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역사사회2020. 1. 8. 19:14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015 노벨문학상 수상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체르노빌은 우리의 미래다!”체르노빌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1986년, 체르노빌 원전 제4호기가 폭발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쉽게 잊어버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했다. 체르노빌은 그들에게 집이었다. 사고난 원전을 정상화 시키기 위해 방호복도 입지 않고 일하다 피폭된 남편을 두고, 그 죽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는 여자에게 의사는 말한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물질'이라고. 저자가 기록 한 것은 과거의 이야기다. 하지만 언제 닥쳐도 이젠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는 우리의 미래이야기이다.

 

 

한국어판 서문

 

“우리가 일하는 원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원전 건물 위로 비행기가 떨어져도 끄떡없고, 가장 강력한 지진, 규모 8.0의 강진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현대인들은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저자의 독백 인터뷰

 

비록 예술이 기술로 말미암은 지구의 종말을 아주 많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냈지만, 우리의 삶보다는 기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을 직시하고, 사고의 의미를 모색하고 싶었지만, 사실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것이지만, 평화적 핵은 집집마다 있는 전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이 쌍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범자라는 사실을······

 

“적어 두세요.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이해 못 했지만 그렇게라도 남겨두세요. 누군가 읽고 이해하겠죠. 나중에, 우리가 죽은 후에······

 

체르노빌은 겉으로는 전쟁을 닮았다. 군인이 많았고, 사람들이 대피했으며, 집을 뒤로하고 떠났다. 삶의 방식이 파괴되었다. 체르노빌에 대한 신문기사는 핵, 폭발, 영웅 등 군사용어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우리가 새로운 역사에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재난의 역사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에 피하고, 이미 익숙한 것 뒤에 숨는다. 과거 뒤에 숨는다. 체르노빌 영웅을 기리는 기념비조차도 전쟁 기념비를 닮았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방사선은 형체가 없다. 우리는 평생 전쟁을 치렀고 전쟁을 준비해왔으며, 전쟁에 대해 많이 배웠는데, 갑자기 적의 모습이 달라졌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다수의 적이 나타났다. 땅에서 뽑힌 풀이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 낚아 올린 물고기가, 사냥한 들새가. 사과가······. 유순하고 친절했던 우리 주변 세상에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해도 떴고, 연기도 안 보이고 가스 냄새도 안 나는데······. 총도 안 쏘는구먼. 이게 전쟁이야? 그런데 피난을 가라니······.” 익숙한, 그러나 익숙지 않은 세상이었다.

 

두 개의 재난이 겹쳤다.

사회주의의 몰락.

체르노빌이라는 우주적 재앙.

첫 번째 폭발은 […] 자신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은 우리에게 낯설었고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그 걱정을 했다. 한편 체르노빌에 대해서 잊고 싶어했다. 사람들의 의식이 체르노빌 앞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의식의 재난이었다.

 

과거는 나약한 것이고, 지식 중에는 우리의 무지에 대한 지식만이 살아남았다

 

운명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역사는 우리 모두의 삶이다. 나는 운명을 보존하면서 역사를 들려주고 싶다. 한 사람을 잃지 않도록······.

체르노빌에서는모든 것 후의 삶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 없는 물건, 사람 없는 풍경······. 목적지 없는 길, 목적지 없는 전선······. 또 생각해보면, 이것은 과거일까, 미래일까?

가끔 내가 미래를 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배경

 

석관은 죽었지만 숨을 쉬고 있다. 죽음으로 숨 쉬고 있다.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까? 아무도 이에 답할 수 없다.

 

사람의 외로운 목소리, 하나

 

나는, 나는 그가 죽는 생각만 안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병이 끔찍하다는 생각, 내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생각만 막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잊지 마세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전염도가 높은 방사성 물질이에요. 죽고 싶어요?

 

“왜 내 남편을 숨겨야 하지? 살인자야? 범죄자야? 위법자야? 도대체 누구를 묻는 거야?”

 

딸이, 나를, 살렸다. 내 딸이 방사선을 모두 끌어모아 나를 살렸다. 그렇게 작은 아이가······. (숨이 찬다) 딸이 나를 지켜줬다. 나는 그 둘을 다 사랑했다. 사랑으로, 사랑으로 죽이는 게 가능한가? 이런 사랑으로! 사랑과 죽음은 왜 나란히 있을까? 그 둘은 항상 같이 있다.

 

나는 이렇게 산다. 현실과 비현실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어디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그들에게 원자로 없는 삶은 없다. 원자로가 그들의 생명이다. 이제 와서 누가 그들을 원하겠는가? 계속 죽고, 갑자기 죽는다

 

- 류드밀라 이그나텐코(순국 소방대원 바실리 이그나텐코의 아내)

 

Chapter I 망자의 땅

 

기억의 이유

 

기억은 약하고 순간적이며, 확실한 지식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추측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억한다. 지식이 아니라 느낌일 뿐인데도…….

