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2020. 1. 15. 16:32
올리브 키터리지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권상미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세 편의 단편에 담아낸 연작소설이다. “퉁명스럽고 허점이 많으면서도 매혹적인 인물 올리브가 있고, 독자의 정서에 진하게 호소하는 세련된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200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인생에 대한 가슴 시리도록 절절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에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며 차갑고 강인한 여인 올리브를 축으로 마을의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대양을 닮은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좋은 남자 헨리(「약국」), 떠나간 옛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를 붙들고 살다 오랜만에 해후한 옛 연인을 통해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 거라”는 깨달음을 얻는 앤절라(「피아노 연주자」), 와병 중이던 남편을 잃고 장례식을 치르다 병이 나으면 함께 가자며 남편과 꿈에 부풀어 준비했던 여행 바구니를 보며 자신을 책망하는 말린(「여행 바구니」) 등 저마다 삶이 남긴 생채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약국

 

오래된 약국은 그 자체로 꾸준하고 믿음직한 사람 같았다.

 

아직 어린 그녀의 인생에서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행복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 천주교 신자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 천주교에서는 뭐든 내 탓이라고 가르치니까.

 

“저는 여성 해방 따윈 관심 없어요.” 데니즈가 헨리에게 말했다. “저는 집을 갖고, 침대를 정돈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렇지만 헨리 키터리지에게 딸이 있다면(그는 딸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생각에 대해 주의를 주었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좋아, 침대를 정돈하렴. 하지만 머리를 쓸 방법을 찾아야지. 하지만 데니즈는 그의 딸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가사를 돌보는 것도 고귀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피붙이가 아닌 사람을 보살필 때 느끼는 자유로움이 어떤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신은 애를 매일 보면서 아무것도 몰라. ‘평범한 제인하고 당신의 작은 세계에서 아주 편안하거든.”

 

사람은 익숙해지지 않으면서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지.

 

봄이 왔다. 낮이 길어지고 남은 눈이 녹아 도로가 질척했다. 개나리가 활짝 피어 쌀쌀한 공기에 노란 구름을 보태고, 진달래가 세상에 진홍빛 고개를 내밀었다. 헨리는 모든 것을 데니즈의 눈을 통해 그려보았고, 그녀에게는 아름다움이 폭력이리라 생각했다.

 

남편의 죽음으로 데니즈가 소녀성(少女性)의 죽음까지 절감하게 되었다. […]  데니즈라는 소녀는 사라지고 이제는 혼란스러운 젊은 미망인만 남았다.

 

그녀는 예전의 소녀가 아니라 - 소녀로 머무는 소녀는 없다 - 어머니였고, 고단했다. 둥글던 뺨은 배가 부풀면서 동시에 꺼져버려 그녀를 짓누르는 삶의 중력이 벌써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아버진 왜 다들 결혼을 못 시켜서 안달이에요?” 헨리가 아들의 인생에 대해 다그쳐 묻자 크리스토퍼가 화가 나서 응수했다. “왜 사람들을 혼자 내버려두질 못해요?”

헨리는 사람들이 혼자 있는 걸 원치 않았다.

 

“경험이란 그런 거죠. 삶의 우선순위가 한꺼번에 정리되고, 그후론 제 가족에게 깊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

“그리고 제겐 둘 다 있으니 얼마나 축복이에요.”

 

베개에 얼굴을 묻고 통곡한 후에야 헨리는 올리브가 짐 오케이시를 사랑했으며, 어쩌면 짐도 그녀를 사랑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는 한 번도 올리브에게 묻지 않았고, 그녀도 헨리에게 말하지 않았다. 데니즈를 향한 아프도록 절실한 감정에 대해 그가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처럼.

 

방금 데니즈의 카드에 대해, 데니즈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해한다는 사실에 대해 느낀 안도감이 갑자기, 묘하게도 뭔가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변한다.

 

 

밀물

 

구슬픈 무지(無知)가 악의 없는 하얀 꽃잎 속에 숨겨져 있는 듯했다.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많지.” 골드스타인 박사가 자신의 희끗한 턱수염을 긁으며 말하더니, 가슴에 떨어진 비듬을 뻔뻔하게 털어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집은 있어.”

