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1. 22. 15:07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저/김욱동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라 불리는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로, 작가 고유의 소설 수법과 실존 철학이 짧은 분량 안에 집약돼 있는 『노인과 바다』, 그 스스로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밝힌 연애소설이자 깊은 존재론적 성찰을 담은 『무기여 잘 있어라』, 세계대전 후 삶의 방향을 상실한 사람들을 그린 첫 번째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세 권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이전까지의 도덕이나 윤리는 송두리째 깨져 버렸고, 전쟁에 대한 환멸, 삶의 방향 상실 등으로 젊은 세대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 헤매게 된다. “만취 상태로 보낸 기나긴 주말”로 표현되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헤밍웨이는 자신과 주변인들이 겪었던 혼돈과 방황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속에 그려 내고 있다. ‘길 잃은 세대’를 다룬 이 작품은 출간 후 미국 문단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헤밍웨이는 미국 문단을 이끌어 갈 젊은 작가로 부상했다. 

 

 

당신들은 모두 길을 잃은 세대요.

- 거트루드 스타인의 대화 중에서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면 이리 돌고 저리 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라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 전도서

 

 

나는 솔직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특히 그들의 이야기가 앞뒤가 잘 맞아떨어질 때는 더더욱 믿지 않는다.

 

부유한 아내와의 불행한 가정생활로 말미암아 그는 상당히 매력 없는 성격의 소유자로 변하고 말았다.

 

그가 파리로 돌아왔을 때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콘은 미국에 호감을 갖게 되었고, 전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았으며, 또 그렇게 마음씨가 착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직도 누구를 사랑해 본 일은 없지만, 자기가 여자들에게 매력 있는 남자라는 사실과, 또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고 함께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단순히 기적 같은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그는 달라졌고, 그래서 어울려도 전처럼 기분 좋지는 않았다.

 

“삶이 이렇게 빠르게 달아나고 있는데, 정말 철저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어.”

투우사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라고.”

난 투우사에겐 흥미가 없어. 그건 비정상인 삶이야.

 

브렛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만을 몹시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이란 하나같이 그런지도 모르지. 빌어먹을 인간들!

 

콘이 파리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어디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어쩌면 멩켄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멩켄은 파리를 증오하는 것 같다. 많은 젊은이가 멩켄한테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배운다.

 

그 친구는 이제 바닥이 다 드러나 버렸어.” 하비가 말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걸 모두 써 버렸다고. 그래서 이제는 하나같이 알지 못하는 걸 써 대고 있어.”

 

그의 겉모습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갖추게 된 것이고, 그의 내면은 그를 훈련한 두 여성의 손으로 빚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는 훈련으로써는 만들어질 수 없는 착하고 소년다운 쾌활함이 있었는데, 나는 아마 그의 이런 점을 밝혀내지 못한 것 같다.

 

사람들이 로버트 콘에게 어쩌면 이렇게도 잔인한 말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어떤 말을 하면 금방 세계가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지금 바로 눈앞에서 파멸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데도 여기 앉아 있는 콘은 그것을 참고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바로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말려 보려는 충동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뒷날 일어난 일에 비하면 차라리 허물없는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저이는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동안 책을 쓰는 데 너무 바빠서 우리 둘에 관한 일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요.

 

“우리 둘이서 함께 살 수 없을까, 브렛? 그냥 같이 살 수는 없는 걸까?”

안 돼. 난 누구하고나 쏘다녀서 당신을 배반하고 말 거야. 당신은 견딜 수 없을 거야.”

[…]

난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 순 없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하고라도 말이야.”

[…]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

말하지 마. 이야기한다는 건 정말 부질없는 짓이니까. 당신 곁을 떠날 생각이야.”

“왜 떠나려는 거야?”

그렇게 하는 게 당신을 위해서도 좋고, 또 나를 위해서도 좋기 때문이지.”

 

“작위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십중팔구 돈만 들 뿐이지요.”

 

한 번도 사람들을 놀려 본 일이 없습니다. 사람을 놀리면 원수가 됩니다.

 

난 당신이 진심으로 말하는 걸 듣고 싶습니다. 내게 이야기할 때는 한 번도 말끝을 맺어 본 적이 없어요.”

백작님이 끝을 맺으라고 남겨 두는 거예요.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끝을 맺으라고요.”

 

이렇게 모든 걸 만끽할 수 있는 건 온갖 풍상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

“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비결이에요. 가치를 깨달아야 하거든요.” 백작이 말했다.

백작님의 가치가 달라진 적은 없었나요?” 브렛이 물었다.

없어요. 이제는 없습니다.”

사랑해 본 적도 없겠죠?”

언제나 하지요. 늘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백작이 대답했다.

그게 백작님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그것 역시 내 가치 안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백작님한테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죽은 분이에요. 그저 그뿐이라고요.”

 

“아니에요. 조용한 이곳에서 해요.”

또 그조용타령이군요. 도대체 남자들은 그조용이란 것에서 뭘 느끼는 거예요?” 브렛이 물었다.

우린 조용한 걸 좋아합니다. 당신이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지 말라. 또 남한테 주눅 들지도 말라. 내 성공의 비결이야.”