 

구역에 갔다. 벌써 여러 번 가보았다. 내가 무력하다는 것을 그곳에서 깨달았다.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의 무력함으로 인해 무너져간다. 모든 것이 변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무너져간다.

 

표트르 S (심리학자)

 

산 사람과도 죽은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것은 죽음이야. 아직 누구도 비켜가지 못했어. 땅은 거절하는 법이 없지.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죄인도 받아들이지.

 

젊을 때는 죽을 수도 있지만 늙으면 죽어야 해.

 

이제는 죽을 날을 기다려. 죽음이 어렵지는 않지만 무서워. 교회도 없고, 신부님도 안 오시고. 그래서 고해성사도 못 해.

 

내 평생 일하고 고뇌할 몫은 이미 다 했어. 충분히 했고 더는 바라는 게 없어. 죽으면 쉬기라도 할 텐데. 저 세상에는 영혼만 있으니까 몸은 편히 있겠지

[…]

신이 나한테 명은 길게 주었지만, 복은 안 줬어.

 

우리 바깥양반은 사람이 총을 쏴도 총알은 신이 배달한다고 말하곤 했지. 사람마다 제 명이 따로 있어.

 

말은 산 사람과도, 죽은 사람과도 할 수 있어. 나는 차이를 몰라. 죽었든 살았든 목소리가 들려. 혼자 있을 때, 슬플 때, 너무 슬플 때······.

 

지나이다 옙도키모브나 코발렌카 (주민)

 

문에 기록된 삶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처럼 출근하고 퇴근한다. 월급도 평균적으로 받는다. 1년에 한 번씩 휴가를 떠난다. 아내와 아이들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체르노빌 사람이 되어버린다. 돌연변이가 된 것이다! 모두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생물체가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지만 이제 불가능하다.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신문은 체르노빌을 귀신의 집같이 표현하는 척하면서 만화로 만들어놨다. 하지만 우리는 체르노빌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도시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나의, 나의 진실만을 이야기하겠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모르셔도 됩니다.”

그럼 누가 알아야 합니까?”

 

니콜라이 포미치 칼루긴 (아버지)

 

같이 울고 밥 먹자고 영혼이 하늘에서 부른다

 

“나라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농사도 다 직접 지어. 그냥 건들지만 말면 좋겠어! 상점도 필요 없고, 버스도 필요 없어. 빵과 소금은 20킬로미터씩 걸어가서 사오면 돼. 우리가 알아서 해.”

 

“밤에는 하나님께, 낮에는 경찰한테 빌어. 내가 왜 우는지 물어봐도, 나도 왠지 몰라. 내 집에 살아서 기쁜데 말이야.”

 

“체르노빌······. 전쟁 위의 전쟁이었어. 어디에도 구원이 없었어. 땅에도, 물에도, 하늘에도······.”

 

“사람들이 많이 와. 우리에 대해서 영화도 찍었는데 우리는 평생 그 영화를 못 보겠지.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으니까. 볼거리라고는 창 밖 풍경뿐이야. 물론, 기도도 하지. 한 때는 신 대신 공산당원이었는데, 이제는 신만 남았어.”

 

우리나라가 독일을 물리쳤을 때, 전쟁터에 나갔어. […] 제복 외투를 벗은 후에는 공산주의를 세웠어. 그런데 그 공산주의는 어디로 갔나?”

“여기가 바로 공산주의지. 다 같이 호형호제하면서 살아.”

 

체르노빌 사고가 왜 일어났지? 과학자들 잘못이라는 사람이 있어. 신의 멱살을 잡고 탓해도, 신은 웃을 뿐이야. 우리보고는 그냥 참으라 하고!

 

사람한테 영혼이 있을까, 영혼은 어떤 것일까? 저 세상 어디에 그 많은 영혼이 살고 있을까?

 

고멜 주 나로블랸스키 지역 벨리 베레크 마을 주민

 

닭도 지렁이를 찾으면 기뻐하고, 솥에서 끓는 것도 영원하지 않다

 

이제는 두려움뿐이야. 개구리와 하루살이만 남고 사람은 없어질 거라 했어. 사람 없는 세상일 거라고 했어. 과장된 동화를 퍼뜨려. 그런 걸 좋아하면 바보지! 하지만, 거짓뿐인 이야기는 없어. 벌써 오래된 노래지.

 

영혼은 유일한 생명체야

 

누구한테 물어볼까? 아무도 몰라. 신께 기도는 올리면서 질문은 안 해. 그러니 살아야지.

 

오래된 두려움과 여자들이 말할 때 남자가 조용히 있던 이유

 

요즘 전쟁은 예전과 달라요. 할아버지가 옛날 전쟁에 대해 들려주셔서 알아요. 할아버지는 독일 베를린까지 가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옆집 사람들끼리 총을 쏘고, 같이 학교 다녔던 사내들이 서로 죽이고, 학교에서 짝꿍이었던 여자들을 범해요. 다들 미쳤어요.

