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역사사회2020. 2. 7. 18:46
희망의 배신

희망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저/전미영

긍정 강요 사회를 파헤친 『긍정의 배신』, 워킹 푸어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한 『노동의 배신』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3권이자 완결편.

저자는 이런 화이트칼라 실업자로서의 취직을 위해 10개월 동안 이력서를 고치고, 취업 박람회 등 온갖 행사를 쫓아다니고, 화장은 물론 성격까지 고분고분하게 바꾸며, 돈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기업에 들어가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능력과 경력보다는 쾌활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더 중시하는 기업 문화를 목도한다. 구직 산업계가 요구하는 대로 다 해도 취직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 안에 있을 때는 노예로, 기업에서 밀려나고 나면 빈곤에 대한 공포를 안고 워킹 푸어로 전락하는 화이트칼라.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마저 무너져 가는 것이 오늘날 중산층의 아픈 현실을 저자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머리말 │ 화이트칼라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경제가 조금씩 나아져도, 기업이 돈을 긁어 들여도 여전히 정리 해고는 이어지고 있다. 평범한 직원뿐 아니라 유능하고 성공적인 사람들까지 내버리는 걸 보면 생물학에서 말하는 자연선택의 왜곡된 형태가 연상된다. 1990년대 중반 이래 이런 솎아 내기는 다운사이징, 규모 적정화(right-sizing), 스마트사이징, 구조 조정(restructuring), 직제 간소화(de-layering) 등 다양한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제도화되었다.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두 번째 조짐은 '과다 노동(overemployment)'이다. 기업의 중급 또는 고급 관리자도 먹고살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처럼 2개의 일자리를 가져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편안히 은퇴를 즐길 나이에 일자리를 찾고 있다.

 

내가 잘하는 일인글쓰기를 기업 용어로 옮기면홍보또는커뮤니케이션이 된다. 사실 홍보는 저널리즘의 사악한 쌍둥이다. 저널리즘 학교에서는 대개 홍보도 함께 가르치는데 저널리즘은 진실을 찾는 반면 홍보는 진실을 가리거나 호도하기 위해 동원되는 게 다르다

 

 

1 코치가 있는 오즈의 나라로

 

커리어코치는 화이트칼라 실업에 대응해 3년마다 그 수가 배로 불어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성장하고 있는 이직산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기업 마인드와 에니어그램

 

에니어그램 - 인간의 성격을 9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성격지표

- 인성 유형에 대한 설명

- 동기에 관한 고대의 지혜에 기반을 둠

- 쉽게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도해

- 균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 제공

 

열정적인 코치에게 장단 맞추기

 

첫 코칭이 끝날 때쯤 되자 나는 탈진했고 그녀는 더 열광적이 되었다. 킴벌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랬다. “이제 우리는 함께 춤추는 거예요!

 

고대의 지혜가 담긴 인성 검사

WEPSS 검사는 200개 항목의 제시문에 A에서 E까지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었다.

[…]

거의 반대를 하지 않는다, 가끔 반대한다, 늘 반대한다는 식으로 한 사람을 묘사할 수 있을까? '열광하는것을 가끔, 항상, 절대 안 함으로 구분하는 게 가능할까?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을 가끔, 항상, 절대 안 함으로 구분하는 게 가능할까?

 

검사지가 규명하려는 인성이라는 관념 자체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주저하는', '걱정하는', '교정하려는' 마음을 떨치고 정답처럼 보이는 것, 가장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고르기로 했다

 

나는 약간의 사자 성향이 곁들여진 양철나무꾼으로 판명되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인성의 특성을 나열하자면 경솔하고, 냉소적이고, 허풍스럽고, 역겹고, 매력적이고, 다정하고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던 분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몬태나 뷰트의 광산에서 기업 성층권까지 비상해 다국적기업의 조사부문 부사장까지 지냈다. 아버지가 인성검사나 임원 대상 코칭을 받은 적이 있을까? 50년대와 60년대에는 지금과 달리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했을까?

 

이력서 업그레이드 비법

 

조언을 구하고 더 나아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실업자’, ‘화이트칼라’, ‘전문직’, ‘일자리를 이리저리 조합해 구글을 검색했다. 요령 있는 검색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첫째, 일자리가 없는 화이트칼라는실업자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직이나구직을 쳐야 관련 정보가 나왔다. 화이트칼라보다 더 아래에 있는 블루칼라나 핑크칼라만이실업을 실제 상황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인성 검사에 숨은 이데올로기

 

커리어코치들이 코칭 작업에 과학적 신빙성의 허울을 씌우기 위해 근거 없는 인성 검사를 이용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문제는 코치들뿐 아니라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들 사이에서도 인성 검사가 광범위하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을 쉽사리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성 검사는 기업이 선의, 곧 직원의 고유한 성격을 너그럽게 인정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한 제스처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을 존중한다는 기치 아래 조직은적합성이라는 상투적인 근거를 들어 구성원에 대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나쁜 직원, 나쁜 직장은 없다. 둘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만 남게 된다.

 

인성 검사는 기업이 입사를 거절하거나 해고한 뒤부적합하다는 말로 합리화할 수 있도록 예의 바르게 처신하는 방편의 의미가 더 크다.

 

내가 믿는 대로 된다?