 

“상태와 특성의 차이지.” 골드스타인 박사가 말했다. “특성은 변하지 않아. 정신의 상태는 변하지만.”

 

“왜 그런 옛말 있잖니.” 키터리지 선생이 말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병자요, 심장 전문의들은 심장이 굳었고……”

케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아과 의사들은요?”

폭군이지.”

 

“내가 그런 유전자를 아이한테 물려주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케빈이 살짝 눈을 부라렸다. 유전자, DNA, RNA, 6번 염색체, 도파민, 세로토닌 따위. 그런 데는 흥미를 잃었다. 아니, 유전이라니, 배신을 당한 것처럼 분노가 치밀었다.

 

세상은 언제나 슬프게 돌아간다. 그리고 새 시대의 여명은 언제나 있다.

 

하지만 어디나 그랬듯, 변화는 언제나 똑같이 희망을 주었지만 - 댈러스의 흰 고층 유리 건물들도, 삼차선 길이 독특했던 하이드 파크나, 아파트 뒤쪽의 나무 계단이 특히 맘에 들었던 시카고도, 아름다운 집과 완벽한 잔디밭이 그림책 같던 웨스트 하트퍼드의 주택가도 - 새로운 곳들은 모두 언젠가는 케빈에게 이렇게 저렇게, 사실은 그가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확신만을 안겨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내면의 공포가 증폭된 나머지, 케빈은 영혼이 조여오는 기분을 느꼈다.

 

어렸을 때 살던 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지금 차 안에 앉아 생각해봐도 그 집에서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집에 대한 불행함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은 옛 사랑의 달콤함(오랫동안 질질 끌었던 클라라와의 지저분한 과거사와는 너무도 다른)처럼 느껴졌다. 어떤 사랑도 그곳에 대한 내면의 욕구, 그 갈망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바람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데가 있지. 선교(船橋)가 떠내려갈 걱정만 없으면 말야.

 

희망은 마음의 암이었다. 그는 희망을 원치 않았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 옛날 여왕처럼 줄넘기를 하던 소녀, 지금은 바다에 빠진 젖은 머리의 여인이 두 사람의 구조만을 바라며 바다의 힘만큼이나 격렬하게 그를 붙잡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 미친, 이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하는지.

 

 

피아노 연주자

 

소파에 늘어져 있거나,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쑥 빼고 있거나, 바 안쪽으로 몸을 기대고 앉은 사람들의 말소리는 마치 피아노 선율에 맞춘 듯해서, 피아노 소리는배경음악이라기보다 어엿한 등장인물 같았다. 달리 말하면, 메인 주 크로스비의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칵테일 음악과 앤지 오미라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앤지의 무대공포증에 대한 조의 생각은 맞았다. […]

가장 무서운 순간은 사람들이 정말로 귀를 기울이는 처음 몇 소절이었다. 피아노 선율로 실내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 책임감 때문에 두려웠다.  

 

그녀는 남들의 주의를 끄는 걸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건 피아노를 치는 일뿐이었다.

 

“저렇게 한심한 인생이 있나.” 맬컴이 월터에 대해 앤지에게 말했다. “매일 밤 저기 죽치고 앉아 술에 떡이 되기나 하고.”

앤지는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소릴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자주는 아니지만 앤지는 사람들이 맬컴 때문에 그녀의 인생을 한심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주를 마쳤을 때, 앤지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저질렀다. 나중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새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을 계획했던가 생각했다. 맬컴이나는 항상 당신 생각뿐이야라는 말을 언제부터 하지 않게 되었는지 결코 돌이켜보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는 공중전화로 가서 맬컴의 번호를 돌렸다. 번호는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십이 년 동안 단 한 번도 그의 집에 전화를 건 적은 없었다. 이십이 년이면, 그녀는 신호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오랜 시간이라고 생각할걸. 그러나 앤지에게 시간은 하늘만큼이나 크고 둥글었고, 시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바로 음악과 신을, 왜 바다가 깊은지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앤지는 오래전부터 그러지 않는 방법을 알았다.