 

자신의 땅이자, 자신의 말을 쓰는 그곳을 남편이 떠났어요. 자신과 같은 다른 타지크인을 죽이기 싫어서요. 자기가 알던 사람, 자기한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기 싫어서 떠났어요

 

독일인은 다 독일로 돌아갔고, 타타르인은 허락을 받고 크림으로 갔지만, 러시아인을 반기는 곳은 없어요. 희망이 있기라도 하나요? 뭘 기다리죠? 러시아는 너무 크고 광활해서 자국민을 구해준 적이 없어요. 솔직히, 내 고향이 러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러시아식으로 자라지 않았어요. 우리 조국은 소비에트 연합이에요.

 

우리는 두 고향을 한꺼번에 잃었어요. 타지키스탄과 소련 두 곳을······.

 

우리는 러시아인이 아니에요. 우리는 소련인이에요! 하지만, 내가 태어났던 나라는 이제 없어요. 우리가 고향이라고 불렀던 곳도 사라졌고, 우리 고향이었던 시간도 이제 없어요.

 

전염병, 콜레라는 당연히 피해야죠.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다 무서워하는 이게 뭔지 나는 모르겠어요. 못 봤어요. 본 적이 없어요. 나는 사람이 무서워요. 무기를 든 사람이······.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레나 M

 

사람은 악을 통해서만 완벽해지며 솔직한 사랑의 말에 마음을 열 만큼 단순하다

 

신은 오래 참고 자비롭다. 하지만, ? 답이 없다.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 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의 이름은 쓴 이라. 물들의 삼 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요한계시록 8:10-11

쑥은 우크라이나어로 체르노빌이다.

 

“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부재하면 어둠이 오는 것처럼 선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네 발로 기고, 눈은 땅으로 향하며, 땅과 가까워지려 한다. 사람만 두 발로 서서 팔과 머리를 하늘로 들어 올린다. 신께 기도하기 위해···….

 

말은 온전히 마음에서, 다만 기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나는 그것을 실제로 경험한다. 주여, 들어주소서! 사람도 들어주기를······.

나는 사람이 무섭다. 그러면서 언제나 사람이 보고 싶다. 좋은 사람이…….

 

니콜라이 (주의 종)

 

군인의 합창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체르노빌에서는 정반대였다. 집에 가면, 바로 그때 죽는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공동묘지 옆에 서서 보면 깨진 비석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보로딘 대위, 상사······. 일반 병사들의 이름이 비석에 시처럼 길게 새겨져 있다. 우엉꽃, 쐐기풀······.

 

또 농담 들려줄까? 체르노빌 사고 후로 뭘 먹어도 상관없지만 똥은 납 상자에 싸서 버려야 한대. 하하하! 삶은 아름답지만, 제기랄, 너무 짧아.

 

해체작업자의 기도라고 들어봤나? “신이시여, 내가 할 수 없도록 하셨다면 원하지도 않도록 해주소서!” 다들 지옥에나 가버려!

 

평범한 삽으로 파고, 청소부들이 사용하는 빗자루로 쓸었다. 수세미로 닦았다.

[…] 말하자면 핵을 삽으로 푼 거다. 20세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내 피폭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도대체 왜? (소리친다) 정말 필요했던 건 무조건 많은 인원이 아니라 전문가였다.

 

Chapter II 조물주

 

달의 풍경

 

내 기억으로, 사고 후 며칠 사이 방사능,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게다가 뢴트겐에 대한 책까지 도서관에서 다 사라졌다. 불안감이 조성되는 걸 막기 위한 상부의 명령이라는 소문이 곁들여졌다. 바로 우리의 안녕을 위한 조치라는······

 

첫 외국 기자들이 왔다. 첫 촬영팀도 왔다. 그들은 플라스틱 멜빵 바지에 헬멧을 쓰고 발에는 고무 덧신을, 손에는 고무장갑을 꼈으며, 카메라까지 특수 케이스에 넣어서 가지고 왔다. 한편 그들을 수행한 우리 통역사 아가씨는 여름 원피스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왜 체르노빌에 대한 글이 없을까? 우리 작가들은 아직도 전쟁과 스탈린의 수용소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 문화의 트라우마다. 우리의 유일한 답변은 침묵이다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브롭킨(고멜 국립대 학교 교수)

 

그리스도가 넘어져 소리치는 모습을 볼 때 이가 아팠던 증인

 

거기에 가면 말세와 석기시대를 갑자기 이어놓은 듯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지.

 

구역 내에서 만난 사람들과 얘기하면 어찌나 무덤덤하던지 놀랄 지경이었소. […]

두려움 속에서만 살 수는 없소. 인간은 그럴 줄 모르오. 시간이 조금 지나면 평범한 인간적인 생활이 다시 시작되는 거지.