 

궁극적으로 태도가 구직을 결정한다. […] 다시 말해 당신이 마음에 들면 채용한다는 뜻이다.

 

채용 결정의 90퍼센트가 감정적이라는 글을 읽으니 힘이 쭉 빠졌다. 능력이나 성과와는 무관하다는 건가?

 

킴벌리의 이번 코칭에서 또 하나추출(나도 이제 전문용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일자리를 구하면서 경력을 속이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킴벌리에게 배운 것, 또 무신경한 조앤에게서도 어느 정도 배운 것은 바로 거짓말하는 방법이었다. 평범한 이력서를 눈에 띄는 것으로 만드는 법, 실제로 갖지 않았거나 가질 자격이 없는 자신감을 가장하는 법. 이런 식의 속임수가 게임의 일부였다

 

 

2 인맥 찾아 삼만리

 

구직 자체가 일종의 직업

 

같은 생각이란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 또한 컨설팅을 한다고 소개를 했다.(프리랜서란 말 대신 컨설팅이라고 한다는 것을 이때쯤엔 알고 있었다.) 그러자 프랭크는이 세상은 우리를 모두 그걸로 만들려고 하지요. 컨설턴트로 말입니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필요할 때 쓰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컨설턴트에게는 의료보험 같은 혜택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고 여타 복잡한 일도 피할 수 있다.

 

두려움, 무력감, 주눅, 질질 끄는 상황, , ‘경력 공백’, 억지로 활력을 유지해야 한다.

 

구직은 일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었다. 구직 자체가 일종의 직업이고, 따라서 생활을 직장에서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들어 나가야 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역시 실업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장에서의 생활을 필사적으로 모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개념적 문제를 낳는다. 자신을판매하는 것이 교묘하게 자신을대상화하는 것이라면 자신을관리하는 것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정신 복제의 영역에까지 이르게 된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사치를 누린다. 하지만 직장을 찾으려는 사람은 구직에 12~16시간씩 투자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가면을 써야 한다

 

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고대 그리스의 연극배우처럼 가면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기업관리자들은 강철과 같은 자제력을 발휘해 무난하고도 쾌활한 미소 뒤에 모든 감정과 의도를 감추어야 한다.”

 

실업자의 일과표

 

네트워킹이라는 사기 게임

 

그건 성격 문제입니다. 나는 조용하고 내향적인 편이거든요. 네트워킹이 마치 사기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게임은 본래가 그런 식이죠.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회성을 이면의 목적에 맞춰 굴절시키므로사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정말로 낯선 존재일 것으로 기대하고 그 사람이 가진 겹겹의 미스터리에 매력을 느끼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네트워킹에서는 매춘과 마찬가지로 매혹될 시간이 없다.

 

 

3 신병 훈련소에 가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땅

 

실업자가 된 부모가 성인 자녀의 사업을 거드는 것이 하나의 추세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사실 그런 방식에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부모의 권위를 내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노년에 접어드는 문턱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자녀에 의해 해고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그들은 하루에 13~14시간씩 일하려고 하지요. 아주 힘든 일입니다.” 부동산업의 압박이 심하다는 이야기가 분명했다.

“그들?” 패트릭이 끼어들었다. “그들이 누굽니까?”

패트릭의 말인즉그들은 금기어였다. ‘경험에 근거해 자신의 이야기만 하라고 했다. […] 패트릭은 그녀의 분별 있는 판단을 무시했다. 시장은 우리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며또 다른 그들일 따름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가 실패의 변명으로 내세우는 외부의 힘 또는 실체가그들이었다.

 

순서가 돌아왔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다 지친 제임스가 주스 기계 쪽으로 가 버리자 신시아는 비밀 유지가 걱정이라며 말을 걸어 왔다. 동감이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모든 걸 털어놓기는 어렵다. 또 그 시점에서는 패트릭을 신뢰할 만한 근거도 전혀 없었다. 신병 훈련 프로그램은 집단치료처럼 구성되어 있었는데, 집단 내에서 가장 상태가 심각한 사람은 다름 아닌 패트릭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백인 노동력은 두 부류로 구성되어 있는 듯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 일자리를 갖고는 있으나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사람. 그 중간 지대는 곧 잘릴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서 더욱 장시간 일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이미 많은 동료가 해고당해서 일거리가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리 해고를 선호하는 기업에는 직원들 사이에생존자 증후군이라는 우울증이 널리 퍼져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는데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 중 일부도 그런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다. 크리스에게는 아무 해결책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현실을 인정하라는 가르침이 전부였다.

 

빌리가 끼어들더니 팀(T-E-A-M)모두가 함께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Together Everyone Achieves More)”이라고 내게 충고했다. 두려움(F-E-A-R) 역시잘못된 증거(False Evidence)…” 어쩌고 했는데 뒷부분은 놓쳤다. 패트릭은 선문답 같은 말로 내 상황을 정리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습니다.”

 

우리의 적은 우리 자신

 

아무래도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패트릭에게 개인 코칭을 받을 사람을 모집하는 것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미 그에게 코칭을 받은 사람도 4명이나 참가하고 있었다. […] 패트릭과의 개인 코칭을 끝낸 사람들이 왜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참가자 수를 늘려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패트릭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철저한 희생자 비난이었다. ‘당신의 문제는 당신 자신이다.’ 패트릭은 통속 심리학을 버무린 그 철학 이외의 것에는 죄다 반발했다.

