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1. 10. 18:12
대성당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저/김연수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리얼리즘의 대가’ ‘미국의 체호프’ 등으로 불리며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레이먼드 카버. 1960년 첫 단편 「분노의 계절」을 발표한 이후 1988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삼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소설집, 시집, 에세이 등 십여 권의 책을 펴냈다.

그러나 카버의 진면목은 무엇보다 단편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런 까닭에 전 세계 많은 젊은 소설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주저 없이 ‘레이먼드 카버’를 꼽는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카버의 팬을 자처하며, 그의 소설을 직접 번역해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다.

『대성당』은 단편작가로서 절정기에 올라 있던 레이먼드 카버의 문학적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표제작 「대성당」을 비롯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깃털들」 등 총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작품집은, 평단과 독자의 지지를 동시에 얻으며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후보에도 올랐다.

 

 

깃털들

 

몇 그루의 나무 너머, 진입로가 끝나는 곳에 포치를 갖춘 집 한 채가 있었다. 굴뚝이 딸린 집이었다. 그러나 여름이었으므로, 물론 당연하게도, 연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 참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고 프랜에게 그렇게 말했다.

깡촌이네.” 그녀가 말했다.

 

그 저녁에 내게는 소원 하나가 생겼다. 식탁에 앉아서 나는 잠시 두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했다. 소원이란 그날 저녁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것, 혹은 다시 말해 그날 저녁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소원은 실제로 이뤄졌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내게는 불행이었다. 하지만, 물론, 당시에는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 사이다. 그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말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신경쓰게 됐다. 그가 그 사실을 느낀다는 것도, 그런 게 달라지기를 원한다는 것도 나는 안다. 나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 출산

 

셰프의 집

 

나는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부르기 쉬운 이름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이름을 불러왔다. 나는 한번 더 이름을 불러봤다. 이번에는 소리 내어 불렀다. 웨스, 라고 내가 말했다.

그가 눈을 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는 그대로 가만히 앉아서 창문을 바라봤다. 뚱땡이 린다, 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녀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미했다. 그저 이름일 뿐, 웨스는 일어나 커튼을 쳤고 바다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러 갔다. 아이스박스에는 아직 물고기가 몇 마리 남아 있었다. 다른 건 별로 없었다. 오늘밤에 다 먹어치워야겠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 알코올 중독

 

보존

 

석 달 전, 해고된 뒤로 샌디의 남편은 늘 소파에 앉아 있었다. […]

소파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샌디는 생각했다. 그는 거실에서 살고 있다고.

 

거실에서 그녀는 큰 의자에, 그는 소파에 앉아서 두 사람은 그날 그녀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각자 컵을 들고 커피를 마셨다. 꼭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그녀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한 번을 빼고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 실업

 

칸막이 객실

 

그때 갑자기 자신은 아이가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에게 들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달은 그는 충격을 받았고, 잠시 그 비열함에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차창 밖 시골 풍경이 점점 더 빨리 스쳐가기 시작했다. 한순간, 마이어스는 그 풍경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조만간 그는 알게 되리라.

 

* 이혼 - 가족 유대감 부재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의 가슴속까지도 느끼는 듯했다. 마치 걱정을 많이 하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이 투명해진 사람들처럼.

 

당신은 집에 다녀와. 내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

얼마간이라도 말을 하거나 자기 근심을 나눠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잠시 혼자 있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그녀는 이해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써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 상실감(아이) - 위로

 

비타민

 

꿈은 꾸잖아!” 패티가 말했다.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꿈을 꾸지 않으면 미쳐버려. 책에 그렇게 나와. 그건 배출구라고. 사람들은 잠잘 때마다 모두 꿈을 꿔. 꿈을 안 꾸면 돌아버려. 그런데 나는 꿈이랍시고 꾸는 게 비타민뿐이란 말이야 .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어?” 그녀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었다.

 

왜 깨우지 않은 거야, 젠장!” […]

그녀는 몹시 화를 냈다. 그녀는 옷을 입은 채 문간에 서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바로 일하러 가려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샘플이 담긴 가방도, 비타민도 없었다. 그녀는 악몽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 불륜

 

신경써서

 

밤중에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가 베개에 가해지는 머리통의 무게 때문에 귓속의 어두운 관들을 귀지가 다시 막아버리게 된다면? 아침에 깼는데 귀는 들리지 않고 천장은 머리 위 몇 인치까지 내려와 있는 것 같다면?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한낮에 소파에 앉아서 잠잔다고 해서 그게 몇 시간이고 등에 바닥에 대고 자야만 하는 사람보다 더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려고 머리를 숙였다. 햇살의 각도로 볼 때, 그리고 방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로 볼 때 세시쯤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 알코올 중독 - 듣고 싶지 않으나 들리지 않을까 두렵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

 

곧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는데, 그 일을 막고 싶다. 나는 외면하고 싶고,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나는 두 눈을 감고 그게 지나가도록, 다름 사람에게 넘어가도록 내버려둔다. J. P.는 얼마간 기다려준다.