 

정상적인 러시아식 카오스.

 

우리보고 이겨야 한다고 하더군. 누구를? ? 물리? 우주? 우리의 승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오. 인생은 싸움이오.

 

흙을 흙 속에 묻었소. 딱정벌레, 거미, 유충도 함께. 그 민족을, 그들의 세상을······. 내 뇌리에 가장 깊이 박혔소. 그들이…….

 

아르카디 필린 (해체작업자)

 

걷는 먼지와 말하는 흙

 

이 똑똑한 양반은 체르노빌은 철학자들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고 하더라. 동물은 걷는 먼지라고, 사람은 말하는 흙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체호프와 톨스토이 없이 살 수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전쟁이었고 내 어린 시절은 체르노빌이에요.

 

카탸 P.

 

성프란치스코는 새들에게 설교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우리 집에 어린 아기와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 메달을 주겠지. 하지만 아내는 떠나겠지. 구원은 유머에서 찾는다. 농담을 주고받았다.

 

전쟁 후의 아이들은 전쟁 영화를 좋아했다. […]

그때 나는 내가 전쟁 영화에서 본 장면을 흉내 내며 촬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 그 영화 속 인물들처럼 자신을 억누르며 눈물을 참고 짧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손을 흔들었다. 우리 모두가 익숙한 행동을 하려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에 부합하려 애썼다. 여자아이가 엄마한테 손을 흔들며 다 괜찮다고 한다. 용감한 어린이다. 우리가 승리한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들, 우리 부모님은 붕괴를 견뎌내셨고 이제는 우리 차례다. 안 그러면 진짜 사람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싸우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라고 배웠다.

 

이 사고의 경우 처음 며칠 간 다 합해봤자 소방관 일곱 명이 사망했다. 그 후에 또 몇 명 더. 그런데 그 다음에는 우리가 인지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인 수치였다. ‘몇 세대 후라던가, ‘영원히’, 또는그 무엇도라는 표현이 동원됐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머리가 세 개 달린 새가 날아다닌다든가, 닭이 여우를 쪼아 죽였다든지, 대머리 고슴도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포로수용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촬영한 적이 있다. 보통 그들은 만나기를 꺼린다. 다 같이 모여 전쟁을 회상하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서로 죽이고 죽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모욕을 배우고,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에게서 도망 다닌다. 자신에게서 도망친다.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으로부터 도망친다. 사람 속에, 살갗 아래에 뭐가 있는지······. 그래서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곳 체르노빌에서도 무슨 이야기가 하기 싫은지 알게 되었다.

 

사람은 영웅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파멸의 상인이다. 크고 작은 파멸을 사고판다.

 

악의 메커니즘은 세상이 파멸해도 돌아갈 것이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사람은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영원히······.

 

“왜 거기 남은 동물들을 도와주면 안 됐어요?”

그러게, ? 나도 생각 못 해본 거였다. 그래서 대답도 못 했다. 우리가 하는 예술은 사람의 고통과 사랑에 대한 것이지, 모든 생물을 취급하지는 않는다. 사람만! 다른 세계, 동물, 식물에까지 몸을 낮추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지 않은가. 다 죽일 수 있다. 요즘 세상에는 그런 게 더는 판타지가 아니다.

 

세르게이 구린(카메라 감독)

 

두 목소리 : 남자와 여자

 

관 살 돈. 관 살 돈을 나눠줘요. 여기에 사는 대가로 받는 보상이에요. 쥐꼬리만 한 돈.

 

그리고 굶주림, 몇 년 동안 기근을 겪고 나면 사람은 짐승적 본능을 갖게 됩니다. 자기 안에 짐승을 키우는 겁니다. 그런데 이곳은, 가보니 모든 것이 꽃피고 있었습니다! 들판이나 숲 속에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누가 잘못했느냐입니다. […] 도대체 누구 탓일까요? 과학자? 발전소 직원? 아니면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보는 우리 탓? 물질적인 욕구를, 가지려는 욕구를 멈추지 못한 우리 탓?

 

제 생각에 우리는 과학적 연구 대상인 것 같습니다. 다국적 실험실. 유럽의 중심에서. 우리 벨라루스 인구는 1천만 명인데, 200만 명 이상이 오염된 땅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차려진 실험실이지요. 데이터를 입력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사방팔방에서 이곳으로 옵니다. 우리 덕에 학위를 받고, 논문을 씁니다.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서.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미래가 두려워 이곳으로 오는 겁니다.

 

지금 세상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체르노빌레츠와 당신을 포함한 모든 다른 사람들입니다. 눈치채셨습니까? 여기서는 벨라루스 사람이고,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러시아 사람이고 그걸 강조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체르노빌레츠로 부릅니다. “우리는 체르노빌에서 왔습니다.” “나는 체르노빌 사람입니다.” 마치 우리가 다른 국가인 것처럼. 새로운 민족인 것처럼······.