 

그래요, 패트릭.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건 맞아요. 하지만무언가를 통해 그렇게 하는 겁니다. 바람이 내 얼굴을 때렸고 발 아래에는 보도가 있었다. 바깥세상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발에 닿는 인도의 감촉이 없다면 내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해고와 실업을 내가 끌어당겼다고?

 

당신 인생의 모든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 낸 것은오직 당신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오직 당신이 그런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건강, 재정, 인간관계, 직업적 삶, 이 모든 것은당신이 만든 것이며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고 당신의 것이다.

- Mike Hernacki, The Ultimate Secret to Getting Absolutely Everything You Want(New York: Berkley, 2001), pp. xii, 47.  

 

이런 감성이 정신병자의 망상처럼 비칠까 두려웠는지 표지의 안내문에 노먼 빈센트 필,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Chicken Soup for the Soul)』의 공저자 마크 빅터 한센의 추천을 받았다고 밝혀 두었다. 개인적으로 더 심란했던 것은 내 퇴직연금 운용사인 페인웨버( UBS)의 선임 부사장이 쓴 추천사도 표지에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페인웨버의 직원들만이라도 시장이 전적으로 자신들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당신이 할 일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저 원하는 것을 말만 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은 작동한다.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가속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저절로 진행된다.

- Ibid., pp. 90, 95.  

 

기껏 훔쳐 온 물리학을 안타깝게도 허나키는 여기서 망쳐 버리고 말았다. ‘가속은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꼬투리를 잡으면 뭐하나? 속도가 빠르든 늦든 돈은 한 푼도 내 주머니로 날아오지 않는 것을.

 

신병 훈련소에서 만난 동료들은 정리 해고와 관련된 주파수를진동시킴으로써 해고를 자초해 일자리에서 밀려났단 것일까? 바닥으로 추락한 사람에게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네가 만든 것이라고 하는 건 더없이 잔인하지 않은가?

 

반면 보수가 높고 유력한 일자리를 가진 경제적승리자에게는 한 사람의 운명이 전적으로 그 자신에 의해 좌우된다는 관점이 아주 편리하다. 그런 관점은 승자의 성공을 최고로 돋보이게 해 주며 패자의 항변을 묵살한다.

 

네트워킹, 네트워킹, 또 네트워킹

 

“일자리를 구하는 데는 4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론이 설명했다. “네트워킹, 네트워킹, 네트워킹, 끝으로 역시 네트워킹입니다.”

 

집중의 비결에 관해구직 과정을 출근하는 것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로는 도서관이나 친구 집, 아니면 우리 매카시 사무실에 간다고 해도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책임감을 일깨워 줄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상사 대용품이다. “우리는 상사의 존재와 누군가에게 반응을 보이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러니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야죠.”

 

이런 얘기를 듣다 보니 파시즘이 왜 호소력을 갖는지 파헤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가 떠올랐다. 일부러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누군가에게 상사 역할을 맡기려 하는 것 이상으로 명백한 자유 혐오의 징후가 있을까?

 

자신을 먹음직스런 후식으로 만들어라

 

 

4 깜짝 대변신 3부작

나는 계획을 3부로 세우기로 작정했다. 모름지기 서구 문화에서는 중요한 일을 3부분으로 나누는 법이다. 대중을 상대로 강연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핵심이 2가지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4가지면 지루하고 지나치게 많다. 균형과 완결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정확히 3가지라야 한다.

 

사회학자 로버트 재콜은 기업 관리자 세계에서는넓은 뜻에서 외모가 모든 것이라고 했다.

 

1부 논스톱 네트워킹

그렇다고 밝은 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계층적 특권이 실직 상태에서도 얼마간 남아 있었다. “임원급은 정리 해고를 당하거나 내쫓긴 게 아니라전환기에 놓인 거니까요.” 그렇게 남아 있는 우월성은 예컨대 모기지업체에 몇 달간 유예기간을 요청할 때 활용할 수 있다. 알렉 볼드윈을 닮은 강사는당신은 임원입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니 모기지업체에 갈 때에도 꼬리를 내릴 필요가 없는 거죠.”

 

나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호텔에서 만난 무기력한 유럽 관광객들(애틀랜타와 아틀란티스를 혼동했을까?), 특별 할인 시간대에 맞춰 선술집을 찾은 사람들과도. 그러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 되면 방에 틀어박혀 속에 맥주를 들이 붓고 쓰러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마이어스-브릭스 인성 유형에서 ‘E(외향적인 사람)’으로 나왔는지 의문만 점점 깊어졌다.

 

2부 나를 포장하기

성별과 관련된 귀찮은 문제도 있었다. […] 남성을 성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잘생기고, 키가 크고, 목소리가 굵직한 특징들은 사무실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반면 여성의 성적 매력은 경력을 끝장내는 어뢰가 될 수도 있다. “어깨까지 닿은 머리카락, 지나치게 드러낸 다리, 너무 큰 가슴은 여성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아름다움이 장애가 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공히 아름다운 여성은 지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렇게까지는 아니라 해도 경박한 존재로 여긴다.

 

지금껏 만난 다른 코치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나를유형으로 분류하는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별도의 검사 없이 프레스콧이 나를 훑어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내 체형이각진형이고, 얼굴은다이아몬드형이라고 했다.

