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소설/희곡 2020. 1. 22. 15:12
드리나 강의 다리

드리나 강의 다리

이보 안드리치

196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대표작.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낳은 세계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유장한 필치로 그려낸 보스니아의 얼굴과도 같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보 안드리치를 역사가로 느껴지게 할 만큼 각 시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낙천적이며 삶을 즐기려 하는 카사바 사람들,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 지배 세력의 횡포에 맞서는 민중의 모습이 드러난 200여 개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이보 안드리치를 ‘발칸의 호메로스’라고 불리우게 할 만큼 뛰어난 서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피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그리면서도 작품 전편에 걸쳐 흐르는 유머와 휴머니즘은 특정 민족의 역사를 다룬 작품을 넘어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게 했다.

 

 

1

 

이 거대한 돌다리는 훨씬 더 부유하고 발달한 도시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미를 갖춘 건축물인 데다 드리나 강의 중, 상류에서 유일하게 안전하고 확실한 횡단로이며, 보스니아를 세르비아와 잇는 길을 연결시키고 게다가 터키 제국의 다른 지역들과 심지어는 이스탄불까지 잇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카사바는 다리에 의존해서 살았고 마치 자신만의 죽지 않는 뿌리로부터 성장하듯 다리에 의존해 성장했다.

 

모든 위대하고 아름답고 유용한 건축물의 기원과 생명은 그것이 세워진 장소에 따라 운명이 정해지듯이 그 안에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역사를 종종 안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이 다리 사이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 오는 긴밀한 연대가 있다는 것이다.

 

마을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이 11개의 아치와 중간 부분에 왕관 같은 카피야를 가진 돌다리의 선과도 같다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세월이 흘러 그는 술탄의 황실에서 젊고 용감한 실라흐다르가 되었고 이어 가쿠단-파샤, 황제의 사위, 장군, 뒤이어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정치가 메흐메드 파샤 소콜리가 되었다.

 

가슴을 관통하는 언제나 똑 같은 검은 선은 특히 그의 가슴을 잘라놓았으며 어린 시절 얻은 이 고통은 그가 어른이 된 수에 알게 되는 고통과 아픔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다시 말해, 자기가 태어난 고향과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영원히 안전하게 연결하게 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그 자리에 생길 수밖에 없는 위대한 돌다리의 확실하고 정확한 실루엣을 지그시 감은 두 눈으로 보게 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3

 

나의 나무 아래에는 그늘이란 게 없다. […] 나는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할 뿐이며, 그 일을 마치면 떠나게 될 테고, 그 후에는 나에 대한 더욱 악명 높은 소문이 들리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대중이란 쉽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빠르게 퍼트리기도 하는데 그 이야기들에는 이상하게 그리고 미묘하게도 사실들이 섞여 있으며 다른 이야기들과도 덧붙여 전해졌다.

 

4

 

그들은 터키인들과의 끊임없는 힘의 대결에 있어서 운명이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기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은 가장 힘겨운 저당물이었다.

 

저 높은 곳에 서 있는 죽은 자의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무시무시하거나 가엾지 않았다. 반대로 사람들에게는 그가 이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높이 있는지가 확실해진 것뿐었다. […] 그는 자기 안에서 자기만의 무게를 가지 있을 뿐이었다. 그는 삶의 관계와 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며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남의 돈으로 진행된 타인의 작업.

 

그 존재의 의의와 본질은 그 영속성에 있는 것과 같았다. […] 세상이 변하고 인간의 세대가 빠르게 사라지고 움트는 가운데에서도 다리만은 그 아래 흐르는 물결처럼 변함없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다리도 나이를 먹었지만 인간의 세대의 길이로뿐 아니라 전체 세대에 걸친 흐름으로도 엄청나게 넓은 한 시간적인 폭에서 볼 때 그것의 나이는 눈으로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비록 종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의 생명은 그 끝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영원에 가까웠다.

 

5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면서 모든 사람의 소유였던 그 한.

 

나를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소. 위대한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한 번, 평생을 공들인 그들의 업적이 사라질 때 한 번, 이렇게 두 번 죽지만 우리는 누구나 한 번밖에 죽지 않으니까 말이오.