 

그녀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색색의 전구들이 몹시도 밝았다. 잠시 그녀는 사람들이 나무에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나무를 그렇게 번쩍거리도록 장식한다는 게 당혹스러웠다. 사람들은 이런 장식을 일 년 내내 기다린다. 그리고 몇 주만 지나면 나무는 장식이 모두 벗겨진 채 버려져 은색 술을 매달고 길가에 굴러다닐 거라 생각하자 다시 얼굴이 훅, 붉어졌다. 눈 더미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지고 쓰러진 채, 잘려진 줄기가 어색한 각도로 공중을 찌른 모양새일 나무가 얼마나 안쓰러울지 상상할 수 있었다.

 

“안녕, 앤지.” 이제 그는 한 번 더 돌아보고 싶은 남자가 아니었다. […]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의 어떤 감정이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감정이 찾아오면서 그 감정은 결국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조그맣게 찌그러들어 크리스마스트리의 은색 술 장식처럼 마음 한구석에 매달려 있었다.

 

이 나이에 수십 년 동안 그녀를 동정해왔노라 꼭 말을 해야 했다면 낙심한 인생이라는 걸 그녀는 이해했다. 보스턴을 향해, 함께 아이 셋을 낳아 기른 아내를 향해 해안을 따라 운전해 내려가면서, 오늘 그녀를 지켜본 그가 어떤 만족감을 느끼리라는 걸 앤지는 알았고,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이런 위안을 필요로 하리라는 걸 알았다. 맬컴이 월터 돌턴을 한심한 호모라고 부르면서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이런 자양분은 묽은 우유와 같다. 그런다고 해서 연주회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부동산 변호사가 된 사실이나, 결혼하여 삼십 년을 함께 산 여자가 잠자리에서 당신을 전혀 사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작은 기쁨

 

배에서 다이빙하여 선창까지 수월하게 헤엄쳐 가는 여인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어떤 이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이들은 할 수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듯이.

 

울음은 올리브의 감정과 거리가 멀었다.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예전에 한 번 그랬듯이, 뒤에서 주먹으로 한 대 맞기라도 한 듯 심장이 다시 콱 닫히고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신부가 크리스토퍼를 바라보며 정말 그를 안다는 듯이 방긋 웃을 때도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큰 기쁨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었어. […]

크리스토퍼가 뭐라고 말을 했을까? 크리스토퍼가 무엇을 기억했던 걸까? 사람은 앞으로만 움직일 수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은 앞으로만 움직여야 해.

 

그녀가 운동을 안 하는 것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하늘을 찌를 듯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핑계일 뿐이다. 실로 사위어가는 것은 그녀의 영혼임을 숨기는 핑계일 뿐이다.

 

사실 닥터 수가 올리브 가까이에서 살 거라면, 수잔이 스스로에 대해 계속 의구심을 갖도록 올리브가 이것 조금, 저것 조금을 가져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니까.

 

 

굶주림

 

“아, 나는 젊은 사람들이 참 좋아.” 하먼이 말했다. “사람들한테 욕을 많이 먹긴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게 젊은 세대의 일인 양 말하지. 하지만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니야, 안 그래? 젊은이들은 희망차고 착해. 그래야 하고 말이지.”

 

“여보, 나는 이제 그 짓은 끝난 거 같아요.”

그들은 그렇게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보니의 이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깨닫자 끔찍하면서도 공허한 마음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를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상실을 즉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윈 타워 폭파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그도 이에 관해 뭔가 견해가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어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언제부터 사물에 대해 의견을 갖지 않게 되었던가?

 

수년 만에 처음으로 하먼은 신에 대해 생각했다. 구석진 선반에 처박아두었다가 이제 새로운 눈으로 다시 꺼내보는 돼지 저금통처럼. 그는 아이들이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그 엑스터시라는 마약을 할 때의 기분이 바로 이렇겠구나, 생각했다.

 

사랑 없는 삶이 두려운 것이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이거 하나만 대답해봐. 자네, 어머니를 미워하나?”

아뇨.” 니나의 대답이었다. “, 우리 엄마는 한심한 데가 있지만 미워하진 않아요.”

그럼 됐어.” 올리브가 그 큰 덩치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럼 된 거야. 그게 시작이니까.”

 

니나가 울기 시작하고, 데이지가 결국 니나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오후에 찾아와 니나를 데려가되 다시 입원시키지는 않기로 약속했던 그 순간, 따스한 전기랄까, 눈부시고 초자연적인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던 까닭이다.