 

3부 나를 팔기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대학만 해도 직업 준비는 시키지만 실직에 따른 충격은 다루지 않는다. 광대하고 장기적인 커리어코칭 시장이 열린 것이다. 엄청난 돈이 거기 있다. 아주 엄청난 돈이.

 

, 취약한 부분이 또 드러났군! 사느냐 죽느냐 하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누가 더 사기를 잘 치는가?

 

칼에 피를 묻히다

 

, 누가 이긴 것일까? 일자리가 목표였다면 나의 패배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일자리는 물 건너갔음을 바로 알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1시간 가까이 설득에 열을 올렸는데 뛰어난 통찰력과 남다른사람 다루기기술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패트릭은 그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막판에 나온 성차별적인 심술궂은 말만 빼놓고 보면, 오프라 윈프리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바람에 거의 내게 넘어왔다. 한편 관점을 달리하면 175달러를 손에 넣은 사람은 패트릭이다. 그러니 경제적 손익만으로 따지면 그가 나를 앞선 셈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내내,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른 평화주의자가 느낄 법한 온갖 감정이 들끓었다. 자기혐오와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5 하느님과의 네트워킹

주님을 찬양하라!

“요즘엔 자녀를 엄하게 훈육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매질을 해야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청중은 웃음을 터뜨렸고 독선적인 반응도 일부 튀어나왔다. 맥은우리 남부 사람 말 그대로 놈들을 짓밟아 버립시다!”라고 외쳐 박수를 받았다.

이런 광경을 예수님이 보면 어떻게 하실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런 서민적 사디즘을 날카롭게 꾸짖지 않으실까?

 

기업을 닮아 가는 교회

그날 밤, 덜레스 공항 근처의 모텔이 대개 그렇듯 기본적인 설비만 갖춘 홈스테드 스위트(Homestead Suite)로 돌아온 뒤 내가 묵는 모텔과 교회의 유사성을 깨달았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니지만 근저에 깔린 미학은 같았다. 절제된 선, 칙칙한 색깔, 값싸고 견고한 가구, 털이 거의 없어 세탁하기 편한 카펫. 그나마 모텔 방은 벽에 걸린 인상파풍의 그림 덕분에 교회보다는 분위기가 좋았다.

 

지쳐 떨어진 상태에서 생각해 보니 내가 들어선 기업 세계에는 이런 식의 미학이 온갖 곳에 침투해 있는 듯했다. 문장 서술 없이 항목만 나열한 이력서, 모텔과 비슷한 고속도로변의 교회, 계산된 미소, 관능을 억압하는 복장, 엄밀한 지시서, 수많은 슬라이드. 이 완벽한 도구주의의 영역에서는 그런 것이 통했다. 일을 진척시키고, 마감 시한을 맞추고, 예약을 하고, 제시간에 지시가 전달되도록 만든다. 그런 것들이 카펫을 얼룩 없이 깨끗하게 유지한다. 하지만 잃는 것도 있다. 막스 베버는 이런 현대적 상황을각성’, 신을 빼앗긴 상태로 파악했다. 생소함과 신비의 차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잭슨 리어스가 썼듯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때 천국을 보았지만 합리적인 근대인들은 하늘만 볼 뿐이었다. 엄격하게 집중을 강조하는 기업 문화 속에 사는 요즘 사람들은 아예 위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기업의 기독교화 추세가 확산되고 있을까? 그렇게 해서 기업 문화가 보다 인정 있고, 부드럽고, 생각이 깊은 쪽으로 바뀔까? 아니면 바뀌는 것은 종교 쪽일까? 철저하게 실용주의적인 매클레인 성서교회처럼 초월과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될까?

 

실직도 구직도 모두 그분의 뜻

구직자 특유의 단호하고도 수동적인 표정.

 

같은 상황에 놓인 많은 동료들은 1년 동안 면접 한 번 보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주님이 개입하셔서 전보다 훨씬 보수가 적은 제록스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그는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일했다. 그래도 만족하며 일했는데 제록스는 보수를 더 깎겠다고 통보했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주님이 그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주의 열풍의 이유

 

당장에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해도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는이유가 있고, 결국에는 자기를 위해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리처드 세넷은 이처럼 개인의 일상사에 항상 개입하는 신의 존재를 설정하는 것은 자기 삶을서사하려는 욕구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서사(narrative)는 사건을 연대순으로 배열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간의 흐름에 형태를 부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제시하며, 그 결과를 보여 준다…. [하지만] 단기적 탄력성과 유동성이라는 특징을 갖는 세계는서사를 통해서는 경제적 혹은 사회적 참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 Sennett, The Corrosion of Character, p. 30.

 

“이전 직장으로 돌아갑니다. 1년 전에 정리 해고당했던 곳으로.”

기분이 어때요? 당신을 내친 곳이잖아요.”

, 아무 상관없어요.” 그는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 없었으니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고요.”

이것이적기 공급되는 기독교 백인 노동자의 새로운 이상형이다. 일시적으로 불필요하게 되면 언제든 처분되고, 부르면 언제든 웃으면서 되돌아간다. 그 사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  최근 미국을 휩쓰는 복음주의 열풍의 기능 중 하나는 점점 더 신뢰할 수 없는 직업 세계와 인간을 화해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질 수 있는 것만을 가지고, 그것을 주신 것을 주님께 감사하라.’