 

그들이 다시 재산을 복구하고 집을 다시 지어 15년 또는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간 뒤에는 이 홍수도 엄청나고 끔찍하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정다운 것으로 회상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는 그 세대의 인간들 사이를 정답게 묶어주는 하나의 정겨운 유대와도 같은 것이었으니 극복해낼 수 있는 공동의 불행으로 그것만큼 사람들을 서로 친밀하게 결속해주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터키인들과 기독교인, 유태인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이렇게 하여 자연의 힘과 공통적인 불행의 짐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한데 뭉치게 했으며 적어도 이날 하룻밤 동안은 종교와 종교를 갈라놓은, 특히 터키인들로부터 라야를 갈라놓은 틈에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

 

절망적인 사람들은 침착해 보이려고 하고 아니 거의 무관심한 체 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

 

젊은이들은 하얀 돌로 지은 매끈한 카피야에 앉아 저 아래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잔잔한 물결 소리에 맞춰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망각은 모든 것을 치유시켜 주었으며 노래는 망각의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노래 속에서 오직 사랑하는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6

 

걱정이나 손실 없는 재산이 없듯이 폭동이나 근심거리 없는 정부는 없기 때문이었다.

 

짓밟힌 자의 위대한 재산인 희망, 광적인 희망.

 

7

 

벨레토보에서 온 사람이 한 말을 부정할 수도 없었고 그를 진정시키고 안심시킬 말을 찾지도 못했다. 그래서 기껏해야 이 유쾌하지 못한 소식을 가지고 온 농부가 산 너머 자기 마을로 돌아가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으로 자기들 걱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걱정이 멀어지는 것만은 분명했다.

 

어머니가 죽고 아이는 가족 하나 없이 자라났다. 카사바 전체가 그를 먹여 살렸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가족이면서 어느 누구의 가족도 아니었다.

 

카사바 주민들은 불길한 것을 다시 생각하기 싫어하고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들의 피에는 참된 인생이 조용한 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존재하지도 않는 더 확고하고 더 영속되는 다른 인생을 모색하다가 그 시간을 망친다는 것은 미친 짓이며 쓸데없는 것이라는 믿음이 흐르고 있었다.

 

8

 

사람들이란 너무나 높이 올라가고 날아가는, 그런 사람들의 몰락과 굴욕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니오라고 대답한 것을 라고 말한 바로 아버지의 그 입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모든 면에서처럼 이 점에서도 아버지와 일치했다. 그의 라는 말을 자신의 대답처럼 그녀는 느꼈다. (자신의 대답은 여전히 아니오임에도 불구하고).

 

9

 

실상 여전히 공포와 자극적인 낭설과 근심으로 가득 찬 귓속말이 사라질 줄 모르는 불안스런 평화.

 

비셰그라드인들이 원래 투지가 있는 투사들은 아니며 광적으로 죽기보다는 오히려 어리석은 삶을 오래 지속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것.

 

목숨을 바칠 때가 왔다” “우리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 “우리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그렇지.” 호좌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당신들이 오스트리아인들을 보스니아에서 내쫓고 그 때문에 우리를 모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것이 죽는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면 에펜디야, 우리 역시 당신 도움 없이 죽는 방법을 알고 있소. 죽는 것보다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아하, 내 눈에는 자네가 죽고 싶어하지 않는 거 같은데.” 카라만리야가 거세게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 눈에는 자네가 죽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세상이 뒤집히고 어쩔 수 없는 큰 변화의 시기가 오면 언제나 그런 불완전하고 마음이 고르지 못한 사람들이 나타나 일을 더 혼란에 빠뜨리고 갈피를 못 잡게 만들어놓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혼돈의 시기를 암시하는 하나의 징조였다.

 

그는 이런 난리를 일으킨 오스트리아 놈들 못지않게 항쟁을 반대하는 호좌도 증오하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들이 쳐들어오고 이쪽의 참패가 결정적일 때에는 언제나 그런 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나 동포들끼리 싸우고 서로 상대편들을 험담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오스트리아 놈들과 세례를 받을 생각도 없지만 바보와 전쟁터에 나갈 생각도 없는 사람이오.

