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긋기/소설/희곡

좁은 문 | 앙드레 지드

2016. 1. 5.


좁은 문
국내도서
저자 : 앙드레 지드(Andre Paul Guillaume Gide) / 조정훈역
출판 : 더클래식 2015.07.01
상세보기

 

 

 

앙드레 지드의 작품 세계를 파악하는 데는 청교도적인 규범 속에서 금욕적이고 신앙의 원칙에 충실하게 자란 그의 종교적·가정적 배경과 사촌 간의 결혼이 가능했던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작가는 금욕을 통해 영혼의 결합과 신을 향해 나아가는 길, 즉 ‘좁은 문’ 앞에 두 주인공을 서게 만들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을 보여 주면서 이원론적 기독교 세계관을 비판하고 있다.

- 교보문고 책소개


"주께서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길은 좁은 길입니다. 너무 좁아서 둘이 나란히 걸을 수도 없습니다."

"주여! 잠시라도 제게 행복의 넓은 문을 열어 주시옵서소." 

상반되는 알리사의 기도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 밑줄긋기

 

 

 

 

어떤 유리엔 어른들이 방울이라 부르는 거품 자국이 나 있었는데, 이를 통해 밖을 내다보면 나무가 뒤틀려 보이고 지나가던 우편배달부가 갑자기 곱사등이처럼 변하기도 했다.


보티에 목사는 온화하고 신중하고 순진한 만큼 꾀바른 사람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고 악의적인 사람들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선량한 사람은 늘 궁지에 몰리기 마련이다.


기억나는 것은 알리사의 미소에 서려 있던 슬픈 표정과 크고 동그란 눈에서 한참 올라간 곳에 있던 반원 모양의 눈썹 선뿐이다. 그런 눈썹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기에


그 눈썹은 그녀의 시선과 전체적인 모습을, 근심과 동시에 확신에 찬 질문을 던지는 듯한 표정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 그것은 뭔가를 열정적으로 물어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질문이고 기다림이었다.


사랑과 연민에 취한 채, 그리고 막연한 열정과 자기 희생과 도덕감에 휩싸인 채, 나는 이 어린 생명을 두려움과 죄악과 인생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목표라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호소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크고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나니 그리로 가는 자가 많음이라. 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은 좁으니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라.

- 마태복음 7:13-14


깊이 빠져든 몽상 속에서 그 좁은 문은 일종의 압축기처럼 그려졌다. 나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썼는데, 그 고통은 천국의 지복을 미리 맛보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어느덧 그 문은 알리사의 방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자신을 숙이고 안에 남아 있던 모든 이기심을 비워 버렸다.


나는 모든 고행과 슬픔 저너머에 내 영혼이 그토록 갈망했던, 순결하고 신비하며 고결한 다른 기쁨이 존재하리라 상상하며 그것을 예감했다. 내게는 그 기쁨이 날카로우면서도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이나 알리사와 내 마음을 모두 녹여 버리는 강렬한 불꽃으로 생각되었다.


어릴 때부터 충동을 억누르게 했던 청교도적인 규율에 아버지, 어머니가 보여 준 모범적인 사례까지 합해져 마침내 내가 미덕이라 부르고 싶어 하는 것에 스스로를 굴복시켜 버렸다.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은 나에게는 다른 이들이 충동을 따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래서 나 자신을 구속하는 엄격한 규율은 반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우월감으로 작용했다. 내가 미래를 위해 추구한 것은 행복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이 나이부터 벌써 나는 행복과 미덕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아이다운 생각으로 나는 그저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을 뿐, 그녀를 직접적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 파괴적인 절도의 미덕.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정말 훌륭한 사람도 있는 법이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훌륭한 사람 말이야.


너는 혼자서 걸어갈 만큼 강하지는 못한 거니? 우리 모두는 각자 혼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거야.

하지만 내게 그 길을 가르쳐 준 건 너야.

왜 너는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인도자를 찾으려 하는 거지? 우리가 서로를 잊고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가장 가까이 서로에게 다가간다고 생각하지 않니?


