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1. 10. 18:04
대디 러브

대디 러브

조이스 캐롤 오츠 저/공경희

『대디 러브』는 1964년 데뷔 이래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장르에 걸쳐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오츠는 전미도서상을 비롯해 오헨리상, 브램스토커상, 페미나상, 시카고 트리뷴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퓰리처상 후보에 세 차례 올랐으며, 2004년부터는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현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하나다.

공포소설 『대디 러브』는 ‘유괴’라는 폭력에 희생당한 아이의 돌이킬 수 없는 인격 변화와 생존의 강박에 얽힌 이야기다. 젊고 지적인 엄마와 라디오 방송국의 인기 있는 디제이 아빠를 둔 호기심 많고 똑똑한 다섯 살배기 아들 로비가 유괴된다. 유괴범은 아이에게 ‘기드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면서 이 일은 신의 뜻이고,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후 두 사람은 희생자와 포식자로서 예측할 수 없고 정상적인 감각조차 잃어버린 기묘한 유대와 공생을 시작한다.

오츠는 섬뜩하리만큼 현실적이고 위선적인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대디 러브’를 통해 다시 한번 악인의 내면에 자리한 파멸적인 욕구를 특유의 건조하고 차가운 문체로 그려낸다. 또한 사악한 억류자 밑에서 분열하고 타락해가는 아이를 통해 인간이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어떤 방식으로 타협하는지, 그저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의 진정성을 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울하고도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네 어리석은 불확실성을 네 자식이 알아선 안 돼.

네 면도날 같은 갑작스러운 자기 혐오감을 네 자식이 알아선 안 돼.

다이너는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좋은 엄마란더 긍정적으로생각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인 것을.)

 

엄마 노릇을 하면서 말로 다 못 할 것을 많이 알게 됐다.

 

이건 게임이지만 완전히 게임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바보 같은 이 게임을 너무 대단하게 만든 바람에 로비가 차를 못 찾았다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낙심할까봐 걱정스러웠다. 두뇌 활동이 활발한 아이의 단점은,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이기는 해도. 또 실패했다는 게 다섯 살 아이의 자기 평가가 되어서는 곤란했다.

 

초조해하지 마, 아들! 엄마가 장담하는데 차는 잃어버리지 않았어.” […]

아이들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이런 초조감을 느낀다. 아무도 명확히 말할 수 없는 상태인 잃어버림은 수수께끼다. 영혼 깊은 곳의 잃어버림은.

 

다이너는 아들에게는 고사하고 남편에게도 지쳤다고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지쳤다는 건 은근히 수치스럽고 경계되고 실망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녀는 지쳤다는 것을 약점이라고 믿었다. 즐겁고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절대 지치지 않고 행복한 기운이 충만하다고.

 

위트는 그녀를 비웃을 것이다. 그는 그런 진부한 말을 비웃었다. 그는 자신에게는 없는 상대의 약점을 비웃었다.

 

“로비, 잠깐만. 제발 그만 잡아당겨! 차는 저기 있다고 했잖아.”

다이너는 미소지어야 했다. 아이는 어리지만, 세다.

하지만 어른은 항상 의식해야 한다, 아이가 어리다는 것을.

 

어린아이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럴 만한 결과가 생길 가능성이 많지 않다면. 어린아이들은 아주 많이 잊어버린다. 죽음, 소멸이란 개념이 없기에 아이들은 그런 가능성에 감정을 대입할 수가 없다.

 

두려움보다는 분노, 허연 뜨거운 분노 때문에 비명을 지른 기억.

 

아이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엄마는 손을 놔야 했다.

이것은 엄마로서 인생의 패배였다. 인간으로서 인생의 패배였다

 

나중에, 다른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더이상 엄마가 아니라 얼굴의 반이 훼손된, 불쌍하고 망가진 물건짝이 된 여기에는 시간이 없다.

 

행복했던 그 시절. 그때는고민들조차 즐거웠다. 지금은 다른 시간이다. 이제 그들의 사랑에 화려한 면은 없다. 이제 그들은 무모하지도 젊지도 않다. 엄마는 스물여덟 살이고 아빠는 서른네 살이다. 그들은 다시는 젊지 않을 것이다

 

로비를 찾았어?라고 물어보려고 했다.

위트는 그녀에게 아니, 아직은, 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위트가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날 사랑해? 그녀는 위트에게 물었다. 이 말은 퇴색해가는 아쉬움이 서린 주문이 되어버렸다.

