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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소설/희곡

도라 브루더 | 파트릭 모디아노

2017. 3. 27.

 

도라 브루더
국내도서
저자 : 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 김운비역
출판 : 문학동네 20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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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강점기의 우울한 과거로부터 한 소녀를 불러내어 현재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서의 과거를 복원해낸 작품이다.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단문들, 전쟁의 폭력을 무력하게 하는 청춘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잔한 묘사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여운을 선사한다.  

 

 

 

어제와 오늘 사이

 


나는 징후들을 찾으려 한다. 시간 속에서 가장 오랜 징후들을.


뭔가 지워졌던 것들이 빛 가운데로 다시 떠오르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흔적들은 어떤 기록들 안에 존속한다. 사람들은 어디에 그런 기록이 숨어 있으며 어떤 관리자가 그걸 지키고 있는지, 그들이 선뜻 그걸 당신에게 내보여주려 할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관리자 자신들이 그런 기록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었을 수도 있다.
하더라도 약간의 끈기만 있다면.


옛 여학교의 교장은 날더러 직접 찾아와서 학교 기록들을 훑어보라고 연락을 주었다. 어느 날엔가 나는 가볼 거다. 물론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녀 이름이 거기 나오기를 언제까지나 희망하고 싶기도 하다.


순간 나는 그가 망각의 파수꾼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비밀을 감호하면서 누군가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흔적이라도 일단 추적해오는 자들에게는 금지하도록 책임을 맡은 파수꾼 사내, 그러나 사람은 좋아 보였다.


무슨 악몽에서처럼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기차역은 나타나지 않아, 기차를 놓쳐버릴 것만 같은 아찔한 순간의 공포.


그들은 자신이 떠난 뒷자리에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들이다. 거의 이름도 없는 존재들. 내가 우연찮게도 그들 삶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 파리의 어떤 거리들이나 변두리의 풍경으로부터 그들은 드러나는 법이 없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흔히 주소 한 줄에 그치고 말아, 이런 지리적 명료함은 그들 삶에서 영영 드러나지 않을 부분과 대조를 이룰 뿐이다. 어떤 백지 상태, 미지의 침묵하는 덩어리, 그들의 삶은 그렇다.


공간들이란, 아주 희미하게나마 거기 머물렀던 이들의 각인을 간직한다.


시간 속에서 파괴된 것들, 그토록 여지없이 쓸려나간 것들 앞에서 밀려드는 공허.


은밀한 만남들, 잃어버린 가련한 행복을 내게 떠올려주는 그 모호한 시대에서 그녀는 떠돌고 있었다. 아직 시골스러운 정취가 남아 있던 그곳의 길들은 이런 이름을 달고 있었다. 우물길, 지하철 길, 플라타너스길, 개들이 짖는 막다른 길.


이렇게 당신은 분류된다. 도대체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기이한 부류, 당신 존재에 걸맞지도 않은 그런 부류로 말이다. 누가 당신을 소환한다. 당신을 억류한다. 왜? 당신은 진정 알고 싶을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뭘 의미했던가? 에른스트 브루더, 그는 애당초 이런 물음을 제기해본 적도 없었다. 행정기관이 이런저런 부류 속으로 그를 던져넣는 데에 길들여졌고 묵묵히 그걸 받아들였을 뿐이다.


틀에 박힌 낮과 밤의 리듬.


밤이 일찍 오는 건 차라리 좋은 일이다. 밤은 비 내리는 하루의 회색빛 단조로움을 쓸어내준다. 이게 정말 낮인가, 서글픈 일식과도 같은 어떤 중간 상태를 통과하는 게 아닌가, 하고 묻게 되는 이 미심쩍은 낮들은 오후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고 한다.


야릇하고 낯선 느낌, 꿈속에서 어딘지 모를 곳을 돌아다닐 때 누구나 그 비슷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깨어나면 차츰 깨닫게 된다. 그 낯선 곳이란 날마다 우리에게 친숙한 장소들로부터 요모조모 베낀 작품이라는 것을.


간혹은 소설가들에게 어떤 타고난 투시력이 존재한다는 것도 믿는다. ‘타고난 능력’이라는 말은 사실 딱 들어맞는 표현

은 아니다. 모종의 우월성을 암시하므로, 내가 말하려는 건 전혀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생업의 일부를 이루는 무엇이다.


느닷없이 그런 충동이 일어나는 때는 춥고 회색빛 도는 평범한 겨울날이다. 그런 날 고독은 왠지 더 극성스럽고, 뭔가 형틀 같은 것이 자꾸만 더 세게 우리를 죄어온다.