당시 우리가 이른바 사색이라 불렀던 것들은 사실 현학적인 영적 교류를 빙자하여 서로의 감정을 은폐하고 사랑을 포장하려는 구실에 불과 했다.


하지만, 이모, 나는 알리사를 사랑하기로 작정한 게 아니에요. 한 번도 내가 사랑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작은 소리도 크게 울리는 공간에 있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속 깊고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들을 수 있는 그런 단조로운 흐름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변형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본질의 형상을 알아보신단다. 어느 한순간만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너희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내 누나의 모습들은 수많은 인생의 사건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것이고 나는 그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너희처럼 혹독하게 비난할 수가 없단다.


! 사랑의 감미로운 함정이여. 너는 어떤 비밀의 통로로 우리를 웃음에서 눈물로, 천진난만한 즐거움에서 도덕적인 삶으로 이끌었는가!


죽음이라면 우리를 갈라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반대로 말이야. 나는 죽음으로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살아 있는 동안 분리돼 있던 걸 가깝게 해주는 거지.


맹세 같은 건 사랑을 모독하는 거야. 내가 약혼을 하고 싶어 한다면, 그건 내가 알리사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일 거야.


나는 쥘리에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기에 그녀의 말들은 상처입은 가엾은 새들처럼 땅으로 떨어져버렸다.


나는 세상일에 별 흥미가 없었다. 내게 바깥세상이란, 알리사가 두려움을 갖는다면 나 또한 바로 싫어지게 될 그런 곳에 불과했다.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랑한다고 말할 때가 아니니……

- 쉴리 프뤼돔의 시 <사랑의 가장 멋진 순간>의 첫 구절.


나에게는 평가나 토론, 비판 등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인 데 비해 그녀에게는 생각을 감추기 위한 도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모가 사람의 감정들을 그렇게 단순화시켜 말하는 걸 듣고 있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쓰는 단어 하나하나는 모두 반듯하고 부드러웠지만 내겐 견딜 수 없이 거칠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런 말을 아주 꾸밈없고 진심어린 어조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바보처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제대로 이해도 못 하고 되풀이해 외우기만 했던 성경말씀이 갑자기 명확히 이해되더라고요.

사람을 믿는 자는 불행하다.라는 구절 말이에요.


세상의 무슨 승리의 매력이

오늘 나를 주께로 이끄는가?

사람들 위에 자신의 버팀목을 

세우는 자는 불행하도다!


알리사의 침묵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내게 못 했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쓴 편지를 통해 듣기보단 차라리 모르고 지나가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가까이 오라. 살기를 원하는가?

취하라. 먹으라. 그리고 삶을 누리라.


바르게 태어난 영혼들은 감탄과 감사를 구별하지 않는다.


마음이 이끄는 것에 저항하려는 나의 천성적인 강경함.


때때로 단어나 구체적인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고 - 오늘 밤도 꿈을 꾸듯이 쓰고 있지만 - 한없이 넘쳐나는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끝없는 압박감만 남기도 해.


! 끔찍한 침묵의 겨울이 영원히 끝나기를! 이렇게 너를 되찾은 후에 삶과 생각과, 우리의 영혼과, 그 모든 것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한없이 풍요로운 것을!


자연의 어렴풋한 찬가에서 내가 듣고 이해한 것은 기뻐하라는 권유였어. 새가 노래할 때마다, 꽃향기를 맡을 때마다 그 권유를 느껴서 경배만이 기도의 유일한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위대한 시인이라는 호칭은 아무 의미가 없어. 중요한 것은 진실한 시인이 되는 거지.


우리는 긴 이별의 시간이 우리의 굳셈을 증명하는 시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알리사도 편지에서 나를 한 번도 불평하지 않는 너,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너.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알리사는 그런 사실엔 관심조차 없고 오직 현재의 시간부터 시작되는 기다림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실하고 영원한 영광을 진심으로 바라는 자는 세간의 일시적인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이를 경멸하지 않는 자는 진실로 하늘의 영광을 사모하는 자가 아니다.