 

엄마, ‘이 뭐야? 아주 아이답게 갸웃하며 물어서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아들에게 뽀뽀했다. 그리고 신은 우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영혼이라고 말했다. 신은 이 집에 있지만 눈에 띄진 않지.

 

옆에서 한 남자가 흐느끼면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나직이 말했다. ! 왜 아이를 거기 데려갔어. 왜 아이를 놓쳤어.

 

우리는 감히 태양을 들여다보지 못하니까요. 태양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니까요. 신자들을 위해서 해를 감수하는 사람이 바로 설교자입니다.

 

설교자는 위로하는 어투로 말했다. 부드럽게, 용서하는 어투로 말했다. 혹독하게 심판하지 않는 어투로 말했다. 죄를 아는 어투로 말했다.

 

여러분은 신이 디트로이트를 저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저버리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거주지도 저버리지 않았다.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 칼뱅은 말했다. 자연은 신을 감추었다가 드러내기도 하는 빛나는 천이라고.

 

두 사람은 헌금 362달러를 나누었다. 틴들 목사와 체스터 캐시로 알려진 설교자 둘이서.

 

그 부위를 전두엽이라고 한다. […]

하지만 그런 과학용어는 대디 러브에게는 무의미한 어휘일 뿐이었다. 그는 어떻게 어휘들이 순수하게 만들어지는지 알았다. 어휘의 주인이 인간들의 주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디 러브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우월한 사람은 평범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그럴 수 있다.

번쩍이는 보라색 스프레이 도색과 지붕에 세운 십자가는 밴을 눈에 띄지 않게 하는 수단이었다.

대디 러브는 과거에도 그런 전략들을 구사했다. 의지대로 눈에 띄지 않게 삶을 누리려면 세인의 관심을 끌 만한 산만한 일들을 만들어내야 했다.

 

목격자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볼 뿐,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한다.

 

웃지 않을 때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엄마의 사랑과 자부심으로 얼굴이환해지지않을 때면, 솔직히 지친 얼굴이었다.

 

대디 러브는 어느 정도는 매달리는 아이들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좋지 않았다. 설교자는 더 너그러웠다. 설교자는 인간의 나약함을 더 용서했다.

 

대디 러브는 마스크 부분을 열 때마다 아이의 얼굴이 핏기 없이, 생기 없이 처져 있을까봐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시체일까봐 두려웠다. 반쯤은 짜릿하게 떨리는 두려움!

 

복수의 화신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좋은 엄마, 사랑 많은 엄마가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땐 관심도 없더니 왜 이제 와서 이래요?

 

고통에 빠진 사람은 고통이 어떤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고통에 빠진 명랑한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다이너는 불행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을 배웠다.

 

결혼하는 남녀에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머너는 감정이 그 사람의 나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적당한 때 적당한 곳에. 그게 운명이라는 겁니다.

 

앞 못 보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늙은 개한테 느끼는 감정. 내 손으로 개를 죽일 수는 없지만, 길에서 다른 사람 차에 치여 죽는다면 상관없을 것 같은 느낌.

 

아이가 당연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요점이었다. 아이가 자기 목숨을, 숨쉬는 것을 당연시하지 못하게 할 것. 기드온은 대디 러브를 신뢰해야 했다. 사랑하는 자식이 사랑하는 아버지를 신뢰하듯 그렇게.

 

그리고 네 아빠는 널 많이 사랑한다.

은총이 뭔지 아니? 자격이 없는데 사랑받는 거란다. 신의 은총이지.

 

흥분감에 두려움이 묻어났고, 두려움에 흥분감이 묻어났다. 학교에서 시작된 흥분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기드온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대디 러브는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몇 킬로미터 나가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 단 아들이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는다면.

대디 러브의 사전에서는 모든 사람이 - 아들의 6학년 반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 낯선 사람들이었다. 아들에게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 기드온에게는 (아마도) 계획이 있었다.

아들은 현재 시제에 살았다. 아들은 그렇다였다.

기드온은 과거 시제에 살았다. 기드온은 그랬다였다.

다만 기드온은 아들보다 똑똑했다. 기드온은 아들보다 나이가 많고, 그래서 원하면 현재 시제와 미래 시제에 살 수 있었다.

아들은 금고 속에서 질식해서 죽었다. 아들은 살아나지 못했다.

