다.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닥칠지, 항상 그 문제에 정신을 쏟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그 잔혹한 범죄 앞에서 인간의 상상력은 그만 뒷걸음질 치고 만다.


그건 태양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말했다.


내게 시급한 일은 이제 단 한 가지였다. 어서 모든 것이 끝나 버렸으면. 그래서 감옥에 되돌아가 잠들 수 있었으면.


5


최소한 한 번쯤은 운명의 수레바퀴가 멈춰 서기도 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불가항력적인 사전 계획 속에서 우연과 기회가 단 한 번 무엇인가를 바꿔 놓았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 한 번!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 정도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을 거라 믿는다.


참수형의 집행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결국 한 인간에게 진정 흥미로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그것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나는 미리 알지 못했을까!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바에 대해서는 언제나 과장된 생각을 지니기 마련이다. 반대로, 나는 모든 것이 그저 단순할 따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저녁들을 그 새벽을 기다리는 데 썼다. 나는 기습당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내게 어떤 일이 닥칠 때 그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이 더 낫다.


엄마는 종종 사람이 결코 완벽하게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삶이 그다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서른에 죽으나 일흔에 죽으나 별 중요한 차이가 없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중 어느 경우가 됐든 다른 남자들과 다른 여자들은 여전히 살아갈 것이며,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일인 것이다. 결국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었다.


어쨌든 저는 제게 어떤 것에 실제로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어도, 반대로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때는 그 사실을 완벽히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고, 그처럼 전적으로, 송두리째 죽고 말리라는 생각을 품은 채 살겠다는 말입니다?” <예>라고 나는 대답했다.


인간들의 정의는 아무것도 아니며 신의 정의만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나는, 나에게 형을 선고한 것은 신의 정의가 아니라 인간들의 정의라는 점을 지적했다.


나는 신에 대한 죄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제가 사람들로부터 배운 사실은 저 자신이 다만 인간에 대해 유죄라는 점뿐입니다. 제가 유죄인 이상 저는 그 값을 치를 것이고, 그리고 아무도 제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당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불행한 자들이 자신들의 어둠으로부터 신의 얼굴이 솟아오르는 걸 목격했다는 것도 마음 깊이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신성한 얼굴입니다.


사제는 말을 가로막으며 내가 떠올리는 또 다른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향해 소리 질렸다. “지금 이 삶을 회상하는 것이 가능할, 바로 그런 삶요!”


저는 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신으로 허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마치 두 손이 텅텅 빈 사람같이 보이겠지. 하지만 난 나 자신에 대해 확신하고 모든 것에 대해 확신해, 당신보다도 더. 나는 내 삶과 이제 곧 닥칠 죽음에 대해 확신해. 그래, 나한텐 그것밖에 없군.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진실을 꽉 움켜쥐고 있어. 그 진실이 나를 꽉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나는 이전에도 옳았고 여전히 옳고, 언제나 옳아. 난 이런 식으로 살았어.


내 미래의 깊은 곳으로부터, 이제껏 내가 살아온 이 터무니없는 생애 전체에 걸쳐, 아직 오지 않았던 세월을 거스르는 어둑한 바람이 내게로 불어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실감 나지 않는 저 무수한 세월과 함께 내게 약속된 모든 것들이 그 바람에 쓸려 가며 다 같은 것이 되어 버려.


모든 사람이 다 특권자야. 특권자들만 있어. 다른 사람들 역시 언젠가는 단죄되고 말겠지. 당신도 마찬가지로 단죄될 거야. 당신이 살인 때문에 기소되었다가 자기 엄마 장례식 날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한들, 그게 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가 어째서 인생의 끝에 다다라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어째서 다시 모든 걸 시작하는 듯한 장난을 받아들였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서도, 그러니까 이제 차츰차츰 생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주변에서마저도 역시 저녁은 애수 어린 휴식의 시간 같았지. 그처럼 죽음에 가까이 이르러서 엄마는 자신이 자유롭게 해방되어 있으며, 따라서 다시 모든 것을 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꼈음이 틀림없다.


좀 전의 거대한 분노가 내 속의 악덕을 씻어내고 희망을 비워 낸 것이기라도 하듯, 나는 기호들과 별들로 가득한 밤 앞에 서서 처음으로 세상의 애정 어린 무심함을 향해 나 자신을 열었다. 세상이 그처럼 나와 닮았다는 것을, 요컨대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나는 내가 행복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무리되길. 나자신이 혼자라는 걸 보다 덜 느낄 수 있길. 그렇게 되기 위해 나의 처형일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기를 희망하는 것만이 이제 내게 남은 일이었다. 


Posted by 밑줄긋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7.05 14:2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