제롬! 오직 네가 곁에 있어야만 나는 진짜의 나일 수 있고 그 이상일 수 있어.


지금 그 애가 행복이라 여기는 것은 전에 꿈꾸던 것과도 다를 뿐 아니라 이전의 것에 크게 연연해하는 것 같지도 않아! !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어찌 이리도 영혼에 가까운 것인지! 겉에서 보아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되는 것들은 얼마나 부질없는지.


분명히 예전에 나의 기쁨 속에는 어느 정도의 오만함이 있었나 봐. 하지만 지금은 낯선 이곳 사람들의 쾌활함에서 어떤 굴욕감 같은 걸 느끼고 있어.


생성은 정말이지 신비롭고 놀라워! 우리가 평소에 자주 놀라지 않는 것은 주의력이 없기 때문이지.


우리 재회의 날이 다가올수록 기다리는 게 점점 초조해져. 거의 두려울 정도야. 네가 오는 것을 너무나 바랐지만 지금은 자꾸 두려운 생각이 들어.


서로 할 말이 많았음에 틀림없는데, 잘못된 자리에 있는 듯 어색한 느낌이며, 무력감이며 침묵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나를 슬프게 한 건 네가 손을 놓아 버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내 손이 먼저 놓아 버렸을 거라는 느낌이야. 더 이상 네 손을 잡고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거든.


그동안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는 전부 거대한 신기루에 불과했고, 안타깝게도 우리는 각자 자신을 향해 편지를 보내고 있었음을 알았으니까.


다시 너에게 절망스럽게 고백하자면, 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너를 더 사랑했던 같아.


우리가 마음 놓고 다다를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님 곁밖에 없어.


너와 나만의 사연으로만 남아야 할 것들을 쥘리에트나 아벨에게 얘기함으로써 넌 내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어. 그런 일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너의 사랑이 머리만으로 하는 사랑이며 다정과 신뢰에 대한 호의 또는 지적인 집착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어.


별로 도움 되지 않는 그의 충고는 자기의 고통스러운 짐은 자기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왜 너는 단지 상상에 그칠 만한 일들을 끔찍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려 하는지!


행복마저도 앞질러 버려서 가치를 잃어버리게 하는 가장 감미로운 순간.


나는 그 어떤 장황한 말보다 이러한 익숙해짐에 더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럼, 인간의 영혼이 행복 이상의 무얼 더 바랄 수 있단 말이니?

성스러움……”


그건 바로 네가 말하는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는 그런 충만감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충만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거야.


내 영혼이 갖는 가장 강렬한 느낌을 표현했을 뿐인데 네가 너무 정교한 논증(! 너무나 어설픈 추론이지!)을 들이댈까 봐 말이야.


진정한 행복! 신이 그것을 찾도록 우리를 지켜 줄 거야! 우린 다들 행복을 위해 태어났으니까.


나는 미덕이라는 덫에 맞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영웅주의가 내 눈을 멀게 하고 나를 끌어당겼다. 왜냐하면 난 그것과 사랑을 분리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성함은 선택이 아닌 의무야.


그때에도 나는 알리사 당신을 비난하지 않았소! 더 이상 당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에 절망해서 울었을 뿐. 당신의 그 침묵의 전략과 잔인한 방법 속에서 그 사랑의 깊이를 가능할 수 있게 된 지금, 당신이 나를 절망시킨 만큼 당신을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닌지?


나는 그녀의 친절과 상냥함에서 감정 표현보다는 결심을, 감히 말하자면, 애정이 아니라 예의를 보는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이따금 파스칼의 비장한 어조가 믿음이 아닌 의심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나는 장사꾼 같은 의심에서 벗어나도록 차라리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이 불확실했으면 좋겠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이 덕행에 힘쓰는 것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서가 아니라 원래의 타고난 고결함 때문이니까.


그 영혼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도, 불안도, 아름다움도 내세우지 않고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처럼 고개를 숙일 뿐이야. 그들은 자신을 훌륭하다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지울 때만 스스로의 가치가 빛난다는 것을 알아.