 

 

6 꿈은 높게

거물급과 연줄을 확보하라

론은 내 돈을 이런 방식으로 쓸 기회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명예로운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무나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극단적으로 자아가 강한 사람은 구직 과정에서 잘 해내기 어렵죠. 나만 해도 우리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점심 식사를 함께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떤 가치관을 말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나는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CEO는 왕, 나는 신하

CEO의 평균 임기가 요즘엔 30개월로 줄었다. “어쨌거나 CEO는 소문을 가장 늦게 듣는 사람이죠. 내가 아는 CEO 중에 예외는 담배를 끊지 못해 회사 옥상에서 흡연자인 부하들과 어울린 CEO뿐이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니 CEO를 새로운 눈길로 보게 되었다. 흔히 얘기하듯 엄청난 보수를 챙기는 독재자가 아니라 제임스 프레이저의 고전 『황금가지(Golden Bough)』에 나오는 신화 속 왕들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 왕들은 봄이 되면 풍년을 기원하는 제물로 바쳐졌다.

 

짐이 그려 보인 기업의 내부 문화는 나를 매혹시켰다. 이탈리아 외교관 카스틸리오네가 묘사한 1500년 무렵의 유럽 궁정, 좀 더 현대에 가까운 시기라면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묘사한 내용과 비슷하지 않은가? 왕을 보필하는 신하인 우리 홍보 담당자들은 왕을 경멸하며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왕의 관심을 갈망한다. 우리는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왕이 이미 아는 사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낭비하지 않으면서전략적틀 속에서 조언해야 한다. 우리는 왕의 신뢰를 받아야만 나라(회사)를 구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공은 왕에게 돌아간다.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게 사무직의 요건

“기업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가진 것은 계약뿐이죠.”

 

언제부터 의자가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을까? 분명히 이삼천 년보다 더 오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근골격 구조가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일 테지. 하지만 본래 인간의 구조는 뛰고, 걷고, 쪼그려 앉고, 느긋하게 눕도록 설계된 것이어서 날마다 똑바로 앉아 있는 데는 부적합하다.

 

무안해진 나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다른 조원들이 독창적이지도 않고 전략적이지도 않은 항목을 종이 차트에 적어 내려갈 때마다 격려하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없으면 이들에게는 계획이라 할 만한 게 전혀 없었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아하, 나는 홍보 일을 잘할 수 있겠구나. 살면서 이미 배운 것 이상으로 다른 훈련을 받지 않아도 충분하군. 물론 내가 책임자일 때의 얘기지만.

 

구직자는 투명 인간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귀에 익은 거절의 말이 들려왔다. “공백 기간이 있군요.”

공백투성이인 예전 이력서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쿼비스처럼 컨설팅을 공백으로 간주하고 있는지, 통화 중에 확인해 볼 방법은 없었다. 어쨌거나 그동안 한 가지는 확실히 배웠다. 공백은 이유가 무엇이든, 어떤 종류든(육아, 노부모 간병, 질병, 그리고 컨설팅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쉼 없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벌어 온 것이 아니라면 일자리 찾기는 단념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운이 좋거나 노동 시장이 아주 활황인 경우가 아니라면, 지원하는 곳에 맞춰 각각 다르게 작성한 500통의 자기소개서와 함께 500통의 이력서를 보내도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쇄된 엽서 이외에는 단 한 건의 답도 받지 못할 수 있다.

 

“요즘 가장 보편적인 거절 편지는 침묵인 듯하다. 구직은 데이트와 비슷하면서도 더 힘들다. 절대 걸려 오지 않을 구혼자의 전화를 기다리며 전화기 옆을 떠나지 못한다.” 구직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쾅쾅 두들기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눈앞의 문은 요지부동 열리지 않는다.

 

 

7 화이트칼라를 등치는 미끼 상술

드디어 면접을 보다

당신은 취직되었습니다

의료보험도 복지 혜택도 없다

이런 식으로 기업이 책임을 방기하는 일자리는 수도 없이 많다. 1995년을 기준으로 미국 노동자의 31퍼센트는 복지 혜택이 없고 고용주와의 유대감이 미약한 비표준적 고용(nonstandard employment,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이라고 일컫는 단기 노동자를 비롯해 독립 사업자, 파견 노동자, 임시 파견 노동자, 도급 노동자 등을 모두 포함한 고용 개념이다옮긴이)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핑크칼라 임시직 노동자와 (잔디 깎는 일꾼, 가사 도우미 등) 블루칼라 일용직 노동자 대다수가 그렇다.

 

너무 분석하지 말 것

시작하는 데 1900달러가 든다는 얘기로군. “의료보험은 회사에서 제공하나요?”

당신이 모두 부담해야 해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알고 싶은 건 모두 알았다. […] 린다는 최종 변론을 펼쳤다. “지나치게 분석하려 하지 말아요. 이건 그냥 신나는 사업이고 엄청난 기회라고요.”