 

나는 민간 생활에서 로버트 콘처럼 초조한 데다 또 열성적인 사람을 본 일이 없다. 나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을 즐긴다는 것이 야비했지만 나는 야비한 기분이 들었다. 콘한테는 누구에게서나 그 사람의 가장 나쁜 점을 끄집어내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건 말이지, 그 녀석이 사람이 좋다는 거야. 난 그 녀석이 마음에 들어. 하지만 정말로 끔찍하기도 해.”

무척 좋을 때도 있지.”

그건 나도 알아. 바로 그 점이 끔찍해.”

 

“정직한 얼굴이야. 어떤 여자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얼굴이거든.”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란 말이야. 반어와 연민을 보이게.”

 

“저렇다니까. 저러고서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건가. 넌 신문장이를 못 면하겠어. 국적을 상실한 신문기자 말이야. 침대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반어적이어야 하는 거야. 입안 가득 연민을 머금고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카페인이여, 우리는 여기 있도다. 카페인은 남자를 여자 말에 태우고, 여자를 남자 무덤에 보내지

 

넌 국적 상실자야. 그것도 최악의 타입이지. 그런 소리 못 들었어? 자고로 자기 나라를 버린 사람치고 인쇄할 가치가 있는 글을 쓴 적이 없다는 말 말이야.

 

이 위대한 들판에서는 아무도 무릎을 꿇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 숲이 하느님의 최초의 사원이었음을 잊지 말라.

 

“멋진 꿈을 꾸었어. 무슨 꿈인지 기억은 없지만 어쨌든 멋진 꿈이었지.”

 

어찌 된 영문인지 미국인은 으레 투우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미국인은 열정이 있는 체하거나 열정을 흥분과 혼동할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열정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돼서 파산했어?” 빌이 물었다.

두 가지 방법으로 파산했지. 천천히, 그러고 나서 갑자기 쾅한 거야.”

 

그는 브렛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야 행복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녀와 함께 놀러 갔다 왔고 또 그 사실을 다들 알고 있다는 것이 그로서는 기분이 좋은 일임이 틀림없었다. 아무도 그에게서 그런 즐거움을 뺏을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 식사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쟁터의 어느 만찬과 같았다. 포도주는 얼마든지 있고, 긴장은 무시해 버리고,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포도주 덕택으로 나는 불쾌한 기분을 잊고 행복했다.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다고 해서 밝을 때와 다르게 사물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여자들은 굉장한 친구가 될 수 있다. 굉장히 좋은 친구 말이다. 우정의 토대를 쌓으려면 먼저 여자와 사랑을 해 봐야 한다. 나는 브렛과 오래전부터 친구로 지내 왔다. 그녀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뭔가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계산서가 나오는 일이 늦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계산서는 언제나 날아들었다. 이것만은 예측할 수 있는 멋진 일이었다.

나는 대가를 모두 지불했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지불하고 지불하고 또 지불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말이다. 응보라든지 벌이라든지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가치의 교환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것을 포기하고 다른 어떤 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

 

삶을 즐긴다는 것은 지불한 값어치만큼 얻어 내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그것을 얻었을 때 얻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누구든지 돈을 지불한 값어치만큼은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무언가를 구입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건 아주 멋진 철학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5년만 지나면 내가 일찍이 알고 있던 모든 훌륭한 철학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 역시 그저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나는 그가 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스스로에 대해서 불쾌해지기 때문에 그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게 바로 도덕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불쾌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 말이다. 아니, 부도덕이라고 해야 할까.

 

축제 기간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마침내 모든 것이 아주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모든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야.” 그가 말했다.

어머, 아니야. 전혀 안 잤어.” 브렛이 말했다.

잠깐 죽어 있었던 것뿐이야.” 빌이 말했다.

 

투우에는 흔히 황소의 영역과 투우사의 영역이 있다고들 한다. 투우사가 자신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한 비교적 안전하다. 소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는 큰 위험에 빠진다. 전성기 시절 벨몬테는 언제나 소의 영역에서 싸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관객들에게 비극이 닥쳐오리라는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은 벨몬테를 보려고, 비극적 감정을 맛보려고, 어쩌면 벨몬테가 죽는 것을 목격하려고 투우장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투우 목장에 있는 소들을 둘러보고 안전한 소들을 고를 때 미리부터 그 가치를 할인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뿔도 대단치 않고 다루기 쉬운 조그마한 소 두 마리를 상대로 싸웠고, 위대함을 다시 느꼈다고 하더라도 그나마 항상 붙어 다니며 괴롭히는 고통 속에 겨우 조금 느꼈을 뿐이고, 그 위대함을 미리 할인하여 팔아 버린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했다. 위대하기는 했지만 투우에서 황홀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넌 믿지 않겠지만 말이야, 멋진 악몽 같았어.”

난 뭐든지 믿을 거야. 악몽까지도.”

 

웨이터는 피레네 산맥 야생화로 만든 술 때문에 조금 화가 난 것 같기에 팁을 듬뿍 주었다. 그러자 그는 흐뭇해했다. 사람들을 흐뭇하게 하는 게 이렇게 간단한 나라에 머물고 있어 마음 편했다. […] 프랑스에서는 모든 것이 이처럼 뚜렷하게 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나라처럼 살기 편한 곳이 없다. 아리송한 이유로 친구가 되어 사태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도 없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면 돈만 조금 쓰면 된다.

 

“다시는 그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쩔 수 없는 걸 어떡해?”

얘기를 해 버리면 잃어버리는 법이야.”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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