 

언어학 교사, 가정실습 교사

 

전혀 낯선 것이 내 속으로 기어들어온다

 

체르노빌 후에는 체르노빌에 대한 신화만 남았다.

 

‘내 신문에 공포 조성 따위는 필요 없어. 영웅 이야기나 써. 군인들이 원자로 지붕에 올라간 이야기 있잖아.’

영웅, 영웅. 그들은 오늘날 누구일까? 나에게 있어 영웅은 위에서 뭐라 명령하든 환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의사야. 그리고 그런 기자, 과학자가 영웅이야.

하지만 편집장이 회의 때 말했어. ‘잘 기억해! 지금 우리 중에 의사도, 선생도, 과학자도, 기자도 없어. 지금은 모든 사람이 같은 직업을 갖고 있지. 우리는 모두 소비에트 사람이야.’ 편집장은 자기 말을 믿었을까? 무섭지도 않을까? 내 믿음은 매일 흔들려.”

 

‘우리에게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바다 건너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좋은 것만 있고, 나쁜 것은 없는 거에요. 그리고 이해 불가능한 것도 있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운명론자예요. 우리는 모든 것이 될 대로 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아요. 운명을 믿어요.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그래요. 세대마다 전쟁을 겪고 피를 봤어요. 어떻게 우리가 달라지겠어요? 우리는 운명론자예요.”

 

“어제는 아버지의 팔순이었다. […] 스탈린 굴라크, 전쟁, 그리고 지금은 체르노빌까지······. 이 모든 것이 아버지 세대에 일어났다. 한 세대 만에.

 

아나톨리 시만스키 (기자)

 

데카르트 철학과 부끄럽지 않으려 오염된 샌드위치를 먹은 이야기

 

학자는 역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대를 골라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우리 머릿속에서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 같은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이나 1초 만에 재로 변한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평화적 핵은 안전한 전구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아름다움과 두려움의 어울림이었다. 두려움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에서 두려움을 구별할 수 없었다. […] 죽음의 낯선 얼굴이었다.

 

우리는 감정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감정은 삶을 풍요롭게 하면서도 파멸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이성적인 선택으로는 우리가 만족할 수 없다.

 

‘이 사람의 삶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이 사람과 함께 오염된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다.’ 운명을 나누는 것이었다. 개인의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바로 이런 것이다.

 

어린이용 식품이 든 병과 주스 팩을 받았다. 그때 남자가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나눠준 음식과 주스는 그의 아이들을 살릴 수 없었다. 다들 뻔히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운 이유는, 알고 보니 그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그들을 기억한다. 그러니 희망이 있다.

 

감옥과 유치원이 섞인 곳. 거기가 바로 사회주의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사람이 국가에 마음과 양심, 심장을 내어줬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돌아온 것은 배급이었다.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답하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70년 동안 공산주의를 세웠고, 지금은 자본주의를 세우고 있다. 예전에는 마르크스를 섬겼지만, 지금은 달러를 숭배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체르노빌을 떠올리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누구인가? 자신에 대해 무엇을 이해했나? 우리의 세계에 대해?

 

게나디 그루세보이 (벨라루스 의원)

 

오래 전에 숨어버렸지만 다시 나갈 방법도 만들지 않았다

 

인류 문명은 반자연적이고 인간이 자연의 가장 큰 적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사람은 창조자예요. 세상을 변화시켜요. […] 다만 진보는 희생을 필요로 하고, 더 멀리 나아갈수록 더 많은 희생이 요구돼요.

 

이성에 대한 믿음이 사람을 떠나면, 그 마음속에 짐승 같은 두려움이 들어가요. 그리고 괴물이 기어 나오죠.

 

농업학 박사

 

막힌 우물 옆에서

 

지금 세상은 공포로 물건을 흥정해요. 우리가 세계 시장에 팔 것이 없으니 이제 체르노빌 공포를 팔아요. 새로운 상품을 사기 위해 대신 우리의 고통을 파는 겁니다.

 

늙은이는 사는 게 심심해. 말하는 게 직업이지.

 

마리아 표도토브나 벨리치코와 아들

 

역할과 슈제트에 대한 갈망

 

우리는 가난해서 누가 적선해주는 걸로 먹고 사오. 그런데 사기꾼 같은 정부는 이들을 내쳤소. 이들이 죽으면 거리나 학교, 군부대에 고인 이름을 갖다 붙이겠지만 그건 이미 죽은 후의 일이오.

 

우리의 선전, 프로파간다가 무엇이오? 우리의 사상이 무엇이오? 죽어라! 하지만 죽는 대신 의미를 주마. 그런 거요.