 

진짜 일자리는 어디에

 

나는 내가 들어가려는 기업 세계를 산꼭대기의 성으로 생각했다. 늑대와 야만족에게 쫓긴 굶주린 부랑자들이 제발 들어가게 해 달라고 매달리는 그런 안전한 요새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성 밖에는 또 다른 구역이 있었다. 성 안의 거주자들이 맡긴 하찮은 작업에서 나오는 불확실한 보상에 목을 매고 있는 난민 정착촌이 그것이다. 이 구역에 살면 한 가지 이점은 있다. 성 안 거주자들에게 강요되는 엄격한 순응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정말로자신의 상사가 될 수 있다. 분홍색 캐딜락을 부상으로 받고 부동산 거래로 한 재산 모으는 등 드물지만 여기서 아주 즐겁게 사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온갖 노력을 쏟아도 빈곤선에 근접한 벌이밖에 얻지 못하거나 파멸한다. 바깥에는 안전지대가 없다. 늑대 무리가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뿐이다.

 

 

8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취업 박람회에 가다

“글쎄요. 웹사이트에 이메일로 지원하라고들 하죠. 그래서 웹사이트에 지원서를 보내고 일주일 뒤에 전화를 해 보면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이거든요.”

그런 식이라면 박람회에 와 봤자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도 나는 취업 박람회마다 갑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뭔가 하고 있다는 기분은 들거든요.”

 

기업은 임시직을 원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 같은 건 없어요.” 마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런 일은 CEO에게 맡겨야죠. 나는 그저 어떤 일거리든 주면 해내겠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일은 모두 파견업체를 통해 들어온 듯했다. 그래서 한마디 거들었다. “바로 그 때문에 기업은 우리 모두가 임시직이길 바라는 거겠죠.”

 

9월 내내 계속 지원서를 제출하고 확인 전화를 했다.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철저히 깨달을 때까지. 이것이 진짜 내 삶이었고 정말로 생계가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면 초조해서 미쳐 버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널리스트/구직자라는 가상 상황에서도 거부당하는 것은 뼈아팠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러니까 진짜 삶에서 나는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 내며 여기까지 왔다. 나는 용감하고, 임기응변에 강하고, 아주 조금은 카리스마도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무응답과 무관심이라는의 형태를 가진 거절뿐이었다.

 

기업 세계는 내게 선언했다. 당신한테 요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미소를 짓고, 정장을 입고, 고분고분 순응하는 바버라 알렉산더 버전이라 해도 우리는 당신이 필요치 않다고.

 

생존용 일자리라는 올가미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 일단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떠밀려 실업 상태에서 불완전취업 상태로 들어간다. […] 이런 사람들이 일단 웨이터나 판매원으로 안착하게 되면 정부의 눈에는 그들이실업자로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관점에서 넓게 보자면 사건은 종료되고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이런 종류의 험한 대안은 대다수의 창의적인 커리어코치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유연성을 요구한다. 도나 유도비크의 사례를 보자.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이 흑인 여성은 8년 동안 일자리를 찾던 끝에팔방미인으로 변신했다. 이혼한 뒤 조지아주로 이사한 도나는 콜로라도로 이사한 내 형부가 그랬듯 많은 돈을 들여 강좌를 더 수강하지 않으면 교사 자격증이 쓸모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그녀는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조지아전력에서 트럭 운전, UPS에서 우편물 분류, 복사점 근무, 타일과 바닥 공사 등등. 9월에 연락했을 때는 하루에 90달러를 받으면서 임시 교사로 일하는 중인데 일이 없는 날에는 판매용 맞춤옷을 재봉틀로 박는 일을 하고 있었다.(기술은 전혀 필요 없다고 했다.)

 

스티브 역시 일류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꿈이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시간당 10달러를 받는 관리자가 되는 길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엄청 열심히 일해야겠지만요.”

그러나 전문직으로서 갖고 있는 기대치와 전망이 역으로 생존용 일자리에서 성공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다.

 

캐서린 뉴먼이 『추락(Falling from Grace)』에 쓴 대로다. “계층이 하향 이동한 사람들은 이전의 자아를 떨쳐 내는 지침이 없고, 새로운 자아를 위한 지시 또는 훈련도 없으므로 사회적, 문화적 진공 상태에 놓이게 된다.” 어느 정도 리더십과 혁신이 요구되는 책임 있는 직위에 걸맞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지위의 상실에 대처하기 어렵다.

 

실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괜찮은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판매원, 리무진 기사, 웨이터로 일한 기간은 늘어난 이력서의 공백을 메울 매력적인 내용이 되지 못한다.

 

리처드 세넷이 기업 고용을 분석하면서경력이 쌓일수록 그 사람의 가치는 저하된다.”라고 말한 그대로다. 그러므로 일단 저임금 생존용 일자리라는 올가미에 걸리게 되면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널찍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음지로 강제 이식된 식물과 같은 처지다.

 

나는 동료 구직자들과는 달리 생존용 일자리로 향하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의 최대 이점은게임 끝이라고 선언하고 본래 하던 글쓰기 일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 있다. 절벽 끝에 매달린 채로.

 

 

9 회사형 인간의 몰락

경제 저널리스트인 질 프레이저는엄마 같은 비서를 찾는 특이한 사람이 없는 한 마흔을 넘긴 여자가 취업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캐서린 뉴먼은 월스트리트 임원의 말을 인용해 기업의 연령 차별 실태를 보여 주었다. “기업은 40세가 넘은 사람을 사고 능력이 없다고 간주하죠. 50세 이상의 사람은 껍데기만 남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연금 불안 등으로 50대 중반이 넘은 사람들도 점점 더 많이 생업에 종사하거나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침묵을 강요하는 구직 산업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로(역동성 면에는 대단한 찬미를 보냈지만) 자본주의는 결코 안정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IBM과 같은 우량 기업들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 평생직장을 제공하던 시기는 한 세대 전에 끝났다.