넌 지금 유령과 사랑에 빠져 있는 걸.

아니야. 절대 유령이 아니라고, 알리사.

상상이 지어 낸 형상일 뿐이데도?


지금보다 더 너를 사랑한 적은 없으니까.

지금도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넌 이전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잖아!

난 내 사랑을 과거로 돌려놓을 수는 없어.

사랑도 다른 것과 함께 흘러가 버리는 거야.

하지만 내 사랑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할 거야.

그것도 천천히 퇴색되겠지. 네가 여전히 사랑한다는 알리사도 이미 추억에서만 존재할 뿐이야. 네가 그녀를 사랑했던 추억만을 기억할 날이 올 거야.


그녀와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내가 그때까지 미덕이라 불렀던 모든 것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 그리고 본래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슬픔을 가슴에 품은 채로.


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녀를 끌어올려 내가 아끼는 온갖 것으로 치장하여 우상으로 만들었다.


상대가 없어진 뒤 사랑을 고집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그저 고집일 뿐 충실함은 아닌 것을.


그녀가 내게 실망을 준 것처럼 나도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제롬, 이젠 늦었어. 우리가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서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을 엿본 날부터 이미 늦어 버린 거야. 제롬, 네 덕분에 내 꿈은 한없이 높아졌어. 하지만 모든 인간적인 만족은 그것을 타락하게 만들지. 우리가 함께하는 삶이 어땠을까 종종 깊이 생각해보곤 했어.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더 이상 완전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난 이 사랑을 견뎌 내지 못했을 거야.


그들이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것이라.

아직 그 말씀을 믿어?

믿어야 해. !

제롬, 더 좋은 것을 생각해!


 

알리사의 일기

 

188O524, 나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에 나의 일기를 시작하려 한다. 큰 즐거움을 얻기보다는 약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 위해서다.


그 애의 행복을 나의 희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았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 애가 행복해지는 데 나의 희생이 결코 필요치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내 끔찍한 이기심에 상처를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더 이상의 희생을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굴욕감마저 든다. 결국 내게는 그런 희생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일까?


이미 극복했다고 믿었던 남의 환심을 사려는 마음이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건 아닌지. 안 된다. 이 일기가 내 영혼을 치장하기 위한 자기 만족의 거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일기를 쓰는 것은 무력감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슬픔 때문이다. 슬픔을 죄악의 상태.


슬픔이란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다. 한 번도 나의 행복에 대해서 분석해 보려고 한 적은 없다.


쥘리에트는 행복하다. - 중략 - 아마 그 행복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쉽게 얻어진 데다 너무 짜 맞춰진 듯완벽하기 때문에 그녀의 영혼이 속박당하고 숨 막혀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래서 나는 자문해 본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이라기보다 행복을 향해 가는 나아가는 과정은 아닌지. , 주여! 너무 빨리 이르려고 하는 행복으로부터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에게 이를 때까지 나의 행복을 미루고 멀어지게 하소서!


가끔은 내가 그에 대해 느끼는 것이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리는 사랑의 그림이 내가 그리는 사랑과 다른 것이다. 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도 망각한 채 그를 사랑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가 나의 사랑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를 사랑하고 싶다.


내가 행하는 모든 미덕이 모두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의 곁에 서면 나의 미덕이 파괴되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발전이 없다면 무의미하다. 천상의 기쁨은 하나님과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통받는만큼 보상받는다는 생각은 선하게 태어난 영혼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이야. 덕행은 선한 영혼을 위한 장식물이 아니고 그 영혼의 아름다운 형상 그 자체야.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이미 나는 제롬 때문에 예뻐지기를 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완벽의 추구도 다 그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완벽은 그가 없음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 , 주여! 이는 당신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제 마음을 당황케 합니다.


미덕과 사랑이 일치하는 영혼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따금 나는 사랑하는 것, 가능한 많이 사랑하는 것, 변치 않고 더욱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미덕이 있을까 의심해 본다.


