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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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와다 요오코 저/남상욱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이후 작가로서의 새로운 사명에 눈뜨게 된 다와다 요코의 소설집!재난 이후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사회적 금기와 압력을 넘어서는 인간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녀의 작품 세계는 2011년 3월 11일, 즉 동일본대지진이라는 거대한 단층이 일어난 이후로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자신의 문학적 작업의 방향을 사회적 참여자로서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압도적인 재난 앞에서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과 금기를 넘어서, 어떤 식으로든 타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하고, 그들의 말들을 모으고, 나와 타인이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해내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에게 주어진 역할임을 다와다 요코는 이야기한다.

 

헌등사

 

그렇게 쓸데없이 달리는 것을 옛날 사람은 조깅이라고 불렀는데, 외래어가 사라져가는 가운데 언제부터인지 도피로 불리게 되었다.

 

말의 수명은 점점 짧아진다. 사라져가는 것은 외래어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진부하다는 스탬프가 찍혀 차례로 사라져가는 말 중에는 후계자가 없는 말도 있다.

 

젊은 시절에는 좋아하는 작곡가는?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좋아하는 와인은?’ 들의 질문을 받으면 득의양양해져 금방 대답했다. 자신의 취향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증명하는 물건을 죄다 사들이기 위해 돈과 시간을 썼다. 지금은 이제 취미를 벽돌로서 사용할 뿐 개성이라는 이름의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구두를 신는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자신을 연출하기 위해 구두를 고르는 일은 없어졌다.

 

빵은 먼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떠올려주니 좋군요. 먹는 것은 밥이 좋지만, 빵에는 꿈이 있소.

 

아직 걱정이 잦아들지 않는 요시로를 무메이는 더욱 격려한다. 증손자의 발상력이 노인을 위로하는 방향으로만 발달해가는 것을 요시로는 부끄럽게 느낀다. 자기만을 생각해 연거푸 사고도 치면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을 것을.

 

머리 안에 뇌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하반신에도 또 하나, 장이라고 불리는 뇌가 있어서 양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장의 의견이 우선된다고 한다.

 

요시로는 그다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장부에 기록된 무메이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숫자 뒤에 감추어진 의미를 추궁함으로써 실은 모든 9(九,く,ku)가 고(苦,く,ku)이며 4(死,し, shi)임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끄덕일 뿐이었다.

 

무메이, 기다리렴. 네가 스스로의 이로는 잘게 자를 수 없는 식물섬유의 정글을, 증조할배가 대신 잘게 잘라 목숨 길을 열어줄 테니까. 나는 무메이의 이다.

 

어째서 나만이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가하는 억울함을 동반하지 않는 순수한 아픔.

 

어째서 증조할아버지는 마시지 않아요?”

라고 무메이가 질문하자

하나밖에 살 수 없었거든. 아이는 이제부터도 계속 살아야 하니까 무엇이든 아이 우선이야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가 죽어도 어른은 살아가지만, 어른이 죽으면 아이는 살 수 없어요.”

라고 마치 노래하듯이 무메이가 말하자 요시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죽지 않는 신체를 물려받은 자신들 노인은, 증손자들의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는 무서운 과제를 떠안고 있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하고 고함친 적도 있었다. 부모의 권위를 내세울 마음은 없었지만 말을 하게 된 딸의 입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민주적으로 싸운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지고 만다. 권위주의는 부모라는 상처받기 쉽고 아둔한 생물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100년 이상이나 올바르다고 믿고 있었던 것도 의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에도의 에고이즘인 ‘에도이즘’.

 

부부니까 직접 물어보면 좋을 텐데,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묻기 어려운 것이 늘어난다는 역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둘은 말다툼도 하지 않고 이혼도 하지 않고 조용히 별거 생활로 이행했다. 시간을 되감을 수는 없어 그대로 감겨 가게 되었다.

 

수업 시간이 5분이라면 공부할 맘이 들 텐데.

 

도모가 시설을 뛰쳐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는 소식이었다. 어쩌면 무메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시설을 빠져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날 밤, 등대처럼 회전하면서 사방을 비추었지만 바다는 어두울 뿐이었다.

 

둘이서 힘내자, 동료.

- 요시로가 엄마는 죽고 아빠는 잠적해버린 아기 무메이에게 한 말.