 

발길을 멈춘 군인들이 모두들 그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을 보자 호좌는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황제와 왕께서는 이 땅의 모든 백성이 법에 의해 같은 권리를 누릴 것이며 그들의 생명과 신앙과 재산은 모두 보호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모든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모두가 고통이었다. 그것은 특별한 아픔이었다. 그가 상처 입은 귀, 머리 그리고 허리의 상처에서 느껴지는 그런 통증이 아닌 그는 이제야 황제의 말들이라는 말에서 갑자기 그의 것들, 그들의 것들이 모두 한꺼번에,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한 방법으로 사라져간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꼈다. 눈을 보고 입은 말하고 사람은 지속되지만 생명은, 진짜 생명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남의 황제가 그들을 지배할 것이며 남의 종교가 지배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우리가 죽기 위해서!’

 

아직도 미소를 잃지 않은 그 군인은 그의 붕대를 가리키면서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엇인가를 물었다. 무엇인지 도움을 주겠다는 것으로 생각한 호좌는 이내 긴장한 태도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어요, 내가.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습니다.”

 

10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터키인들의 집에는 실망과 혼란이 가득 찼고 기독교 신자들의 집에는 경계와 불신이 가득했다. 그러나 어디에고 누구에게든 공포는 있었다. 입성한 오스트리아 놈들은 복병들을 두려워했다. 터키인들은 오스트리아 놈들을, 세르비아인들은 오스트리아 놈들과 터인인들을 두려워했다. 유태인들은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특히 전시에는 모든 이들이 그들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영혼에는 이 카사바에 사는 두 종류의 사람들, 세례를 받은 무리들과 머리를 숙이는 무리들의 영혼을 구제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12

 

때로는 인간의 경험은 하도 벅차고 신비로운 경우가 있어 그것을 악마의 소행이라고 설명함으로써만 쉽게 정당화되고 이해가 된다.

 

13

 

점령 첫해에 이미 점령 당국은 가구 수와 주민의 수를 집계했는데 이러한 조처가 이미 터키인들 사이에 불신을 불러일으켰고 불분명하지만 심각한 불안감을 자아냈다.

 

이것은 오스트리아 놈들의 신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익에 관한 것이오.

 

난시에는 어느 누군가의 불행 없이 지나가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는 사람 중에 자기 친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우는 여자도 많았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늘 울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다 남의 슬픔을 위해 울 때야말로 가장 달콤한 때이기 때문이다.

 

14

 

모든 삶이 오랜 동안 어디에서든 열망하는 바로 그 균형.

 

19세기가 […] 누구에게나 적당한 값에 아니 심지어는 외상으로라도 안정과 안락과 행복의 신기루를 그려보였다.

 

훌륭한 통치 체계를 갖춘 새로운 정부는 터키 세력들이 횡포를 저지르고 약탈을 하거나 비합리적으로 수탈해갔던 강압적인 식으로가 아닌 고통 없는 방법으로 백성들의 세금과 공과금을 떼어가는 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방법은 같은 돈이 아니, 좀더 많은 돈을 거둬들이면서도 훨씬 더 신속했고 확실했다.

 

내일은 또 하루의 오늘이었다.

 

15

 

다만 저주받고 미리 운명이 정해진 극소수만이 그대로 영원히 이 길에 남아서 인생 대신에 알코올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덧없는 인생에서 가장 덧없는 환상에 불과한 술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의 일은 남이 노는 시간 안에 있었고 그들의 보수는 남이 낭비하는 돈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진짜 생활 시간은 밤, 그것도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자고 있는 묘한 시간이었다.

 

16

 

드리나가 드리나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다리도 다리대로 남아 있을 거요. 건드리지 않아도 적혀 있는 대로 지속은 될 텐데. 저렇게 돈을 들여도 헛장난에 지나지 않는 걸.”

 

물살을 바꾸거나 막는 따위의 생명이 있는 물을 건드리는 것은 하루나 한 시간 동안이라도 큰 죄악이라고 했소.