 

그는 열두 살 때 자신이 자란 농장 근처에 있던 우물에 빠진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

그 우물 바닥에 있는 그에게 삶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다가왔다.

 

만사형통이었지.” 그가 말한다. “원하는 것을 다 가졌으니까. 사랑스러운 처자식에다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 낸들 알겠는가,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 술버릇이 점점 세진다.

 

저 사람 옆에 있으면 나는 벌레가 된 것 같아.” J. P.가 말했다. “저 사람은 날 벌레가 된 것처럼 만들어.”

 

이 측은한 녀석은 오늘밤에 집에 있을 생각이었다. 가운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TV를 보며 아내의 손을 잡고 있을 생각이었다. 이제는 떠나는 걸 두려워한다.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발작은 또다른 발작을 준비하란 뜻이다. 그 일이 일어난 뒤로 타이니는 자신에 대한 너절한 이야기를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는 늘 조용하게 자신속에만 갇혀 있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본 뒤,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솔직히 그녀하고는 할말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아마 집에 앉아서 그녀는 내가 본 것과 똑 같은 TV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녀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혹시 뭔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나는 알고 싶지 않다.

 

* 알코올치료센터

 

기차

 

아가씨, 모르긴 해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겠지. 틀림없이 그럴 거야. 얼굴에 다 쓰여 있는걸. 그렇지만 말하고 싶진 않은 거지. 그럼 그렇게 해. 말하지 마. 말하는 건 우리가 할 테니까. 하지만 아가씨도 나이가 들겠지. 그때가 되면 아가씨도 뭔가 할말이 생길 거야. 내 나이가 되면 그렇게 될 거야.” […] “그럴 리가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고 말지. 이때다 싶을 때가 되면 다 찾아오게 돼 있다구. 지금이야 애써 찾아나서지 않아도 괜찮아. 싫어도 결국 그런 때가 올 테니까.”

 

 

애정이 필요할 때는 겁내지 말고 얘기해야 하는 거야.

 

암시가 가장 중요한 거야.” 그는 수 콜빈의 손을 가볍게 잡고 붓질을 이끌며 말했다. “의도가 보이면 그건 그림을 잘못 그린 거야. 알겠니?”

 

병이란 당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뭔가 알려주려는 메시지야. […] 일이 지나간 뒤에야, 나중에야 그걸 읽을 수 있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나는 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칼라일 씨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말해야만 하는 거라우. 게다가, 나도 듣고 싶어요. 다 말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나한테도 있었던 일이니까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 사랑이라는 거. 바로 그 얘기 말이우.”

 

칼라일은 하려던 이야기를 다 했으므로, 그는 말을 멈췄다.

좋아요. 잘했어요.”

이젠 모든 게 잘 매듭지어졌어요. 그 사람도 마찬가지구요. 부인도 말이죠. 그리고 잊지 마세요. 모든 게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걸.”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뭔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 이혼 - 이별에 대한 마침표

 

굴레

 

이렇게 말할 거예요. ‘꿈이란 말이죠, 깨라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말할 거예요.”

누가 물으면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하지만 이젠 그렇게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굴레라고 나는 말한다. 나는 그걸 창 쪽으로 들고 가 밝은 빛에서 바라본다. 멋질 수가 없는, 검은 가죽의 낡은 말굴레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부분을 재갈이라고 부른다. 강철로 만들었다. 말의 머리 뒤로 고삐를 넘겨 목 부위에서 손가락에 낀다. 말에 탄 사람이 그 고삐를 이리저리 잡아 당기면 말은 방향을 바꾼다. 간단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 사이에 이런 걸 차게 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되리라. 재갈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 때가 그때라는 걸. 지금은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대성당

 

나는 대개 가만히 듣기만 했다. 가끔씩 나도 끼어들었다. 내가 방을 떠났으리라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게 싫었고 내가 소외됐다고 아내가 생각하는 것도 싫었다.

 

이 사람아, 다 괜찮네.” 그 맹인이 말했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누가 대성당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지 개념이 잡히느냐는 거죠. 말하자면 대성당이 침례교회 건물과 어떻게 다른지 아시느냐는 거죠.”

그는 입 밖으로 연기를 조금씩 내뿜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오십 년이나 백 년 동안 일해야 대성당 하나를 짓는다는 건 알겠어.” 그가 말했다. “물론 저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거야. 한 집안이 대대로 대성당 하나에 매달린다는 것도 알겠어. 이것도 방금 저 사람에게 들은 거고. 대성당을 짓는 데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그 직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더군. 그런 식이라면 이보게. 우리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Posted by 밑줄긋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