 

체르노빌의 사건 일지는 없다고 보면 되오. 촬영을 못 하게 했고, 다 비밀에 부쳤소. […] 비극을 촬영하는 것은 금지됐고, 영웅만 촬영하도록 허락해줬소. […] 체르노빌에 대해 솔직히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용기가 필요하오.

 

그렇다면 원자로 아래에 밤낮으로 터널을 뚫던 400명의 광부들은 어떻소? […]

그들은 지금 죽어가고 있소. 그런데 이들이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겠소? 나는 그들이 영웅이라고 생각하오. 있는 듯 없는 듯 치러졌던 전쟁의 희생양으로는 보지 않소. 사람들은 사고, 재앙이라고 부르오. 하지만 그건 전쟁이었소. 체르노빌에 세워진 기념비는 전쟁 기념비를 떠올리게 하오.

 

다들 한결같이 대답했소. 건강은 괜찮고, 국가가 잘 대해주고, 가정에는 사랑이 꽃핀다는·····. […]

“왜 아무도 당신들 말을 안 믿는지 이제 아시겠어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잖아요.”

 

친구가 이런 말을 했소. “우리 배가 부르고 더는 고통스러울 일이 없다고 치자. 그럼 누가 우리한테 관심 두겠어?” 그의 말을 잊을 수가 없소.

 

변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인간의 고통뿐이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이오. 바꿀 수 없는 자산이오!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소볼례프(공화국 협회 부대표)

 

민족의 합창

 

학교 건물 주변의 오염된 지층을 벗기는 작업을 우리가 해야 했다. […] “보호장비는 주나요? 특수 보호복, 마스크는 줄 건가요?” 안 준다고 했다. “삽 들고 와서 일하세요.” 거부한 사람은 젊은 선생 둘 뿐이었고, 나머지는 가서 흙을 팠다. 우리는 억압과 책임감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며 산다.

 

내가 가르친 문학은 삶이 아닌 전쟁에 관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것이다.

 

기억이 귀띔해주었다. 우리는 항상 공포 속에 살았고, 공포 가운데 사는 법을 안다. 우리는 그런 환경 속에 산다. 그 부분에서는 우리를 따라올 민족이 없다.

 

모두 전쟁과 비교한다. 하지만 전쟁은 이해할 수 있다. […]

그런데 여기는? 우리 마을에는 묘지가 세 개 남아있다. 첫 번째는 사람이 묻힌 오래된 묘지고, 두 번째 묘지에는 우리가 버려 총살당한 개와 고양이, 세 번째 묘지에는 우리 집이 묻혀 있다.

우리는 집까지 장사지냈다.

 

며칠 동안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고르바초프의 연설을 기다렸다. 하지만 권력은 침묵했다. 5월 축제를 치르고 난 후에야 고르바초프가 발표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무들,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냥 불이에요, . 걱정할 거 없습니다. 아직 거기서 사람이 살면서 일하고 있어요.”

우리는 믿었다.

 

썩은 고기 냄새가 밤마다 우리를 따라다녔다. ‘핵전쟁이 이런 냄새인 줄은 몰랐어.’ 내가 생각했다. ‘전쟁은 연기 냄새가 날 텐데······.’

 

‘죽겠지.’ 나중에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죽음이 엿들을 수 있다는 걸…….

 

여기 사는 사람들이 다 블랙박스 같다고 하더이다. 사람이 블랙박스라니……. […] 알고 보니 우리는 미래를 위해 정보를 기록하던 중이었소.

 

‘아르톰, 눈 떠······.’

아들이 못 죽게 괴롭혀요.

 

아들은 모스크바에서 공부하고 있다. […]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 때문이 아니라 아들 때문에······. 아들은 돌아올 곳이 없다.

 

Chapter III 슬픔의 탄식

 

죽음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 줄 몰랐다

 

원자로가 안에서부터 빛나던 것이 기억나요. 신비로운 색깔이었어요. 그냥 평범한 불이 아니라 광채 같은 것이 났어요. 그 밖의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하면 매우 아름다웠다고도 할 수 있어요. […]

우리는 죽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전 프리퍄티 주민

 

흙이 되는 것은 너무 쉽다

 

어쨌든 나는 화학 엔지니어이자 과학 석사였다. […] 그런 나를 어떻게 활용했을까?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삽이었는데, 사실상 내게 주어진 유일한 도구였다. 덕분에 구호도 생겼다. ‘삽을 들고 핵으로!’

 

푸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하라고 하니 해야 되는 것이었다. 조국이 부르고 조국이 명령했다. 우리는 이런 민족이다.

 

복무기간 중간 즈음에 드디어 측정기를 나눠줬다. […] 이 측정기가 작동하도록 하려면 우선 일차적으로 충전을 해야 하지만 충전이 안 된 상태였다. 그러니까 사람들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런 값싼 장신구를, 장난감을 준 것이다. 심리 치료였다

 

화학 엔지니어

 

위대한 나라의 상징과 비밀

 

우리는 믿는 데 익숙했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자란 전후 세대다

 

믿음을 잃고 믿음 없이 남으면, 그 사람은 참가자가 아니라 공범자가 되고 변명할 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그렇게 이해했다.