 

인생은 뼈와 마찬가지로 서로 얽혀 직조되며 어긋난 뼈는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길

 

기쁨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다,

 

“말도 안 돼. 두 남자가 마약을 구하려고 병원에 그렇게 들이닥쳤다는 게.” […]

세상에 말이 되는 일이 얼마나 된다고.

 

올리브가 지금처럼 지긋지긋해하는 싸움도 많았다. 하지만 결혼 후 어느 시기가 되면, 어떤 종류의 싸움은 더는 하지 않게 된다고, 그 이유는 지나온 날이 남아 있는 날들보다 더 많아진 시점에서는 사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올리브는 생각했다.

 

“올리, 그거 알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고단했고, 눈 주위 피부는 붉었다. “결혼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사는 동안, 당신은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는 거 같아. 무슨 일에도.”

이내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얼굴이 불타는 듯했다. “, 미안. 미안. 미안해.” 그녀가 머리 위에 꽂혀 있던 선글라스를 빼내어 쓰며 말했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뜻이야?” 그녀가 물었다. “젠장, 도대체 뭐가 괴로운 거야? 이게 다 무슨 소린데? 사과? 좋아, 그렇담 미안해. 이렇게 지랄맞은 마누라라서 진짜 미안해.”

 

인생은 어떤 길을 따라, 그 길을 타고 가는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크리스토퍼의 집이 지어지기 전부터 수십 년 동안 쿡스 코너에서부터 테일러네 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것처럼. 그 뒤부터는 그 자리에 아들 집이 있었고, 크리스토퍼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아들은 이제 거기 없었다. 다른 길. 이제는 그 다른 길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정신은, 혹은 마음은, 둘 중 어느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요즘 좀 느려서 보조를 맞추지 못했고, 그녀는 점점 더 빨리 도는 공 위에 올라가려는 뚱뚱한 들쥐가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공을 네 발로 긁을 뿐 그 위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우리는 둘 다 겁에 질려 있었어.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을 상황이었다고. 우리가 어떤 말들을 한 건 맞지만 시간이 지나면 극복할 거야.” 하지만 그는 일어서서 고개를 돌리고 바다를 내려다보았고, 올리브는 남편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기에 그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밤을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 앤드리아 비버가 위기로 생각한 - 화장실 인질 사태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은 그 말들 때문에 그 밤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겨울 음악회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사람들의 삶이 어떻든(그들이 지금 지나치는 이 집들 가운데에는 근심스러운 고민도 있으리란 걸 제인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삶이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축하할 일임을 알기에 그들은 이맘때를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제인은 심장발작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죽게 될까봐 걱정했다. […] 수년 전에, 그런 일을 목격했다. 한 남자가 노상에서 죽은 것이다. 구급 의료진이 남자의 웃옷을 찢었는데, 조금만 집중해서 생각하면 지금도 그녀를 울게 만들 광경이었다. 배가 드러난 사내의 활짝 벌린 팔이 축 늘어져 있던 것, 아무것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누운 모습. 죽어서 누워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애잔하고 가련한 일인가, 제인은 생각했다.

 

행운이야. 제인은 벙어리장갑을 낀 손을 가볍게 그의 다리에 얹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누군가를 수십 년 동안 알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자기는 위험을 감수하는 스타일이 아니지?” […]

“아니지.” 제인은 동의하면서도 어렴풋이 모욕당한 기분이 들었고, 밥이 자신의 팔꿈치를 살짝 잡자 남편도 이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걸 느꼈다.

 

제인은 조용히 깊은 숨을 한 번 내쉬고, 불현듯 아이스크림 가게의 어린 소녀들이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디를 건네는 여종업원의 지루한 눈빛 뒤에 엄청난 열망과, 엄청난 욕망과, 엄청난 낙심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런 혼란이, 그리고 (그들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분노가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 그들은 무엇이든 끝나기도 전에 책망하고, 책망하고, 또 책망하곤 또다시 지쳐버릴 것이다.

 

제인은 남편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가 당신 곁에 있어요.” 제인이 남편의 얼굴에 손바닥을 대며 말했다. 서로를 빼면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기에. 그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어쩐단 말인가?