 

기술자들은 첫 기관차 주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날 운행은 공짜였다(“하루는 공짜지만 100년 동안 돈을 받을걸.” 알리호좌는 이 첫 기차를 타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이제 마친 일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끝났기 때문에 그렇게 번 시간과 노력과 경비가 얼마인가를 떠벌이며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벌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벌어들인 시간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가 중요하므로 만약 악한 일에 다시 쓰였다면 이는 없는 것만 못하다고 매우 만족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따라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어디를 가는지 어떤 일로 가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속도가 언제나 이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보게 젊은 친구, 타시게, , 타고 싶으면 타야지. 그러나 그렇게 타다가는 언젠가 혼쭐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일세. 오스트리아 놈들이 자네가 가고 싶지 않은 곳, 가게 되리라고는 꿈도 안 꾸던 곳으로 자네를 태워 갈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테니 말일세.

 

17

 

1908 - 커다란 불안과 석연치 않은 위협.

 

카사바에 있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들에게 친숙하고 잘 알려져 있는 것, 돈벌이와 오락에 관한 것들, 주로 자신들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 마을 사람이든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그러나 언제나 간접적으로, 경계를 그어서 이야기했고 멀리 앞날을 내다본다거나 아주 먼 옛날을 되돌아본다거나 하는 법은 없었다.

 

단체나 종교기관에서 발부한 연설문과 논설, 그리고 항의문과 성명서 같은 것들을 읽으면서,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이 풀리고 눈앞에 희망이 전개되고 생각이 자유로워지며 자기의 힘이 먼 곳에 사는 사람, 그리고 그때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다른 힘과 연결되는 것 같았다. […] 이제까지 그런 것은 가져보지 못한 자들에게도 예전에 없던 희망과 가능의 문이 열린 것같이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민간 이어서 군사당국. 그리고 그것은 전혀 새로운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누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통치가 되는가를 지켜보더니 이제는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물었다.

 

철도가 부설됨에 따라 여행 시간이 단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물 수송도 더 수월해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동시에 사건들이 일어나는 속도도 빨라졌다. 카사바의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속도는 점차적으로 빨라진 것이었고 자신들도 그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고문 […] 그것은 그들의 시대가 끝나고 터키의 촛불이 꺼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포고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말들을 되풀이해야 했고, 자기 자신들을 속여가며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척해야 했다.

 

어느 정부가 자기들의 시민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붙일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그것이 반대로 진행된다던가 혹은,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온 얼굴이 교활하고 비굴한 표정, 오래되고 부패한 기관들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식의 그 움직임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기관에 오래 있으면 신중함이라는 것이 마침내 타락하고 복종이라는 미명 하에 비굴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8

 

그 해 세르비아 은행과 이슬람 은행 두 곳이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약을 먹듯이 어음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빚을 지게 되었다.

 

멀리서도 주가의 불건전한 변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으로 생기는 이익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넘어갔고 손해는 제국의 방방곡곡으로 번져서 영세 상인들에서 소매업자, 소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세르비아인들에게는 숨겨진 실망감만이 남아 있었고 이슬람 교도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신의 잔재만이 남아 있었다. 눈에 보이는 이유나 직접적인 원인 없이 그저 또 다시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커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일에는 희망을 품고도 다른 일에는 무언가로부터 공포를 느꼈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소란스럽고, 활기가 있고, 자극이 있는 생활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감동할 수 있는 일, 혹은 그 메아리가 될 수 있는 일들을 바랬고 적어도 그런 감동의 환상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일, 수다스러움과 흥분을 원했다. 이것은 정신 상태뿐 아니라 마을의 외형도 바꾸어놓았다.

 

터키와 발칸 네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 세르비아와 기독교 국가의 군대들이 승리 […] 총성 한 번도 없이, 그리고 카사바에서는 대포 소리도 한 번 들리지 않았고 사람의 희생도 없이 모든 일들이 비셰그라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끝나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카사바에서 세르비안인들과 이슬람 교도들에게 완전히 반대되는 감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들 사이에 같은 점이 있다면 아마도 감정의 힘과 깊이였을 것이다. 이 사건들은 세르비아인들에게는 희망을, 이슬람 교도들의 공포에는 변명거리를 주었다.

 

드리나 위에 있는 다리에게 이 변화는 숙명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와 같이 사라예보 철도선은 서방과의 연결을 줄어들게 만들었고 이제는 동방과의 연결도 끝난 셈이었다.