 

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선임 연구원

 

무서운 일은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체르노빌 폭발은 준비되지 않은 민중의 인식을 배경으로 일어났고, 당시 사람들은 기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어요. 게다가 아무런 정보도 없었죠

 

방사성 토양을 매장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어요. 땅을 땅에 묻는 거에요. 사람이 처음으로 하는 일이었어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민중은 거룩한데 정부는 범죄자라고들 하죠.

 

환경 보호 감독

 

러시아인은 언제나 무언가 믿으려 한다

 

러시아식 성격을다 잘 되겠지, 로 요약할 수 있다.

 

그들의 인식은 이 두 수준, 석기시대와 핵 시대라는 두 시기에 동시에 머물렀습니다. 동시에 두 시대에 있던 것입니다.

 

기술적 규율이요?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폭력과 족쇄, 사슬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고 제멋대로 사는 민족입니다. 항상 자유를 원하고, 마음대로 하는 것을 꿈꿨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있어 규율은 억압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의 무지함에는 뭔가 독특한 것, 동양적 무식함에 가까운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각하지만, 언어도 우리를 통해 생각합니다.

 

“나라의 반은 농사짓고, 나라의 반은 감옥에 앉아 있었습니다.”

 

위대한 시대의 작은 생명은 보호 받지 못한다

 

나도 이해하기 위해 말해야 해요. […] 이런 고통은 의미 없이는 견딜 수 없어요.

 

우리는 다시 보호소에서, 수용소에서 살고 있어요. 이곳은 체르노빌 수용소에요.

 

언젠가 영웅이 부럽던 때가 있었어요. 위대한 사건을 함께 했거나 변혁의 전야에 살던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변화의 시기에……. […]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는 역사와 역사적인 시대에 살고 싶지 않아요. 그 시대에 내 작은 생명은 갑자기 보호막을 잃어버려요. 위대한 사건은 작은 생명을 보지도 못하고 짓밟아버려요.

 

우리 후에는 역사만 남을 거에요. 체르노빌만 남을 거에요. 그런데 내 삶은, 내 사랑은 어떻게 되나요?

해체작업자의 아내

 

자유와 평범한 죽음을 꿈꾸다

 

“내 소원이 뭔지 물어봐 줘.”

뭔데?”

평범한 죽음······.”

 

해체작업자

 

못생겨도 사랑할 아이

 

이곳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남편과 상의한 끝에 남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요. 여기서는 모두가 체르노빌레츠잖아요.

 

우리는 기억을 공유하고 있어요. 같은 운명을 살아가고 있어요. 어디를 가든, 어떤 곳에서도 우리는 남이에요.

 

한 번은 우리 이야기를 안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밖에서 우리를 관찰하지 않았으면. 핵 공포증이나 뭐 다른 병명을 갖다 붙이며 우리를 구분 짓지 않았으면. 그러면 우리를 덜 무서워할 텐데…….

 

호이니키 마을 주민

 

흔해 빠진 삶을 이해하려면 뭔가 덧붙여야 한다

 

사람들은 왜 제가 컬러필름으로 사진을 찍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체르노빌은검은색 과거이잖습니까. 다른 색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에요.

 

예전에 신의 자리에 앉던 과학자들이 이제는 타락한 천사가 되었어요. 악마들!

 

어쩌면 과거의 다른 민족처럼 벨라루스도 사라지지 않을까. 스키타이, 하자르, 사르마트, 키메르, 와스테카 족처럼?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입니다. 지구에서 사는 게 아니라 꿈, 대화 속에서 살고 있어요. 단어 속에······. 흔해 빠진 삶을 이해하려면 뭔가 덧붙여야 합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에요.

 

사진작가

 

벙어리 군인

 

“네가 늙으면 아무도 양보 안 해줄 거야.”

나는 안 늙어요.”

소년이 답했다.

안 늙는다니?”

우리는 곧 다 죽어요.”

 

우리 벨라루스 사람들은 한 번도 영원한 것을 가진 적이 없다. 우리 땅조차도 영원하지 않았다. 항상 누군가 그 땅을 뺏어갔고, 우리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구약에서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은 것처럼 영원히 살 수 없었다. 쇠사슬과 쇠고랑. 우리는 그 영원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영원과 더불어 사는 방법도 모른다. 영원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 드디어 그 영원이 주어졌다. 우리의 영원은 체르노빌이다. 영원이라는 것이 생겼다.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그런데 집주인이 말한다. “그래도 쥐를 모조리 다 잡았어!”라며 좋아했다. 벨라루스 사람이 이렇다. 눈물을 뚫고 웃는다.