 

 

튤립

 

“올리브, 콩으로 만든 보조제도 있어요. 에스트로겐 대체 요법에 믿음이 안 가신다면요.”

올리브는 생각했다. 믿음? 나는 남의 일에 참견 안 하는 게 옳다고 믿거든?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은 누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정확히 안다.

 

그녀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과 있는 건 더 싫었다.

 

크리스토퍼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했다. “내가 뭘 도와줄까, 크리스토퍼?” 그녀는 이렇게 물었지만 그 뜻은 이랬다. 날 위해 뭘 좀 해다오! “내가 비행기 타고 너한테 갈까?”

아뇨.” 아들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전 잘 지내요.”

 

“자네 참 예쁘군.” […]

마치 예뻐지고 싶어했던 젊은 시절의 루이즈의 노력이, 염색한 금발과 짙은 분홍 립스틱, 수다스러움과 조심스럽게 맞춰 입었던 옷차림, 비즈와 팔찌와 좋은 구두 등(올리브는 기억하고 있었다)이 외려 루이즈의 본질을 가리고 있었던 듯했다. 슬픔과 고립으로 이런 것들이 다 벗겨지고, 아마도 약에 잔뜩 취해 있으니,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얼굴과 더불어 연약함 속에서 루이즈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 루이즈가 말했다. “그 사람의 처세술이라고나 할까.” 루이즈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지이이인실은.” 그녀가 과장되게 길게 발음하며 말했다. “심장이 한 시간에 두 번밖에 안 뛰는 사람이야.”

올리브는 무릎에 핸드백을 올려놓은 채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차디찬 사람이지. 으으으, 추워. 하지만 그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다들 엄마를 비난하거든, 알잖아.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모든 일에 대해서 엄마를 탓하지.”

 

“남자들은 목성에 가서 바보가 되고, 여자들은 학교에 가서 똑똑이가 된다네.”

 

“아하.” 루이즈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내 꼬락서니를 보고 위안을 얻으려고 왔구나. 근데 그게 잘 안 됐고.” 그녀가 노래하듯 덧붙였다. “미이이이안.”

 

“네, 알아요. 이런 날은 힘들죠. 해 뜨기가 무섭게 해질 녘이니.”

메리가 올리브를 위해 문을 잡아주어 올리브가 메리 앞으로 지나갔다. “고마워요.” 올리브가 말했다. 한 번 더 확인하려고 메리를 슬쩍 건너다봤지만, 메리는 그저 피곤하고 싸울 의사가 없는 표정이었고, 아직 연민의 잔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어떤 간단하고 정직한 표시가 그려진 종잇장 같았다.

내가 저 여자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올리브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는 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이런 날들은 기억할 수 있었다. 중년의 그들, 전성기의 그들. 그들은 그 순간을 조용히 기뻐할 줄 알았을까? 필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브는 지금은 그 추억을 건강하고 순수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축구장에서의 그 순간들이 올리브가 지녔던 가장 순수한 추억들인지도 모른다. 순수하지 않은 다른 추억들도 있었으니까.

 

 

여행 바구니

 

“참 좋은 여잔데. 이건 옳지 않아.”

뼈대가 굵고 몰리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올리브 키터리지는 핸드백 안을 뒤져 선글라스를 꺼내 쓰더니, 선글라스를 쓰고 난 다음엔 눈을 가늘게 뜨고 몰리 콜린스를 바라본다. 그 말이 너무나 멍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이 어떻게든 옳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가정이라니, 멍청하다. 하지만 결국 대답한다. “좋은 여자지, 그건 사실이야.” 고개를 돌려 커뮤니티 센터 부근의 싹이 움튼 개나리를 건너다보며 올리브가 대꾸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올리브는 기분이 묘하다. 질투심? 아니, 남편을 잃은 여인에게 질투를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느낌, 그래 그런 기분이었다. 통통하고 천성이 친절한 여인이 아이들과 사촌, 친구들에 둘러싸여 소파에 앉아 있다. 그런 여인은 올리브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다. 올리브는 이 감정이 가져오는 낙심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 올리브는 생각한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올리브는 깊은 숨을 내쉬며 나무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도 하니까.