 

부모가 없는 아이를 고아로 부르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지만, 새롭게 생긴 독립 아동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요시로는 독립이라는 말이 신경 쓰인다. ‘()’이라는 글자를 보고 있자면 무리에서 떨어져 독립한 개가 살아남기 위해 한 사람의 인간에 몸을 딱 기대고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

 

평소라면 먹지 않는 새우가 냄비로부터 올라올 때마다 송이버섯이 올 때마다 딸려 올라오는 불길한 오염의 기억을 털어내고, 요시로와 마리카는 즐거운 추억을 그물로 걷어 올려, 설령 그것이 연두부처럼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떨어지고 말더라도 강인한 인내심으로 집어서 앞접시에 올려, 너무 뜨거워진 파편들을 입이 터질 듯이 맛본다. 시간은 그런 세 사람에게 가담하지 않고 냉혹하게 뛰어갔고, 냄비 바닥에 잊힌 한 조각의 배추가 흐물흐물해졌을 때, 벽 시계가 땡땡 울렸다.

, 이제 돌아가야 해.”

 

화재 현장에서 도망칠 때는 이런 식일지도 모른다. 어딘가가 타고 있어서 어딘가가 아프다. 헤어짐은 옛날부터 서툴렀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서툴러졌다. 반창고를 떼어내어 아직 낫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는 아픔을 느껴야 할 정도라면, 반창고가 꺼멓게 때가 타고 흐물흐물해져 피부와 함께 썩기 시작하더라도 언제까지라도 매지 않고 놔두는 편이 차라니 낫다고, 어린 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만다.

도움을 청하며 우는 아이는 금방 달래주는 편이 낫지, 내버려두어 강한 아이로 키우려고 하면 오히려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완고한 인간이 되어 요절한다는 이론이 당시에는 우세했기 때문에 마리카는 딸이 울면 금방 안아서 달래주었다.

 

의원들의 주된 일은 법률을 비트는 것이었다. 법률은 끊임없이 변해갔으므로 비틀어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런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비틀었는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법 그 자체가 보이지 않으니 법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직감만을 흉기처럼 날카롭게 갈고 닦는 식으로 자기규제하며 살고 있다.

 

쇄국정책이 결정 되었다는 결과만이 알려져 안연실색해, 한동안 감탄사 이외의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은 요시로와 마리카만은 아니었다. ‘에도시대는 좋은 시대였다, 쇄국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신문을 도배했다. 그런 걸 쓴 평론가들은 실은 자신도 쇄국에 반대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멋대로 쇄국이 결정되어 굴욕의 흙탕물을 얼굴에 처바른 것을 견딜 수 없었는데, 그렇다고 그런 기분을 정직하게 고백해서는 서민과 똑같이 바보 취급을 받게 된 셈이므로 상품성이 떨어졌음으로, ‘실은 나는 처음부터 쇄국에는 찬성으로 조만간 정부에게 제안할 작정이었다라는, 포도를 좋아하는 여유도 질색할, 허영과 억지를 내뱉는 것이었다.

 

작업복? , 이음새 말이군. 옛날 사람들은 이음새를 오버올이라 불렀단다.”

멋진데요, 오버올이라니.”

하지만 오버올이라는 말은 외래어니까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아.”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표현에 무메이는 언제나 납득이 되지 않음을 느낀다. 말을 알고 있는 것, 알아도 일부러 쓰지 않는 것, 쓰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 쓰지 말라고 말하면서 가르쳐주는 것.

 

언제부터인지 날씨 이야기가 하기 어려워졌다. 추위와 더위는 섞여 있었고, 건조한 습기가 되어 피부를 희롱했다. 마치 인간의 언어를 조소하는 듯. “갑자기 따뜻해졌네요라고 말하면 오한이 났고, “오늘 아침은 싸늘하네요라고 말한 순간에 이마에 땀이 맺혔다.

 

, 갑자기 덥다고 느끼거나 춥다고 느끼곤 하지. 일종의 갱년기 장애랄까.”

“경,년,기,장,애가 뭐예요?”

신체의 변조야. 음악에도 장조에서 단조로 변하는 경우가 있잖아.”

 

요니타니는 언제부터인지 어른을 향한 말투와 아이를 향한 말투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모르는 단어는 알고 있는 단어 속에 나타나므로 사전을 펴지 않더라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알고 있는 단어 속에 10퍼센트 정도 모르는 단어가 섞여 있는 것을 계속해서 읽는 것으로 어휘는 늘어난다. 자신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말의 농업뿐이다. 아이들이 말을 재배하고, 말을 줍고, 말을 추수하고, 말을 먹고 살이 쪄가는 걸 기원하고 있다.

