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정원

휴식의 정원

바진 저 / 차현경

루쉰, 라오서와 함께 손꼽히는 중국 3대 문호 바진의 소설 [휴식의 정원]. 사랑과 평등의 작가인 저자의 대표작이다. 대저택의 과거와 현재 주인의 공통된 비극적 운명을 통해 봉건 계급사회에서의 인격적 타락과 인간성 왜곡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 첫문장
16년 동안 외지를 떠돌던 나는 최근에야 항전 기간 중에 ‘대후방’으로 변해버린 고향으로 돌아왔다. 비록 내가 나고 자란 곳이지만 모든 것이 영 낯설었다. 거리에는 아는 얼굴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 끝문장
“내년에 꼭 오겠소.” 나는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인력거가 다시 앞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다셴츠 문 앞을 지날 즈음 라오원이 인력거를 잡아탔다. 다셴츠 얘기가 나왔으니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말이 있다. 내가 한동안 가끔 드나들던 이곳은 4, 5일 전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무슨 기념관이 들어설 거라고 했다. 다셴츠는 지금도 철거작업이 한창이었다. 지나면서 보니 깨진 기와 조각과 벽돌만이 아무렇게 쌓여 있었다.

 

늘 내 가슴 한쪽을 짓누르고 있는 ‘알 수 없는 중압감’(그것은 외로움이나 번뇌, 회한, 갈망이나 연민일 수도 있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막연한 무언가가 늘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이런 감정들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그것이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였다.

중국 사람과 서양 사람의 연애관은 전혀 달라. 서양 사람들은 자유연애를 하고 나서 결혼을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결혼한 뒤에 연애를 시작하거든. 난 우리 식이 더 멋스럽다고 생각해.

내 책을 읽어보았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내겐 가장 큰 고역이었다.

소설가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불행을 가슴속에 담아두었다가, 펜 하나에 의지해 그들의 슬픔을 풀어낼 수 있겠어요.

소설가는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지만, 소설가는 내면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잖아요. 소설가의 삶도 고통스러울 거예요. 내면 깊은 곳에는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많을 테니까요……

“마음씨 착한 의사와 일자리를 잃은 여배우, 두 사람 모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왜 그들을 기어코 교수대로 보내야 했을까요? 사람이 사람에게 좀더 따뜻하게 대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서로를 증오하는 걸까요?”
[…]
“구태의연한 도덕관념이 빚은 결과지요. 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꾸며낸 허구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아직 따뜻한 정이 남아 있어요.”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 짧지만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낸 말이라 힘주어 말했다. 그녀가 내 말을 믿고 마음속의 애수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앞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살다보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애어른 같았던 아이가 어린애같이 떼를 쓰는 모습.

엄마 아빠는 제가 나이에 비해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하셨어요. 확실히 그때는 모든 것이 분명했어요. 돈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은 통하지 않으며, 모두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아무래도 내가 얼마 못 살 것 같구나. 내가 죽고 나면 정원과 이곳의 모든 것이 언제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을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이 마음에 안 놓여. 덕행은 물려주지 못한 채 재산만 자손들에게 물려주면 결국에는 지켜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오랜 세월을 헛살았구나.

하지만 용서도 어느 정도껏이어야 하지요. 특히 완고한 사람에게 용서는 때로 용인이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고생 모르고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많은 이가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걸요. 리 선생님, 이런 고통이 가치가 있다고 보세요? 고통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알 수 없죠!” 나는 무심결에 대답했다. 그러나 우수에 찬 그녀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깨달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진실이고,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대답했다. “물론 가치가 있지요. 대가 없는 고통이란 없는 법이니까요.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있을 거예요. 길어야 1, 2년, 그 안에는 반드시 승리할 거예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승리는 승리일 뿐, 그것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지는 못해요. 저같이 일개 여자의 몸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속절없이 기다릴 뿐이에요. 모든 일이 기다림의 연속이에요. 매사가 늘 마음뿐이죠.”

“그런 책들이 무슨 쓸모가 있어요? 모두 허구에 불과한걸요.”
“허구로만 치부할 수는 없어요. 소설가는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라고 어떤 소설가가 한 말이 생각나요. 적어도 저는 그 처방을 받았어요. 소설가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고, 서로를 이해하게 해주죠.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에요.”

“한낱 백지 위에 검은색 글씨나 끼적이며 자신의 젊음을 허비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이들의 시간까지 낭비시키고,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증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할 뿐인걸요. 펜 하나에 의지해서는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저만 해도 부인 댁에서 식객 노릇이나 하고 있잖아요.”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간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라고 했었지요.” 나는 그녀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같은 의미예요.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원한다면, 누군들 꿈꾸지 않겠어요!”

“하지만 주위 사람을 생각하느라 자기 자신을 잊어서는 안 돼요!”
감동을 받은 나는 그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제 자신을 잊는 게 아니라, 자아를 확장하는 거예요. 이것도 어떤 외국 소설에 나오는 말이에요. 주위 사람의 웃음 속에서 혹은 울고 있는 모습에서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들의 행복 속에도, 일상에도 제가 있고, 그들의 생각 속에도, 기억 속에도 제가 있는 거죠.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꿈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언젠가는 돌아오실 거예요.”
“그럼 돌아오시고말고.”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내가 한 거짓말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아이의 희망을 굳이 짓밟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고개를 숙여 자는 듯 평온해 보이는 얼굴을 잠자코 주시했다. 차츰 눈이 침침해져 왔다. 순간 샤오후가 그곳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본 듯했다. 나는 깜짝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황급히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니 다리 아래에는 낯선 얼굴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구나! 이렇게 빨리, 이렇게 쉽게, 이렇게 실감나게.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바싹 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우는 모습보다 더 흉했다.

내가 막 인력거에 오르려는 순간 갑자기 가벼운 탄식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선생님이 정말 부러워요.”
어디까지나 그녀의 한순간의 생각임을 잘 아는 나는 그녀에게 짧게 대꾸해주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세계가 따로 있는 법이니까요.”

후기

돈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나를 더욱 가치 있게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상뿐이다. 돈이라는 것은 겨울철 내리는 눈과 같아서 서서히 쌓이지만 빨리 녹아버린다. 이 소설 속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궐 같은 저택과 아름다운 정원은 주인이 수시로 바뀐다. 개인 재산을 백 년 혹은 그 이상 지켜내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극히 막연하고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 이 역시 이상과 신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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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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