 

기술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이 자신의 기술을 원하는 곳이 어디에도 없고, 경험은 평가절하될 뿐이라는 사실을 일상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저 사회 계약의 심층부를 조각내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다.

모르고 살다가도 막상 실업자가 되면 그 문제를 곰곰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는 법이다. 사무실과 집에서, 심지어 통근하는 시간에도 업무에 짓눌린 채 일주일에 60~80시간을 일하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빈 시간이 주어진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라는 (코치들이 생각해 보라고 늘 촉구하는) 물음뿐 아니라 보다 넓은 맥락에서이 그림은 어디가 잘못된 거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커리어코치 및 네트워킹 행사를 여는 단체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근본적인 질문과 그 질문이 내포한 항변으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인터넷 검색과 지원서 보내기 같은 구직자의은 쓸모없다는 것이 공인된 사실이고, 문제의 근원을 생각할 시간을 허비하도록 만드는 것 이상의 기능은 없는 듯하다.

 

네트워킹은 실업자들이 함께 모여 연대감을 형성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네트워킹의 본질 그 자체가 동료 구직자를 향한 연대감의 싹을 짓밟는다. 동료 구직자는 기껏해야 연락처나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여겨질 뿐이고 최악의 경우 경쟁자로 간주된다.

 

끝으로, ‘승리자의 태도를 견지하고 발전시키라는 끊임없는 충고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소 띤 얼굴로 자신감을 내보이는 사람이 불퉁한 사람보다 면접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특정한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승리자다운 감정을 실제로 느끼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부정적인생각은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실직으로 인한 분노는 남김없이 털어 버려야 한다. 내가 찾아 본 웹사이트에는이전 직장에 화를 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면 밖으로 드러난다.”라는 경고도 올라 있었다. ‘분노 금지는 진정한 수용이나 치유와는 별개의 것으로 구조적 문제에 침묵을 강요한다. ‘회사에 그토록 많은 것을 바쳤는데 왜 내가 쫓겨나야 했지?’라는 뼈아픈 물음은 질문으로 제기되기 전에 잘려져 나간다.

 

화이트칼라 실업자를 겨냥한 책, 코칭 프로그램, 네트워킹 행사에는 구직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데에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우리, 구직자들뿐이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우리였다. 승리자의 태도를 강조하는 것 역시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결국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깥이 아니라 내면을 보라. 세상은 당신이 보는 관점에 따라 전적으로 달라진다.

 

겉보기에는 달라 보이지만 개인 의지를 강조하는 무신론적 철학과 내가 조우했던 왜곡된 기독교 신앙은 둘 다 전능함의 환상을 준다. 기도하거나 집중하는 정신적 노력만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적, 경제적 힘과 대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포식자의 세상

내가 마지막 일자리를 잃은 건 솔직히 윤리적 갈등 탓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당신이 지키려는 가치가 회사에서 받는 보수보다 더 값집니까?” 온종일 나쁜 짓을 저지르다가 집으로 돌아가서는 아메리칸 드림 속에서 사는 게 가능하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돈을 버는 합법적인 방법은 2가지다. 매출을 늘리든지 비용을 줄여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운영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비용 절감의 일차 대상이 된다. CEO가 그토록 선호하는 인수 합병의 결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필연적으로 정리 해고가 따른다. 주주들(스톡옵션 덕에 요즘엔 고위 경영자들도 여기에 포함된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운사이징도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앰으로써 고위 경영자들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추세는 1990년대 중반부터 뚜렷해졌다. 대량의 정리 해고를 단행한 CEO가 그렇지 않은 CEO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겼다.

 

경영 컨설턴트들은 기업과 직원의 상호 충성심에 기반을 둔낡은 패러다임의 종말이라는 불가피한 추세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이익만 밝히는 이런 추세가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근간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본다. 지칠 대로 지친 불안한 생존자들에게 점점 더 많은 일거리가 떠넘겨지는 탓이다.

 

쾌활하라! 복종하라!

내가 맞닥뜨린 기업 세계의 여러 측면 가운데 가장 기묘했던 것은성격태도를 무한 강조하는 것이었다. 언론계나 학계에는 유별나거나 까다로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원고가 제때 도착하기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만 하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 세계로 향하는 길에는 성격을 개선하라는 경고 표지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인성 검사란 본래 성격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기업의 입맛에 맞는 성격은 딱 하나, 항상 쾌활하고 열정적이며 복종적인 성격뿐이다. 이직 산업에서 배양하고자 하는 성격이 바로 이것이다.