 

바래다주지 않아도 좋아. 돌아갈 때는 혼자가 좋아.”

라고 유행가라도 부르듯 라임을 붙여 말한 것은, 눈물 섞인 목소리를 들키지 않도록 갑자기 생각해낸 궁리.

- 중략 - 어금니를 꽉 물고 턱을 쑥 내밀고, 달리고, 달리고, 달린다. 화재 현장에서 도망칠 때는 이런 식일지도 모른다. 어딘가가 타고 있어서 어딘가가 아프다. 헤어짐은 옛날부터 서툴렀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서툴러졌다. 반창고를 떼어내어 아직 낫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는 아픔을 느껴야 할 정도라면, 반창고가 꺼멓게 때가 타고 흐물흐물해져 피부와 함께 썩기 시작하더라도 언제까지라도 떼지 않고 놔두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만다.

 

하늘을 보면서 호흡한다. 불안은 없다. 무메이 세대에는 비관하지 않는 능력이 겸비되어 있다. 변함없이 불쌍한 것은 노인들이었다. - 중략 - 왜 쉬지 않고 일하는가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눈물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은 무메이도 스이렌이 없어져서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머지 않아 손바닥을 계속 태웠던 실망을 손바닥을 펴는 것으로 내던질 수 있었다. 자신들을 둘러싼 사정(事情)이라는 이름의 거미줄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받아들여버렸는지도 몰랐다.

 

신호가 적색에서 녹색으로 바뀔 때마다 보행자가 일제히 걷기 시작했던 한가로운 시대가 있었다. 어떻게 보아도 청색이 아니라 녹색인 신호 불빛을 모두 파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파랗고 파란 신선한 채소, 파랗고 파랗게 우거진 수풀. 그렇지, 청청한 일요일도 있었다. 녹색이 아니다. 파랑이다. 푸름이다. 푸른 바다, 푸른 초원, 푸른 하늘. 그린이 아니다. , 클린한 정치? 클린은 아니겠지. 클린이란 소독액처럼 자신의 형편에 맞추어 죽이고 싶은 자를 세균에 비유해 실제로 죽여 버리는 화학약품에 지나지 않잖아. 덤불 속에 살며시 숨어서 법률만 비틀고 있는 민영화된 관청은 좆이다. 둘둘 말아서 버려버리고 싶다. 들판에서 피크닉하고 싶다고 증손자가 언제나 말하고 있단 말이다. 그런 작은 꿈조차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누구 탓인가, 어떤 것 탓인가, 오염되어 있단 말이다. 들풀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재산과 지위에는 잡초 한 개분의 가치도 없다. 들어, 들어, 들으라고, 귀이개로 귀지 같은 변명을 파내고, 귀를 기울여 잘 들으란 말이야.

 

 

끝도 없이 달리는

 

()은 논(田)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하지만, 인간과는 멸망당할 위험이 없을 만큼의 거리를 취하고 있다. “()에 월()이라 쓰면 위()인가하고 말하면 남편이 갑자기 웃었다.

 

남편이 남겨둔 것은 아즈마다라는 성과 생활에 곤란하지 않을 만큼의 보험금과, 융자를 다 같은 집과 태산만 한 크기의 고독이었다.

 

발이 붙은 감옥 같은

 

주위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다. 빗이 없는 세계의 거주민들은 이런 겉모습이 되는 걸까 하고 이치코는 황당해져버렸지만, 어쩌면 자신의 머리카락도 지금 그런 식인지도 몰랐다. 이제 거울을 중시하는 건 그만두자고 생각하자 오히려 몸이 가벼워졌다.

 

헛구역질이 나거나 눈물이 떨어지는 적도 많이 있었지만 시간의 체로 걸러보면 즐거웠던 추억은 수없이 기억으로 남았고, 슬펐던 추억은 하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대신, 그 단 하나의 슬픈 사건은 수십, 수백의 즐거웠던 추억을 뭉개버릴 만큼 무거웠다.

 

이치코는 터져버린 마음을 딱딱하게 얼리고,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자, 잊자고 결심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기다리지 않는자신의 강한 의지가 자신에게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기다리지 않는 자신이 응어리처럼 목에 걸렸고, 기다림을 그만둔다는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똑 같은 고통으로 이치코를 계속해서 지배했다.