영원과 공백의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일요일.
문득 시간의 흐름이 멈춰지고 그 정지된 틈새로 그냥 빠져들기만 하면 당신을 죄어오는 형틀로부터 멀리 도망칠 수 있을 것만 같은 헛된 망상이 일어나는 일요일.


아버지도 1940년 10월의유대인구조사에서 자기 이름을 빠뜨렸고 도라 브루더처럼 ‘서류번호’를 소지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에게는 더 이상 합법적인 삶이란 게 없었다. 누구나 직업, 가족, 국적, 생년월일, 거주지 따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세상에서 그는 모든 닻줄을 끊어버렸다. 이제 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버지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일종의 무법자 딱지가 붙은 처였으니, 그는 주어진 상황이 몰아가는 대로 무법자의 비탈을 따라 내려갈 것이었다. 파리의 어느 구속에서 이런저런 편법과 궁여지책으로 삶을 꾸려가다 암거래의 늪으로 빠져드는 비탈.


황홀경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 미래도 없다. 당신은 눈부시게 비약하다가 갑자기 뚝 날개 부러지는 소릴 듣는다.
도주는 그런 것 같다. 살려달라는 일종의 구조요청이자 때로는 자살의 한 형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짧은 순간 영원의 느낌을 맛본다. 나는 단칼에 세상과의 끈들을 잘라냈을 뿐 아니라 시간의 끈도 잘라냈다.


마치 그해 겨울이 인간 세상을 갈래갈래 찢어놓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모호해질 지경까지 그 행적들을 흩뜨려 지워버린 것처럼. 어디 호소해볼 데도 없다. 그들을 추적하고 색출하는 임무에 봉사하는 자들은 파일을 만든다. 그들을 더욱 잘 사라지게 하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실종시키도록.


날마다 그 앞을 지나다니는 우리는 1940년대 이후 그 건물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 이건 같은 돌멩이가 아니고 같은 복도들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어느 가족에게나 얼마가량은 존재하는 사진들. 사진에 찍힌 그 몇 초간 그들의 운명은 보호받았고 그 몇 초는 영원이 되었다.


 

어쩌다 하늘의 실수로 그가 참여하게 된 살육의 세계, 종말적인 그 세계에서 부득불 입어야만 했으나 자신의 옷은 아니었던 녹청색 군복을  입고서 그는 죽었다.


이 시인도 앞의 두 사람과 같은 시대에 치명적인 벼락을 맞았다. 마치 누구라도 몇몇은 피뢰침 구실을 해주어야 다른 사람들이 무사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는 희생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혹소처럼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모든 고통을 다 치르고 떠났다. 그들이 치르고 떠난 고통의 덕으로 우리에겐 자잘한 슬픔만이 남겨졌다.


매순간 불안의 한계를 살아야 했고 그러면서도 달리 호소할 데라고는 없었던 숱한 유대인들.


간혹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강렬하게 자기주장의 욕구를 느낀다. 싫은 순간이 닥치면 훨씬 사납게 아수라 같은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사회의 암적 존재이자 공민 질서의 도략자들이라고. 하지만 그들 자신은 생존하기 위해 무법자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다. 그들로서는 정당방위였다.


가테뇨도 만나볼 것. - 중략 - 칫솔, 손 닦는 솔도 필요하고. 아, 모든 게 뒤범벅이구려. 필요한 것과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한꺼번에 쓰려다보니.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건, 이송자들 전원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다는 거요. 노란별보다도 더 모욕적인 신분 증명이지!


슬픈 일은 펜과 헤어져야 하고 종이 한 쪽 가질 권리도 없다는 거요.


모든 걸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고 그 자리에 일종의 스위스 촌락을 건설했다. 의심할 바 없는 중립지대의 표상이었다.


그들 이름은 이송자 명단에서 늘 동일한 주소와 함께 나온다. 같은 길 이름, 같은 번지수, 그것들은 이제 아무 데도 가르키지 않는다.


그 아이는 파리 속어의 진정한 바탕이 무엇인가를 내게 가르쳐줬다. 그건 서글픈 애조였다.


초라하고도 값진 비밀, 점령기의 살인자들, 법령들, 파리 경찰청 구치소, 병영의 규율, 수용소, 역사, 시간, 그 어떤 것도, 당신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그 모든 것도, 그녀로부터 그 비밀만은 앗아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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