 

정말로 지성적인 사람의 특징을 나열해 보자. 그들은 혼자서 사고한다. 추상적인 관념을 좋아한다. 냉정하게 사실을 바라본다. 기만을 용서하지 않는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이견도 많다. 이런 특징은 업무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 승진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구성원 모두가 똑같이 성격도 좋고, 명랑하고, 그러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쾌활하지는 않은 팀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내가 진행한 집단 프로젝트에서는 성마르거나 냉소적인 팀원이 적어도 한 명은 섞여 있었고 더 많을 때도 있었다. 실은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다른 팀원들은 기업 세계가 그처럼 귀하게 여기는사람 다루는 기술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호감을 주는팀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조언하지만 사실은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해야 한다. 팀플레이어의 자질을 갖춘 사람일수록 견디기 힘든 환경이다. 쾌활함, 낙천성, 순응성, 3가지는 부하의 자질이다.

 

가장 성격이 좋고, 충성심이 제일 강하고, 가장 복종적인 직원이 감원 1순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성격적 매력을 과시하려면 호감을 주는 성품과 열의만으로는 부족하다. 뜨거운열정이 있어야 한다. 1979년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썼던 스티븐 코비는 ‘8번째 습관을 들고 나왔다.

 

‘열정’의 강조는 기업 제국의 지배 영역이 신민들의 시간과 정신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나타낸다. 예전엔 화이트칼라가 취미를 갖는 게 권장되었다. […] 그런데 요즘의 열정적인 직원들은 그런 사치를 부릴 시간이나 에너지가 없는 게 당연하다. 모든 시간이 회사의 것이다

 

존엄성은 사라지고 충성 서약만 남았다

화이트칼라 중에서도 의사, 변호사, 교사, 대학교수 등은 자율성과 안정성 면에서 좀 낫다. 20세기 초반에 그들이 취한 기본 전략은전문화였다.

 

반면경제 전문직은 의례적인 명칭일 따름이다. […] 이런 개방성 탓에 이 분야의 경력자들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할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변덕스러운 해고 물결에 맞설 보호 장치도 없다.

 

화이트칼라들이 갖지 못한 것 중에 일자리의 안정성 이상으로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존엄성이다. […] 그들은 일거리를 주면 그 일을 한다. 그런데 기술과 노동뿐 아니라자기 자신까지 판매해야 하는 화이트칼라 직종에는 이런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정장을 빼입은 화이트칼라가 육체노동자를 얕볼지 모르지만 사실은 육체노동자들보다 훨씬 강압적인 심리적 요구에 시달린다. 화이트칼라가 사는 세상은 음모와 정체불명의 기대치, 조작과 심리 게임이 횡행하는 곳이며, 성격과 태도 같은 자기표현이 업무 수행 능력보다 더 중요한 곳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립된 절망에서 집단행동으로 나아가려면 태도와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변화는 커리어코치들이 권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실업자와 불안한 취업자인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호감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뻗쳐 공통의 문제로 끌어들이는 능력이다. 이때 다양한 사람들, 특히 만성적인 억압에 시달리는 블루칼라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더욱 이상적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자의 태도가 아니라 보다 깊이 있고 고전적인 자질이다.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언급되는 것을 들어본 적 없는 이 자질은 다름 아닌용기. 엄청난 역경 속에서도 같이 손잡고 변화를 위해 싸울 용기 말이다.

 

 

후기 │ 시름시름 죽어 가는 중산층 

 

19세기에 마르크스는 일자리에서 밀려나 빈곤에 시달리는산업예비군의 존재가 노동계급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채찍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이 산업예비군 병력이 축소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쨌든 일자리를 갖고 있다. 대신에 갑작스러운 해고(그리고 그에 따른 의료보험 상실) 위협이 채찍 역할을 맡았다.

 

최근 1년 남짓 화이트칼라 수백 명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기업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를 한다는 무언의 가정 그 자체에 일단 의문이 든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나는 경력보다 인성을 중시하고 그 인성 평가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검사에 의존하는 기업의 터무니없는 비합리성을 비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비판의 수위가 너무 낮았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직원에 대한 인간 본연의 배려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방종 문화와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빚어진 무능이다.

 

주식회사 미국은 영리함, 독립적 사고, 창의성, 충실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이제는 우리도 압니다. 틀을 벗어나 생각하면 찬바람 부는 바깥으로 내쫓깁니다. 회사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을 말하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찍힙니다. 상사가 프로미식축구 결승전 파티를 열었을 때 이유가 뭐든 불참하면 퇴출자 명단에 오릅니다. 일주일에 50~60시간씩 일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게 됩니다. 요즘 직장에서 살아남는 진짜 마법의 주문은남들이 하는 식으로 해라.’입니다.

 

화이트칼라에게는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은 바로 당신의 상사라는 게 상식이다. 상사가고객이라면 그에게 팔 상품은 뭘까? 아부인가?

 

화이트칼라 희생자들(실업자, 불완전취업자, 직장은 갖고 있되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 눈에는 전통적인 피억압 그룹(여성, 동성애자, 유색 인종)과 이들의 유사점이 점차 뚜렷해졌다. 일자리를 잃은 화이트칼라는 자신의 상처를 수치스러워한다. 현재 처한 상황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명을 뒤집어쓴다.

 

언제든 처분 가능한, 그리고 이미 처분당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주장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바라건대 그 과정에서 블루칼라 노동자와도 연대했으면 한다.

우리는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개인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수준의 광기 이면에 거시적 수준의 비합리성이 존재하고 있기 대문이다. 택시를 모는 엔지니어, 놀고 있는 교사와 컴퓨터 전문가 들이 보여 주듯 이는 막대하고도 끔찍한 재능 낭비다.

Posted by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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