 

소콜로비치 출신 베지르의 착안과 경건한 결정에 따라 세워진 거대한 돌다리는 제국의 두 지역을 연결하고 동방과 서방으로 지나가는 것을 수월하게 하는 신의 사랑에 따라만들어졌지만 이제는 동방과 서방 모두를 단절시키고 마치 좌초된 배처럼, 그리고 퇴락한 사원처럼 버려진 것이었다.

 

유학 갔던 큰 도시, 대학 또는 고등학교에서 이 젊은이들은 처음으로 얻은 불완전한 지식과 함께 자랑스럽고 대담하게 인간의 자유권이니 개인의 존엄성이니 향락의 권리니 하는 사상들을 들여왔다. […] 부활된 민족주의 사상 […] 많은 젊은이들은 민족을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든 어떤 희생이든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자기네들의 무지함을 감추려 모든 것들을 비꼬게 되는 것이었다.

 

카사바 위에 별이 반짝이고 아름다운 성좌와 달빛이 어리는 밤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카피야에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함께 느끼고 생각하며 대화를 나누는 일이 나중에도 있을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모든 권력과 힘을 여전히 가지고 있고 자긍심을 불태우는 그 짧은 순간에 반항하는 천사들의 세대였다.

 

 

인생은 그들 앞에서 하나의 객체로, 마치 그들의 자유로운 감성을 위한 그리고 지적인 호기심과 감성적인 성취를 위한 전장으로서, 그들이 결코 경계를 알지 못했던 것들로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회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도덕에서 범죄에 이르기까지 법들이 당시 온통 위기에 처해있어서 멋대로 해석한 모든 집단이나 개인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있거나 받아들여져 있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결정짓고 멋대로 제약 없이 원하는 대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웅주의, 영광, 포악, 그리고 파괴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었다. 그렇지만 행동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한 것에 대해서 뚜렷한 책임이 뒤따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 중 가장 재능 있는 자들은 자기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무시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과소평가했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는 자랑스러워했고 그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들에는 열정을 쏟았다. 인생의 길에 들어서서 이처럼 위험하고 이상하면서 패가망신으로 이끄는 길치고 이보다 빠른 지름길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인간 세대는 문명에 대한 자신들만의 환상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흥망에 자신이 참여했다고 믿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멸망의 증인이라고 믿는다. 사실 문명이란 장소와 보는 시각에 따라 항상 불타고 그을리고 또 사라지고 하는 법이다.

 

이 세대에 대해 특별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세대보다도 더욱 대담하게 인생, 향락,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 꿈꾸고 이야기한 세대가 일찍이 없다는 것이며 이 세대 이상으로 고민하고 노력하고 많이 죽은 세대도 없다는 사실이다.

 

19

 

정치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식생활이 우선이겠지.”

 

급격한 변화를 원하는 소망과 그들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생각은 흔히들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병처럼 나타나고 대개는 젊은이들의 머릿속에서 행동을 떠오르게 하지.

 

이상한 꽃들을 둥그렇게 꽃 모양으로 심어놓은 공원 입구에는 실제로 개와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써놓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 이 배타성은 권력의 가장 중요한 일부분이었고 그 엄격하고 찬란한 외곽 바로 아래에는 위대한 사람과 가엾은 사람과 ,행복한 사람과 괴로운 사람들이 경험하는 온갖 삶이 감추어져 있었다.

 

터키인들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사랑’ ‘기침그리고 가난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 연인들에게는 시간이 언제나 짧게 마련이고 길은 멀지 않은 법이었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되고 어느 정도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자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인 혼수상태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 속에서 소위 지식층이라는 특수한 계층이 나태에 빠져가지고서는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쩌느니 하며 관념의 유희에 몰두하게 된다 말이지.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 무리가 움직이고 있는 현실적이고 단단한 땅과는 아무 관계 없이 그저 인위적인 기후와 이국적인 꽃들로 가득 찬 유리로 된 정원에 지나지 않는다구. 너희들은 토론에서 대중의 운명을 결정하려 들고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에 대중을 끌고 가려 들지만 실은 너희들의 머릿속에서 돌리는 바퀴는 대중의 생활이나 삶 전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단 말이지. 그 따위 장난은 타인에게나 너희들 스스로에게나 위험한 짓이고 적어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는 거야.