 

올리브는 매일 차를 몰고 가서 그의 곁을 지킨다. 당신은 성녀야, 몰리 콜린스는 그렇게 말했다. 맙소사, 멍청한 여자 같으니. 그녀는 삶이 두려운 늙은 여자일 뿐이다. 요즘 올리브가 아는 거라곤 해가 떨어지면 잘 시간이라는 사실뿐이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그 말. 올리브는 확신하지 못한다.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올리브는 생각한다.

 

“떠나시기 전에, 위층 침실에 가주실 수 있을까요? 계단 꼭대기에서 오른쪽에 있는 방이에요. 벽장에 보시면 팸플릿이, 여러 여행지의 안내 책자가 있거든요. 그것 좀 갖고 가주실래요? 그냥 갖고 가셔서 다 버려주세요. 책자가 든 바구니도요.”

[…]

올리브. 그냥, 우리 둘이 앉아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거라고 공상을 했거든요.

[…]

“이런, 세상에, 올리브. 너무 창피해요.” 그리고 정말인 듯, 두 뺨이 진홍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새빨개진다.

창피할 것 없어.” 올리브가 말린에게 말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기 마련이거든.” 올리브는 까짓것, 말린이 듣고 싶기만 하다면 자기가 죽이고 싶은 여러 사람에 대해 말해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말린이 말한다. “아뇨, 그거 말고요. 그거 말고. 그 사람하고 앉아서 그런 여행을 계획했다는 게요.” 말린이 이미 너덜너덜한 화장지를 잡아 뜯었다. “세상에 참, 올리브. 우린 거의 믿었어요. 그 사람은 계속 여위고 몸이 그렇게 약해지면서도 말했어요. ‘말린, 우리 여행 바구니 좀 가져와봐.’ 그럼 전 가져가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요, 올리브.”

순수한 영혼, 올리브는 이 여인을 보며 생각한다. 정말로 순수한 사람. 이제는 이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여행 바구니가 없는 이가 누구랴. 이건 옳지 않다. 몰리 콜린스가 오늘 교회 옆에 서서 그 말을 했다. 옳지 않아. 그래, 맞는 말이다. 옳지 않다.

 

저 아래에서 물수제비 뜨기에 여념이 없던 에디 주니어를 생각한다. 그 느낌을 올리브는 다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돌멩이를 집어서 힘을 조절하여 바다에 던질 여력이 있는 젊음을. 아직 그 짓을 할 만한, 망할 돌멩이를 던질 힘이 있는 젊음을.

 

 

병 속의 배

 

“매일 뭘 할지 계획을 세워야지.” 애니타 하우드가 싱크대를 닦으면서 말했다. “줄리, 농담 아니다. 바로 그 때문에 감옥과 군대에서 사람들이 미치는 거야.”

 

“할아버지하고 내 아버지 때문이야.” […]

“엄마는 둘 모두를 그리워하거든.” […]

“그건 오래전 얘기잖아.” […]

“상관없어.” 줄리는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은 멈추지 않거든.”

 

“네가 이 집에서 진짜로 나가게 되면, 모두가 이렇게 살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마라. 배고픔을 두려워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얼간이가 될 뿐이다.”

 

카일 삼촌이 언젠가 자기가 타고 있던 기차에 십대 소녀가 치여 죽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경찰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삼촌은 기차 창밖을 바라보면서 여자아이의 부모를 생각했다고, 기차에 앉아 있는 제삼자인 자신도 아는데 저 아이의 부모는 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집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설거지를 하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던 그때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불안

 

삶에 대한 탐욕.

 

우리는 브루클린 중에서도 쿨한 동네에 산다구요. 신을 믿기엔 사람들이 너무 고상하거나 돈 버느라 너무 바쁜, 더럽게 쿨한 곳이라고요.

 

책은 표지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지만, 올리브는 언제나 얼굴에 많은 것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젖소 같은 느낌은 당혹스러웠다. 앤은 정말 좀 맹한 걸까? 올리브는 교직에 오래 몸담았던 터라 자신감이 크게 부족하면 겉보기에 멍청해 보인다는 걸 알았다.

 

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담배 피우는 앤을 바라보며 생각하건대, 그런 안정감을 갖는 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아이가 필요했다면 사랑으로는 불충분했던 게 아닐까?

 

“나랑 도망치자고 하면 하겠어?” 사무실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데 그가 조용히 물었다.