 

가만히 서 있으니 추워서 이치코는 달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거칠어지는 데 맞추어, 기다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분명 언젠가 지상에서 재회할 수 있다. 이치코는 계속해서 달렸다. 자전인지 공전ㅇㄴ지 알 수 없다. 머리 위의 달을 의식하면서, 휴우휴우 하얀 숨을 토하며, 교정을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돌고도 아직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수 없었다.

 

 

불사의 섬

 

일본이라는 말을 들으면 2011년에는 동정을 받았지만 2017년 이후에는 차별받게 되었다.

 

모험가이자 작가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직업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젊다고 하는 형용사가 젊음이었던 시대는 끝나고, 젊다고 하면 설 수 없다, 걸을 수 없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먹을 수 없다, 말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고 말았다. ‘영원의 청춘이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것이라고는 앞 세기까지는 누구도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피안

 

상정 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로 안전합니다.

 

상정외의 일이 일어날 확률은 상당히 높다.

 

세데는 심녹색의 해면을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바다에는 책임이 없다는 걸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은 주체를 사람은 자연이라 부른다.

 

동물들의 바벨

 

어떤 배역도 배우는 여자라도 남자라도 괜찮다.

 

1

 

          호모사피엔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분명 인간은 지구에게는 암세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인간이 그립다.

고양이     두 발의 독재가 끝나서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과거를 미화할 작정이니?

              동물적인 윤리는 어디로 갔어?

           윤리도 인간, 즉 독재자가 만들어낸 것. 포유류의 감정은 윤리로 관리할 수 없지.

 

고양이     인간의 펫이 되거나, 시궁쥐처럼 하수구에서 살거나, 판다처럼 사랑받으면서 절멸하든가.

              포유류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었어.

 

고양이     만약 아프면 진통제를 가져다줄게.

다람쥐     아픔을 없애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그건 역시 인간 특유의 발상이라고 생각해.

고양이     인간은 아픔도 통조림에 넣어서 어딘가에 감추고 있었는지도 몰라.

 

여우        양심적인 사냥꾼이라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인간이 벗는 세계 따위 의미 없어! 인간이 없으면 개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지. (오랫동안 뜸을 들임)

              하지만 개라는 게 내게 그만큼 중요할까?

 

2

 

여우         트레이닝 따위 근육의 백화점, 땀 냄새를 파는 향수 가게, 칼로리의 소각로에 지나지 않지.

 

토끼         하지만 요새는 적의 공격을 받을 만한 곳에 만들어지지 않나요?

다람쥐      위험한 장소에 세우니까 안전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위험한 장소는 특별히 안전하다고 합니다.

               전문가가 말하는 것이니까 틀림없어요.

 

여우         이번 주, 정부는 문을 닫습니다. 문화대신은 언어 장애에 걸렸고, 경제대신은 고리업자들에 쫓겨 도주 중이고,

               환경대신을 코감기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건강한 건 건설대신뿐입니다.

 

            다람쥐를 인간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다람쥐      어떻게? 두 발로 설 수 있으니까? 아니면 호두를 먹고, 호두 형태가 된 뇌를 사용해,

               나무들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니까?

            인간이 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인간 따위 되고 싶어 하겠어요?

               인간 중에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취미란 인간이 걸려 있는 병 중 하나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걸 필요로 하지 않아요.

 

3

 

여우         인간이 남기고 간 것 중에서 안전한 것은 묘비뿐.

 

고양이      동물만 비추고 인간이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추측해서 지껄이는 이상한 프로그램 있었잖아.

               기억해? 매우 좋아했던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 덕분에 인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었지.

 

토끼         번역자!

전원         찬성!

            가장 연설이 뛰어난 자를 번역자로 정하자.

전원         (각각의 말투로) 그것은 좋지 않다고!

            가장 연상이고, 경험이 풍부한 자를 번역자로 정하자.

전원         (각각) 좀 더 다른 선택이 낫겠어.

고양이      가장 유명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자를 번역자로 정하자.

전원         (제각각) 반대!

여우         가장 머리가 좋고, 혼자서 원자폭탄이라도 만들 수 있는 우수한 과학자를 번역자로 정하자.

전원         (2, 침묵한 후, 모두 일제히) 반대!

다람쥐      , 그럼 제비뽑기로 정하자.

전원         찬성!

 

            잠 족은 어떤 의미야?

다람쥐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노예가 걸리는 병.

            노예는 뭐야?

다람쥐      위험한 직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린 자.

               인간들은 21세기 이후에는 모두 노예였어.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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