안타깝게도, 미덕은 그저 사랑에 대한 장해물로만 보인다. 그렇다면, 내 마음 속에서 가장 자연스레 일어나는 그것을 감히 미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매력적인 궤변이여! 그럴듯한 부추김이여! 행복의 기만적인 신기루여!


때때로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금지되었지만 그것이 허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당연히 여겨질 정도로 값진 기쁨과 감미로운 약속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강한 매력들은 미덕의 힘으로 그것을 포기할 줄 앎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구절을 가지고 자신을 방어하려 하는 걸까? 사랑의 매력보다도 더 강하고 달콤한 매력이 은밀히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서일까? ! 사랑의 힘이 우리 두 영혼을 사랑 이상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면!


하나님, 그런 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힘을 주시옵소서. 그가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도록, 그럴 설득할 수 있도록. 그래서 제 것보다 더욱 훌륭한 그의 미덕을 주님께 바칠 수 있도록.


장엄하다 할 수 있는 그 어떤 모든 것도 행복에 안주할 때 얼마나 보잘것없어지는지요.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애쓰지만 그 순간이 닥치면 이성은 나를 피해가거나 어리석게 보이곤 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


주께서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길은 좁은 길입니다. 너무 좁아서 둘이 나란히 걸을 수도 없습니다.


내 책장을 치워 버려야만 했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그를 피해 다니려 했지만 언제나 책 속에는 그가 있다.


그의 문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아무렇게나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와 싸우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그에게 몰두하고 있다는 걸 말한다.


내가 도달한 덕행이란 얼마나 초라하고 서글픈 것이지! 얼마나 더 자신을 닦달해야 하는가? 그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자.

하나님께 매일 힘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비겁함이라니! 지금 나의 모든 기도는 불평일 뿐이다.


제롬은 나를 예전만큼 사랑하지 않는 걸까? , ! 그것이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한다.


이끄는 사람을 자발적으로 따를 때 속박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항하거나 멀리서 떨어져 걸어가기 시작하면 심한 고통이 따릅니다.


하나님, 당신을 사모하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하다는 걸 당신은 알고 계실 겁니다.


! 기다림은 얼마나 나를 지치게 하는지!

주여! 잠시라도 제게 행복의 넓은 문을 열어 주시옵서소.


왜 그 앞에서는 항상 나의 미덕을 과장하는 걸까? 내 마음 전체가 부인하는 미덕이 얼마나 가치 있기에?


제롬! 곁에 있으면 마음이 찢어지고 멀어지면 죽을 것만 같은 애달픈 나의 벗, 제롬!


거의 명랑한 기분이 들어서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그것은 내 삶에서 희망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나님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모든 자리를 차지할 때만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닌 것은 그 어떤 것도 내 기다림을 채워 줄 수 없다.

, 경솔한 내 마음이 탐했던 너무나 인간적인 기쁨이여…… 주여, 당신이 저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저에게 이러한 외침을 하기 위함입니까?


내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옵니다. 더 이상 제 마음을 가지고 흥정하지 않겠사옵니다.


자신이 느끼는 마음의 동요를 모두 드러내는 것은 위대한 영혼이라 할 수 없다.

- 클로틸드 드보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죽음의 순간까지 저는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주여! 여기서 제 믿음이 흔들립니다. 온 힘을 다해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저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새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친히 오셔서 제 마음의 갈증을 풀어 주옵소서. 당장 이 행복을 갈망합니다. 아니면 이미 그 행복을 가졌다고 믿어야 합니까? 날이 밝아 옴을 알리기보다 동이 트기 전 간절하게 외쳐 대는 새들처럼 저도 어둠이 가시길 기다리지 않고 노래를 불러야 합니까?


 

! 주여, 당신을 모독하지 않고 제가 끝까지 나아가길!


무엇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거야?

이런저런 일들이 모두 잊히면…….

오빠가 빨리 잊고 싶어 하는 게 뭔데?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것.


오빠는 희망 없는 사랑을 그토록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 둘 수 있다고 믿어?

그래, 쥘리에트.

그럼 그 희망 없는 사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서 매일매일 숨 쉬며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는 거야?

- 중략 -

이젠 깨어나야 해.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