.”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는 점심 때 늘 즐기던 사과를 먹으며 올리브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밤 집에 가서 헨리한테 말하겠어?”

.” 올리브가 말했다. 마치 살인 계획을 세우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러자고 안 한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군.”

.”

두 사람은 한 번도 키스하거나 서로를 만진 적이 없었다. 도서관 옆의 조그만 칸막이 사무실로 각자 들어가면서 가까이에서 나란히 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날 그 말을 한 후로, 올리브는 어떤 공포심과 때때로 참기 힘든 열망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힘들어도 참는 법.

 

올리브는 아들과 같이 있었고, 아들이 그녀를 필요로 했다.

그것은 정체가 무엇이든, 앤의 뺨에 있는 붉은 반점처럼 특별히 해롭지 않은 듯 오래전에 시작되어 아래로 아래로 점점 더 벌어져 아들과 그녀를 갈라놓은 균열이 치유될 수도 있었다. 흉터는 남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흉터가 남아도 살아간다. 이제 올리브는 아들과 더불어 살아갈 터이다.

 

“치료 모임이었어요.” 앤이 말했다. “책임감을 배우고 책임을 인정하는 거 있잖아요.”

글쎄, 올리브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는 말했다. “크리스토퍼는 여자를 잘못 만났어, 그뿐이야.”

하지만 문제는예요.” 앤이 아기를 고쳐 안으며 열정적으로 말했다. “어떤 일을 왜 하는지를 알면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게 되지요.”

 

“불안감은 분노예요, 어머니.”

 

엄마? 뭐가 더 싫었는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그 남자한테 빠져서 내 편을 들었던 게 더 싫었는지, 아님 엄마가 날 볶기 시작한 게 더 싫었는지.”

 

 

범죄자

 

엄마는 널 포기했어. 내가 법정에 갔거든. 나한테단독 친권(sole custody)’이 있어.

오랫동안, 레베카는단독(sole)’의 철자가 s, o, u, l(영혼)인 줄 알았다.

 

“온갖 심장수술이며 그런 게 많은데요.”

내 심장은 안 된대.” 대답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그 두려움에 대해 레베카는 생각했다. 수십 년 동안 설교해온 것들을 아버지는 믿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을 읽었어도, 레베카 자신 역시 두려웠어도, 레베카에게 최악의 일은 제이스와 금발 여자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해결책을 생각해낼 수 없으면 생각을 지켜볼 게 아니라, 행동을 지켜봐야 한다고.

 

 

 

올리브는 자갈을 깐 주차장에 차를 댄 뒤 트렁크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고 걷기 시작했다. 하루 중에서 최고의 시간이자, 유일하게 견딜 만한 시간이었다. 한쪽 방향으로 3마일, 돌아오면서 3마일. 유일한 걱정은 매일 운동을 해서 더 오래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난 혼자 죽고 싶지 않아요.”

망할. 우린 늘 혼자예요.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지. 혼자 죽은들 뭐가 다르담? 우리 불쌍한 영감처럼 요양원에서 몇 년이나 시들어가지 않는다면야. 난 그게 겁나요.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틔우면서.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 점이었다

 

“언제 점심이나 하러 가시려우?”

나는 저녁이 더 좋은데요.” 잭이 말했다. “저녁 약속이 있으면 종일 고대하게 되잖아요. 점심은 헤어지고 나면 아직 하루가 많이 남지만.”

“그럽시다.” 올리브는 해가 지면 바로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는 것은 그녀에게는 사실 자정을 훨씬 넘기도록 깨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개뿔도 모른다.

 

“나라에 거짓말하는 인간을 뽑은 게 뭐가 중요하냐고? 버니, 세상이 온통 엉망이라구.”

그건 사실이지만.” 버니가 말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엉망이었어.

 

,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

그렇기에, 지금 그녀 곁에 앉은 이 남자가 예전 같으면 올리브가 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그도 필시 그녀를 택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 둘은 이렇게 만났다. 올리브는 꼭 눌러 붙여놓은 스위스 치즈 두 조각을, 이 결합이 지닌 숭숭 난 구멍들을 그려보았다. 삶이 어떤 조각들을 가져갔는지를.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 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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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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