 

삶에서는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으며 쉽게 해결할 수도 없고 완전히 해결되리라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모든 일이 어렵고 복잡하며 희생도 많고 위험도 많은 법이지. 헤라크의 대담한 희망이나 너의 커다란 전망들은 모두 비현실적이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사랑의 크기나 질투나 그 안에 숨겨진 위험을 느낄 능력도 없는 것이다.

 

너는 오로지 허영심으로만 착하고, 재능 있고, 희생적인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젊은 사람에게 이처럼 너는 괴물이다라고 하는 말은 그 안에 있는 오만함과 자기도취를 일깨우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글라시촤닌이 자기의 내적 자아를 사정없이 들춰내고 숨은 개성을 발굴해내면서 계속해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안에서 스스로의 우수성과 출중함의 한 증거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심지어 시기하는 마음도 없지만, 그건 네가 착해서가 아니라 너의 그 끝없는 이기심 때문이지. 왜냐하면 네가 타인의 불행르 깨닫지 못하듯이 타인의 행복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야.

 

너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의 허영심에 종속시키지만 네가 바로 그 허영심의 첫번째 노예이자 가장 큰 순교자인 셈이지.

 

20

 

늘 인간 활동을 지배하고 있던 신성한 법칙 - 이해득실의 법칙은 이제 효력을 상실한 것 같았는데 왜냐하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행하고 말하고 그녀에게는 목적이나 의미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적고는 그것들에서 단지 손해와 불편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생활이 찢겨지고 분해되고 파괴되었다. 이 세대는 인생 자체보다도 인생관을 중요시하는 것 같았다. […] 그런 것들 때문에 인생은 그 가치를 상실했고 모든 것들은 말 속에서 허비되고 있었다.

 

다른 모든 나이 든 사람이나 재산을 가진 사람들처럼 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표현방식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정치라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었다. 만사 억제하고 절약하며 일만 해온 터라 이제는 휴식과 만족을 즐겨야 될 즈음에 그 정치라는 것이 나타나 그의 좋은 시절을 망쳐버려서 화가 나게 만들고 어처구니없게 만들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지거나 자신의 동족들과 멀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당국과 충돌을 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고 언제나 평화를 유지하며 적어도 형식적으로라도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젊은 세대들은 말하는 것에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보지도 않으며 얼마나 돈을 쓰는지 세지도 않고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는 가장 적게 신경을 쓰며 어디서 온 빵인지도 생각지 않으면서 먹고, 그저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파블레가 자기 아들들을 꾸짖을 때 쓰는 표현처럼 별을 보고 짖듯이그렇게 지껄이고 있었다.

 

21

 

1914년이라는 해는 각별하다. 적어도 이 해를 살아 넘긴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훗날 아무리 이야기하고 글로 쓴다고 해도 이때 그들이 본 시간의 뒤에, 사건의 아래에, 인간의 운명의 바닥에 있는 것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보았고 경험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말을 잃었고 죽은 자는 어떻게도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들은 말로 전해지지 않고 잊혀진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잊혀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풀이될 수 있겠는가?

 

인간사에는 두 시대의 경계선에 위치한 시기였으며 이런 시기에는 사라져가는 시대의 종말은 뚜렷이 보이지만 다가오는 시대의 시초는 분명치 않았다.

 

모든 인간의 가장 슬프고도 비극적인 약점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한 치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사랑의 유희나 사랑의 의식이 없는 고독과 따분함보다는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씁쓸하다고 할지라도 사랑싸움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진 여자가 완전히 실망에 차 있을 때는 마치 태어나지 못할 운명의 아기처럼 자신의 사랑을 아끼는 법이기 때문이다.

 

22

 

카사바에서는 바로 이때부터 세르비아인들과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핍박을 하는 자와 받는 자로 나뉘어졌다. 사람 안에 살고 있는, 그리고 감히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저 굶주린 짐승이 좋은 관습과 법의 장벽을 넘어서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신호가 떨어지고 장벽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흔히 일어나듯이 만일 그것이 더 큰 이익을 위한 것이고 확실한 통제 하에서 정해진 수의 사람들과 정해진 명분과 확신이 있게 행해진 것이라면 포악, 약탈 그리고 심지어 살인까지도 묵인되었다.