하지만 우리 신들은 안 웃는다. 우리 신들은 수난자다. 웃고 즐거운 신은 고대 그리스에나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불행의 예감. 행복? 행복은 일시적인 것, 영원하지 않다.

 

체르노빌은 우리로 뭔가를 만들고 있다. 창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민족이 되었다. 체르노빌 민족.

 

예술은 기억이다. 우리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무섭다. 한 가지가 무섭다. 우리 삶에서 두려움이 사랑을 대신해버릴까 무섭다.

 

모길료프 문화예술대학 교수, 연출가

 

저주받은 영혼의 질문 :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구의 탓인가

 

나는 내 시대의 사람이다. 나는 확고한 공산주의자다.

우리는 발언할 권리를 잃었다. 그게 유행이다. 요즘은 공산주의를 욕하는 것이 유행이다.

 

세상은 마르크스 사상이 아닌 물리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행복한 사회에서 살았다. 우리는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고, 우리는 행복했다. 나는 자유로웠고, 누군가 내 자유를 자유롭지 않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역사가 우리를 지웠고, 우리는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지금 솔제니친을 읽고 있다. 나는 고민한다. (침묵한다) 내 손녀는 백혈병을 앓고 있다. 모든 것에 대해 값을 치렀다. 비싼 값을······. 나는 내 시대의 사람이었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

 

전 슬라브고로드 당 지역 위원회 일등 서기관

 

한 사람의 거대한 권력

요오드화칼륨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요오드다. 젤리 반 컵에 요오드화칼륨을 어린이는 두세 방울씩, 어른은 서너 방울씩 타서 마시게 했다. 원자로가 열흘 동안 탔기에, 열흘 동안 이렇게 복용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 말을 안 들었다! 우리 학자, 의료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과학은 정치를 섬겼고, 의학도 정치로 끌어들였다.

 

모두 전화와 명령을 기다렸지만 직접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개인이 지는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소장

 

희생양과 제사장

 

실체가 없어요! 그리고 이상이 없어요. 퀴리, , 시버트, 그런 건 의미가 아니에요. 그런 건 철학이 아니에요. 세계관이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사람은 무기나 십자가, 둘 중 하나를 들죠. 긴 역사 동안 항상 그랬어요.

 

그것은 일종의 야만행위였어요. 자신을 위한 두려움이 없던 거에요. 우리는 항상가 아니라우리라는 말을 썼어요. “우리가 소비에트 영웅을 직접 선보이겠습니다또는우리가 소비에트를 보여주겠습니다라고 말했죠. 전 세계에! 그런데, ! 나는 죽기 싫어요. 나는 두려워요.

 

체르노빌 후에는 저절로 그렇게 되었어요. 우리는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었어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마치 묘지에 참배하러 가는 것 같아요. 기술 후의 세상. 시간이 거꾸로 가고 있어요. 그곳에는 그들의 집만 묻힌 게 아니라 한 시대가 묻혀 있어요. 믿음의 시대, 그러니까 과학에 대한 믿음의 시대. 정의로운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믿음의 시대! 위대한 제국이 뜯겨나갔어요. 무너졌어요. 먼저 아프가니스탄, 그다음에는 체르노빌이 일어났어요. 제국이 흩어지자 우리는 홀로 남았어요.

 

체르노빌이 일어난 후에 전 세계가 우리 벨라루스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유럽으로 향하는 창이었어요. 우리는 체르노빌의 희생양인 동시에 제사장이에요

 

‘고준위 방사선이라는 푯말이 들판에 많이 꽂혀 있지만 바로 그 들판을 갈고 있어요.

 

기적을 기도해요. , 혼자서 헤쳐나갈 건강과 힘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에요. 부탁하는 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어요. 외국인이든, 신이든, 그저 빌어요.

 

독일 봉사단원 중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말했어요. “아름답지만, 오염됐어요.” 그의 손에 측정기가 들려 있었어요.

그 노을이 나에게만 소중하다는 걸 잘 알아요. 내 땅이니까요.

 

모길료프 여성 위원회 대표

 

어린이 합창

 

여기에는 친구가 많이 있었어요. 율랴, 카탸, 바딤, 옥사나, 올레크, 그리고 지금은 안드레이. “우리가 죽으면 학문이 될 거야.” 안드레이가 말했어요. “우리가 죽으면 다 우리를 잊을 거야.” 카탸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죽으면 무덤에 묻지 마. 나는 무덤이 싫어. 거기에는 죽은 사람들이랑 까마귀밖에 없잖아. 나는 들판에 묻어줘.” 옥사나가 부탁했어요. “우리는 죽을 거야······.” 율랴가 울었어요.

이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살아 있어요. 내 친구들이 거기 있으니까······.

 

사람들은 입만 열면 체르노빌 얘기를 했고, 신문도 체르노빌만 다뤘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이 뭔지 몰랐어요.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다르게 태어나고, 다르게 죽어요. 모두와 다르게.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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