아들은 살아났다. 하지만 벌레가 몸을 줄이고 꼬고 평편하게 해서 살아나는 것처럼 살아났다.

아들은 기드온이 아니었다.

아들은 대디 러브에게 말했다. , 아빠. 아빠를 사랑해요.

기드온은 대디 러브에게 말했다. , 아빠.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반항적인) 생각을 했다.

 

대디 러브가 내면에서는 두 사람인 것 같았다.

포옹하고 키스하고 먹여주고 달래주는 대디 러브가 있었고, 포옹과 키스로 끔찍하게도 고통을 주고 불길에 기름 붓듯 성질을 내는 대디 러브가 있었다.

보호해주는 대디 러브가 있었다.

훈육하는 대디 러브가 있었다.

 

기드온은 생각했다. 대디 러브는 날 가장 사랑해.

아들은 그것을 굳건하게 믿었다. 기드온 역시 믿었지만 그렇게 굳건하게는 아니었다.

 

아들은 잤다. 기드온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대디 러브는 아들을 데리러 버스터미널로 돌아올 것이다.

기드온 역시 의심은 없었다. 하지만 기드온은 불안했다.

 

아마 내가 거꾸로 된 괴물인가봐. 알렉스는 말했다. 하지만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모두 다 괴물이야. 기드온이 말했다. 알고보면 다 그래.

너는 아니야, 기드온. 내가 너라면 좋겠어.

진심이 가득한 말에 마음이 찡해서 기드온은 눈을 돌렸다.

하지만 넌 내가 될 수 없어. 대디 러브의 아들은 딱 한 명뿐이야.

 

로비가 떠나고 육 년, 대부분의 음식에선 두꺼운 판지를 씹는 것 같은 맛이 났다. 하지만 뇌가 워낙 길들여져 있어서, 한때 좋아했고 즐겁게 먹었던 음식을 보면 뇌에서 먹어!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판지 씹는 맛이 나리란 것을 다이너는 알았다.

이게 인간의 정신적 삶의 실상일까? 그녀가 인간 심리의 보잘것없는 진실을 꿰뚫어본 것일까?

기억들은 행복했던 과거를 되풀이하라고 우리를 들볶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제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그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건 당연했다. 절박한 이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절박하다는 증거다.

 

다이너는 이 젊은 엄마들에게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게 뭔지 말할 수 없었다. 로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을 떠올리려면 사진첩을 넘겨보고 스냅사진들을 불빛에 비춰봐야 한다고 털어놓을 수 없었다.

[…]

그것은 그녀의 무서운 비밀이었다. 그녀는 자격이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 다 실종된 아들이 돌아오면 치료될 수 있는 병 말고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정신과 의사는 죄책감의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그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즉 죄책감을 유발한 상황을 되돌리지 못한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왜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 때문에 슬퍼하고 그들 때문에 갈구하고 그들을 필요로 하지? 결국 그들과 떨어져서 혼자 죽을 거면서.

 

영혼의 핵심이라고 할 성적인 존재감은 아들이 유괴된 시점에서 지워져버렸다. 삶을 어느 정도 통제하던 개인으로서의 존재감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아빠라는 것, 남자라는 것, 위엄도 마찬가지였다. 포식자인 다른 존재에게 아들을 뺏겼으니.

 

인생에서 개인적인 재앙을 겪었던 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자 그가 대꾸했다. 그래요? 정말요? 그게 대체 뭘까요?

그러자 그녀가 대꾸했다. 사람들이 봐주기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의식하지 못하는 거죠.

[…]

진짜 단점은 이후의 삶을 - 모든 기분, 모든 하락세 - 모두 그 재앙 탓으로 돌리는 거죠. 다른 삶은 상상하지 못합니다. 딱 한 가지 삶만 있는 거예요. 전체를 제대로 보는 능력을 잃어버린 거죠.

이것이 사실이었다. 슬프고, 진부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심오했다. 진실이었다.

 

“우리가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실수예요, 엄마. 엄마가 우리를 창피해한대도 어쩔 수 없어요.”

난 너희가 창피하지 않다, 다이너! 너희를 사랑해.”

하지만 우리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요. 우리는 엄마가 필요 없어요,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는걸요.

 

다이너는 미소가 공격적이라고 생각했다. 미소는 반응을 요구하니까.

 

아들을 돌려받았으니 우린 정말 행복해.

그런데 무척 고단하구나. 매일, 매시간.

기다리는 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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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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