 

이런 모든 야만적인 본능을 억누르고 마침내는 그것을 잘 안정시켜 사람들을 보편적인 인생의 목표로 훌륭하게 이끌어가는 용기, 동지애, 그리고 법률과 질서에 대한 추구가 살아 있던, 세기를 거듭해 오던 전통이 있는 장터가 단 몇 분 만에 사라져버렸다. 장터에서 40여 년을 주도해왔던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늘 이야기하던 습관들과 의식들, 제도들과 더불어 죽어버린 것처럼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오래전부터 이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고 계산에 넣지도 않았소. 오스트리아 놈들이 보스니아로 들어왔지만 터키 황제도 오스트리아 황제도 우리에게 묻지 않았지. 베그들과 터키의 지주들이 허가를 했는가 말이오? 또 어제까지도 우리의 라야였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반란을 일으켜 터키 제국의 영토를 반이나 빼앗아갔지만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았지. 이제는 오스트리아 황제가 세르비아를 치는데 역시 우리에게는 묻지도 않고 대신에 총과 군복을 주며 오스트리아 놈들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네들의 직접 솨르간으로 가서 뒈질 필요 없이 우리더러 세르비아인들을 쫓으라는 말이잖아.

 

죽을 시간이 온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사람인지를 봐야 할 때라고. 지금은 바로 그런 때야.

 

23

 

가족들을 데리고 건너가거나 친척이나 아는 사람들이 있는 다른 대피소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갔다. […] 피난은 카사바에 대홍수가 났을 때의 그 힘겹던 밤을 연상시켰다. 다만 이번에는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섞이는 일도 없었고 공동의 불행에 대한 모색을 함께 찾으려는 공감대도 없었으며 예전처럼 대화 속에서 방법과 위안을 찾기 위해 함께 앉는 일도 없었다. 터키인들은 터키인들의 집에서 마치 격리된 것처럼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의 집에서 모였다.

[…]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공포, 재산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물론 각자 그런 마음들을 감추고는 있었지만 서로 상반되는 희망들과 소원들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비록 그들의 머리 위에서 어느 때는 세르비아의 포탄이, 또 어느 때에는 오스트리아의 포탄이 굉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는 이 판국에 그들 스스로도 왜 자신들이 귓속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귓속말로 속삭이고 있었다.

 

모든 집들은 마치 죽은 이들의 집과 같았다. 왜냐하면 살아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은 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늘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달리 방법이 없다면 모든 것을 견딜 수밖에 없다는 각오와 결국에 가서는 좋은 결과가 오리라는 믿음 역시 그때와 마찬가지였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오고 그렇게 이어져내려온 본능으로 그들은 그런 것들 속에서 자신을 잊고 인생을 순간적인 감상들과 직접적인 필요들로 나누어버렸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아야만, 매 순간을 따로 떼어놓고 앞뒤도 보지 않고 살아야만, 견딜 수 있고 좀더 나은 앞날을 바라보며 계속 그런 삶을 지켜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이상한 인간의 놀이는 점점 더 치열해지고 번져가서 모든 생물과 죽어 있는 것들을 당국에 항복시키고 말았다.

 

24

 

힘겹게 천천히 걸었지만 그의 눈앞에는 마치 파괴된 다리의 전경이 움직이듯이 계속 펼쳐져 있었다. 우리를 쫓고 고통을 주는 것을 멈추게 하려고 하나의 사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은 충분한 것이 아니다. 눈을 감는다 해도 그는 그것을 보게 될 뿐이었다.

 

그들은 가장 단단하고 가장 영원한 것부터 공격을 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도 빼앗아가고 있었다. 어디쯤에서 이런 짓을 멈출 지 누가 알겠는가! 베지르의 다리마저도 마치 목걸이처럼 부서지고 말았으니 이것은 한 번 시작되면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가 아는가? 모든 것을 정돈하고 깨끗이 청소하고 고치며 가꾸더니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맹렬하게 허물고 부숴버리는 이 불순한 이교도의 신앙이 전 세계에 퍼질는지도 모른다.

 

모두 가능하지. 그러나 한 가지는 불가능하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영원한 건축물을 세워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더욱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고귀한 정신을 가진 위대하고 현명한 사람들이 영원히 이 세상 어디에서든 자취를 감춰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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